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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누기/가본 곳

부산 용두산 공원의 어느 가을날

by 실비단안개 2019.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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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1일

동아대병원 정기검진일이었습니다. 진료 시간은 오후였지만 선물받은 카메라 작동법을 배우기 위해 오전에 부산 광복동으로 가서 작동법을 배우고 악세사리를 구입했는데 진료시간이 약 3시간 남았기에 근처 용두산 공원으로 갔습니다.

보통 은행나무 가로수길로 갔지만 이번에는 에스컬레이트로 용두산 공원으로 갔는데 경사가 아주 급했기에 조금 무섭기도 했습니다.

 

 

용두산 공원입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으며 부산타워가 있습니다.

오래전 부산 중구에 살때는 국제시장과 용두산 공원에 자주 갔었습니다. 서울올림픽 성화봉송때도 갔었고, 대망의 2000년 시작을 맞는 타종식 구경을 하러 얼라아부지와 밤중에 진해에서 용두산공원에 가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먼곳에 있는 도시의 공원같습니다.

인공폭포가 있었습니다.

 

 

龍頭山公園 뒤의 정자같은 곳이 종각입니다.

 

 

부산 용두산공원은 용두산으로 옛부터 소나무가 울창하여 송현산, 초량소산이라고도 하였으며, 산의 형세가 용이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와 바다를 향해 뻗어 나가는 용의 머리에 해당한다하여 용두산(龍頭山)이라고 불렀습니다. 광복 후 한국전쟁기에는 국립국악원, 중앙정부기관 일부와 피난민들의 판잣집들이 있었으나 1954년 12월 용두산 대화재로 불타고, 그 후 녹화사업이 이루어져 1957년 이승만 대통령의 호를 따서 우남공원으로 이름을 바꿨다가 1960년 4.19혁명 후 1966년 용두산공원으로 환원되었습니다.

1972년 지방문화재 제25호 지정되었으나 1993년 지방문화재 제25호 해제되기도 한 부산과 함께 파란만장한 사연을 간직한 부산의 대표공원입니다.

시비와 함께 대표시설로는 부산타워와 팔각정, 백산 안희제 흉상, 꽃시계, 이순신장군 동상, 시민헌장비, 용탑, 초량왜관비 등이 있는데 용두산에는 조선후기 초량왜관(1678~1876년)이 있었으나, 1876년 개항이후 일본인 전관거류지가 조성되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식민지 부산부의 중심지이자 항일독립운동의 거점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꽃시계, 이순신장군 동상, 부산타워입니다.

용두산 공원의 꽃시계는 전국에 설치된 꽃시계 중 유일하게 초침이 있는 시계로 기념사진 촬영 장소로 유명한데 요즘도 사진사가 있었습니다.

 

 

 

종각입니다.

부산시민의 종은 100,733명의 부산시민의 참여로 1,280백만원의 기부금을 모아 종무게 25톤, 종높이 3.8m 구경 2.3m, 종각 165㎡의 규모로 1996년 12월 31일에 부산의 상징인 '부산시민의 종'을 1996년 건립하였으며, 매년 3ㆍ1절, 광복절과 매년 1월 1일 0시에 서울 보신각종처럼 부산의 각계 인사와 시민들이 모여서 제야에 타종식을 거행합니다.

 

 

단풍이 들기 시작합니다. 관광객은 외국인이 내국인보다 더 많았습니다.

공원 정상에는 1974년에 건설한 부산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높이 120m의 부산탑이 세워져 있는데, 부산탑에서는 태종대와 오륙도를 비롯해
시야가 좋은 날은 멀리 쓰시마 섬[對馬島]까지 보인다고 합니다.

 

 

1973년 10월 9일 부산시민의 기상을 널리 알리고자 용탑을 설치하였는데 글이 이은상의 글이었습니다.

 

 

 

용탑 옆에는 백산 안희제 흉상이 있습니다.

백산 안희제(1885~1943) 선생은 3 ·1 운동 직전 기미육성회를 설립, 동아일보 창간주제 중외일보발간 등의 일제의 침략이라는 민족적 위기상황에서 민족교육, 민족기업육성, 항일언론 등 다방면에 걸쳐 국권회복을 위해 국내외에서 활동한 민족독립 운동가입니다.

 

현재 백산기념관이 있는 자리에 백산상회를 설립·운영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였으며, 백산상회를 백산무역 주식회사로 확장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국내외 독립운동 단체에 활동자금을 지원하였습니다.
현재 기념관은 95년 8월 15일 개관하여 부산. 경남지역 독립운동의 교육장이 되고 있으며, 전시장에는 선생의 유품과 당시 구국운동 자료 등 80여 점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흉상 옆으로 올라가면 타워와 팔갈정으로 가는데 팔각정은 커피점이었습니다.

 

 

동광동쪽으로 가는 곳에 한복대여점이 있었지만 한복을 입은 이는 없었으며 기념사진을 찍는 이들은 있었습니다.

 

 

옛 부산시청 자리에 롯데백화점이 세워졌는데 남포동과 영도를 잇는 길을 가렸습니다.

 

 

타워와 팔각정 안내입니다.

몇 년전 공원을 방문했을 때는 타워가 공사중었는데 이번엔 혼자였기에 타워에는 오르지 않고 면세점만 둘러 봤습니다.

 

 

그렇잖아도 복잡한 용두산 공원에 또 하나의 구조물이 있었습니다.

작품제목은 '부산을 바라보다'입니다.

 

 

 

야광 자물쇠존과 안내입니다.

타워1층 키프트샵에서 구입해야 한답니다. 너무 속보이는 행정같습니다.

 

 

편의점에서 단지우유를 하나 구입하여 마시고 내려 가는 길입니다.

이순신 장군 동상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은 진해 북원로타리에 세워졌으며, 용두산공원에는1956년 3월 20일 세워졌는데, 설치자는 경상남도 도지사 이상용입니다.
1963년 경남에서 분리되기전까지 부산은 경상남도였기때문입니다.

 

- 1896년 8월4일(고종 33년 건양원년) 경상남도 관찰부 수부 소재지를 진주부에 설치
- 1925년 4월1일 일제강점하 진주에서 부산 부민동으로 이전
- 1963년 1월1일 부산의 직할시 승격으로 경남에서 분리

 

동상수록 내용입니다.

"여기 서 계신 어른은 우리 겨레와 함께 영원히 가시는 거룩한 지도자 충무공이시다. 그는 오색 찬란한 꺼지지 않는 민족의 태 양이니 진실로 우리들의 자랑이요 영광이요 또 힘이요 생명이시다. 일찍이 이조 인종(서기1545)삼월 초팔일 서울에서 나시어 오십 사년간 누리시고 선조삼십일년(서기 1598)십일월 십구일 새벽 노량 바다에서 적탄 아래 돌아가셨으나 그 무렵 무너지는 나라를 한 손으로 떠 받으신 위대한 은공을 강산과 함께 사라지지 않는 것이요 동포를 위하여 뿌리신 피는 자자손손 만대의 혈관속에 흘러 드신 것이다.

그의 동상을 구태여 이 곳에 세우는 뜻은 저 임진란때 왜적이 이 땅에 첫발을 올려 놓은 곳이 바로 여기였기로 그날의 고난을 뼈저리 게 기억하자 함이요 또 여기가 이 나라의관문이라 예서부터 인족의 정기를 바로 세워 국토수호의 피어린 정신을 안팎으로 나타내자 함이니 겨레여 가슴마다 임은 살아 계시니이다. 강산에 서리신 뜻은 천수만대 푸르리이다.

 

단기사천이백 팔십오년 십이월 이십이일. 김경승은 조각하고 이은상은 글을 짓고 동명서예원 오제봉은 글씨를 쓰고 경상남도 지사 이상룡은 도민 전체에 힘과 정성을 모아 여기에 삼가 이 동상을 모셔 세우다."

 

뜬금없이 정수사란 절이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무료급식소가 있었었는데 무료급식소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부산은 아직 청춘이었습니다. 중앙성당에서 용두산 공원으로 오르는 길의 가로수인 은행나무인데 초록초록했습니다.

 

 

중앙성당쪽으로 갑니다. 타일모자이크가 있으며 위에는 시비가 있는데 부산은 시비가 너무 많은 듯 합니다.

 

 

 

모자이크타일은 용두산 공원의 변천사를 알려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용두산 자리에는 조선시대 초량 왜관(倭館)이 위치해 있었으며, 광복 전에 일본인들이 용두산신사를 세웠고 그 뒤 산 일대에 공원을 조성하였데 광복 후 신사는 철거되고 고목은 불에 탔다고 합니다. 사진은 역사를 기록하는 하나의 수단이었습니다.

 

 

시의 거리 입구에 용두산 공원 안내도가 있으니 첫길이라면 휴대폰에 저장하여 관람을 하면 좋을 듯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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