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 할아버지 詩에 날개를 달아 주세요

 

 통영 문화마당에 한산대첩 주제 홍보관이 있으며 홍보관 뒤 화장실 입구에 할아버지 한 분이 톱을 썰고 있습니다.

칼 가는 사람도 귀한 요즘 누가 톱을 사용하겠습니까만 할아버지는 40년 동안 강구안을 중심으로 자리를 옮겨 다니며 톱을 썰며, 가위 따위도 갈아 줍니다.

 

4남매를 남기고 일찍 떠나간 부모를 대신해 맏이였던 강갑중 할아버지(76세)는 동생들을 어떻게 먹여 살릴까 밤잠을 설치며 3년간을 이리저리 고민하다가 문득 눈에 들어온 톱 만드는 일에 일생이 결정되었는데, 경남 고성 하이면 와룡이 고향인 할아버지는 톱작업대 하나 짊어지고 6~7년을 사량도, 한산도 등 섬으로 다니다가 통영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처음엔 제일은행쪽에 판을 펼쳤다가 은행 공사관계로 문화마당으로 옮겼는데 시장이 가깝다보니 지역민과 여행객들로 유동인구가 많고,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햇살이 따뜻하며 배들이 강구안에 대다보니 장사가 비교적 잘 되어 단골도 있다고 합니다.

 

▲ 통영 문화마당

 

톱 만드는 일을 시작할 때 만들었다는 톱 작업대 겸 연장통은 세월의 때가 반질거리며 손등은 겨울 바닷바람처럼 거칠지만 톱날 정도를 살피는 눈빛엔 애정이 가득합니다.

흔치않은 톱갈이 현장이다보니 지나가던 젊은이와 여행객들이 나처럼 말을 걸기도 하고 신기한듯 잠시 바라보다 가던 길을 갑니다.

 

톱은 하루에 한 자루도 팔고 이틀에 한 자루를 팔기도 하며 어떤 날은 공을 치기도 하지만, 집에 있으면 무료하기에 소일삼아 톱을 만들고 가위를 갈며, 친구도 만날 수 있기에 톱갈이 일이 즐겁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토성고개 너머에서 리어카에 작업도구와 톱을 싣고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문화마당 한 켠에 판을 폅니다.

딱히 정해진 시간은 없지만 보통 오전 10시쯤 편 판은 해질녘이면 걷어 토성고개를 넘어 갑니다.

 

 

톱을  한 자루씩 만들면 생산성이 낮아 부산에서 일년치 쇠를 사다 큰톱, 중간톱, 작은톱 크기별로 재단을 하고 자루도 한번에 다 만들어 놓고, 톱을 팔기 위한 마지막 작업, 톱 써(날을 세우는 일)는 일은 강구안에 앉아 시나브로 하신답니다.

톱을 찾는 사람에겐 톱을 팔고, 가위를 갈아 달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가위를 갈아주고, 사진을 찍자는 사람에겐 포즈도 취해주고 살아 온 이야기도 해주며 하루 해를 보내는데 톱 파는 할아버지가 방송에 나온 건 단지 톱을 썰며 팔기만이 아닌 詩를 쓰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 작업장 옆에는 노래가 된 시와 노래가 되기를 기다리는 시가 붙어 있는데, 겨우 국민학교만 나온 할아버지는 가고 오는 배를 보며 짠해지는 마음을 글로 옮깁니다. 글은 술술 나오기도 하지만 따라서는 며칠씩 고치기도 한답니다.

작업대 옆의 윤용우 작곡의 '통영의 여인'과 '기다림', '톱장수 40년'입니다.

 

통영의 여인 / 강갑중

 

갈매기 배고파 먹이 찾아 날고 있네
똑딱선 오고 가는 통영항 연안부두
그리운 님 가신 배는 왜 안 오시나요
고기 잡아 만선되면 오시렵니까
깊은 밤 잠 못이루니 별을 보고 한숨 쉬고
달을 보고 손을 빌어 기다리다 지쳐가는
통영의 여인이라오

 

 

 

할아버지는 3~40편의 시를 지었는데 '통영의 여인'처럼 누군가가 곡을 만들어 주면 좋겠다고 하며, 안주머니에서 '한송이 꿈'등을 꺼내 보였습니다.

직장이 없으면 무능하게 보인다는 할아버지는 변변한 점포도 없이 눈길 닿는 곳에 점포를 펼쳐 오늘도 톱을 갈며 노래가 되고 싶은 시를 쓰는데, 작곡을 하는 분을 만나 시가 날개를 달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