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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께 즐거우면 더 좋지 아니한가!
고향 이야기/흑백다방 그리고…

9월의 흑백

by 실비단안개 2006.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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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서는데 비가 내린다.

석곡에 비가 내린다는 소식이 전해질땐 내리지 않았었는데 -

따숩게 입어야지 --

 

분꽃이 환하다.

언제 이렇게 키웠을까 -- 세심한 쥔장!

 

문을 열고 들어서자 브라질의 쌈바님 말씀을 하신다 - 다녀갔다고 -- ^^

블로그의 힘은 참으로 대단 - 모처럼의 휴가일텐데 진해의 흑백까지 방문하고 --

 

흑백으로 전화가 온다.

KBS - VJ특공대팀이 내일 촬영을 하면 어떻겠느냐는 소식 --

쥔장은 찻잔을 놓고 바쁘게 몇곳에 연락을 하여 음악담당, 피아노, 연극 관계자들과 말씀을 나누었는데, 내일 촬영은 무리없이 진행될것 같다.

 

처음으로 유택렬화백님의 작은 따님 유경아씨를 마주하였다.

지난 6월, 얼굴이라도 뵙고 싶어 쥔장이 연락을 하였지만, 레슨이 끝나고 피곤한지 뵙지를 못하였는데 --

평범하였다. 긴 머리에 --

차 대신 물을 마시는 유경아씨 -

유경아씨는 몇살 아래이며, 쥔장과 나는 동갑이었다.

차를 마시며 방송 촬영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다보니 점심시간이서 냄비우동을 주문하여 먹고, 유경아씨는 2층으로 오르고-

피아노 연주는 내일 들려준다나 -- ^^

 

진해의 화석이 된 흑백 - 지금의 쥔장이 7년 정도 운영하였지만, 유택렬부부 시절의 흑백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며, 추억한다.

쥔장은 생강차를 직접 담고, 유자 철에는 유자차도 직접 담는다. 커피는 무한 리필이며.

 

흑백을 찾는 이들과 그저 좋은 시간을 갖고 싶어 진행하던 음악회를 재편성하여, 매주 수요일 중, 첫째 수요일에는 '해설이 있는 음악회', 둘째 수요일엔 '영화음악 & 올드팝스', 셋째 수요일엔 '작은 피아노연주회', 넷째 수요일에는 '연극 엿보기'로 하였단다.

내일이 둘째 수요일이라 '영화음악 & 올드팝스'가 진행되는데, 진행자들은 무보수로 지인들이 짬을 내며, 쥔장은 많은 분들이 함께하는 좋은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피아노의 선율이 홀을 메우고, 살짝 물든 나뭇잎 몇장 두어곳에 자리하고 - 가을을 마셨다.

 

 

 

 

 

 

 

 

 

 

 

 

 

 

흑백 다방 - 계간 진해 편집인

                        
남녘 땅
진해라는 고장은 이상도 하더이다.
시(市)가지 한 가운데
왜색(日本) 짙은 게다 짝
가부키(歌舞伎) 노랫소리 들려오는 듯 하더니
팔거리 한 블록 지나
역겨운 로스께(러시아) 냄새 진동하여
러ㆍ일 전쟁터 방불케 하더이다.

이 땅
지킴이들의 외침!
흑과 백의 분명한 논리
외세는 물러가라!
온갖 잡귀들도 물러가라!
여기는 너희들의 놀이터가 아니니라!
백의민족, 동이(東夷)들의 터전이니라!

현대판
성황당 벽면 위에
호국(護國) 민화(民畵), 방(告)을 붙여 놓았네.
위풍당당한 호랑이 부적(符籍)을
누군가가 온 사방에 붙여 놓았더라!
그마저 없었다면
우리의 지킴이 우리의 얼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었을 쏘냐!

이젠 그 곳에는
일본도 러시아도 없더이다.
빈껍데기만 남아 있더이다.
우리 기상, 우리 얼
우리 젊은 기백이 넘쳐 흐르고
겨레의 성웅, 그 후예만이 남아 있더이다.
고색 창연한 모습으로 지키고 있더이다.
온 가슴으로 지키며 서 있더이다.

그 중에는
정 일근이라는
젊은 시인도 있더이다.
          2004. 4. 11

 

 

 

흑백다방 - 정일근

오래된 시집을 읽다, 누군가 그어준 붉은 밑줄을 만나
그대도 함께 가슴 뜨거워진다면
흑백다방, 스무 살 내 상처의 비망록에 밑줄 그어진
그곳도 그러하리

베토벤 교향곡 5번 C단조를 들을 때마다
4악장이 끝나기도 전에
쿵쿵쿵 쿵, 운명이 문을 두드리며 찾아와
수갑을 차고 유폐될 것 같았던
불온한 스무 살을 나는 살고 있었으니

그리하여 알렉산드리아 항구로 가는 밀항선을 타거나
희망봉을 돌아가는 배의 삼등 갑판원을 꿈꾸었던 날들이 내게 있었으니

진해의 모든 길들이 모여들고
모여들어서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는 중원로터리에서
갈 길을 잃은 뒤축 구겨진 신발을 등대처럼 받아주던,
오늘의 발목을 잡는 어제와
내일을 알 수 없는 오늘이 뇌출혈을 터트려
내가 숨쉬기 위해 숨어들던 그곳,

나는 그곳에서 비로소 시인을 꿈꾸었으니
내 습작의 교과서였던 흑백다방이여

memento mori*,
세상의 화려한 빛들도 영원하지 않고
살아있는 것은 모두 사라지느니
영혼의 그릇에 너는 무슨 색깔과 향기를 담으려 하느냐,
나를 위무하며 가르쳤으니

그 자리 그 색깔 그 향기로
사진첩의 속의 흑백사진처럼 오래도록 남아있는
since 1955 흑백다방,
진해시 대천동 2번지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
*시안02년 여름호/집중조명-21세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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