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산 정토원에서 점심 공양을 착하게 하고 봉화산 사자바위에서 담은 노무현 대통령 생가마을을 찾았다.
만만했던 대통령, 정말 놈현스런 대통령, 언론을 알뜰히 갈궈주던 대통령, 서민 대통령 …
어떤 사람들에겐 맞아 죽어도 싼 대통령…
그러나 가장 대통령 다웠던 대통령. 사람사는세상
유머부터 읽어보자.
1.노무현이 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가 나서 강물에 빠졌다.
다들 구할 생각을 하지 않고 구경만 하는데 지나가던 학생이 물에 뛰어들어 노무현을 구했다.
노무현이 말했다.
“살려줘서 고맙다. 무슨 소원이든지 들어 줄 테니 소원을 말해라.”
“내가 죽으면 국립묘지에 묻어 주십시오.”
“앞길이 창창한 학생 소원이 왜 하필이면 국립묘지에 묻히는 것이냐?”
“제가 노대통령을 살린 것을 사람들이 알면 전 틀림없이 맞아 죽을 겁니다. 제가 죽거든 꼭 국립묘지에 묻어주세요.”
2.노무현이 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가 나서 강물에 빠졌다.
수행원도 지나가던 행인들도 아무도 구할 생각을 하지 않고 구경만 했다.
한 사람이 물었다.
“사람이 물에 빠져 목숨을 잃게 되었는데 왜 구경만 합니까?”
“대신 4,000만이 살기 때문이오.”
3.노무현이 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가 나서 전복이 되었다.
지나던 농부가 발견하고 잘 묻어 주었다.
경찰서에서 조사를 나와 농부에게 물었다.
“틀림없이 죽은 것을 확인했습니까?”
“아직 안 죽었다고 하는데 믿을 수가 있어야지요.”
4.노무현과 이해찬이 헬기를 타고 순시에 나섰다.
노무현이 말했다.
“천 원짜리 한 장 떨어뜨리면 주운 사람이 되게 좋아할 거야.”
이해찬이 말했다.
“만 원짜리 떨어뜨리면 더 좋아할 겁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조종사가 말했다.
“두 사람이 뛰어내리면 4,000만이 다 좋아할 겁니다.”
5.노무현이 자신의 얼굴이 담긴 우표를 발행하라고 지시하고 판매 현황을 알기 위해 우체국을 방문했다.
“요즘 내 우표 잘 나갑니까?”
“인기가 없습니다. 우표가 잘 붙지 않는다고 고객들 불만이 큽니다.”
그 말을 듣고 노무현이 직접 우표 뒤에 침을 발라 붙여봤다.
“아주 잘 붙는데요?”
우체국 직원이 머뭇거리다 말했다.
“고객들은 앞면에다 침을 뱉습니다." ▶원문보기
아무리 놈현스런 유머가 돌아도 우리는 무사하다.
감히 대통령을 놈현스럽다니 -
그래도 우리는 무사하다. 꼭 같은 사람이 사는 '사람사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지금 공무원은 죽을 맛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공무원을 대한 태도다. :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451324
노무현 전대통령은 만나지 못하고 곳곳의 모습 중 한 부분을 담아왔다.
▲ 還至本處(환지본처)
봉화산 정토원(원장 선진규) 입구에도 노무현 대통령의 귀향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있었다. 아래의 글을 읽어 보자.
☆.. 노 대통령 귀향 봉하마을 집 착공(2007년 1월 16일 05:04 중앙일보)
http://news.media.daum.net/society/affair/200701/16/joins/v15392354.html
봉화산에서 담은 봉하마을 풍경인데, 사저 아래 도로 건너에 주차장 공사가 한창이었다. 참 작은 마을이다.
정토원을 내려와 봉하마을로 가는 입구부터 현수막이 아직 그대로 있다.
마을의 주차장에는 많은 차가 주차중이었으며 대형관광버스는 도로변에 주차가 되어 있으며, 지금도 하루에 몇 천명씩 봉하마을을 찾는다고 하였으며, 임시화장실과 마을 안내소가 있는데, 안내는 봉사요원들이 하고 있었다.
지난해 방문 때와 달라진 건 대통령 귀향 현수막이 있다는 것이다.
그대여서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by콩
가슴이 울컥하였다. 정말 긴말이 필요없었다. 그동안 어느 기자의 기사도 이보다 더 감동적이지는 않았었다. 감동은 계속 되었다.
▲ 생가와 사저 입구
대통령 내외의 여러 모습들이 있다. 수많은 이들이 남긴 메세지가 있다. 눈물이 찔끔났다.
입구마다 경비원이 있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여쭈니 가능하다고 하길래, 인물도 가능하느냐고 다시 여쭙고 인터넷 게재도 가능하느냐고 하니 자신들의 모습은 올리지 말라기에 혼자 볼 것 같으면 담지 않는다,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는 모습이다 - 하니 인터넷 게재를 허락하였다.
방문객이 200~300 명 정도가 되면 노대통령은 방문객과 인사를 하며, 크게 불러도 밖을 보며 인사를 한다고 하였다. 봉하마을 도착 시간이 1시를 넘었었는데, 낮 1시에 방문객과 인사를 한 후 외출중이셨기에 뵙지 못하고 왔다.
▲ 생가 입구
▲ 지난해 방문 때는 열쇠고리 정도만 판매를 하였는데, 오늘은 기념타월과 꽃도 판매를 하였다.
여느 시골집과 같다. 제비집이 있으며 각종 영수증이 정리되어 걸려있다.
거주하시는 할머니께 인사를 드렸다.
마음 고생이 많으셨지요 - 언제쯤 이사를 가시나요?
또 왔네 - (아주 잘 아시는 듯 - 사실은 두번째인데. ㅎㅎ)
곧 이사를 하신다고 하셨다. 방문객이 많아 더는 여쭙지 못하였다.
건강하세요 - ^^
마치 새마을 운동 때처럼 마을 곳곳을 손 보며 공사중이었다.
따뜻하였다. 노무현 대통령의 귀향보다 더 따뜻했던 것은 국민들의 마음이었다. 성숙한 따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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