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3일
악양둑방에서 더위에 지친 여름꽃구경을 한 후 근처에 있는 처녀뱃사공 노래비를 찾았습니다. 이 노래비는 5년전에 한 번 찾아 간 곳이기도 합니다.
낙동강의 지류인 남강과 함안천이 만나는 지점이며, 처녀뱃사공의 무대가 되는 악양나루가 있던 자리입니다.
2000년 10월 함안군은 악양나루가 있던 한적한 도로변에 '처녀뱃사공'노래비를 세웠으며, 앞면에는 노랫말을, 뒷면에는 노래 탄생 배경이 적혀 있습니다. 노래비 제막식에는 작사자인 고 윤부길 씨의 아들 윤항기 씨가 참석하여 아버지와 함께 건너던 나루터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더러는 이곳이 아니라고 하는 기사도 있으며, 예전의 함안천은 퇴적토가 쌓인 현재보다 강폭이 넓었고, 남강댐이 건설되기 전이라 수위도 지금보다 높아 큰 배가 다녔다고 주장하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사연은 뒤로하고 처녀뱃사공 노래비가 여지껏 있기나 한지 노래가 나오기나 하는지 궁금하여 배롱나무꽃이 핀 도로를 달려 다시 갔습니다.
▲ 트럭이 가고 있는 높은 곳이 악양교
주변에는 무궁화와 배롱나무꽃이 피어 있었지만 노래비를 찾은 이는 우리들뿐이었습니다.
노래비에는 나신의 여인이 턱을 괴고 있으며, 노래비 앞쪽에는 가사가 있고 뒤쪽엔 노래 탄생 배경이 적혀 있습니다.
1953년 당시, 고 윤부길 씨는 '부길부길쑈' 유량극단의 단장이었자 음악인으로 함안 법수면과 대산면을 잇는 강을 건너기 위해 나룻배에 몸을 실었는데 노를 젓는 사람은 놀랍게도 20대의 젊은 처녀였기에 궁금한 마음에 사연을 물어보니, 뱃사공 일을 하던 오빠가 군대에 가고 늙은 홀어머니를 모시자니 직접 뱃사공 일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사연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오빠를 기다리며 노 젓는 모습이 애처롭고도 흐뭇하여 마침내 노랫말로 풀어냈다고 합니다.
예나 두리번 거리며 노래를 들을 수 있는 버튼을 찾았습니다. 역시나 노래는 들을 수 없었습니다. 시비같으면 시만 읽어보면 되지만 노래비는 노래를 들어야 맛이 아니겠습니까. 5년전 함안군청 함안문화관광측에 전화(055-580-2341)를 하여 노래가 없는 노래비에 대해 이야기를 했더니,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해 보겠다는 긍정적인 답변을 했었는데 5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였기에 아쉬웠습니다.
진해 해안도로에는 노래비가 두 개 있는데, 이미자의 황포돛대와 강은철의 삼포로 가는 길입니다.
두 곳은 노래를 부른 가수의 노래와 대중가요를 골라 들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며칠전 밀양에 다녀 왔는데요, 밀양 영남루가 있는 곳에 박시춘 선생 옛집이 있으며, '애수의 소야곡' 노래비가 있습니다. 노래는 박시춘 선생의 곡으로 된 노래들이 흘렀습니다. 붉은 동그라미부분이 스피커입니다.
박시춘 선생 옛집에서 조금 더 가면 밀양아리랑 노래비가 있으며 역시 노래를 들을 수 있습니다. 뒷쪽의 동그라미가 스피커인데 두 개였습니다.
진해와 밀양 뿐 아니라 노래비가 있는 곳엔 어디나 노래가 나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함안은 무슨 배짱일까요.
처녀뱃사공이 황정자의 노래라고 합니다. 하여 황정자님의 목소리를 유튜브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인사를 남기고 싶었지만 유튜브에 로그인을 해야 했기에 인사글을 남기지 못 했습니다.
낙동강 강바람이 치마폭을 스치면
군인 간 오라버니 소식이 오네
큰애기 사공이면 누가 뭐라나
늙으신 부모님은 내가 모시고
에헤야 데헤야 노를 저어라 삿대를 저어라
낙동강 강바람에 앙가슴을 헤치며
고요한 처녀 가슴 물결이 이네
오라비 제대하면 시집보내마
어머님 그 말씀에 수줍어질 때
에헤야 데헤야 노를 저어라 삿대를 저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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