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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 5경 홍연 폭포, 이러시면 안 돼요

by 실비단안개 2021.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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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1일

곰내 연밭을 나와 주차장으로 가는데 홍연 폭포 안내가 있었습니다. 500m.

걸어서 가자며 넷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걸었습니다. 맑은 홍류동 소류지가 나왔지만 폭포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없어 밥집 쪽으로 가니 수도암이 나왔으며 수도암 아래에 폭포 안내가 있었습니다.

저수지위로 수도암이 보입니다.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폭포는 골짜기에 숨어 있는 듯했습니다.

 

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을 한참 걸어가니 계곡이 드러났습니다.

 

남의 텃밭이라 들어갈 수 없어 울 밖에서 줌으로 담은 홍연 폭포입니다.

 

수도암과 홍연 폭포 안내석입니다. 이제 다 왔나 보다.

 

그렇게 숲길을 또 한참 걸었습니다. 안내의 500m보다 훨씬 먼 거리였지만 되돌아갈 수는 없는 일입니다.

 

홍류폭포 시비와 홍연 폭포(虹淵瀑布) 안내입니다.

홍연 폭포는 기장 8경 중 5경으로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 곰내재 남쪽에 있는 2단의 계단상 폭포입니다.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의 거문산(巨文山)과 옥녀봉(玉女峯) 사이로 흐르는 웅천천[곰내] 계곡에 홍연이 있고 이 침식된 웅덩이 위로 홍연 폭포가 떨어집니다. 폭포를 형성하는 하천은 거문산과 문래봉(文萊峰 510m)에서 발원하여 해발 120m에서 합류해 철마천(鐵馬川)의 상류를 이루고, 해발 50m 부근에서 폭포를 만들어냅니다. 홍연 폭포의 높이는 평상시를 기준으로 하면 상단이 약 5m, 중단이 약 20m가량이며, 중단에서 낙하한 물이 수직에 가까운 반석 위를 100m 정도 흘러 홍류동 소류지로 모여듭니다.
여름철 비가 내리면 폭포의 물보라는 영롱한 구슬이 되어 부서지면서 햇빛을 받아 찬란한 무지개를 만드는데, 일명 무지개 폭포라고도 합니다.

 

이곳에는 2007년 9월 건립된 시비가 있어 홍연 폭포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있습니다. 
 '차성가'에도 "龜老谷이 秀麗하니 瓦余에 多士하고 九天銀河 떠러진가 虹淵瀑布 壯觀이라"라고 홍연 폭포의 아름다움을 글로써 적고 있습니다. 철마 출신의 추파 오기영 선생은 주자 선생의 무이도가를 차운하여 '장전구곡가'의 내용에 홍류촉초의 경치를 홍류동천 아홉 폭 그림으로 승화시키고 있는데, 차성가는 조선 후기 부산 기장 지역의 뛰어난 경치와 유적 등을 소재로 하여 지은 가사 문학 작품으로 차성가(車城歌)의 차성(車城)은 고려 때 기장의 별호라고 합니다. 차성가는 조선 시대에 유행하던 가사 문학 작품으로 기장 지역의 산천경개(山川景槪)를 한적 고사(漢籍故事)를 인용하여 두루 읊은 기행체입니다. (참고 : 부산 역사 대전과 기장 소식)

 

시비 뒤쪽에는 현감 손경현의 시와 용암 문용호의 시가 한글로 쓰여 있습니다.
1894년 이 지역으로 온 현감 손경현의 한시입니다.

대가마가 삐걱거리는  소리 내며 돌 사이로 돌아드니
높디높은 무지개  물줄기는 첩첩이 겹쳐진 골짜기를 열어주네
푸른빛 옥색 나는 맑은 웅덩이는  용이 숨어 있는 것 같고
흰 구름 높이 머문 산마루에는 학이 날고 있는 모습이라
소원 하기는 여산을 못내 나막신으로 디디고 싶지만
정처없이 떠도는 강가의 나그네는 술잔만 기울이고
하루 만에 편히 맛보는 산수의  경치에 취하고  나니
이 늙은이 풍류 맛이 매화 향보다 더 진하구나

 

안전선이 쳐져 있어 폭포에 접근이 어려웠지만 기본적인 사진은 찍었습니다. 여기는 상수도 보호구역이기에 물놀이, 취사, 야영 등을 금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폭포 바로 아래에 한 가족이 야영 중이었습니다. 어린 아기를 데리고요. 정말 이러시면 안 됩니다.

 

워낙 가물다 보니 폭포수는 기대 이하였지만 숲과 함께 시원함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홍연 폭포였습니다.

이 폭포수는 홍류동 소류지로 흘러들어 곰내 연밭 옆으로 흐릅니다.

 

홍류동 소류지로 흐르는 계곡물입니다.

 

숲에서 만난 가을을 부르는 맥문동 꽃입니다.

 

수도암 입구까지 차량 통행이 가능했기에 얼라아부지가 차를 가지러 간 사이 수도암에 올랐습니다. 작은 암자인 수도암은 소박한 꽃밭이었습니다.

 

수도암에서 내려오니 또 다른 피서객이 돗자리와 아이스박스를 들고 폭포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자유롭고 안전한 피서지도 많은데 왜 야영을 금지하는 폭포 쪽으로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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