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함께 즐거우면 더 좋지 아니한가!
카테고리 없음

추억의 간식 몰(잘피) 삼포 앞바다에서 만나다

by 실비단안개 2010. 5. 10.
728x90

 

 한누리 진해 여행 2 - 추억의 간식 몰(잘피) 삼포에서 만나다

 

세스페데스 신부공원을 출발한 우리는 해안도로를 이었습니다.

진해 시내로 나가는 길은 국도 2호선과 해안도로인데, 해안도로의 탄생이 마음에 들지않지만, 우리 동네가 포함이 되기에 외지인에게 도로 사정을 알려줄겸 다니는 길입니다.

이 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도로 100선에 선정된 도로이기도 합니다.

* 한국의 아름다운 도로 100선중 진해의 도로 : 진해 장복산에서 북원로타리(여좌천변 포함)'벚꽃터널', 산새와 벚꽃이 반기는 '천자봉 산길', 드라이브 갈까 하이킹 갈까, 진해 '해안도로(웅천 사도에서 웅동1동 영길)'

 

세스페데스 신부공원에서 승용차로 5분여 달리면 삼포마을 버스정류소옆에 삼포로 가는 길 노래비가 있습니다.

노름꾼이 노름방 피해 못가듯이 나는 이 길을 지날때면 대부분 노래비앞에서 발로 버튼을 꾸욱 누릅니다.

 

삼포로 가는 길 / 작사·작곡 이혜민

바람부는 저 들길 끝에는 / 삼포로 가는 길 있겠지 / 굽이굽이 산길 걷다보면 / 한발 두발 한숨만 나오네 / 아아 뜬구름 하나  / 삼포로 가거든 / 정든님 소식 좀 전해주렴 / 나도 따라 삼포로 간다고 //  이하 생략

 

24654

 

* 황석영의 소설 제목은 '삼포 가는 길'이고, 강은철의 노래 제목은 '삼포로 가는 길'입니다.
 

'아빠와 크레파스’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 ‘59년 왕십리’ 등을 작곡한 이혜민 씨는 현재 캐나다 밴쿠버에서 살고 있지만,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원적이 부산으로 중고교 시절 무전여행을 즐기면서 진해를 가끔 찾아 젊은 날의 꿈을 키워온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씨는 고교 1년 때 8월 여름날 진해 삼포에 머물면서 바다와 푸른 뒷동산, 창공의 아름다움과 굽이굽이 산길의 한 귀퉁이 어촌마을인 삼포에 반해 이 노랫말을 구상했다고 합니다.

 

 

누리가 삼포로 가는 길 노래를 듣더니 어디선가 들어본 노래라고 했습니다.

지난해 수인이와 왔을 때 여기서 봉숭아를 먹으면서 들었는데, 어쩌면 그때 들었던 가락이 떠오른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삼포로 가는 길 노래가 끝나니 2번 버튼을 눌러 대중가요를 한 곡 듣습니다.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람(?)으로 저장된 노래는 바뀌지않나 본데, 젊은 세대를 위한 노래도 저장되어 있으면 좋지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참고로 진해의 공원 등에는 바위모양의 스피커에서 일몰전(일몰 후에는 들어보지 않아서)까지 노래가 나오는 데 그 노래들도 세월이 흐른 노래라 우리 세대에게는 익은 노래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고리타분한 노래가 될 테니, 진해시 문화관광과인지 공원관리과인지 알 수 없지만, 선곡에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삼포는 작은 어촌마을이기에, 밭농사와 논농사가 많지 않으며, 대부분의 주민이 어업에 종사했지만, 지금은 여느 농어촌처럼 주업을 포기하고 장사(횟집 포함)를 하거나 공장에 일을 나갑니다.

 

처음엔 떠돌이 장사꾼이 왔나보다 했는데, 어버이날 전날이었기에 마을에서 어버이날 행사를 진행하는 관계로 우리가 노는 바닷가에까지 신나는 음악이 흘렀습니다. 흥이 겨워 우리도 좋았습니다.^^

 

맑은 하늘과 해가 좋았으며, 바닷바람은 더위를 막아주었습니다. 

들물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바위를 타고 제법 깊은 곳까지 갔습니다.

삼포의 바다속과 바위에는 많은 생물들이 서식합니다.

 

어릴때 마을의 바다속에는 몰이 지천이었으데, 바닷물이 많이 빠지는 사리때면 파란 잘피밭이 (안골로 향하는)마을앞 바다에 광활하게 펼쳐졌었지만 요즈음은 찾아보기조차 힘들게 되었는데, 삼포마을 앞 바다에 희미하지만 몰(잘피)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잘피는 지역에 따라 거머리말, 부들말, 물댕기풀, 게바다말 등으로도 불리는데, 당시 (창원군)우리는 몰이라고 했으며, 얼라아부지의 고향인 남해에서는 진지리라고 했답니다.

 

잘피는 바다 생물의 산란처며 어린물고기의 피난처가 되기도 하고, 굴껍데기나 불가사리처럼 밭에 거름으로 사용했습니다.

어린날 들과 함께 바다는 놀이터였습니다. 여름날 목(바닷물에서 노는 일. 수영)을 감을 때나 후에 잘피를 캐어 발가벗은 채 바위위에서 푸른 몸을 녹이며 먹곤 했는데, 잘피뿌리는 씹으면 달작하며 쌈싸름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자연에서 저절로 자라는 많은 것들이 간식이 되었습니다만, 지금은 먹을거리가 널렸기에 자라는 아이들은 자연이 배(허기)와 정서를 채워준다는 걸 모를 겁니다.

 

좀 자세히 담고 싶어 바람에 흔들리는 물결을 이리저리 피해가며 담았지만 거리탓으로 제대로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잘피가 물결에 몸을 정답게 맡기는 건 느낄 수가 있습니다.

 

  

1980년대 들면서 바닥을 파헤치거나 쓸고 지나가는 끌그물어업 등과  지구온난화에 따른 겨울철 수온상승, 연안오염 등으로 연안 생태계가 변화함으로서 잘피밭이 사라지고 있어 잘피를 모내기하듯 심는다고 했는데, 삼포에 잘피가 있습니다.

 

                          ▲ 바닷물에 밀려다니던 잘피

 

내가 잘피에 매달려 몇 십분을 보내는 이유를 모르는 누리에게 바다는 나와는 또 다른 환상이며, 세스페데스 신부공원에서부터 바닷물에 들어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몇 해전에는 수인이와 해양공원의 음지교쪽에서 바다에 발을 담그기도 했습니다. 

 

움푹파인 바위에 고인 바닷물에 별불가사리가 아주 조금씩 이동을 했으며, 말미잘의 촉수는 꽃잎처럼 흔들립니다.

무수히 본 풍경들이지만, 어른이 되어 만나도 여전히 좋으며 장난감이 되는 것들입니다.

 

누리보다 어린 나이, 여나믄살 그때 바지락을 캤으며 굴을 깠기에 갯바위 타며 (놀다)다친 흔적이 지금도 있건만 이런 사실을 믿으려는 사람이 없으니….^^

 

 

누리는 바다의 생물을 신기해 하기는 하지만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동에서 섬진강의 재첩회도 비리다면 먹지않을 정도였거든요.

말미잘을 손으로 만지지 못하며, 미끄덩거리는 미역도 제대로 만지지는 못하지만 돌맹이로 굴껍질을 깨어 굴을 제 엄마에게 주었습니다.

누리가 좋아하는 바다는 발을 담글 수 있는 바닷물인 모양입니다.

 

                          ▲ 이게 미역인데…. 해양공원이 보이네요.

 

 

나는 가끔 삼포 바닷가에서 놀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깊은 곳은 가지못합니다.

혼자라면 미끄러져 물에 빠지더라도 잘 노는데, 얼라아부지가 동행하면 걱정이 되는지 방파제에서 자꾸 부르기 때문입니다.

관심 필요없거든~ 하고 싶지만, 기동성이 없다보니 될수있음 순하게 놀려고 합니다만, 그래도 가끔은 사고를 칩니다.

 

해방된 날입니다.

삼포에 간 날중에 가장 깊은 곳까지 갔습니다.

혼자라면 더 갈수 있지만, 어린 누리가 나를 따르다 다치면 안되니 적당히 깊은 곳에서 돌아서야 했습니다.

 

건너편으로 해양공원이 보이며, 다른 섬이 보입니다.

섬의 사람사는 집들이 막 부르는 듯 하여, 규화언니와 누리에게 "저 섬에 가고 싶다~"고 하니, "그럼 가자" 했습니다.

섬은 해양공원 뒤에 있기에 아주 가까운 섬이며, 삼포에서 보면 한뼘의 거리가 되지않는 거리지만 아직 한 번도 밟지못한 섬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예상 일정이 자꾸 어긋나고 있습니다. 

 

                          ▲ 삼포와 우도가 붙은 것 같습니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