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4일
파종을 했으니 흙의 기운이 농작물로 가도록 잡초를 매주어야 하며, 수확을 마치면 뒷설가지도 해야 합니다.
단호박과 오이덩굴이 말라가고 있으며 쪽파 사이사이에 잡초가 많이 났기에 둘 다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쪽파 파종시 곧 오이와 단호박 덩굴을 걷을 거라고 사이사이에 쪽파를 심었는데 자라고 있습니다.
맞다 사진찍어야지. 호미질을 하다말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흔적을 남겨야 하며 생색도 내야 하거든요.
입구에는 비에 젖어 발아한 근대를 흙속에 묻어 두었더니 싹이 나서 자라고 있는데 잡초가 더 많습니다.
잦은 비와 짧은 해로 청때가 생겼으며 여러 종류의 잡초가 약하게 자랍니다.
그 사이 단호박덩굴과 오이덩굴을 걷고 잡초를 다 맸습니다.
망사케일은 어느사이 새잎이 나서 구실을 하는데, 요즘도 나비가 날고 있는데 요즘은 왜 나비가 케일에 앉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간혹 청벌레가 있긴 하지만 성한 잎이 더 많기에 아침마다 여주, 사과와 함께 케일도 녹즙으로 내려서 마시고 있습니다. 건강해야 하니까요.
잡초를 매기전과 맨 후입니다. 깔끔해졌습니다.
그런데 이틀 후 태풍 콩레이로 잡초를 맨 쪽파밭이 도루묵이 되었습니다.
도루묵은 작은 생선인데, 심혈을 기울인 일들이 노력을 기울인 보람도 없이 헛되게 되면 흔히 '말짱 도루묵'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도루묵에 대한 설화 한토막입니다.
본래 도루묵은 우리나라 근해의 수심 200-400m정도의 모래가 섞인 뻘 바닥에 살고 있는 농어목 도루묵과의 물고기입니다.
조선의 14대 임금이었던 선조(1552~1608)가 임진왜란 때 피난가면서 먹을 것이 궁하자 한 어부가 '묵'이라는 물고기를 바쳤습니다. 무척 시장했던 선조 임금은 가릴 것도 없이 먹어보고는 너무 맛이 좋아서 '은어(銀魚)'라는 이름을 하사했습니다.
그런데 임진왜란이 끝나 궁궐에 돌아온 임금은 문득 피난지에서 맛보았던 '은어(銀魚)'가 생각나서 다시 먹어보았더니 옛 피난지에서의 감칠 맛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조 임금은 "도로 묵이라고 불러라."고 말했답니다. '도로 묵'이 나중에 '도루묵' 으로 바뀌어 '노력을 기울인 보람도 없이 헛되게 되는 일'을 '도루묵'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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