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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이야기/흑백다방 그리고…

중원로타리 흑백다방

by 실비단안개 2006.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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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가 고향인 이웃 블로그님 'Young'님은 이민을 가신지 20여년이 되신다고 하셨다. 내 블로그를 방문 할 때면 진해의 사진들로 추억을 이야기 하셨고 고향 진해를 그리워 하신다.

Young님과의 인연은 블로거 기사 '경화 5일장'으로 만났으며 나는 마음으로 몇번이나 약속을 하였는데 그 약속을 오늘에야 지킬 수 있었지만 아쉽게도 '백장미'는 이미 문을 닫았으며 진해분이라면 누구나 가졌을 '흑백다방'의 추억을 찾아주고 싶어 중원 로타리 '흑백다방'을 찾았다.

 

흑백다방은,  50년도 넘게 주인을 바꿔 가면서 그자리에 있다.
해군 장교 출신의 첫주인이 이상의 날개에서 감명을 받고 길조인 까치의 흑백 대비에서 그 제목을 붙였으며, 두번째 주인인 서양화가 유택렬씨 부부에 이어 작은따님 유경아씨께서 그모습 그대로 간직하며 지키고 있는 흑백은 클래식에 목마른 이들에게 오아시스였으며 지방의 가난한 예술인들의 작품 발표장이 되기도 하였다.
한국 전쟁 이후 피난 내려온 작가. 음악가. 화가들이 부산 광복동서 술을 마시다가 진해 흑백으로 달려와 베토벤과 슈베르트를 들은 곳, 흑백다방!

‘진해의 봄 흑백다방에 앉아

가버린 시대의 흑백사진을 생각한다.

빛바랜 사진첩의 낡은 음계를 딛고

그 무렵의 바람같이 오는 길손

잠시 멍한 시간의 귀퉁이를 돌다

바람벽 해묵은 아픔으로 걸렸다가

빛과 색채와 음악이 함께 과거가 되는

그런 주술적 공간에 앉았노라면

시대를 헛돌려 온 바람개비

아무것도 떠나간 것이라곤 없구나…’(김창근의 ‘흑백시대’ 중)


 흑백의 주인 유경아씨는 진해의 대표적인 서양화가 유택렬과 고미술품 수집가였던 아내 이경승 사이에서 태어난 두 딸 중 동생이며 1955년문을 열어 40년 가까이 그곳을 지켜온 이씨의 뒤를 피아니스트인 딸이 이어가고 있었다.

다방일에는 무심했지만 인테리어만은 클래식광인 유택렬씨의 작품으로 흑백의 바둑판 모양으로 붓칠한 천장과 작은 스피커를 박아 넣은 뮤직박스의 거대한 덧문. 나무판을 각지게 주름지어 놓은 맞은편 벽면은 음향반사판의 구실을 했다. 이곳에서 부부는 미술전시와 공연, 시낭송회를 주최했다. 생전의 이중섭 윤이상 서정주 같은 예술가들이 사랑방처럼 드나들었고, 93년 4월 대규모 문화공간인 진해시민회관이 개관한 뒤 흑백다방에는 작은 변화들이 찾아왔다. 그해 여름 안주인 이씨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예술인들이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99년에는 유씨마저 타계했다. 사람들은 혼자 남은 둘째가 언니 승아씨가 있는 영국으로 가고나면 ‘흑백’의 시대도 막을 내릴 거라 믿었지만 그는 진해에 남아있다.

“아버지가 떠나시면 저도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을거라 믿었어요. 하지만 혼자 남게 되니 더더욱 떠날 수가 없었어요. 엄마가 했던 것처럼 흑백을 지켜가야 한다는 사명감이라고 해야 하나, 떠나간 문인들을 다시 불러들이는 것도 제몫이지요. 이제 흑백다방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을 겁니다”

진해시의 중.고생이라면 연극 한편은 보았을 흑백다방, 현재는 지금의 주인인 배애련씨가 맡아 운영하지만  배애련씨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기위하여 '흑백다방'은 새주인을 기다린다.

 

우리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茶를 마시는 이미지와는 먼 '흑백다방'을 사진으로 보자.

입구 오른편 창문으로 아이비가 오른다. 지금의 주인인 배애련씨가 심었단다.

입구 유리문의 안내, 음악이야기와 피아노 이야기는 배씨의 두동생분이 맡아 주신다.

흑백다방의 전설을 간직한  전화기

 

오르간

 

공연 안내

 

 

 

 

 

 

우리의 청소년 시절에는 학생다방이 있었는데 그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Music Box

 

각진 벽 -  나무판을 각지게 주름지어 만든 벽면은 음향반사판의 구실을 한다.

흑백다방의 천장

 

 

흐드러진 벚꽃...눈부신 물빛....먼저간 自由人이여.
진해에 흑백 다방이란 곳이 있답니다.


화가였던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딸이 운영했던 진해 문화의 등대.
아버지는 삐걱이는 목조계단올라 그 집 이층 화실에서
평생 그림을 그렸고 딸은 아버지가 일하는동안
베토벤의 피아노 트리오곡을 연주하여 茶香처럼 올려보냈답니다.


그 사이 바람 불고 비 내리고 꽃잎 분분하게 날리며
세월이 흘러 아버지는 홀로 그린 수백점의 그림을 남겨둔 채
북청 고향길보다도 먼 하늘 길로 떠나고
이제는 홀로 남은 딸이 밤마다 아버지를 위해 헌정의 곡을 치는곳.
이곳이 진해의 흑백 다방이랍니다.


일본식 목조 가옥 그대로인 흑백 다방 이층에서
맞은편 장복산이 비안개에 잠기고
진해 앞바다의 물빛이 눈부시게 푸르러질 때마다
두 눈이 짓무르도록 붓질을 멈추지않던 화가 유 택렬.


그 잘난 중앙 화단에서 눈길 한번 주지 않아도
무심한 세월에 말하는법 없고,
虛名에 허기진적 없었던 크고 넉넉한 자유인.


하나의 아름다움이 익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의 슬픔과 하나의 고독도 함께 깊어져야 한다고 믿었던 사람.

 

오래전 조선일보에 실린 김 병종 교수의 화첩 기행 칼럼중의 일부

 

 

 

 

 

 

 

배애련씨와 커피를 마시며 맞은편의 작은텔레비젼이'흑백'이냐고 여쭈니 웃으시며 칼라텔레비젼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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