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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이에게 늘 미안한 날

by 실비단안개 2008.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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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작은 아이 생일이다.

나라의 역사가 기록되듯이 나는 작은 아이의 역사를 매년 생일때마다 사진으로 남긴다. 백일날에 사진으로 남기면서 마음으로 한 약속, '우리 아기 스무살 때까지 생일날마다 그 모습을 꼭 담아 줘야지.'

백일부터 첫돌 그리고 오늘의 생일까지 모두 담았다. 때로는 케� 대신 초코파이에 초를 꽂기도 하였고, 어떤 해에는 아기와 나만 마주하여 촛불을 밝히기도 하였다.

소중한 아기, 생일날 만큼은 밖의 음식을 먹이지 않겠다는 그 약속도 지켜주었다. 연휴라 집에 온 아기가 어제 저녁에 부산으로 갈 줄 알고 어제 오전에 케�에 불을 밝히고 미역국을 끓여 주었는데, 이늠은 밑반찬이 필요하다며 오늘에야 부산으로 갔다.

 

이제 우리아기가 스무살이 되었다. 내 마음과의 약속날은 이제 지났지만 내년의 생일날에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우리 아기의 생일날 모습을 담을 것이다.

 

작은아기의 생일날이면 미안한 일이 있는데, 큰아이의 생일날 모습은 첫돌 사진 뿐이다. 카메라가 없었던 것은 아닌데 미처 생각을 못하였었다. 하여 큰아이에게 늘 미안하다.

말없이 다정다감한 아이이며, 제 에미 비위 맞추느라 마음 고생도 많은 아이다.

유별난 에미, 생일은 기본이며 성탄절까지 선물을 받고 싶어하는 철 없는 엄마이니 우리 딸이 얼마나 고달플까.

 

스물여섯 가을에 얻은 아이, 내가 엄마라는 사실이 낯설고 아기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도 참으로 낯설었다.

아가 - 우리아가 -

(아마 중학생이 된 후에도 이렇게 불렀을 것이다.)

그러다 이늠 여섯살 때 얻은 작은아기, 이늠은 어떻게 불러야 하나 - 아기 -

큰아이를 부를 때는 '아가'였으며, 작은아이는 '아기'라고 불렀고 지금도 작은 아이는 식구 모두가 아기, 애기 이렇게 불러 준다.

이웃과 내 친구들은 나를 이상하다고 한다. 그냥 이름을 불러 주면 될텐데 하면서.

그러나 이미 굳은 혀는 아기의 이름을 아주 어쩌다 불러 준다.

 

다정한 큰아이는 동생을 끔찍히 아낀다. 아기가 집으로 오는 금요일이면 아기에게 먹일 간식을 꼭 챙긴다.

불쌍한 우리아기 - 하면서.

이런 - 에미가 있는데 불쌍하다니 -

그래도 혼자 고생하잖아~ 한다.

 

오후 3시 마을 버스로 아기가 부산으로 갔다.

큰아이의 지난 흔적들을 보았다. 무심한 엄마, 데리고 온 자식도 아닌데 어떻게 아기와 차별을 하였을까 …

 

살림도 많다.

앨범이 몇권이나 되며, 그외에도 엄청나다.

몇년전 태풍 때 뒷베란다가 물에 잠기면서 어릴 때부터의 교과서, 노트, 배냇저고리, 첫외출복, 스케치북, 방학과제 모음등 많은 것들이 버려졌지만, 하나씩 꺼내보니 그래도 많았다. 그런데 중학교 진학하며 잘라 둔 머리카락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가 않는다. 예방접종증과 이름표등도 보이지가 않는다. 어쩌면 아기가 잘 두었을 수도 있고.

 

 

작은아이의 생일 케�이다. 준비와 춧불켜기까지 큰아이가 해 준다. 어제는 블루베리맛이라  새콤하여 케�을 즐기는 나도 아직 남겨두었다.

 

 

큰아이 배꼽이다. 묽맑은 곳에 흘러 보내야 한다기에 아직까지 보내지 못하고 옷장안에 있는데, 언제 싸 두었는지 네잎크로바도 있었다. 나도 오랜만에 꺼내어 보았다. 어쩌면 영원히 간직해야 할런지도 모르겠다.

 

 

작은아기는 육아일기도 썼는데 큰아이는 그저 엄마수첩에 예방접종등과 함께 간단한 메모식으로 기록이 되어 있다. 아기와 처음으로 금강공원에 간 날이었다. 그외 영수증은 시청료 영수증인데 나도 참 한심하다. 상자에 보면 별의별게 다 들어 있다.

 

 

큰아이 초등학교 입학안내와 시험지다. 색바랜 시험지와 안내서, 친구들 명단등 아기에게 소중했던 많은 것들이 그대로 있으며, 아래의 사진은 처음으로 우유급식을 할 때의 신청서와 첫야영 영수증, 육성회비 영수증, 처음으로 기차를 탔을 때의 흔적, 성적표, 학교신문등이다. 너무 청승맞은 엄마일까 -

 

성적표를 보니 초등학교 4학년 때의 것이다. 부산 중리초등학교에서 이곳 웅동초등학교로 전학을 한 흔적이 있다.

아이의 입학은 부산 중구의 봉래초등학교였는데.

영도 중리학교에 다닐 때는 야트막한 산을 하나 넘었었다. 아침이면 아이의 손을 잡고 학교에 데려다 주곤 하였고.

 

 

 

초등학교 6학년 때에 처음으로 급식을 하였나 보다.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명칭이 바뀌고 처음으로 급식을 하였으며, 그때는 마을 버스가 없었기에 담임(한인희 선생님)이 아이를 하교를 시켜 주고 선생님은 김해 진례의 댁으로 가셨다. 참 많이 감사하였던 선생님이셨다.

 

중학교 배정표와 당시 진해시장님의 사인도 있다. 그때 시민회관의 무슨 음악회에 갔었는데 시장님을 만나자 사인을 해 달라고 하더니 …

 

 

초등학교 1학년 때는 그림일기를 그렸는데, 그림 스케치북과 함께 태풍에 피해를 입어 없으며, 2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의 일기장이다. 큰노트를 포함하여 52권이다. 가끔은 일기를 적지 않은 날도 있지만 열심히 기록한 아이다. 

 

 

동그란 사진은 유치원 생일날에 친구들에게 받은 선물이다. 자신의 사진을 앞으로 하여 원생들이 그린 그림들을 모두 묶어 선물로 받았었다. 영주동 중앙유치원이었으며, 독한 엄마를 둔 덕분에 2년 개근을 하였었다.

유치원부터 결석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 내가 독하다보니 아이가 아프면 유치원의 가방을 유치원에 넣어두고 아이를 업고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히고 다시 유치원에 데려다 주었으며, 초등학교때부터는 많이 아프면 학교에서 공부하다가 죽어라 - 할 정도로 결석이란 건 용납을 하지 않았었는데, 아이는 이 부분에서 지금은 많이 감사해 한다.

 

작은 메모지 속에것은 진해여고 학생증이다.

메모지는 병속의 것인데, 내 생일날에 아이들이 준 선물이다. 때로는 꽃을 접기도하며 긴 편지글도 주고, 위의 메모지처럼 종이를 아주 작게 잘라 그 한잔한장에 엄마, 사랑, 행복등의 글과 친구들 이름, 당시 연예인들 이름까지 적어 쪽지편지처럼 모두 접어 병에 담아 주었었다. 

 

빛바랜 많은 시험지와 통지표, 상장 등등을 남겨 주었지만, 흔한 사진 - 생일날의 사진을 해마다 찍어주지 못하여 늘 미안한 마음인데, 아직 아이에게는 아무런 말을 못하였다.

언젠가는 이야기를 할테지 -

아기에게처럼 생일날 마다 모습을 담아주지 못하여 미안하다라고 -

 

아이의 어릴적 모습들이 스친다.

길을 걷다 넘어지면 엄마가 무서워 얼른 일어나 손을 탁탁털던 아이 - 엄마 항개도 안 아퍼 -

서너살 때였을까, 국제시장에서 시계를 사달라고 시장통을 구르던 아이 -

목욕탕에 가면 꼭 코카콜라를 마시던 아이 -

두부 심부름을 시키면 삼육학교에서 놀다가 엉망이 된 두부를 들고 오던 아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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