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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이야기/흑백다방 그리고…

진해의 흑백다방은 전설이었나 …

by 실비단안개 2007.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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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6시 25분, 메일 한 통이 배달되었다.

 

12월..해설이 있는 음악감상회

"송년음악회 - BEETHOVEN의 ANDANTE"

 

모든 이들에게, 특히 제게는 너무도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마감하는 올해의 마지막 음악회, 송년음악회입니다.

한해를 잘 마무리하시고, 모두 건강 평온하시기를 기도드리면서, 베토벤과 함께 하는 12월의 음악회에서 뵐수 있기를 바랍니다.

 

언제 ; 2007. 12. 1 (토) 20;00

어디서 ; 피아노 아카데미 (구; 흑백)

진행, 해설 ; 차 병 배

 

흑백다방 경아씨는 보라색 글씨를 좋아한다. 그동안 받은 메일들 또한 보라색이 많았었고. 신비주의? ㅎ

 

그저께(11월 14일) 오랜만에 흑백을 방문하였다.

10월 18일에 경아씨가 보내 온 소식이다.

 

"흑백" 에서 유경아가 드립니다.

 

50년이 넘어가는 기인 세월동안 그자리에 그모습 그대로 한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흑백" 을 이제는 마감합니다. 그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우선은, 돌아가신 아버지께서도, 집안의 어른들께서도 흑백이 언젠가는 저의 아카데미로 전환된다는 것을 알고계섰고, 현재 운영, 관리하고있는 언니가 개인적인 다른 바쁜 일들이 생긴 사정에 의함입니다. 그래서 이미 2005년에 저는 피아노 아카데미에 관한 교육청 인가를 그래서 받아두었더랬습니다. 저도 그렇지만, 이글을 읽으시는 분들께서 많이 서운하고 아쉬울것 같습니다. 그러나 "흑백" 이라는 오랜 이름으로서는 마감되지만, 아카데미가 되드라도,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변함없이 음악회, 연주회, 등의 문화행사들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리고 전시회, 연주회, 등의 대여를 원하시면 언제라도 가능합니다. 원래 "흑백" 홈에 있엇던 음악회 후기, 등의 여러 자료들은 아래의 방으로 옮겨두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공지를 올리겠지만, 12월부터는 첫째주의 "해설이 있는 음악회" 가 매월 첫토요일 저녁으로 바뀝니다. 매월의 연주회는 그때그때 공지로 알려드릴 것입니다. 앞으로도 늘 이곳을 사랑해주시고, 언제라도 오시면 제가 옛날 그대로인 흑백의 차들을 대접해 드릴 것이고, 얘기도 나누고..그러한 따뜻한 시간들이 되었음 하는 바램입니다. 

 

오래전부터 논란이 되어왔던 '흑백다방'의 존재여부가 결정이 났다는 소식이었다. 그러나 나는 내 일을 핑계로 경아씨에게 연락도 하지 않았으며, 흑백을 방문하지도 않았었다.

10월 18일 다시 메일 한통이 왔다.

 

11월...해설이 있는 음악회 "J. BRAHMS"

 

언제 ; 2007. 11. 7 (수) 20;00

어디서 ; since1955 흑백

해설, 진행 ; 차 병 배

 

늦가을에..BRAHMS 와 함께합니다.

"흑백" 이라는 이름으로는 마지막 음악회..입니다.

12월엔 송년 음악감상회 겸 연주회로..음악회는 계속될 것입니다.

 

흑백다방의 마지막 음악회 소식이었다.

11월 8일의 웃동네 방문으로 나는 7일의 음악회에 참석하지 못하였으며, 경아씨에게 많은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는데, 11월 14일 '흑백다방'방문을 예정하고 있었는데, 14일 오전 들에서 무를 뽑고 있는데, 경아씨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후 2시 이전에는 흑백에 도착할테니 함께 밥 먹자" - 고 하였다.

그동안 몇번의 약속이 각자의 급한 사정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아주 오랜만의 만남이다.

 

김달진문학관을 방문한 후에 흑백을 방문 한 시간이 정오를 막 넘긴 시간이었는데, 우리은행에 일을 볼까 하는데, 경아씨와 경화씨가 흑백 앞에서 불렀다.

경화씨 역시 오래전 음악회에서 잠시 만나고 오랜만의 만남이었다.

 

흑백, 우리 진해의 흑백 -

그 내부가 어떻게 변하였을까 -

흑백다방 간판이 내려지고 없었다.

그 간판을 내릴 때 경아씨가 울었다고 하였다.

누군가는 그랬단다. "넌, 죽어야 해!"

흑백을 지키지 못한 죄인이니 당연하다.

그러나 경아씨 혼자의 책임이 아니며, 진해 시민 모두의 책임이다. 진해시 역시 관리 부분에 무관심하였고.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진해의 유일무일한 문화 공간 흑백, 진해의 청소년들이 처음으로 문화를 접한 곳 - 연극, 클래식, 문학 - 을.

내 딸들도 진해에서 처음으로 문화를 접한 곳이 '흑백'다방, 흑백 소극장이었다.

 

흑백다방 - 정일근

오래된 시집을 읽다, 누군가 그어준 붉은 밑줄을 만나
그대도 함께 가슴 뜨거워진다면
흑백다방, 스무 살 내 상처의 비망록에 밑줄 그어진
그곳도 그러하리

베토벤 교향곡 5번 C단조를 들을 때마다
4악장이 끝나기도 전에
쿵쿵쿵 쿵, 운명이 문을 두드리며 찾아와
수갑을 차고 유폐될 것 같았던
불온한 스무 살을 나는 살고 있었으니

그리하여 알렉산드리아 항구로 가는 밀항선을 타거나
희망봉을 돌아가는 배의 삼등 갑판원을 꿈꾸었던 날들이 내게 있었으니

진해의 모든 길들이 모여들고
모여들어서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는 중원로터리에서
갈 길을 잃은 뒤축 구겨진 신발을 등대처럼 받아주던,
오늘의 발목을 잡는 어제와
내일을 알 수 없는 오늘이 뇌출혈을 터트려
내가 숨쉬기 위해 숨어들던 그곳,

나는 그곳에서 비로소 시인을 꿈꾸었으니
내 습작의 교과서였던 흑백다방이여

memento mori*,
세상의 화려한 빛들도 영원하지 않고
살아있는 것은 모두 사라지느니
영혼의 그릇에 너는 무슨 색깔과 향기를 담으려 하느냐,
나를 위무하며 가르쳤으니

그 자리 그 색깔 그 향기로
사진첩의 속의 흑백사진처럼 오래도록 남아있는
since 1955 흑백다방,
진해시 대천동 2번지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
*시안02년 여름호/집중조명-21세기 시인 

 

많은 세월을 진해의 청소년과 시민들과 문인들과 함께 한 '흑백', 이제는 경영과 관리의 어려움으로 문을 닫았다.

흑백다방은 막을 내렸지만, 아카데미로 계속 운영하며, 대관 역시 가능하다. 마루가 있던 자리에는 피아노가 있었으며, 낡은 탁자는 치워지고 푹신한 의자는 소극장처럼 배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풍경에서 나는 예전의 흑백을 더듬었다.

낡은 테이블과 버려도 시원찮을 듯한 재떨이, 한켠에 가지런하던 색 바랜 고서들 -

 

경아씨 나름대로 아담하게 꾸며 두었지만, 아직은 아카데미의 풍경이 낯설다.

낡은 창문가에 아이비가 다시 심어졌거나 오르기를 하였지만.

흑백은 이제 전설이 되어야 하는가 - 쉬운 말로 옮기지 - 그건 아니지. 흑백은 인쇄소 옆에 있으며,  골다공증을 앓는 낡은 계단을 타야하고, 중앙로타리 대천동 2번지여야 하니까 -

 

흑백다방 - 김승강

 

그 다방은 이전에도 다방이었고
지금도 다방이다.
정겨운 이름, 다방
티켓다방 말고 아직도 다방이라니,
오래 산것이 자랑이 아니듯
다방이 오래되었다고 자랑할 일은 아니다.
오래된 것으로 치면
그 다방이 있는 건물이 더 오래되었다.
그 다방은 일본식 이층건물 일층에 있다.
그래도 자랑할만한 것은
다방 양옆으로 지금은 인쇄소와 갈비집이 있는데
그 인쇄소와 갈비집이
우리가 오래된 사진을 꺼내볼 때
양옆으로 선 사람이 사진마다 다르듯
여러번 주인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그 다방에서 만난 내 친구 중에는
둘이나 벌써 저 세상에 가 있다.
사람들은 집에서도 커피를 끓여마시고
자판기에서도 커피를 빼 마신다.
그런 동안에도 여전히 그 다방은 커피를 끓여내오고
오래된 음반으로 고전음악을 들려준다.
그러나 그 다방도 세월의 무게를 이길수 없었는지
얼마전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매일아침 삐걱거리는 관절의 목제 계단을 올라가
이층에서 하루종일 그림을 그리던 화가 주인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고
피아노를 치는 둘째딸을 새주인으로 맞았다.
늙은 화가 주인이 떠난 뒤로
머리위에서 무겁게 발끄는 소리는 더이상 들리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목제 건물의 관절마다 박힌 못이
녹슬어 스러지는 소리가 바람결에 들리는듯 했고
그때마다 그 다방은 치통을 앓듯, 관절염을 앓듯
신음소리를 내었다.
엑스레이를 찍으면 골다공증을 앓고있을
정겨운 이름 흑백다방

 

 

 

 

 

               ▲ 4월 8일의 흑백 모습 

 

        ▲ 현재의 모습

 

 

이 가을, 경아씨는 다정했던, 지금도 다정한 벗들을 위하여 모과차와 유자차를 준비하겠지.

 

 

흐드러진 벚꽃...눈부신 물빛....먼저간 自由人이여.
진해에 흑백 다방이란 곳이 있답니다.


화가였던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딸이 운영했던 진해 문화의 등대.
아버지는 삐걱이는 목조계단올라 그 집 이층 화실에서
평생 그림을 그렸고 딸은 아버지가 일하는동안
베토벤의 피아노 트리오곡을 연주하여 茶香처럼 올려보냈답니다.


그 사이 바람 불고 비 내리고 꽃잎 분분하게 날리며
세월이 흘러 아버지는 홀로 그린 수백점의 그림을 남겨둔 채
북청 고향길보다도 먼 하늘 길로 떠나고
이제는 홀로 남은 딸이 밤마다 아버지를 위해 헌정의 곡을 치는곳.
이곳이 진해의 흑백 다방이랍니다.


일본식 목조 가옥 그대로인 흑백 다방 이층에서
맞은편 장복산이 비안개에 잠기고
진해 앞바다의 물빛이 눈부시게 푸르러질 때마다
두 눈이 짓무르도록 붓질을 멈추지않던 화가 유 택렬.


그 잘난 중앙 화단에서 눈길 한번 주지 않아도
무심한 세월에 말하는법 없고,
虛名에 허기진적 없었던 크고 넉넉한 자유인.


하나의 아름다움이 익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의 슬픔과 하나의 고독도 함께 깊어져야 한다고 믿었던 사람.

 

오래전 조선일보에 실린 김 병종 교수의 화첩 기행 칼럼중의 일부

 

 

☆.. 음악 : 베토벤 교향곡5번 - 카라얀/베르린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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