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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께 즐거우면 더 좋지 아니한가!
고향 이야기/진해 풍경

드라이브와 하이킹 모두 좋은 진해 해안관광도로 걷다

by 실비단안개 2016.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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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4일

오전 7시 50분에 집을 나서 진해 해안관광도로를 걷기 시작하여 오전 11시 10분까지 쉼없이 움직였습니다.

진해 해안관광도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의 한 곳으로, 20km중 웅천동 사도마을에서 웅동 영길마을까지 약 2.6㎞에 이르는 해안관광도로는 예전엔 자연경관이 수려하였지만 지금은 부산항신항으로 조망이 예전같지는 않지만 여전히 관광 명소로 각광받는 곳입니다.

도로 양쪽으로 벚나무, 아열대 식물 등이 식재되어 있어 해안도로의 아름다움을 더하며, 이용자의 편의를 위해 도로 중간 중간에 휴게소와 흰돌메공원, 주차공간, 자전거도로 등이 함께 조성되어 있습니다.

최초의 우리 땅을 밟은 서양인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Gregorio de Cespedes, 1551~1611)(종군)신부 기념 공원이 있었지만 2013년 10월에 세스페데스 신부 기념공원에서 1.5㎞ 떨어진 남문지구 제1호 근린공원으로 이전했으며, 황포돛대 노래비가 있기도 합니다.


해안관광도로가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며 끝지점이기도 합니다. 도로는 포장이 잘 되어 있으며 해안을 따라 드라이브하기에 좋으며, 자전거도로가 있어 자전거 하이킹을 즐기는 이들이 많고 안전펜스가 있어 걷기에도 좋습니다.



도로의 가로수는 벚나무와 후박나무이며 그 아래엔 철쭉과 애기동백이 심어져 있기도 합니다.



도로를 걷다 바다를 건너보면 마을이 있는데 안성이며, 우리가 어릴때는 바다를 헤엄쳐 안성까지 간 친구들도 많았으며, 옛날엔 갯벌이 넓게 펼쳐져 있었지만 요즘은 옛날처럼 펼쳐지지 않고 바지락을 캐는 사람들도 없습니다.



마을과 힌돌메공원 중간쯤에 오래된 포구나무가 있으며 옆엔 이미자의 황포돛대 노래비가 있습니다. 포구나무를 우리는 둥구나무라고 했으며 해안도로가 만들어지기전 이 포구나무까지 걸어 다녔으며, 우리는 흰돌모퉁이라고 했습니다.

대중가요로 널리 알려진 '황포돛대'는 진해시 대장동(성흥사 동네) 출신으로 지난 2000년 고인이 된 이용일 씨가 노랫말을 짓고 67년 백영호 씨가 작곡, 이미자 씨가 부른 노래입니다.

노랫말은 작사자가 63년 경기도 연천 포부대에 근무할 당시인 12월 어느날 석양에 돛을 달고 포구로 몰려드는 웅동 영길만의 고깃배를 생각하며 지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노래비는 저녁 태양이 서쪽 바다와 산을 넘어가면서 하늘과 바다, 산이 노을에 붉게 물들고, 붉게 물든 바다에 황포돛대가 떠 있는 모습을 모티브로 해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황포돛대 노래비를 돌면 멀리 흰돌메공원이 보입니다. 저 먼곳에 어떻게 갈까 망설여졌지만 걸음을 떼니 금방이었습니다.



걸으면서 절대 그냥 걸을 수 없지요. 가면서 풀섶을 내내 기웃거렸습니다. 이고들빼기가 많았으며 층꽃도 만났고 잎이 넓은 쑥부쟁이도 만났습니다.



흰돌메공원입니다. 여긴 남자와 여자 화장실이 따로 있는데 건물 모습도 다릅니다. 소라계단을 올라 흰돌메공원으로 갔습니다.



어릴때 이곳은 사람의 출입이 없었던 갯바위였는데 해안도로를 만들어 지금은 주말이면 낚시꾼과 야영객이 있기도 합니다. 주차시설이 잘 되어 있는데도 사람들은 주차를 이상하게 하여 이 도로를 달릴때면 신경이 쓰이며 쓰레기 또한 마구 버리고 있습니다.

공원은 산쪽에 조성되어 있는데 나무테크가 설치되어 있기에 쉽게 접근이 가능하며, 공원끝부터는 등산로입니다.



구절초와 털머위를 만난 후 공원을 살피니 차나무에 꽃이 피어 있었으며, 찔레와 망개가 익고 있었습니다.




공원에서 내려다보면 남문휴게소와 웅천왜성이 보입니다. 벚나무에 단풍이 들고 있습니다.



휴게소앞을 비켜 화장실 아래의 길로 들었습니다. 음악이 들렸으며 돌가시나무 열매가 빨갛게 익고 있었습니다. 아침시간이었기에 세상은 조용했습니다.




도로로 올라오는 계단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없는 탓인지 잡풀이 무성했습니다. 아랫길을 걷는 사이 임진왜란때 웅포해전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된 웅포해전비가 지났습니다. 되돌아 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기에 계속 앞으로 걸었습니다.



임진왜란때 웅포해전지며 산위에 웅천왜성이 있고 웅포해전지는 부분 매립이 되어 아파트가 건설중입니다.



오래전 여수 사도에서 만난 천선과나무가 해안도로에 몇 있는데 사도(같은 사도군요)에 가까운 곳의 나무는 제법 컸으며 열매가 많이도 열렸습니다. 천선과나무는 무화과의 한 종류로 주로 남해안 해안가에서 만날 수 있는데, 열매의 생김이 아기무화과같고, 상처를 주면 역시 무화과나무처럼 흰 유액이 나오며, 열매가 마치 젖꼭지 같다고 해서 속칭 '젖꼭지나무'로도 부른답니다.

화낭이 자라서 열매로 되며, 지름 15∼17mm로 되고 8~9월에 흑자색으로 익으면 먹을 수 있는데, 천상의 선녀들이 따 먹는 과일이라는 의미로 천선과라고 지어졌답니다. 쐐기풀목 뽕나무과의 낙엽활엽관목으로 높이 2∼4m이며, 한국 ·일본 ·중국에 분포합니다.



이제 사도가 가까웠습니다. 붉은 열매가 다닥다닥 달린 피라칸다가 보기좋은 이곳은 농원입니다. 피라칸다는 농원 울타리용인데 언젠가 한 번은 이곳을 걸어 구경하고 싶었는데 이곳을 걸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온 최초의 서양인은 1593년 일본인 고니시의 초청으로 이 땅을 밟은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Gregorio de Cespedes, 1551~1611)신부로, 첫 발을 디딘 간출암이며 맞은편에 세스페데스 신부 기념공원이 있었는데, 부산항신항 제2배후도로 공사로 세스페데스 신부 기념조형물은  2013년 10월에 세스페데스 신부 기념공원에서 1.5㎞ 떨어진 남문지구 제1호 근린공원으로 이전했습니다.

- 세스페데스 기념비는 천덕꾸러기



하늘이 깨어나고 있습니다. 사도에 거의 다 왔습니다. 해안가 건너편의 논에는 벼가 익고 있으며 우리처럼 들깨를 수확하여 말리는 농부도 만났고 가을답잖게 도라지꽃이 한창이기도 했습니다.




사도마을입니다. 매립으로 원주민은 대부분 이전을 했으며, 부산항신항 배후도로 공사가 한창이고, 한때 진해 글로벌테마파크 지정으로 지역민을 부풀게 했던 이곳에 아파트가 많이 건설되고 있는데, 이곳은 글로벌테마파크에 선정되지 않았기에 건설중인 아파트 분양이 염려가 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멀게만 느껴졌던 해안관광도로를 (부분이긴 하지만)완주했습니다. 승용차로 가면서 거리를 측정해보니 약 2.6km였습니다. 아파트가 건설중인 남문지구를 지나 샛길로 접어 들었습니다. 멀리 진해 농업기술센타가 보였기에 그곳까지 걷기로 했습니다. 요즘 진해식물원 풍경이 궁금하기도 했거든요. 근린공원과 샛길에 산국이 만발했습니다. 종일 해가 잘 드는 곳이다보니 우리 텃밭보다 빨리 피었습니다.



이곳은 차량통행이 많지 않다보니 타작한 나락을 도로에 널어두었습니다. 걷다보니 길이 없었기에 남의 밭둑을 내려 밭을 가로질러 길을 찾아 농업기술센타로 갔습니다.



드디어 농업기술센타에 도착했습니다. 스스로 대견했습니다.



에서 시작하여 까지 걸었으며 파란색선은 버스를 타고 이동하였으며, 마을버스시간이 어중간하여 새터에 내려 새터마을과 남양산업단지를 걸어 집에 도착했습니다. 대략 4km정도 걸은 듯 합니다.




더 보기

- 해안도로와 하늘마루와 해오름 길

- 진해 해안도로(황포돛대 노래비 - 행암)

- 세스페데스 신부공원과 최초의 미사 집전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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