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5일
벚꽃이 언제 이렇게 피었지?
며칠전 아버지께서 입원하신 병원으로 가는 길, 해오름 아파트쪽의 벚꽃이 만개한 걸 확인했지만 어제서야 시간이 났습니다.
4월 1일이면 군항제니 벚꽃이 필때가 되긴 되었는데, 진해 경화역쪽에 벚꽃이 피었다는 기사만 읽었지 벚꽃 개화상태를 확인하지는 못 했는데 처음 만난 벚꽃이 만개입니다.
25일 비가 부슬부슬 내렸기에 우산을 들고 마을버스를 타고 성흥사에 들렸다가 해오름 아파트쪽으로 갔습니다.
도로가 환합니다. 진해의 봄입니다.
성흥사에서 이미 비가 멎었기에 우산이 짐이었지만 혹 두고 갈까봐 내내 들고 벚꽃 사진을 찍었으며, 다른 때 같았으면 바로 포스팅을 했을 텐데일주일 중 이틀 쉬기에 바로 텃밭으로 갔기에 조금 식은 벚꽃입니다.
진해 벚꽃은 1905년 일본인들이 군항기지와 그들의 시가지를 형성 하면서 많이 심게 되었는데, 광복후 배일사상으로 일제의 잔재라 하여 그 당시 식재되어 있던 벚꽃나무를 모두 베어 거의 종족을 감추게 되었으나 1962년 박만규, 부종유 등 두 식물학자에 의하여 진해에 있는 왕벚나무(일본명 소메이요시노 사꾸라)의 원산지가 일본이 아닌 우리나라의 제주도임이 밝혀지면서 인식을 달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왕벚나무의 원산지가 제주도임은 1932년 일본인 코이즈미 박사에 의하여 이미 학계에 보고되었던 것이나 일부 일본의 국수주의적 학자에 의하여 이설이 제기되어 일반화 되지 않아 아는 이가 적었다고 합니다.
진해에 본격적으로 벚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은 1910년 6월 18일 도시계획을 위한 측량을 시작한 이후이고 자생수 이외에 2만본으로 조경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계획적으로 심어진 벚꽃나무는 개화기에 시가지를 온통 벚꽃에 묻히게 하는 장관을 이룹니다.
8.15광복 이후에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일본 국화라 하여 냉대 하였으나, 1960년 들어 벚나무의 원산지가 제주도임이 밝혀지고 관광도시로서 발전적 계획이 수립됨에 따라 우리나라 자생종인 벚나무를 다시 심어 벚꽃의 고장으로 꾸미기로 하였습니다. 이리하여 1차로 1962년에 일본에서 왕벚나무 묘목 2천여 그루를 시와 해군이 공동으로 구입하여 벚꽃장 일대와 통제부 영내 그리고 제황산 공원과 시가지에 심기 시작하였습니다.
현재 진해에는 36만여그루의 벚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벚꽃은 산과 들, 마을, 골목골목 핍니다.
이 벚꽃은 진해 웅동1동의 벚꽃이며 군항제 행사 구간인 진해 시내의 벚꽃은 개화 상태가 다를 수 있습니다.
봉오리일때는 분홍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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