계절은 개인의 감정은 철저히 무시한다.
내가 가는 다방은 '흑백' 하나이다.
시월 - 수요일 - 올케는 나를 위하여 긴스커트를 입고, 어두운 국도를 힘껏 밟았다.
정일근, 김승강님의 시를 만나고 피아노 연주를 듣고, 장구 북소리가 둥둥거리고 -- 시인의 목소리로 시가 낭송되었다.
아름다운 계절, 좋은 사람들, 그리고 흑백 --
흑백 - 10월 18일
詩와 함께하는 김성관의 노래판이 벌어졌다.
섬. 그리움을 위하여 - 정일근
참담한 파도소리로 둘러앉은 이 그리움
물이랑 헤친 손톱마저 다 닮아 빛이되고
잡힐듯 아득한 연가여 육지는 너무멀다
물결휩쓴 해벽마다 쓸쓸히 이는 노래
노래는 맨발이 되어 뭍으로 흘러가다
눈물도 바닥난 동해섬이 되어 떠돌고
비늘떼로 부서지는 바람살 꺽어안고
빛나는 아침향해 홀로 누운 유배의 잠
천형에 아린 그리움 물소리로 풀어지다.
인동초 - 림길도 시, 박지현 노래
어릴 적 그때는
치맛자락 붙잡고
산길 가다가
인동초 꽃을 첨 보았습니다
이제는 산기슭
인동초 넝쿨
그 속에 피어나는 꽃같은 환상
당신은 인동초꽃 닮은 여인입니다
인동초 넝쿨처럼
휘감기던
아름다운 사랑의 기억은
당신의 끝없는 사랑입니다
실바람에 실려오는
인동초 꽃향기는
내 평생토록 코끝에 묻어버린
은은한 당신의 향기입니다
하이얀 인동초꽃
하나 따다
입에다 물고 보니
어머니 당신의 달콤한 젖 맛입니다
하얗게 떨어져 버린 꽃송이는
恨으로 가슴 찢기우는
내 그리움의 조각입니다.
파이 서비스가 종료되어
더이상 콘텐츠를 노출 할 수 없습니다.
장롱의 말 - 이달균
안방에 놓인 장롱은 고집으로 가득 차 있다.
비녀를 빼지 않은 어머니의 팔십 평생
오늘도 오동나무는 안으로 결을 세운다.
손이 귀한 집 손자는 언제 보냐고
벽오동 한 그루를 담장 아래 심었을
외갓댁 어른들 한숨이 손끝을 저며온다.
대동아 전쟁이란 흉흉한 소문 속에
감춰둔 놋그릇마저 기차에 실려가고
처녀는 장롱 속에서 며칠을 보냈다.
일곱의 탯줄을 끊은 가위며 실꼬리며
눈치보며 세들어 산 좀들의 흠집들과
닦아도 추억이 되지 않는 삭아가는 소리들
딸들은 내다버리자고 무심코 말하지만
피란 간 식구들을, 아버지의 임종을
묵묵히 지키고 기다리며 예까지 왔노라고
솜씨 있는 장인이 만든 오래된 악기의 만가지 소리와 만가지 사연들을
너희가 어찌 알겠느냐고 안방에 앉아 일러준다.
꽃 필까 두려운 목련 - 김승강
제 몸에서 꽃 필까 두려운 목련
지난밤 바람이 핥고 간 자리
행여 열꽃으로 필까 두려운 목련
나는 사랑하지 않았다네
사랑한 적이 없다네
스치는 바람에
코끝밖에 내준 것이 없다네
제 몸에서 꽃 필까 두려운 목련
누구나 처음에는
제 몸에서 나온 똥이 낯설듯
저만치 발 아래로
제 하얀 꽃잎으로 얼른
뒤 닦고 선 목련
'고향 이야기 > 흑백다방 그리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흑백, 2층 (0) | 2006.10.22 |
---|---|
흑백의 가을밤 (0) | 2006.10.19 |
흑백에서 보내 온 편지 (0) | 2006.10.14 |
다화방의 다과상과 백련차 (0) | 2006.09.15 |
흑백에서 만난 사람들 (0) | 2006.09.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