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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이야기/벚꽃 · 웅천요(熊川窯)

갈 수 없는 고향의 봄 웅동벚꽃장과 갤러리 마당

by 실비단안개 2019.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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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일

- 어제 식목일은 강원도 산불 뉴스를 보는 내내 안타까웠으며 가슴이 아팠습니다. 아무리 가슴이 아픈들 피해 당사자만 하겠습니까. 산불 피해 이재민들에게 위로와 힘 내시라는 당부의 말씀 드립니다.

그리고 천리길을 마다않고 전국에서 달려간 소방대원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그대들이 진정한 영웅입니다.()

 

4월 3일 웅동 독립만세 기념식 후 김달진 문학관을 들려 박배덕 갤러리로 갔습니다. 박배덕 갤러리 뒷쪽은 웅동벚꽃장이기에 벚꽃이 만발했을 것 같아서요. 좀 지친 걸음이긴 했지만 어릴적 풍경을 그리며 들길을 걸었습니다.

소사생태길의 벚꽃이 꽃띠를 이루고 있었으며, 신항 배후도로로 인해 웅동벚꽃장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조금만 걸으면 다~ 보일 겁니다.

 

 

 

환한 벚꽃장이 보이는 곳에서 촌부들이 봄나물을 캐고 있었습니다.

 

 

웅동벚꽃장은 웅동수원지둑 아래에 있으며 사진은 폭포수입니다. 어릴때 음력 7월 7일 칠석날 마을 주민들과 인근 마을 주민들은 폭포수를 맞으면 일년 내내 땀띠가 나지 않는다고 하여 물맞기를 한 곳입니다.

웅동수원지는 1905년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을 하면서 저수지의 터에 있던 심동, 용잠, 뒤꼴, 댕뱅이, 더머이, 들마을, 안몰의 일곱 마을이 없어졌다고 하며, 수원지는 일제 강점기 때 진해 주민들의 용수원이 됐고, 이후 우리 해군의 식수로 사용하는데, 저수지의 물은 구천동(아흔아홉내) 계곡에서 흐르는 물을 가둔 것입니다. 둑 아래로 철조망이 보이며 둑에는 초소가 있습니다.

 

 

웅동벚꽃장 근처입니다. 근처에 양봉을 하기도 하며 박배덕 갤러리가 있습니다.

 

 

지금은 철조망이 가로막아 갈 수 없는 웅동벚꽃장입니다.

 

 

박배덕 갤러리 마당에 들렸습니다. 인사라도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벚꽃장을 자유로이 드나드는 까치가 부러웠습니다. 솟대도 목을 길게 뽑아 벚꽃구경을 합니다.

 

 

 

박 화백님은 수업중인 듯 했으며 사모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여 갤러리를 혼자 둘러 보았습니다. 그 사이 화백님은 또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촛불이라는 작품인데 바람에 양철이 부딪치니 풍경소리가 났습니다. 깊은 산사인 듯 착각이 들 정도로 꼭 풍경소리였습니다.

 

 

조용히 갤러리를 나와 갤러리 뒷길을 걸었습니다. 벚꽃장과 좀 더 가차운 길을 택한다고 걸었는데 조금 가니 꿀벌이 윙윙거려 더 나아가지 못 하고 다시 갤러리쪽으로 나와 아래쪽 길로 갔습니다.

 

 

마치 공사장이나 고물상같은 갤러리 마당과 웅동벚꽃장입니다.

 

 

벚꽃장과 폭포수가 보입니다.

어릴때, 초등학교때 봄소풍 장소는 웅동벚꽃장이었습니다. 봄이면 동네에서 진달래를 꺾고 쑥을 캐긴 했지만 그건 일상인줄 알았으며, 등하교때 세던 민들레와는 달리 일년에 한 번 가는 봄소풍이 고향의 봄으로 기억될만큼 웅동벚꽃장은 최고의 소풍장소였으며 유일한 꽃놀이였습니다.

당시 진해의 벚꽃은 몰랐습니다.

 

 

벚꽃과 웅동수원지를 보기 위해 소사생태길을 택했습니다. 2010년 4월입니다.

이후 초등동창들과 수원지뒤를 걸어 수원지물의 원수인 구천동계곡까지 가기도 했는데 사진은 없습니다.

 

 

웅천 농업기술센타입구에는 수령 60년의 수양벚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이 나무의 이름은 '벚꽃장 벚나무'입니다.

진해 군항제와 벚꽃의 역사를 간직한 '벚꽃장'이 열렸던 웅동수원지 부대내에 1982년 2월 18일 진해 통제부사령관(유인주)과 임업시험소장(김갑성) 협의로 벚나무 전시림이 조성되었고, 1989년 6월 임업시험장이 진주로 이전하면서 고사 직전에 있던 나무를 벚꽃도시 명성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염원을 담아 2006년 4월 제 44회 군항제 기념으로 이곳으로 이식하여 보존 관리하고 있습니다.

 

 

소사들길을 걸으며 연신 뒤돌아 보았습니다. 함께 뛰어 놀던 친구들에게 혼자 안부를 전하고 당시 선생님들의 성함도 나즉히 읊조리면서요.

 

 

수목이 잘 보존관리되고 있는 저수지 출입로입니다. 군사지역이지요.

 

 

여기서부터 익은 지리입니다.

신항 배후도로 공사로 주변 풍경이 변하긴 했지만 여기는 그대로였습니다. 물론 시인과 농부가 없어지고 추어탕집이 시인과 농부 간판을 다시 달긴 했지만요.

 

 

저수지출입구쪽입니다. 안내문과 경고문이 세워져 있습니다. 해군 기지 구역으로 사진촬영 등을 금한다는 내용입니다.

조금 나아가면 소사생태숲으로 가는 길과 구천동 계곡으로 가는 길이 있긴 합니다. 소사생태숲으로 올라 웅동수원지 전경을 찍고 싶었는데 행사로 인해 너무 많이 걸었으며 운동화가 아닌 단화를 신었다보니 포기하고 시인과 농부쪽으로 걸었습니다.

 

 

밥집 시인과 농부와 고가입니다. 벚꽃이 만발했습니다. 배가 고프긴 했지만 혼자 먹기 싫어 농협까지 쭉 걸었습니다.

 

 

웅동 벚꽃입니다. 벌써 잎이 났습니다.

벚꽃이 피었느냐고

얼마나 피었느냐고

언제쯤 만개하냐고

천 년 전에 핀

꽃의 안부를

이제사 물어쌓는데

- 진효정 시집 '일곱 번째 꽃잎'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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