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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이야기/흑백다방 그리고…

08년 여름 흑백다방의 풍경

by 실비단안개 2008.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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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5일, 화요일.

전날 봉숭아꽃과 잎을 따 한번 행궈 건져두었다.

흑백(유경아아카데미지만 편의상 '흑백'으로)의 경아씨에게 꽃물을 들이는 날이다.

 

 "언니 사방치기돌이다. 그렇제?"

자연의 물은 자연의 부분이 되어 들여야 제 맛이다. 하여 돌맹이가 귀한 도시지만 용케 잘 어울리는 자연석을 주워 보이니, 그 생김이 약간 네모며 편편하여 사방치기돌이라고 한다.

 

피아노만 장난감이 아니었네.

사방치기를 하며 놀기도 하였구나.^^

 

흑백 앞에는 예전의 풍경이 그대로인데, 돌장승과 절구 주위로 흔한 풀이 껑충하게 자라있는데, 경아씨는 풀 한포기도 손수 뽑지 못하고 버려두고 있었으며, 창문으로 아이비가 착하게 오른다.

 

봉숭아꽃에 백반(명반)을 뿌려 잘근잘근 찧었다. 붉은꽃물이 큰돌(?)을 타고 흐른다.

 

☆.. 봉숭아 물들이기 : 봉숭아물을 들이면 마취가 되지않는다? 

 

우리가 저문 여름 뜨락에 / 엷은 꽃잎으로 만났다가 / 네가 내 살 속에 내가 네 꽃잎 속에 / 서로 붉게 몸을 섞었다는 이유만으로 / 열에 열 손가락 핏물이 들어 / 네가 만지고 간 가슴마다 / 열에 열 손가락 핏물 자국이 박혀 / 사랑아 너는 이리 오래 /
지워지지 않는 것이냐 / 그리움도 손끝마다 핏물이 배어 / 사랑아 너는 아리고 아린 상처로 / 남아 있는 것이냐.

봉숭아 / 도종환

 

가물거리는 흔적일지라도 많은 것들이 사랑이라는 이름의 상처로 남아 있는데, 그것은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다면 고역이 되기도 한다.

가끔 네게 가야지, 밥을 함께 먹어야지…

그러나 내 욕심으로 오랫동안 흑백을 찾지못하였다.

 

봉숭아물을 들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유경아아카데미가 '유택렬 미술관'이 될 수 있고…

그냥 하늘만 가릴 수 있는 작은 집이면 좋겠고…

우리 어디가서 냉면먹자?

 

남은 커피를 마시는데 문이 밀쳐지며 남자 한사람이 들어섰다.

"여기가 흑백이 맞나요?"

말씨가 윗동네다.

 

50대 초반의 남자는 경기도 성남에서 첫버스를 타고 마산을 경유하여 흑백을 찾았다.

30년만에 찾았단다. 밤새 뒤척이다 아침도 건너고 첫버스로.

차가운 물을 마시며 흑백을 두리번 거렸다. 설마 그 액자가 지금도 그 자리에 있을까, 그러나 그는 열을 내리지 못하며, "진해는 변한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때와 꼭 같습니다! 그런데 젊은 여자들에게 물으니 '흑백'을 모른다고 하데요?"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 제헌절을 모른다고 하는 기사를 읽었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으면 특별한 날이거나 장소라도 기억하지 못한다. 더군다나 진해는 타지 사람이 많은 곳이며, 흑백은 40대 이상에게는 꽃노래 같은 고유명사지만 나이가 들지않은 이들에게는 그저 그런 곳, '그렇게 있었다지'정도로 기억될 수 있으며, 그러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날, 시내버스를 타고 가면서 전화 통화를 위하여 두번을 하차하였다가 택시로 흑백에 갔다.

"아저씨, 흑백요- "

"요새 흑백 안하지예?"

나와 비슷한 연배였는데, 기사분은 젊은 시절에는 자주 흑백을 찾았지만 요즘은 바빠 흑백을 찾지 못하였는 데, 지난해에 간판을 내려 많이 아쉽다고 하였다.

 

  ▲ 성남에서 첫버스로 흑백은 찾은 이

 

 

경아씨는 열심히 산을 오르고 요즘은 자전거 타기를 한다. 씩씩하여 고맙다.

 

얼마전에 새식구를 맞았다며 숨이 꼴깍이는 편지를 보내왔었는데, 들과 촛불집회를 핑계로 모른척 넘겼었다.

 

Bechstein. 147 (나의 새친구) 2008년 6월 01일 일요일, 오전 08시 17분 33초

 

제가 좀은, 아니 많이 설레고 들떠 있는데, 이글이 제대로 써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세상에 태어나서..이후로 정말로 과연..몇번째였을까, 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좀은 이기적이지만 이거는, 오로지 나혼자, 정말로 나자신만을 위한 제일로 귀중한 선물같은, 제게서는 아주 큰 사건..입니다. 몇몇 지인들에게 실제로 말을 꺼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사실 솔직이는 정말 오래전부터 제 조율사님과의 많은 의논과 선택들이 있었고, 요며칠간 마음결정을 내리기까지 기-인..고심과 숙고가 있었드랬습니다.

 

제 조율시님과의 인연은 제가 4-5세때 피아노를 시작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줄곧..이었으니, 제게서는 너무도 소중한, 참으로 오래된 인연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늘 아저씨, 또는 조율사님이라고 그분을 부르지만, 그분이 저를 부르는 호칭은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여러번 변해왔군요. 어릴때까지는 경아야, 했다가..언제부터인가는 경아씨, 했다가..이제는 유선생, 이라고 부르시네요. 저도 나이가 점점 들어가고 있다는 말이 되는데^^ 제가 이분 말씀은 무조건 믿는 편인데, 제가 제시했던 악기의 조건은, 검은색이 아닌 나무색이어야 한다, 그리고 무광택이어야 한다, 뿐이었습니다. 그이외에 피아노 자체에 관한 제 마음은 이미 이분께서 너무도 잘 파악하고 계시기에 정말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일들에는 좀 너그러울 때도 있지마는 피아노에 있어서만은 제가 아주 까탈을 많이 부리는 편입니다마는..)

 

조율사님과의 오랜 얘기 끝에 실제로 피아노를 보러 돌아다녔던 때는 이앞번 급성위염이 닥치기 전에 초봄 아직 추울때였는데, 조율사님과의 어느하루 데이트, 우선은 창원, 그분의 피아노 매장에 들러서 (거기에만 가면 너무많은 피아노들에 둘러싸여 있게 되어서 저는 언제이든 늘 너무 행복합니다) 여러 레이블의 피아노를 테스팅 해보았었고, 이후로 창원과 진해를 돌아다니며 또다른 레이블의, 종류와 크기의 몇몇 피아노들을 보면서 조율사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테스팅 했었습니다. 세상에 어지간히 알려져있는 피아노의 크기와 종류는 거의다 보아왔든지 또는 연주해 봤었는데, 앞에 썼듯이 그 이후로는 이제는 제가 마음결정을 내리기까지의 길고길었던 고심의 기간..최후의 결정을 함에 있어서는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냉정함을 잃지 않으려고 많이 애를 썼습니다.

 

그것도 모자란것 같아서 나중에는 제게서 가까운 지인들에게 도움말씀도 들었습니다. 정말로 냉정하게 생각해서 이것이 제게 필요한 걸까요, 사치가 아닐까요...그질문이 다른것에 관해서였다면 몰라도 피아노에 관한 것이어서 그랬었는지, 제얘기를 들으신 분들은 모두들, 제 느낌으로는 어느날 제몰래 모여서 약속이나 한듯이..정말로 잘 생각했다, 네게서는 어느것 보다도 꼭 필요한 거다, 다른사람이면 몰라도 너이기 땜에 정말 잘한 결정이다, 라는 말씀들을 해주셨습니다. 물론 어떠한 일에 있어서든지, 가장 중요한 판단과 마지막 결정은 저자신이 내리게 되는 것이지만, 저와 제피아노를 믿어주고, 그런 말씀을 해주신 분들께 정말 고마웁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그악기를 보러갔던 때는 (음악회를 진행하시는) 차병배님과 같이, 였는데, 제가 올바른 판단과 결정을 할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셔서 너무 고마왔습니다 (정작 새피아노가 들어오던 시간에는 같이 못있었는데, 6월초 서울서 연극공연이 있어서 떠나야 했으므로)

 

그렇게..그런 과정을 거쳐서 비로소 제가 마음결정을 내리게 되었고..그래, 이거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게는 그어느 무엇보다도 정말로 필요한 거다, 라는 판단을 내리게 된후, 그때부터 이제는 마음이 아주 홀가분해 졌습니다. 그리해서 바로 어제, 모처럼 햇볕이 좋았던 날 낮에, 이제부터는 저의 또다른 동반자가 될, 저의 "보물" 이 저의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솔직이..새피아노가 들어왔던 어제는, 안그래도 얕은잠을 자는 사람이 들떠서 잠도 영 제대로 자지못해 새벽 2;30쯤에 잠이 아주 깨어버려 눈도 아프고 그랬지만, 그때부터 기분이 좋아서 마음이 설레고 들떠서 괜히 아래층에 내려가서 깜깜한 오밤중에 새피아노가 들어올 자리에 비질을 하고 치우고 닦고 청소, 혼자서 난리법석을 떨고, 너무 마음에 애를 쓰고 신경을 곤두세웠든지 오랜만에 두통이 오고..늘 새벽연습을 시작하는 시간 즈음이 4;30 되어도 연습도 하기싫어지고, 괜히 새벽부터 커피를 뽑아서 줄창 마시고, 깨끗하게 치운 텅빈 공간에 서성거리면서 새피아노가 들어와있는 상상을 해보면서...이런 제모습을 정말, 이해를 하실는지요?

 

새피아노가 들어오는 일로 해서, 늘 친구랑 하는 주말 산행도 미루었고..새벽이 지나 아침으로..하늘이 점점 밝아오고 마음 설레임은 전혀 가라앉지 않고..결국에는 늘 하던 새벽연습과 아침운동도 안하고..친구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오늘 나에게 아주 좋은 일이 있어요. 그때 나랑 같이 있어줬으면 좋겠어요, 라는...그리고 아마 7월말에 있을 "도서관에서 동요부르기" 기획자이신 원정언니도 함깨...제 들뜨고 기다리는 마음을 미리 읽기라도 하신것 처럼 제 조율사님은 본래 피아노가 들어오기로 했던 약속시간인 낮12시가 훨씬 안되었는데도, 마치 제게서는 "산타클로스" 처럼, 나타나 주셨습니다. 트럭에서 꽁꽁 묶여져있던 피아노 본체와 그나머지 여러 조립품들이 하나씩 내려지고..정말로 조심조심 아카데미로 들어오고..다시 하나하나 조립되어가고..드디어 당당하게 피아노가 놓여졌습니다. 방금 포장을 뜯은 새 피아노이면서도 마치, 오래전부터 그자리에 있었던듯한 느낌이었습니다. 피아노 매장에서 보았을 때보다 훨씬 악기가 크게 보였던 느낌, 제법 긴시간 동안의 조립이 완성되고..조율사님께서 테스팅 해보라고 하셨습니다. 이제껏 수많은 연주회에서 첫곡을 연주하기 직전의 떨리고 긴장되던 느낌과는 좀은 다른 것이었는데요, 좋아서 얼마나 가슴이 벌렁거리든지, 지금 그느낌을 글로서는 절대로 표현되지 않을것 같습니다. 테스팅의 첫곡은 쇼팽의 느린 녹턴부터 슈베르트의 빠른 스케일, 후에는 베토벤으로 해서..모짜르트도 쳐보고..페달링과 소리울림도 테스팅, 새피아노여서 그렇겠지만 건반이 좀 딱딱한것 이외에는 제마음에 아주 쏙 들었습니다.

 

딱한가지 아쉬운점...중고였드라도 정말로 제가 바래왔었던 BECHSTEIN 베히슈타인 피아노는 적당한 악기를 구할수 없었다는 것...이부분은 제마음을 잘 알고계시는 조율사님도 정말 많이 애를 쓰셨었는데, 이다음에 언젠가는 또 기회가 제게 오겠지요. 이번에 새로 들인 피아노는 "Kohler & Campbell (est 1896)" 인데 아주 제마음에 듭니다.

 

이제는 좀더 이악기랑 친해져야겠습니다. 제가 정말로 많이 애를 써야할 부분이겠지만, 어쨋든..조율사님 일행을 보내고..참, 또하나의 횡재를 했는데, 조율사님께서 연습용 업라이트 피아노를 덤으로 하나 "꽁짜!" 제게 선물로 주셨다는 얘기, 이것도 자랑하고 싶습니다. 제가 조율사님께 그랬습니다. "제게 너무 잘해주시는것 아니셔요?" 친구랑 언니랑 "동요부르기 연주회", 등등에 관한 얘기를 나누고 점심을 먹고 초저녁에 보내고..혼자 남은 시간 내내...밤이 될때까지 자꾸 괜히 여러번이나 아래층에 내려가서 새피아노를 만져보고 안아보고 쳐다보고..그랬습니다. 지금까지도 기분이 너무 좋아서, 이제는 아무것도 더이상 제게 필요하지 않을것 같고, 괜히 좋아서 웃음이 지어지고, 배도 안고프고..어쩔줄을 모르겠습니다. ^_____^ <------ 이 표정이 지금 제 얼굴모습..입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선생님의 잔기침까지 이야기를 하였는데, 경아씨도 그렇다.

바뀐 거 없나요? 왜 말 안해요?

배시시 웃는 폼새까지 그냥 가시나다.

 

 

성남의 남자분과 함께 냉면집으로 갔다. 

그는 어제 일처럼 30년전을 풀어 놓았다.

그 길, 그 골목 --

혼자서 무얼 먹나 고민하였는데 함께 식사를 하여 고맙다고 하면서 오랜만에 옛전우를 마주한 듯이  당시의 군생활(해군)을 술술 풀었다.

 

우리는 30년전 추억을 찾아 훌쩍 떠날 수 있을까?

 

 

 7. 19 작은 피아노연주회 2008년 7월 13일 일요일, 오전 09시 40분 10초

 

"작은 피아노연주회"

 

언제 ; 2008. 7. 19 (토) 20;00 -

어디서 ; 피아노아카데미 (구; 흑백)

한달이 훌쩍 지나가고..

다시 다가오는 세째토요일 저녁에는 작은 피아노연주회가 있습니다.

지난달과 마찬가지로.. 무슨 곡을 연주할 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날에는 특별히 비가 안왔으면 좋겠고 쨍한 햇볕을 볼수 있기를 정말로 바램하면서... (이 바램은 이유가 있음)

 

보라색 글씨로 작은연주회 소식을 알려왔다.

저녁 8시에 해가 쨍할까?^^

그날은 왜 해가 쨍 해야할까?

연주회날에 고백을 하겠지?

 

흑백다방 / 정일근

 

오래된 시집을 읽다, 누군가 그어준 붉은 밑줄을 만나
그대도 함께 가슴 뜨거워진다면
흑백다방, 스무 살 내 상처의 비망록에 밑줄 그어진
그곳도 그러하리

 

베토벤 교향곡 5번 C단조를 들을 때마다
4악장이 끝나기도 전에
쿵쿵쿵 쿵, 운명이 문을 두드리며 찾아와
수갑을 차고 유폐될 것 같았던
불온한 스무 살을 나는 살고 있었으니

 

그리하여 알렉산드리아 항구로 가는 밀항선을 타거나
희망봉을 돌아가는 배의 삼등 갑판원을 꿈꾸었던 날들이 내게 있었으니

 

진해의 모든 길들이 모여들고
모여들어서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는 중원로터리에서
갈 길을 잃은 뒤축 구겨진 신발을 등대처럼 받아주던,
오늘의 발목을 잡는 어제와
내일을 알 수 없는 오늘이 뇌출혈을 터트려
내가 숨쉬기 위해 숨어들던 그곳,

나는 그곳에서 비로소 시인을 꿈꾸었으니
내 습작의 교과서였던 흑백다방이여

 

memento mori*,
세상의 화려한 빛들도 영원하지 않고
살아있는 것은 모두 사라지느니
영혼의 그릇에 너는 무슨 색깔과 향기를 담으려 하느냐,
나를 위무하며 가르쳤으니

그 자리 그 색깔 그 향기로
사진첩의 속의 흑백사진처럼 오래도록 남아있는
since 1955 흑백다방,
진해시 대천동 2번지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
*시안02년 여름호/집중조명-21세기 시인

 

아는 이, 낯 모르는 이들에게 또 하나의 추억을 선물하는 자리다. 그리고 훗날 이야기하자. 08년 여름의 흑백 풍경을.

언제 : 7월 19일(토) 20:00

어디서 : 유경아피아노아카데미(舊흑백)

 

 

☆.. 새로운 Daum블로그 글쓰기 베타테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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