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6일
텃밭에서 보면 먼 굴암산이 울긋불긋합니다. 언제나 멀리서만 본 굴암산속은 어떨까 싶어 집을 나서 마을버스를 타고 대장동으로 갔습니다. 마을버스를 탔을 때 혼자라면 종점위의 주차장에 내려달라고 하기가 미안한데, 마침 성흥사에 가는 보살님이 버스에 타고 있었기에 기사님이 위의 주차장에 내려주었습니다. 좀 걷는 게 몸에 좋지만 산을 얼마나 걸어야 할지 모르기에 될 수 있으면 산과 가까운 곳에 내려 주는 게 좋거든요.
성흥사 공양간 뒤의 산도 울긋불긋하며, 주차장의 벚나무와 은행나무 잎이 단풍이 들어 곱습니다.
11월이면 산불조심 아저씨가 계곡입구에서 입산을 금지시키기에 성흥사로 갔습니다.
성흥사는 시골의 작은 사찰이지만 천년고찰입니다.
신라(新羅)의 고찰(古刹) 성흥사(聖興寺)는 경남 창원시 진해구 대장동 180번지에 위치하며 대한불교 조계종의 제14교구 본사인 범어사의 말사입니다. 신라시대 무염국사(801~888)가 웅동 지방에 침입한 왜구를 불력으로 물리친 것을 흥덕왕이 보은하는 뜻으로 구천동에 지었다고 전해오는데 한때는 스님이 500여 명이나 되는 큰 사찰이었다고 합니다.
그 뒤 잦은 화재로 몇 차례 이건하였는데 창건한지 276년만에 대장동으로 옮겼고, 다시 322년에는 원래의 구천동으로 옮겼으며, 현종 8년(1667년) 대장동으로, 숙종 39년(1713년)에도 자리를 옮겼는데 정조 13년(1789년)에 비로소 지금의 위치에 이건 하였다고 합니다.
무염국사는 신라의 승려로 무열왕의 8대손인데 당나라에 유학하여 명승고적을 주유하면서 이름이 널리 알려져 동방대보살이라 불렸습니다.
귀국한 뒤에는 충남 보령의 오합사에 있으면서 성주산문의 개조가 되었는데 무염국사가 창건한 사찰들의 이름에 대부분 '성'자가 붙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합니다.
성흥사에는 고종 27년(1890년) 화주스님이 그린 섬세한 필치의 무염국사의 영정과 대불상, 나한상, 나한종관상, 제석상 등과 당간지주가 있고 사찰의 남서쪽 200m 지점에는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부도군이 있습니다.(참고 : '우리고장 문화유적)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52호인 대웅전은 창건 년대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현재의 건물은 조선후기에 다시 지었을 것으로 추정하며, 잡석으로 기단을 조성하여 자연석의 주춧돌을 놓아 둥근기둥을 세웠으며, 기둥머리에는 창방을 받치고 그 위에 다시 평방을 걸어서 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1구씩 더 짜 올린 다포식 맞배지붕의 건물입니다.
또한 공포의 실미 끝 부분에는 연꽃 장식을 첨가하고 닭 등 동물 모양의 장식이 나타나는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된 건물로 조선시대 후기 사찰 건축의 양식적 특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대웅전 뒤의 산이 잘 익었습니다. 잠시 성흥사를 둘러보곤 성흥사에서 계곡쪽으로 나갔습니다.
성흥사에서 계곡으로 가는 길에 있는 수령 220년(2005년 12월 9일 기준)의 느티나무는 그 사이 잎이 말랐습니다.
대장동 계곡유원지입니다. 봄과 여름에 시원했던 계곡의 물은 말라가고 있었으며, 잡목이 단풍이 들긴 했지만 거의 말랐습니다.
이 계절 들꽃을 찾는 다는 게 이상하지만, 산국화와 신냉이와 주홍서나물 등을 만났습니다. 우리 텃밭에 지천인 산국화지만 대장동 계곡에서 만나니 별스러웠으며, 주홍서나물은 어디나 많은 식물인 모양입니다.
계곡은 둘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쪽과 저쪽을 번갈아 다니며 귀한 식물이 있는지 살폈지만 특이한 식물은 만나지 못 했습니다.
계곡을 건너 등산로를 걷는데 지난 태풍 차바로 등산로가 많이 패였으며, 차소리가 나기에 조심스레 올라가니 굴삭기가 등산로를 정비하고 있었기에 다시 계곡으로 내려갔습니다. 공사의 영향으로 계곡물이 흙탕물입니다. 여름에 계곡은 피서객들로 터질듯 했지만 지금은 텅 비어 있었고 풀벌레 소리도 없이 굴삭기 소리만 났습니다. 인생만 무상한게 아니고 자연도 무상함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수확하는 이 하나 없지만 식물은 열매를 맺었으며 나뭇잎도 익었습니다. 붉은 열매는 덜꿩나무의 열매라고 하는데, 봄날 숲에 덜꿩나무의 꽃이 많이 핀 건 봤지만 열매는 처음이며, 다음의 붉은 열매는 남천 열매로 남천은 자생을 하기도 하지만 계곡에는 식재를 했습니다.
아래의 까만 열매는 까마중과 맥문동 열매입니다.
참나무, 옻나무, 화살나무의 단풍이며, 덩굴은 이름을 모르겠습니다.
멀리서보면 그럴듯 한 풍경이지만 그 속으로 들어가면 발 아래서 낙엽이 바스락 거리고, 잡목으로 숲을 걷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으며 역시 태풍으로 사방공사를 한 바위가 흔들리는 곳도 있었고, 큰나무가 부러져 계곡에 널부러져 있기도 했습니다. 등산로 정비로 조금 밖에 걷지 못 했지만 그래도 궁금했던 단풍속을 걸었으니 된 거지요. 이렇게 가을이 가고 있습니다.
'고향 이야기 > 진해 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야기 꽃이 피어나는 이순신 장군 합포해전 승전길 (0) | 2017.01.16 |
---|---|
향기 싣고 달리는 시내버스 (0) | 2016.12.29 |
[사진]美친 단풍과 반영 (0) | 2016.11.14 |
드라이브와 하이킹 모두 좋은 진해 해안관광도로 걷다 (0) | 2016.10.29 |
소쿠리섬에 다시 가는데 5년 넘게 걸렸네 (0) | 2016.10.2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