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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께 즐거우면 더 좋지 아니한가!
고향 이야기/흑백다방 그리고…

두레헌의 茶맛에서 못다한 이야기

by 실비단안개 2008.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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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4일, 월요일.

무궁화와 부용을 담아야 한다는 욕심으로 웅천요까지 갔으며, 혼자 웅천요의 풍경을 담고 들길에서 몇 종류의 꽃을 만났다.

그때 시간은 정오를 넘겼기에 걷기만 하여도 땀이 흘렀는데, 이늠저늠 담다보니 땀으로 목욕을 하는 듯 하였지만, 얼마전에 방문한 두레헌 또한 스칠 수가 없었다.

두레헌의 茶는 風景 맛이다.

 

애기연이 대를 올렸다. 아~ 이쁜늠!

주인과의 인사는 미루고 바쁘게 두리번 거렸다.

어리연이 활짝 피었다. 활짝이라야 손톱만하지만 한껏 기지개를 켠 모습이 당겨 가까이 앉게 하였는데, 그때 주인이 나오기에 인사를 나누었다.

 

 

 두레헌 뜰을 들어서면 오른편에 애기연이 대를 쑥 올렸다.

그동안 많은 꽃들의 이름에서 보아 알겠지만, 애기, 아기는 원래의 모양보다 작다는 뜻이다. 또 어리연의 어리도 작다는 뜻이고.

애기연은 연못이나 저수지보다 작은 용기에 담아 관상용으로 키운다.

 

연과 수련의 차이는 연은 꽃대를 수면 위로 올려 꽃을 피우며, 수련은 거의 수면 높이에서 꽃을 피운다.

궁금한 것 중 하나는 연잎은 왜 비(물)에 젖지않을까일 것이다.

 

이는 연잎의 표면은 잎 표면의 미세돌기 구조에 의한 발수성이 있어 물이 묻지않고 잎 위에 방울로 맺히며, 수련잎은 잎 표면에 왁스(wax)성분에 의하여 약간의 발수성은 있으나 일반적으로 표면이 젖지않는다.

                                        

 

 어리연이 피었다.

연꽃의 요정이랄까, 앞서 이야기를 했다시피 연 중에 가장 작은 연이 어리연이다.

 

꽃은 7∼8월에 피고 잎자루의 밑 부분에 싸여서 10개가 달린다. 화관은 흰색 바탕에 가운데 부분이 황색이고 지름이 1.5cm이며 5개로 깊게 갈라지고 안쪽과 가장자리에 흰색 털이 있다. 꽃받침조각은 길이 4∼6mm의 넓은 바소꼴이고 끝이 약간 둔하다. 수술은 5개, 암술은 1개이다.

 

원산지는 한국이며, 한국(중부 지방 이남), 일본, 중국 남부, 동남아시아, 오스트레일리아, 아프리카 열대 지역에 분포한다.

 

 

 

주인은 나를 끌다시피하여 안으로 들여 선풍기를 가장 세게 틀어 주며, 차가운 물을 주고 차를 준비하셨는데, 말차였다.

 末茶

고운 연두빛나는 가루분으로 된 녹차라고 말할 수 있다. 말차를 내어 마시려면 보통의 작은 찻종보다 좀 넓직한 말차용 다기와 거품을 낼 때 사용하는 다선(대나무솔, 다솔,차솔, 차선)이 필요하다.

먼저 말차 한스푼 정도를 다기에 덜어놓고 뜨거운 물을 (100도보다는 낮은, 한 75도 정도)붓고 대나무솔로 빠르게 저어서 거품을 내준다. 그러면 위에 부드러운 백녹색의 거품이 위에 얹히는 녹색의 차가 된다. (커피로 치면 카푸치노 분위기)

맛은 보통 녹차보다 부드럽고 뒷맛이 담백하다.
말차는 작은 찻종에 마시기보다는 양손바닥으로 받칠만한, 좀 크고 넓적한 다기에 마신다(봄에 웅천요 포스팅에 올렸음). 그리고 3~4명이 같이 마실때는 둘러앉아 이 넓적한 다기 한사발에 있는 말차를 돌려 마시는데, 옆사람에게 다기를 돌릴때는 자신이 방금 마신 부분에서 약간 각도를 돌려서 넘기는데 그런식으로 다 마실때까지 돌아간다.(원치 않는다면 따로 마셔도 된다.)

 

 

☆.. 말차의 색깔보기 : 웅천요(熊川窯)의 봄2

 

말차에 이어 감잎차를 주셨는데, 땀이 식혀졌기에 감잎차를 마시며 주업에 눈을 돌렸다.^^

차를 앞에 두고 창밖의 비비추를 댕겼다. 카메라 창으로 보는 세상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세상과 다르다. 물론 이는 아주 주관적이겠지만, 카메라에 담기전 풍경, 창으로 보이는 풍경이 꼭 딴 세상 같다. 꿈을 꾸는 듯이.

좋은 말로하면 소녀적인 감성이며,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미친 여편네가 하는 짓거리다.

 

낮 시간에 창문을 보자. 유리창 하나하나가 그림액자다. 모두가 다른 그런 그림.

동영상을 담을 때도 그 동영상의 포스팅 여부를 떠나 카메라의 창으로 보이는 바람과 흔들리는 꽃잎, 나비의 날개짓이 나중에 보는 동영상보다 더 짜릿하다. 사진으로 담아 보는 것 이상으로. 하여 동영상의 포스팅 유무를 떠나 가끔 그렇게 논다.

 

 

 

이거다.

지난번 방문 때의 아쉬웠던 부분.

두레헌의 창은 통유리다. 하여 바깥의 풍경이 잘리지 않으며 모두가 하나의 커다란 그림액자가 된다.

그 창문 위에 소롯이 앉은 가리개가 여름 맛을 더하는데, 이는 비록 여름 뿐만이 아니다. 추울 때는 추위를 막아주는 듯하며, 더위때는 시원함을 아름 퍼줄 것 같다.

감각적이며 요란한 서양의 커튼이 아니다. 절제 된 아름다움, 질 빗겨져 쪽진 옛여인의 머리 모양같은 그런 느낌이 이는 가리개다.

그 위에 또 하나의 작은 천에 그림 혹은 글이 씌여 있는데, 다녀간 이의 흔적일 수도 있으며, 좋은 글귀일 수도 있다.

 

혹, 이 블로그를 지켜본 이라면 다화방의 풍경을 올렸을 때 보았을 것이다.

어디서부터 흉내를 냈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이런 작은 천을 밋밋한 부분에 살짝 떨어뜨려 맛내기 하기를 즐긴다. 그 밋밋한 부분은 김치냉장고 위일 수도 있고, 둥근 탁자일 수도 있다.

또 그 위에 여러 종류의 차를 올려둘 수도 있으며, 식탁의 부분에 둘 수도 있다. 단아하고 그러면서도 정감이 가득한 그런것이 좋다. 빠뜨릴 수 없는 건, 그런 것의 대부분은 우리글이 쓰여있다는 것이다.

 

서툰 새댁일 때는 전체를 덮어야 하는 줄 알았었다. 그것은 창문도 그랬으며, 가전제품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며 버려야 한다는 것, 버림으로 채워짐, 채우지 않음으로의 자유를 조금씩 느낀다.

그리고 그것이 꼭 무엇을 덮어야 맛의 전부가 아니란 것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위의 가리개 한켠을 바라보면 아래의 풍경이 있다.

고요다.

평안이다. 

 

 

누군가 보면 그럴것이다. 어디 조사과에서 나왔나?

감잎차를 마시다 뒤를 돌아 보았다.

창문 너머 저곳에서 서성였지.

아, 어디에서 담아야 우리의 모습이 더 이쁠까, 풍경과 잘 어울리는 또 하나의 풍경이 될까.

 

일본의 식기들이 작은 공간탓으로 장식품 몫까지 하기에 발전이 되었다고.

전통찻집은 그랬다.

작은 찻잔 하나가 곧 풍경이다.

 

 

 

여기는 두레헌의 현관 왼쪽방이다.

둘이 은밀한 시간을 가져도 충분히 좋은 공간이다.

위로는 가리개 아래로는 애기연의 잎이 바람까지 비켜가게 한다.

꿈을 꾸듯이 그렇게.

 

 

 

저 잎사귀를 어디서 보았을까, 잎사귀 사이에 동그란 무엇이 있었는데 …

위의 가리개를 강조한다고 잎사귀 풍경은 약간 숨겼는데, 얼마전에 만난 참다래가 창문밖에 있다.

(누군가)아' 그렇구나 - ^^

 

블로그 이웃 중에 천연염색을 하는 분이 계신다. 아주 어쩌다 방문을 하는 분인데, 그 방에 가면 이런 가리개와 모시 적삼등 숱한 작품이 있다.

도대체 어떤 바늘로 바느질을 하였을까, 어떻게 바늘땀도 보이지 않을까…

우리나라의 여자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이렇게 표나지않게 몫을 알뜰히 해야 하는 것일까?

 

 

 

주방 입구다.

그게 무슨 춤이지, 발 앞쪽을 살짝 들어 장삼을 젖히는 춤, 꼭 그런 풍경이다.

물론 모든 것은 나의 시각으로 본 풍경이다. 따라서는 이건 아닌데, 에이~ 이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이는 정말 속일 수 없다.

우리의 정서는 함께한 풍경들만큼 비슷하니까.

 

약속이 없어도 서성이고 싶은 곳, 두레헌.

 

 오면 민망하고 아니 오면 서글프고 / 행여나 그 음성 귀 기우려 기다리며 / 때로는 종일을 두고 바라기도 하니라  / 정작 마주 앉으면 말은 도로 없어지고 / 서로 야윈 가슴 먼 窓만 바라다가 / 그대로 일어서 가면 하염없이 보내니라. 

- 청마의 情人 이영도 -

 

 

덧)언제나 그렇지만 오늘도 서툴다. 하여 숙제를 한듯 못다한듯, 하였지만 하지않은 것만 못한 듯 그렇다.

그날 큰늠과의 또 다른 만남 약속으로 나중에는 분주하였다. 하여 사뭇 아쉬운 시간이었는데, 주인장께 감사의 인사도 제대로 전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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