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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누기/love lamp

캄보디아 톤레삽 호수를 찾아서... 둘째날

by 실비단안개 2008.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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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4일 2일차 톤레삽 호수로 출발

 

앙코르 유적지를 돌아본 그 다음날 캄보디아 시민들의 삶을 엿보기 위해 톤레삽 호수와 재래시장을 방문하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캄보디아의 버스는 우리나라 60년대시절 서울의 버스에 비유된다고 한다.

 

달려가는 속도에 의해 담아야 할 사실들이 너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촬영기술 부족으로 많이 담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이다. 

캄보디아 시내를 돌다보니 대문에 뚱뚱하고 커다란 항아리들이 놓여있는 집들이 눈에 띄었다.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원주민 가이드에게 물었다.

 

항아리가 1개이면 결혼을 한번, 2개이면 두번, 3개이면 세번 갯수대로 장가를 간 것이란다.

 

캄보디아 남자는 매우 게을러서 가장이 여자이고, 여자가 힘들게 돈을 벌어오는데 그나마 남자가 돈을 벌 경우에는 재력에 따라 남자가 결혼을 몇번씩도 허용이 된다고 한다. 시내를 벗어나 톤레삽 호수로 가는길에 버스안에서 내다보이는 밖의 풍경, 너무나 처절한 원 주민들 삶의 모습들이 놀라움으로 시야에 확 들어온다.

 

도저히 사람이 사는 풍경이라고는 믿을수 없는 풍경들 ( 위 사진참조↑ ) 길옆의 모든 집들이 야자수 잎으로 지어졌고 화장실은 집안에서 해결보면 아래물가로 떨어져 윗물에서는 변이 둥둥 떠내려 오는데 아랫물에서는 야채를 씻어 식사를 하는것이 그들의 일상이라고 하니 실로 놀랍지 않을수 없다.

그래서인지 캄보디아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55세라고 한다.

 

 

톤레삽 호수 가는 길옆 집들이 대부분 위의 사진과 같다. 움막 틈새로 산모가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누워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고. 그래도 다른집에 비해

사진속의 집은 야자수 잎이 수북하고 오래지 않은 것이라 꽤나 좋은집에 속했다.

 

 

위 사진과 같이 어린아이들이 비닐봉지에 목걸이나 팔찌를 담아 그야말로 상업전선에 나선 모습이다. 원 달라, 원 달라  가냘픈 목소리로 외쳐대는 어린아이들의 안타까운 모습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많은 아이들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지만 그 아이들은 자신의 모습이 카메라에 담기는것을 원치 않았다.

 

카메라가 자신의 모습으로 향하자  한국말로 " 하지 마세요" 하지 마세요" 라며 작은 손으로 카메라 렌즈를 향해 도리질 한다. 

 " 그래 아가야 미안해" 더이상 담지 않을께 " 미안해,

 

톤레삽 호수로 들어섰다. 초 입새 수상가옥 그래도 이 집들은 외국사람들 여행객으로 인해 어느정도 형편이 다른집들에 비해 넉넉할것 같다는 느낌이든다.

 

↑ 이집은 나무판자로 벽을 만들었고 양철로 지붕을 얹어 그래도 그중에 나름대로 나는 부자야 라고 말할수 있는 집 이란다.

 

톤레삽 호수의 물은 이렇듯 흙탕물이라서 속의 모습을 전혀 알수가 없다. 캄보디아 땅에는 20미터만 파면 물이 솟는다고 한다 , 하지만 그 물은 석회가 섞여있으므로 

식용으로 사용할수 없어 마시는 물은 모두 수입에 의존한단다. ( 우리나라 작은생수병 정도의 크기 한개에 천원정도 )

 

 

톤레삽 호수로 가다보면 이러한 나룻배들을 여러번 만날수 있다. 물 위에 사는 사람들이라 이 나룻배가 유일한 교통 수단으로 이용되는듯 하다.

위↑ 남자 아이들은 어릴때부터 나룻배에 익숙하여 스스로가 배를 이용하여 돈 벌이에 나선단다.

 

 

톤레삽 호수로 가기위한 배를 탓을때 그 배에서 일하는 원주민 직원이 남자아이인데 아홉살이란다. 배가 출발하고 설때 밧줄을 거두고  배 운전하는 아저씨의 일을

돕는것 같다.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엄마 품에서 어리광을 피우며 보호받고 있을때 캄보디아 어린아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산업전선에 뛰어들어 세상을 경험하고,일을하며 돈을 벌고있는 것이다.   위↑ 사진속의 남자아이는 많이 자랐으니 세상과 부딛끼는 일에 많이 익숙할것이라 생각된다.

 

 

수상가옥 마을에 도착하여 한인이 운영하는 수상카페에 배를 대자 저 멀리서 하얀 양은다라속의 한 소년이 부지런히 노를 저으며 우리있는 쪽으로 오고 있는것을 보고 있노라니 여기저기서  그런 소년들이 우리쪽을 향해 부지런히 노를저어 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원 달라 " 원 달라 " 가장 먼저 도착한 팀이 그래도 양은다라가 아닌 쪽배를 타고있는 한 가족이었다 그 쪽배에는 어린아기가 둘 있었고 아기 엄마가 노를저어 왔다.

옷은 ?어지고 새카맣게 그을린 아기들을 안고와서 " 원 달라" 원 달라 " 힘없는 목소리로 손을 벌리는 그들에게 나는 어찌할줄을 알지 못했다.

 

원 달라를 준다고 해서 그들의 형편이 근본적으로 달라지지는 않을텐데... 해결책 없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내 손은 그들을 향해 원 달라를 내 밀수 밖에 없었다.

위↑ 사진은 아기와 엄마가 배 위에서 외국 사람들 상대로 바나나를 파는 상인이다.

 

 

위에 보이는 수상가옥은 외국에서 온 여행객을 상대로 상업을 하는 집들인데 가게 주인들이 대부분 원주민이 아닌 한국사람이란다. 수상 카페에 들어가서 차한잔을 마시며 주위를 둘러 보았다. 수상가옥 사이에 한국사람들 상가만 나름대로 깨끗하고 원주민들의 집은 말할수 없이 형평없는 모습에 참혹하기까지 하다.

어떻게 물 위에서 저렇듯 살아가고 있을까?... 

 

내 카메라 성능 부족, 촬영기술부족 합하여 멀리 보이는 원주민들의 수상가옥 삶의 실정을 담을수가 없어 그저 바라보기만 하였다. 한국에서 TV로 볼때보다 실제로 와서

보니 이들의 어려운 삶의 실정이 더욱 처절하고 뼈저리게 느껴져온다.

 

우리나라가 6. 25를 겪으면서 황폐해졌을때...세월지나 우리 어린시절 보릿고개를 넘던 그 시절을 회상해 본다 아이들 얼굴에는 항상 찌든때와 코가 흐르고 있었고,

미군들만 보면 우루루 달려가 초코렛를  구걸하며, 동네 초상집 생기면 과자한개 얻어먹기 위해 어두운 밤 끝이 안보이도록 줄을 나래비로 섰던 옛 그시절...

�어지게 가난한 고달픔을 딛고 부지런히 일하여 일어선 우리의 역사가 불과 몇십년이었던가...

 

우리 한국 선진들이 얼마나 열심히 살아온 열매인지를 ... 얼마나 큰 축복을 이룩했는지를... 깨닫고 감사하며 나눌때가 지금이 아닐까 ...싶다

 

집집마다 한국의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에 정신세계가 병들어가고. 어른들은 컴퓨터 채팅이란 괴물로 순수함이 말살되어가는 우리나라의 현실앞에 축복을 받았지만 

그 축복을 지혜롭게 잘 사용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여 우왕좌왕 할때가 아니라 캄보디아의 모습에서 우리 옛날의 모습을 회상하며

현제 우리의 삶을 지혜롭고, 이쁘고,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를 생각하며 나를 돌아볼수 있는 눈을 열었다.

 

우리 국민 너와 나, 모두가 선진들이 이루어 놓은  이 모든 축복들을... 선진들의 피와 땀이 배어있는 우리나라의 축복들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잘 가꾸어야 함을 느끼며 나는 또 다시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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