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3일
흑백다방 / 김승강
그 다방은 이전에도 다방이었고
지금도 다방이다.
정겨운 이름, 다방
티켓다방 말고 아직도 다방이라니,
오래 산것이 자랑이 아니듯
다방이 오래되었다고 자랑할 일은 아니다.
오래된 것으로 치면
그 다방이 있는 건물이 더 오래되었다.
그 다방은 일본식 이층건물 일층에 있다.
그래도 자랑할만한 것은
다방 양옆으로 지금은 인쇄소와 갈비집이 있는데
그 인쇄소와 갈비집이
우리가 오래된 사진을 꺼내볼 때
양옆으로 선 사람이 사진마다 다르듯
여러번 주인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그 다방에서 만난 내 친구 중에는
둘이나 벌써 저 세상에 가 있다.
사람들은 집에서도 커피를 끓여마시고
자판기에서도 커피를 빼 마신다.
그런 동안에도 여전히 그 다방은 커피를 끓여내오고
오래된 음반으로 고전음악을 들려준다.
그러나 그 다방도 세월의 무게를 이길수 없었는지
얼마전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매일아침 삐걱거리는 관절의 목제 계단을 올라가
이층에서 하루종일 그림을 그리던 화가 주인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고
피아노를 치는 둘째딸을 새주인으로 맞았다.
늙은 화가 주인이 떠난 뒤로
머리위에서 무겁게 발끄는 소리는 더이상 들리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목제 건물의 관절마다 박힌 못이
녹슬어 스러지는 소리가 바람결에 들리는듯 했고
그때마다 그 다방은 치통을 앓듯, 관절염을 앓듯
신음소리를 내었다.
엑스레이를 찍으면 골다공증을 앓고있을
정겨운 이름 흑백다방
시에서 이야기한 삐걱거리는 100년도 더 된 목제 계단을 조심조심 올라갔습니다. 한때는 미술학도가 이 계단을 올랐으며, 또 한때는 내일의 피아니스트를 꿈 꾸는 수많은 어린이들이 이 나무계단을 올랐습니다.
유택렬 미술관입니다.
오래전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피아노가 있었으며 유경아씨가 숙식을 해결한 곳이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유택렬 화백이 하루종일 그림을 그린 곳이기도 합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는 홀로 그린 수백점의 그림을 남겨둔 채 북청 고향길보다도 먼 하늘 길로 떠나고, 이제는 홀로 남은 딸이 흑백을 지키며 아버지의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올 1월에 개관했습니다.
유택렬(1924~1999)화백은 함경남도 북청 출생으로 진해와는 해방 때 군생활을 하면서 인연을 맺었습니다. 월남 이전에는 이중섭, 유강렬, 한묵 등과 금강산 스케치 여행을 떠나기도 했으며, 6·25전쟁 때 월남해 진해에 정착해 진해중·고, 진해여중·고 등 교직에 있으면서 박석원, 김미윤 등 많은 제자를 배출했습니다. 흑백에서 57년 진해에서 첫 전시회를 가진 이후 50여년간 경남의 추상미술을 선도해 온 작가로 그는 평소 익힌 추사체와 전통적인 토속신앙 세계를 특유의 미의식으로 재구성해 독자적인 양식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600여점의 작품과 이중섭으로부터 물려받은 '화구통'과 생전에 애지중지하던 '독일제 카메라', 손수 그림을 그리고 빚은 도자기 작품, 손수 조각한 벼루, 바이올린, 드로잉 소품 등이 유품으로 남아있습니다.
미술관에서 연주회를 하다보니 피아노가 있으며 객석과 붙어 있으며 천장은 서까래를 드러냈으며 3층은 수장고라고 합니다. 미술관은 유명 미술관처럼 넓지 않지만 관심있는 지역민들과 유경아씨의 노고로 개관했습니다. 해마다 군항제 기간이면 1층 흑백에서 유택렬 화백의 작품전이 있었는데 이제 미술관을 개관했으니 이 공간에서 작품전을 하리라 생각합니다.
1955년 친구인 작곡가 이병걸이 운영하던 진해 칼멘 다방을 인수하여 '흑백'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2층에 미술 연구소를 열면서 명실상부한 진해 예술의 본거지 역할을 하게 되었는데, 이후 10여 년 동안 진해 군항제 포스터를 직접 그렸고, 진해를 찾아오는 예술인들을 도맡아 접대하다시피 했다고 합니다.
▲ 맨 왼쪽 작품은 유경아님이 가장 좋아 하는 작품으로 '돌멘' 시리즈 중에서
그림에 대해 모르기도 하지만 추상화다보니 더 어려웠습니다.
유택렬 화백은 진해의 대표적 서양화가로 6·25 전쟁 때 월남하여 많은 예술인들과 흑백 다방에서 예술 담론을 펼치기도 하셨고, 진해 중고를 비롯한 여러 학교에서 후학들을 키운 한국적 서양화가입니다. 고인돌·부적·단청·떡살·민화에서 우리 고유의 멋을 재발견해 내는 작업을 일관되게 추구해 온 인물로 평가됩니다.
다행히 작품옆에 작품명이 있었습니다.
▲ 용(1961년), 부적에서(1983년 한지에 먹), 부적에서(1992년)
창가의 작품은 먹 그림 '부적에서' 2폭 가리개입니다.
객석뒤쪽입니다. 화백의 작품은 사방벽에 전시되어 있으며 작업실에도 있었으며, 턴테이블 등 오래된 음향기기가 있었습니다.
창가에는 여전히 식물이 있었으며 창밖은 중원로타리입니다.
3층 계단입구와 재현한 작업실 입구 공간입니다. 개관까지의 노고가 보였습니다.
유택렬 화백을 가장 가까이서 가장 오랜 시간 지켜본 이는 유경아씨입니다. 유경아씨가 재현한 화백의 작업실입니다.
직접 사용한 붓부터 물감, 아끼던 음반, 직접 켰던 바이올린, 손수 그림을 그리고 빚은 도자기 작품 등 유품입니다만 지금이라도 붓을 들어 그림을 그려될 정도로 작업실은 완벽했습니다.
재현한 작업실에는 부모님이 사용했던 가재도구가 그대로 있었습니다. 유경아씨의 어머니 이경승 여사는 고미술품 수집가였습니다.
유택렬 화백은 생전에 그림뿐만 아니라 지독한 클래식광으로 20대 시절 독학으로 익힌 바이올린 연주 실력은 수준급이었다고합니다. 직접 켰던 바이올린입니다.
이중섭으로 부터 받은 화구박스입니다. 놀랍게 유화물감이 아직 굳지 않았답니다.
화가는 붓으로만 그림을 그리는 줄 알았는데 다양한 도구가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흑백을 채웠던 LP음반들입니다.
미술관 개관기념 머그잔입니다. 한쪽에는 흑백 입구 도안(유택렬 作)이 있습니다.
색 인생
살다 간
북청 사나이
떠 올라...
그림을 모르면 어떻습니까. 혹여 진해의 추억이 있거나 중원로타리 근처에 볼일이 있다면 흑백 2층 유택렬 미술관을 방문하여 진해의 문화를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매달 넷째 주 토요일에 열었던 유경아의 살롱 콘서트도 미술관에서 엽니다.
유택렬 미술관은 월요일 휴관이며, 무료로 운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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