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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누기/가본 곳

비운의 사도세자와 효자 아들의 융건릉 숲, 친구와 걷다

by 실비단안개 2014.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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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수원의 친구가 다녀갔는데 그 친구의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고자 2년전 10월 20일 친구와 함께 했던 시간을 올립니다.(서울을 다녀 온 2012년 10월 하순부터 블로그가 거의 방치)

전날은 서울의 친구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으며, 수원의 친구는 보리밥집을 운영하기에 함께 하지 못 했기에 20일날 수원으로 가마했습니다.

- 친구가 차려준 (수원)명동 보리밥

 

바쁜 친구이기에 보리밥을 대접받은 후 일어서고 싶었는데 오후 시간을 비워 두었다면서 수원 화성은 두 번 다녀왔다고 했더니, 손수 운전을 하여 화성 융·건릉으로 갔습니다. 여고시절 이후 친구와 단둘이 보낸 시간이었기에 우리는 그간 쌓였던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되는데, 친구는 몇 십년전에 주고 받았던 손편지를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운전을 하며 친구는 수원과 화성, 수원의 먹을거리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 주며 화성의 융·건릉으로 갔습니다.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에 위치하고 있는 사적 제206호 융·건릉은 조선 22대왕 정조와 그의 비 효의왕후 김씨를 모신 건릉과 사도세자와 그의 비 현경왕후 홍씨를 모신 융릉이 조성되어 있는 곳입니다.

입구에는 2008년 기준 수령 140년 향나무가 있었고 조선왕릉 세계유산 안내가 있으며, 릉으로 가는 숲길 코스는 모두 3개가 있는데 1∼3㎞로 다양했습니다. 숲은 관리가 잘 돼 있고 휴식 공간이 많았으며 시민들은 10월 오후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알싸하면서도 상쾌한 숲길을 친구는 앞서걷고 가끔 카메라질을 하면서 친구 뒤를 따랐습니다.

 

 

 

사도세자로 잘 알려져 있는 추존왕 장조와 그의 부인 혜경궁 홍씨의 효성스러운 아들 22대 왕 정조가 잠들어 있는 건릉입니다. 박석에 이어 정자각(능 제향을 올리는 정자모양으로 지은 집. 제향을 올릴 때 왕의 신주를 이곳에 모신다. )이 있으며, 뒤로 릉이 있는데 능상(왕과 왕비의 무덤)을 보호하기 위한 동·서·북 3면곡장이 둘러져 있으며, 정자각까지 관람객 출입이 허용됩니다.

 

 

건릉 상설도를 읽어보면 릉의 구조에 대한 이해가 쉽습니다.

 

 

 

건릉을 좀 더 당겼습니다.

정조대왕을 이야기할 때 빠드릴 수 없는 곳이 수원 화성인데, 수원 화성은 왕권강화와 효심이 절묘하게 일치된 결과물로 정조의 자존심이자 수원시민의 자부심의 원천으로 1963년 사적 3호로 지정되었으며,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습니다.

- 조선 정조 (홍재 정조)

 

 

정조대왕의 건릉에서 1km정도의 거리에 아버지인 비운의 사도세자의 릉인 융릉이 있으며, 우리는 가을이 밀려 다니는 숲길을 걸어 융릉으로 갔습니다.

건릉과 융릉은 구조가 아주 비슷합니다.

 

 

숲은 기온이 낮다보니 서울이나 수원시내만큼 단풍이 깊지 않았는데 호들갑스러움보다 잔잔한 이런 길이 친구와 하기에 더 좋았습니다.

어쩌면 빠져 나갔을 수도 있지만 융릉으로 가는 숲길에는 건릉쪽보다 관람객이 많지 않았기에 그 또한 다행인 길이었는데 조용한 산책을 하고 싶다면 이 길을 권하고 싶습니다.

 

 

 

추존왕 장조(莊祖) 융릉

융릉은 훗날 장조로 추존된 장헌세자와 훗날 헌경의황후로 추존된 그의 비 혜경궁 홍씨의 합장릉입니다.

1762년 윤 5월 21일 아버지 영조의 명으로 뒤주 속에 갇혀 숨진 장헌세자는 그해 7월 23일 현재의 동대문구 휘경동인 양주 배봉산 아래의 언덕에 안장되었습니다. 아들을 죽인 것을 후회한 영조는 세자의 죽음을 애도한다는 뜻에서 '사도'라는 시호를 내리고, 묘호를 수은묘라고 하였습니다. 1776년 그의 아들 정조가 즉위하여, 아버지에게 '장헌'이라는 시호를 올리고, 수은묘를 원으로 격상시켜 영우원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습니다.

1789년(정조 13년)에는 무덤을 현재의 위치로 옮기고 현륭원이라 하였으며, 1815년(순조 15) 12월 15일에는 혜경궁 홍씨가 춘추 81세로 승하하여, 1816년(순조 16) 3월 3일 현륭원에 합장하였습니다.

 

황제로 즉위한지 3년이 되는 1899년(광무 3) 11월 12일 고종은 장헌세자를 왕으로 추존하여 묘호를 장종으로 올렸기에 융릉이라고 능호를 정하였으며 곧이어 12월 19일에는 황제로 추존하여 장조의황제라 하였으며, 혜경궁도 헌경의황후로 추존 되었습니다.(참고 : 문화재청 융·건릉 이야기 http://hwaseong.cha.go.kr/depart/n_hwaseong/promenade/royal.jsp?mc=hwaseong_01_01

 

숲길과는 달리 융릉에는 건릉과 마찬가지로 관람객이 많았으며, 우리도 일행이 되어 안내판도 읽고 건릉과 비슷한 구조이기에 특별할 게 없었지만 복습하는양두루 살펴보았습니다.

 

 

 

 

 

홍살문 오른쪽의 원형 연못 곤신지(坤申池)는 융릉이 천장(遷葬)된 이듬해인 1790년에 조성되었으며, 곤신방(坤申方:남서방향)은 융릉의 생방(生方:풍수지리 용어로 묘지에서 처음으로 보이는 물을 지칭)으로 이곳이 좋은 곳(吉地)이기 때문에 판 연못이라고 하는데, 정조가 아버지 사도 장헌세자(추존 장조)의 왕이 되지 못한 한을 풀어드리고자 융릉 풍수반룡농주형국을 보완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조성한 연못이라고 합니다.

계절마다 풍경이 다를 텐데 이때 곤신지에는 연잎이 말라가고 있었으며, 가을이 물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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