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우체국을 나와 중원로타리를 지나 문화공간 흑백으로 갔습니다.
문화공간 흑백은 유택렬화백이 1955년 음악다방 '카르멘'을 인수하여 '흑백'으로 상호를 바꾸었으며, 이중섭, 윤이상, 조두남 등 지역 문예인의 사랑방구실을 했으며, 다음 세대에겐 클래식과 공연이 있는 진해의 문화공간이 되었으며 지금은 영업을 접었지만 매주 토요일 오후 5시에 정기공연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흑백앞에 멈추니 문이 잠겨있었기에 전화를 하니 곧 경아씨가 내려왔습니다.
건물과 건물앞은 흑백다방일때 그대로입니다.
고미술품 수집가였던 어머니의 수집품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으니까요.
흑백에 들어서니 노란모과가 눈에 먼저 들어 왔습니다.
모과 뒤에는 김미윤 시인의 '흑백에서'가 있었는데, 지난해 김달진 문학제때 김미윤 시인은 김달진 시인 생가에서 '흑백에서'를 낭송하기도 했습니다.
흑백에서/ 김미윤
바람의 낮은 음계 계시처럼 다가와
지워버린 세월도 풍경으로 바뀐 곳
대천동 개울가 봄 햇살을 잘게 빻아
신들림이 풀어낸 오방색 부적이여
떠나고 남는 것 또한 쉬운 일 아닌데
목청껏 부를 수 없어 그리움은 멀고
바랜 인연끼리 흑백사진첩에 얽혀
추억 따라 시린 마음 되어 쌓일 때면
색인생 살다간 북청 사나이 떠올라
내 허기진 그곳엔 종일 벚꽃이 진다
흑백에서는 유택렬 화백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는데, 현재는 소품이 전시중이었으며, 경아씨는 우리에게 이런저런 책자들은 안겨주었습니다.
자전거도 제 자리, 피아노도 제 자리, 전혁림 화백의 탈도 제 자리에 그대로 있으며, 흑백의 영원한 지지자 이월춘 시인의 '진해 흑백다방'이 걸려 있었습니다.
이월춘 시인의 시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카 커피향과 음표들만 잔뜩 붙인 여자" 유경아 씨가 모카커피를 내리며 모카향은 흑백에 퍼졌습니다.
모카커피는 경아씨의 어머니때부터 내린 커피로 예나 지금이나 맛이 같습니다.
따듯하고 부드럽고 달고.
한때 흑백을 자주 드나들었는데 요즘은 정말 뜸했기에 옛생각이 새록새록 났습니다.
처음 흑백에 드나들땐 배애련씨가 흑백을 운영했고 경아씨는 2층에서 피아노 연습만 했었는데 얼굴을 보기까지 많은 날이 걸렸으며, 토요 연주회때 가면 아는 이들을 만나곤 했습니다.
모카커피잔을 감싸거나 마시며 지난 연주회때의 에피소드를 이야기 했습니다.
성산아트홀에서 한 연주회 이야기.
그때 개인적인 일로 초대장을 받아두고도 못 갔었는데 다행히 내이포판옥선님이 연주회에 다녀왔다고 했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경아씨가 말이 많은 건 사람이 그리웠던 모양입니다.
11월 28일 토요일 오후 5시에 연주회가 있으니 꼭 오라고 당부를 하다시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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