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
재봉질을 못하니, 손으로 꼼지락꼼지락 커튼을 만들고 있는데, 올케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행님, 머 하노? 목이 말라 죽것다. 막걸리 받아 빨리 온나 - "
"어데고? 머 하는데?"
"어, 아버지가 파 뽑아라 카데, 파 다 뽑고 땅 파고 있는데, 목이 말라 죽것다."
들에 물이 있는데, 목이 마르다며 막걸리를 받아 오라는 올케의 연락을 받고 시계를 보니 정오가 지나고 있었습니다.
다시 연락을 했습니다.
"밥 챙겨갔나?"
"라면 묵으모 된다."
"그럼 김치하고 밥 갖고 갈까?"
이미 점심 시간이니 무얼 따로 만들 시간이 안되기에 갈치 두 도막을 굽고, 아침에 끓인 선지국을 데워, 막걸리 두 병을 받아 들로 갔습니다.
(한 달전쯤부터 선지국이 먹고 싶어 중앙시장, 정육점 몇 곳, 경화시장을 다녀도 보이지 않더니, 그저께 경화시장에서 드디어 선지를 장만하여 어제 아침에 끓였습니다. 할매가 얼라 섯나?)
간밤에 내린 비로 개울물이 씩씩합니다. 더불어 주변의 풀꽃도 싱그럽고요.
(목마르며 배 고푸낀데 - )
▲ 괴불주머니
▲ 으름(꽃)
▲ 망개
찔레는 모습을 갖춘지 오래이며, 망개꽃이 피고 현호색은 개울가를 덮다시피 하며, 큰물 소리에 놀란 진달래 몇 잎 파르르 떨고 있습니다.
파를 부분 뽑아 두고, 고사리도 조금 꺾어 뒀습니다.
천상 (이제)경상도 여자입니다. "행님, 돌맹이가 억수로 큰 기야, 그거 뽑아 낸다꼬 힘이 다 빠졌다 아이가. "
일요일을 기다리지 못한 올케는 파를 뽑은 후 괭이로 밭 꼴을 갖추어 놓았습니다.
땀을 많이 흘려 밥이 넘어가지 않는지 몇 술 뜬 후 막걸리만 한 병을 비웠습니다.
"행님 있제, 어떤 남자가 배낭을 메고 오토바이를 타고 오더마는 내가 있으니까 가뿌데, 고사리를 꺾으러 왔을까? 울이 있는 밭에는 들어오면 안되는데 그쟈?
오늘 야콘 온다캤거든, 좀 있다 내려가야 한다. 애기 병원도 가야하고…."
혼자 몇 시간동안 있었으니 입이 얼마나 간지러웠을까요.^^
며칠 사이 새순이 자라 바람에게 아지랑을 떱니다.
▲ 참다래
▲ 더덕
다음주쯤이면 더덕잎을 쌈으로 먹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도라지
▲ 오가피
오가피잎은 이미 쌈으로 먹고 있으며, "그늘이 지지만 누나 때문에 뽕나무를 베지 못한다."하는 뽕나무도 곧 제 구실을 할 것 같습니다.(쪄서 쌈으로 먹음.)
▲ 뽕나무
▲ 복분자
▲ 매화나무
꽃 피나 했더니 그 사이 지고 열매가 올망졸망 달렸습니다. 매실입니다.
아래는 그저께 경화시장에서 구입한 참외모종인데, 서너군데 심었습니다. 막내 조카의 간식이며, 들일을 할 때 술 안주가 됩니다.
▲ 참외 모종
▲ 고사리
▲ 두릅, 땅두릅, 고사리
한 눈을 못 팔게 하는 고사리입니다. 비가 내리기전에 꺾어야 한다며, 그저께 손을 봤지만, 하루 사이에 또 쑥 자라는게 고사리입니다.
올케에게 농담으로 그럽니다.
"용원 뱃머리에 장을 펴야 겠다"고요.^^
엄마가 오셨습니다. 약속을 하지 않지만, 우리는 가끔 들에서 만납니다.
"니도 왔나, 아(올케) 머 좀 멕잇나?"
"밥 먹였고, 막걸리도 받아 왔어예, 한 병 남았는데 드릴까요?"
물에 담가 둔 막걸리를 건져오니 엄마는 사이다를 꺼냅니다.
"사이다 타서 마시자."
달작하니 좋아 거푸 두 잔을 비웠습니다.
메주콩, 봄콩, 검정콩, 약콩을 심어야 합니다.
물에 서너 시간 불려 서너 알씩 심습니다.
콩을 심을 때 한 구멍에 콩 세 알을 심는 까닭은 한 알은 날짐승이 먹고, 한 알은 들짐승이 먹고, 나머지 한 알은 (우리)인간의 몫입니다. 자연계에는 인간 이외의 날짐승이나 들짐승 같은 타자들도 존재하는데, '콩 세 알'은 그들과의 조화로운 공생의 삶을 이야기하며, 우리 선조의 아름다운 배려와 덕이라고 하겠습니다.
콩 한 알에서는 보통 180 ~ 230여개 정도가 달리니 한 알의 콩이 200배수의 2세를 생산하는 셈이지요. 우리 선조들은 이 정도면 만족하셨고, 한 알을 지키기 위하여 보호막을 친 것이 아닌, 자연에 대한 감사함을 두 알의 콩으로 시주 한 셈이랄까요.
감을 수확할 때면 한 두개씩 남겨두곤 하는데, 까치밥 이라는 것이지요. 벼를 벨때도 어느 정도의 이삭을 남겨두고 수확하는 여유가 있었습니다.
들의 채소와 곡식을 싹쓸이하는 이가 있어 속이 상 할 때도 있지만, 우리의 삶에도 누군가를 위한 배려와 여유의 '까치밥'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 우리는 밭이 높은 곳에 있기에 고라니 피해가 워낙 심해 시의 지원으로 울타리를 만들어 두었습니다.
여기까지가 내 몫입니다. 작은늠을 깨워 학원에 보내야 하기에요. 엄마는 봄콩을 울 아래에 심는데, 여름이면 초록 울이 됩니다.
밭두렁에는 풀꽃이 봄을 노래하고 저수지도 초록으로 물이 듭니다.
집으로 오는 길에 혼자 꽃놀이를 즐겼습니다.
개울가에 내려가 현호색을 만나고, 이제 잎을 여는 사과나무를 만났으며, 곁엔 배꽃이 지고 있습니다.
참 좋은 봄입니다.
▲ 사과꽃
▲ 배꽃
어제 아버지께서 전화를 하셨더군요.
"목단 핐는데 사진 찍어야지?"
백목련 피어 지고 동백이 져도 아버지의 부탁을 들어 드리지 못했기에 친정으로 갔습니다.
목단, 자목련, 자두나무꽃이 피었습니다. 잠시 착한 딸이 되면 아버지는 흡족해 하십니다.
▲ 텃밭 귀퉁이에 핀 목단
- 오늘 -
지금,
아버지의 전화입니다.
"김해횟집 뒤에 영산홍이 참 좋더라!"
어제 친정으로 가는 길에 만난 풍경이지만, "네~ 가서 찍을게요."했습니다.
내가 하는 자잘한 일에 목이 메이는 아버지며, 자주 눈물나게 하는 우리 아버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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