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많은 이들이 '시인'이란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예전에는 시집을 구입하여야 시와 시인을 만났지만, 요즘은 인터넷 보급으로 하루에도 수많은 시를 접하며, 시인들을 만난다.
이제 작은 시집을 안거나 끼고 시를 외우던 그런 시대가 아니다. 시인의 약력까지 검색으로 가능하며, 연락처도 금방 알아낼 수 있다. 그러나 시인을 마주하는 일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유채꽃 환하던 4월에 김기택, 김이듬 시인을 만났으며, 그날 한사정덕수 시인을 소문없이 만나기도 하였고, 6월 열무꽃과 함께 강희근, 김지유 시인을 만났다. 유월, 잊고 있었는데, 고갱선생님과 형광등선생님께서 친히 우리집 앞까지 오셨고.
7월, 어제 마산의 제일여중 강당에서 유안진 시인을 만났다.
유안진
출생 : 1941년 10월 1일 (경상북도 안동)
학력 : 플로리다주립대학교대학원
데뷔 : 1965년 현대문학에 시 <달>, <위로>, <별>이 추천되어 등단. 추천 발표(故 박목월 시인 추천)
저서 : 바람편지, 옛날옛날에 오늘오늘에, 지란지교를 꿈꾸며
수상 : 1998년 제10회 정지용문학상
유안진, 아~ '지란지교! 우리 세대의 많은 여자들이 읽었을 것이다.
* 지란지교 읽기 : http://blog.daum.net/mylovemay/15078096
나는 지란지교보다 '땡삐(자유문학사, 전 4권, 1994)'를 먼저 읽었는데, '땡삐'는 민족소설이며, 3대에 걸친 여인의 일생이라 할수있는 내용의 이야기다.
삼월이란 여아가 어머니 巫女에 의해 양반가의 몸종으로 들어가 나이 많은 늙은이의 시중을 들다가 임신을 하게 되며, 소문에 쉬쉬하며 여아(조선)를 분만하다가 사망 하게 되고, 조선은 그당시 技女 훈련원(고숙향)에 양녀로 입양되어 기녀가 되기 위한 수업을 철저히 받던중 일본 형사의 시달림에 조선이는 가출하게 된다. 그후 정처 없이 방황하다가 사당패에 가담하여 심부름도 하며 사당패를 따라다니는 유년시절을 보낸다.
그러다 우연히 일본교사의 집에서 양녀로 비교적 사랑도 받으면서 행복한 생활을 할 수가 있었다. 해방과 함께 일본인들의 귀국과 다시 혼자가 된 조선은 옛날의 사당패에 같이 생활하던 남자를 만나 결혼하여 생활도 넉넉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잘 살 수 있었으나 교통사고로 불행한 위치에 놓이면서 여아(여삐)를 생산한다.
'땡삐'를 읽기 이전에 김성종과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과 '여명의 눈동자', '마루타'등 역사 이야기가 좋았었는데, 역시 민족소설인 '땡삐'를 읽으면서 여류 작가의 작품에 눈을 돌려 박완서, 김이연의 작품과 수필과 詩를 만났다.
그러다 집에서 부업을 시작하면서 라디오를 만나 하루의 시간 대부분을 라디오와 함께 하면서 책이 멀어졌고, 다시 인터넷을 만나며 시와 짧은 글들과는 만났지만, 책은 여전히 먼 대상이 되었다. 간혹 책 선물을 받는데, 예전처럼 몇 시간씩 빠지지 못함이 늘 아쉬움으로 있다.
요즘 이틀에 한번 칫과에서 신경 치료를 받기에 연속 나들이는 무리가 될것 같아 망설이는데 문학관의 학예사님의 전화로 함께 마산 제일여자중고등학교로 향하였다.
세번의 버스와 한번의 택시로 제일여고에 막 도착을 하니 관장님과 유안진 시인께서 모습을 보이셨다.
2006년 9월, 김달진 문학제때 많은 시인을 만났는데, 당시 유안진 시인도 만났으며, 그날의 흥분은, "'땡삐' 유안진 선생님 맞나요?" 할 정도였다. 그리고 모습을 담았는데, 참 엄한 분, 빈틈없는 분으로 기억에 남았는데, 어제 유안진 시인은 소녀의 눈빛과 목소리와 감성을 지닌 이웃집의 아줌마(연세를 짐작하지 못할 정도의 표정), 지란지교의 허물없는 그런 모습으로 담겼다.
내내 속으로 그랬다. "오늘 뵙기를 정말 잘 했네, 아니었다면 이태전의 엄한 모습만 간직할뻔 하였는데… "
학교 교문을 들어서니 '시야 놀자!' 안내가 세워져 있었다.
우리 여기서 사진 좀 찍어요?
▲ 실비단안개, 유안진 시인, 김달진 문학관 학예사 - 문학관관장님께서 담아주셨다.
마산제일여중고는 김달진문학관 학예사님의 모교이며, 유안진 시인의 교사 첫 부임지다. 하니 두 분에게 얼마나 감회가 깊은 장소일까. (김달진문학관의 집사님은 김달진 시인의 제자다.)
우리는 '처음'에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첫날, 첫사랑, 첫만남, 처음으로, 처음처럼 - 나에게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 그것이 처음인 것이다.
못 다 말씀하셨겠지만, 어제 두 분은 사람들이 읽은 이상으로 흥분하셨으리라.
제일여중 강당
나는 그대들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그대들은 나를 기억하여 주었다. 누구를 만나면 카메라를 들고 있다는 죄로 목례를 잘 하는데, 때로는 아주 형식적일 수도 있지만, 모습을 담은 후는 진심으로 감사하는 말씀을 전하며.
김달진문학관 개관식(2005년 10월) 때부터 어렴풋하게 기억하였다는 분, 시야 놀자 행사에서 모습을 저장도 못한 채 헤어진 분, 시야 놀자, 그 인연으로 내 블로그를 계속 방문하여 주는 분 - 나 혼자서 기억 하는 분 - 그렇게 만났다.
시야, 놀자!
찾아가는 시인, 찾아오는 독자· 8
제 8회 초대시인 : 유안진
때 : 2008. 7. 10(목) 16:30
곳 : 마산제일여자중학교 대강당
기획 · 사회 : 이서린(시인)
주최 : 진해시김달진문학관
주관 : (사)한국시사랑문화인협의회 경남지회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진해시
김달진 문학관의 행사는 '이서린 시인'이 사회를 맡는다. 05년 10월 문학관 개관식 날 처음 뵈었으며, 시인이 문학관에서 잠시 관리일을 맡았을 때, 해마다의 문학제에서 눈인사 조차 나누지 못한 경우에도 늘 함께였다. 맑고 잔잔한 분이다.
수많은 꽃씨들이 꽃을 피우고파 한다.
잠시 소란스럽다가 조용하다가, 진지하다가 - 가슴은 떨리며 반짝인다.
우리도 저런 나이가 있었지, 그랬지!
저 아이들은 또 어떤 꽃으로 피어날까…
모두가 들꽃으로 피어나기를 바란다면 이는 내 욕심이다. 그러나 모두가 다른 색과 향과 모양으로 피어나리라.
1,000 여명의 관중이다. 이서린 시인은 언제나처럼 또롱또롱 하셨는데, 나중에 밥집에서의 말씀이 무대에 오르면 힘이 난다니 천상 무대 체질인 모양이다.
위의 사진, 웃는다. 꿈을 꾸는 꽃씨이기 때문이다.
시인이 선생님이 되어 처음으로 부임한 학교가 제일여고였기에 지금도 마산이 고향처럼 떠오른다고 하셨는데, 분필을 잡는 일도 좋았지만, 바다를 보며 시를 더 쓰고 싶었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하셨다.
시를 더 쓰고 싶었다.
우리가 무엇에 미쳐가는데 누군가가 손목을 덥썩 잡는다면 그일에 더 달려가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니 그 속이 얼마나 끓었을까.
동행 / 유안진
살 같이 빠르다는 한 세월을
그대 부리가 빠알간 젊은 새요
옛 어르신들 그 말씀대로
연약한 죽지를 더욱 의지 삼고
느릅나무 높은 가지 하늘 중턱에다
한 개 작은 둥지를 틀고
햇발이 모자라도록 웃음 웃어 살자
음악이 모자라도록 춤을 추어 살자
시인이 시를 낭송하며 당시의 마산 풍경과 당시 시인의 생활을 들려주었는데, 카메라가 죄다. 많은 이야기를 놓쳤기 때문이다.
목소리로 일하는 사람보다 더 적격인 학생의 낭송도 있었으며, 질문 시간에 엄마를 위하여 싸인을 받은 학생도 있었으며, 시를 쓰는 일을 하는 한 학생은 시가 쓰여지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하였다.
이는 비록 시를 쓰는 일에만 해당 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하는, 해야 하는 많은 일(직업)도 같은 맥락이다.
시인은 정답을 준비해 둔 듯 조용히 일러주었는데, 그런 때는 다른 일을 하라였다. 경험은 좋은 스승이기에 직간접 경험이 중요하니 책을 읽는 것도 좋다고 하셨다.
줄것이 더 있는데 시간이 부족하여 애를 태우던 마음이 모두에게 전해졌다. 시인은 원래 말씀을 잘 하시나, 독자에게 줄 답을 언제나 준비해 두시나, 시인의 마음은 샘이었다.
글과 시는 시인의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우리는 대하면서 스스로 흡족해한다. 아주 주관적이긴 하지만 분명 그럴것이다. 시 보다 마주하여 목소리를 듣는 일은 분명 더 큰 기쁨이다.
시인의 목소리가 정답게 나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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