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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누기/끌리면 읽기

재불화가 이강주 화백 초대전(2008. 8. 28 ~ 9. 17)

by 실비단안개 2008.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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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야트막했지만 마을의 산 등성을 넘었습니다. 산인들과는 달리 걸음걸음 만나야 할 것들이 많다보니 집에 도착한 시간이 늦었구요.

 

우편물이 있었습니다.

블로거 이웃 이강주 선생님의 초대전 초대장과 팜플렛이었습니다.

거리를 탓하는 건 마음의 거리를 이야기 할 수도 있습니다. 진정 애인 사이라면 어찌 거리를 탓하겠습니까.^^ 

 

초대에 응하지 못하는 마음 죄송하며, 대신 더 많은 이들에게 초대장을 띄웁니다.

이 포스트는 이강주 선생님의 초대장을 대신합니다.

 

이강주 선생님은 파리에서 20여년간 작품 활동 중인 현역작가 입니다.


 

재불 작가 이강주 화백 초대전
2008. 8. 28 ~ 9. 17.

개막행사 : 2008년 8월 29일(금요일) 오후 7시 경향갤러리 전시장


 

 

 

파리주신 이강주 : http://blog.daum.net/parisjoosin 

 

 

 

장날이라고 남 따라 장에가서 서성거리다 올 수는 없습니다.

이강주 화백님의 작품 세계와 전시 작품 부분을 미리보기하여 관람을 한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 같아 선생님의 블로그에서 펌질하였습니다. 

20세기의 미적 광인인가? 21세기의 선적(禪的) 취화선인가?
미적 도발인가? 예술의 경건함인가? ?
화려한 빛깔과 역동의 역사적 작가에서 한국적인 선적(禪的) 염원의 메시지로..
고독한 열정 속에 희망의 염원을 향한 거대한 메아리로… 
 

*** 한국, 도쿄 그리고 파리에서 화가 이강주는 40여 년 동안 꾸준히 <<수채화 사랑>>, <<수채화 운동>>을 계속해오고 있다. Paris에서의 20여년이라는 기간동안 <한국미의 새로운 해석과 재현>을 위해 예술코드의 다양한 변신 또한 추구하고 있다 ***


젊은 가슴을 멍으로 물들게 했던 정치적, 사회적 회오리들...  유신과 그리고 군부독재의 암울한 시대에서 예술가는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무엇을 해야만 했나? 척박하고 살벌한 정치와 경직된 사회 속에서 그 당시 젊은 작가들은 누구나 가슴에 눈물어린 의식과 울분을 숨긴 채 자유로운 예술을 위한 갈망을 그런 비전을 품고서 작업을 하지 않았을까? 


팝송과 햄버거의 유혹 같은 미국문화와 서양의 물질문화의 첫 융단폭격의 수혜자였던 만큼 그 시절 많은 젊은 예비 예술학도들은 서양화의 매력에 푹 빠져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다섯 살의 어린 나이부터 시작한 오래되어 익숙하며 또한 순수한 풀빛 같은 맑은 수채화의 느낌을 줄곧 잊지 않고 고집하며 수채화의 기법들을 넓히는 것에 더 심취했다. 


일찍부터 작가는 칼럼이나 지면 그리고 방송 등을 통해 육식과 푸짐한 서양식 기름진 음식들에 자리를 빼앗긴 담백하고 은은한 맛이 나는 우리 채식민족의 조상들과 닮은 전통적인 입맛과 깔끔한 음식과도 같은   <<수채화>>의 멋과 그 아름다움이 왜 한국인들에게 가장 어울리는지 항상 강조한다(80년대의 수채화운동에 대한 칼럼들을 참조). 또한 “수채화 운동”의 역동적 강렬한 힘은  군사독재시절 개방되지 않았던 중국과 처음으로 문화교류의 문을 여는 에너지의 원천이 되었고, 다시 우리 민족에게는 남북의 이념적 깊은 골을 젖히고 최초로 문화와 예술로 서로 만나고 공감하는 장을 제공하는(남북교류전을 통해) 남북교류의 초석을 만드는 역사적 계기로 이어진다(87년부터 91년까지 칼럼이나 기사 참조).   

 작가 이강주에게 수채화는 물이라는 재료가 갖는 시간적인 제약과 예민함으로 언제나 일수불퇴(一手不退)의 정갈한 멋과 자연의 빛깔을 닮은 투명한 색감에서 현란한 색채가 어우러지는 향연에 이르기까지... 자연과 인간이 화가의 화폭 속에서 만나고 겹쳐지는 그 순간의 치열한 시간을 통해서  순수하고 투명한 교감을 이루어내는 환상적인 이미지로 이르게 한다. 

작가는 이 무궁무진한 수채화의 역동적인 자연스러운 미와 기교들의 정교함 속에서 동양적인 그리고 한국적인 미를 담아내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 특히 우리는 너무나 현란하면서도 가끔은 도발적 이기도한 색채들과 동시에 검은 묵선들이 만들어내는 강렬함에서 인간 내면의 몽환적 환상 속에 감취어진 위압적이고 위험스런 “힘”과 “강렬함”(그것은 각자 인간에게 부여된 운명의 힘처럼)에 놀라기도 한다.

과연 작가의 수채화작품에서 강조되고 있는 검은 먹빛은 수채화 색감들이 피워내는 화려하고 현란한 삼라만상의 오만가지의 무형과 유형의 이미지들의 세계에서 우리를 동시에 차가운 현실로 또는 강렬한 열정의 세계로 다시 옮겨놓기도 한다.

 그것은 또한 우리 조상들이 어떤 타협도 불허하고 흔들리지 않고 지켜온 선비정신의 꼿꼿한 무심, 무욕의 정신이 오늘의 예술가에게 다시 재현되는 것과 다름 아닐 것이다. 


조국의 땅, 태극기 그리고 어머니의 자궁같은 그 평화의 원천속으로 돌아가리!!(21세기를 시작하며 작가는 Paris라는 이질적인 공간과 문화 속에 “풍수”와 “부적” 그리고 도교적/유교적/불교적/선교적 동양의 철학적 언어들로 함축된 한국적인 메시지를 작품 속에 풀어놓고 있다)

 

환상적 공감의 세계에서 선적禪的 염원// 평화를 위한 소통을 향해서...

서양은 자신들 문화의 기형아를 만들어놓으며 서로 앞을 다투어 동양으로 입성했고 또한 동양은 스스로 근본을 망각한 채 남의 것, 서양을 닮아가고 쫓아가기에 급급했던  20세기! 절대아성이라 믿었던 미국이  대테러의 화염 속에 휩싸이고 식민지와 인종과 종교 등의 청산되지 않은 과거의 갈등들이 곳곳에서 다시 위험스런 동요와 경고음을 울리면서 지나간 과거의 세기는 새로운 화두를 예고하며 여전히 미완으로 끝이 났다. 이제 새롭게 시작하는 세기의 불길한 문턱에서 작가는 고뇌하며 자문한다.

 

 “채 제대로 끝내지 못한 1막을 그대로 껴안고 제 2막에 오른 21세기의 패러다임은 무엇인가?”  - “ 여전히 서양은 동양인들에게 절대적이면서 모방하고 닮아 가야하는 모범이라는 믿음은 가능한가?”,  - “적어도 자신들의 철학과 문화의 정신적인 가치들이 철저히 부정되고 회의되는 과정에서 서구인들은 자신들과 또 다른 정체성 속에서 새로운 답을 얻고자하지 않나?”

작가가  <<21세기는 문화전쟁의 선전포고시대이다>>라고 강조하듯 오늘의 신민족주의적인 21세기적 딜레마에서 작가는 서양이 역수입하게될  한국의 미, 한국의 종교와 철학 등등의 정신적 유산들은 자신들이 동양을 통해서 찾고자하는 정신적이고 변별적인  고결한 가치들에 접근하는 핵심적인 코드를 제공하리라 믿는다.

 

또한 그에게 있어 예술가는 인간의 수 만 가지의 아름답거나 추한 모든 욕망의 덩어리들과 일상에 찌들은 내면의 응어리들 속에서 피어나는 무색 무취의 제로(0)의 무소유의  정신을 해독해내며 다시 예술의 장르 속에 피워내는 신비로운 존재도 된다. 우리 인간의 인생은 아름다울 수도 그저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화가는 이 삶의 일상성이 주는 덧없는 시간들과 욕망과 운명들 속에서 뒤틀리며 아파하고 허우적대는 우리의 인간적 존재성 속에서 승화된 철학적, 종교적, 예술적 또 다른 현실을 화폭에 옮겨놓는다.     

즉, 화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희노애락의 인간 삶의 각각의 모습을 마치 <자연> 그 자체로 대상으로 삼을 뿐 아니라 <인간과 우주>를 둘러싼 삶과 운명들의 고달픈 역경들이 행복한 <<피안의 낙원의 세상>>으로 이어지는 염원의 예술을 부활시키고자 한다. 마치 고대의 벽화들을 통해 우리 인간의 영원한 영적 희망과 갈망들이 분출되었던 것처럼.... 작가는 부적이라는 기호를 통해 이승과 저승 그리고 산 자와 죽은 자 모두를 위한 소통의 언어를 작품 속에 등장시킨다. 그것은 바로 인간적인 힘만으로는 부족한 영적인 기호와 코드를 통해 작가가 서로 다른 세계 속으로 우리를 연결시켜줄 수 있는 중간자, 해독자의 역할을 함을 말한다.

그러므로 작가의 작품은 이제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 모두를 위한 한판 영혼의 굿판처럼 신성해지며 인간이 자연과 가장 조화된 자리로서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평화의 세상, 피안의 세상으로 우리를 자연스럽게 인도해내고 있다.  

또한 화가는 이런 영적 코드를 통해서 어떠한 시간 속이든 어떤 공간이든 넘나들며 소통할 수 있으며 우리 인간의 영혼을 일깨워주며 보듬어 안아주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영혼의 위로자인 “샤만”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품들을 통해 영원히 회귀할 수밖에 없는 인간 운명의 불확실함과 전쟁이나 질병 그리고 각종 갈등들에 대한 평화의 메시지가 표출된다. 작가는 극히 한국적인 소박하고 전통적인 그리고 가끔은 투박하면서 자유분방한 표현으로 또는 한국적인 문양이나 특징적인 형식들을 통해서 인류 공통의 평화의 메시지를 작품 속에 담으려하고 있다. 

작가가 추구하는 이런 극도의 영적 세계의 몰입과 같은 예술적 도발은 우리의 감각적인 그리고 무의식적인 내면과 동시에 개인마다의 지적 자양분, 철학과 종교적인 철저함이 배제될 수 없는 극도의 이성적이며 긴장된 새로운 세상으로 우리를 끌어들이는 현학적인 유혹임을 또한 주시해야 할 것이다.


2006년 Paris_______________ 작가 이강주는 잿빛 하늘과 우울한 건물들 속에(이미 화석화되어 굳어가는 유럽의 이 한 도시 속에서) 오늘도 포도주 한잔으로 열정과 고독 그리고 염원의 응어리들로 일렁이는 가슴을 촉촉이 적시며 희망과 평화의 메시지를 예술적 광기로 승화시켜나가고 있다. 

                                                      2006년 파리의 동려산방

                                                                               사회학박사 황 양 경

 

어느 시인이 쓴 화가 이강주

 

1편    어느 畵家의  분위기 이 강주

                                               시조시인 鵲松.김 영수

 

            녹이지 못한든지 고이다 넘칠양이면
            고요히 끓는 눈도 소줏잔에 잊어리
            껄껄껄 울리는  귀기(鬼氣) 왠 섬광이 멱을 잡나             

            어느날 봉발을 베어 턱에다 소굴 짓고
            살촉에 색상 재워 헤메는 눈의 도둑
            한점씩 혼돈을 발겨 화폭에 옮아 매었다

            부끄러운발 을  끌어다  나를 문초 하든날
            임 서방  떠난 산막(山幕)에  한국환상 걸어두고
            달군눈 인두가 되어 속을 지지고 있다.

            - 詩調文學 1980년 봄호


 

2편     눈과 수염의 소묘(素描) 畵家 이 강주
                                                        시조시인 鵲松 김 영수
                                                    

                   껄 껄 웃는 조선 솔(松)
                   턱 솔 가지가 일품이오

                   七.八月 가슴을 지나
                   시월 상달에 서듯                  

                   하늘은 초벌구이 눈에
                   상감빛을  앉힌다.                  

                   내 식은 가마도
                   그만  달아오를 때                  

                   이슬  쓸어모으는
                   솔바람이 그립는데

                   靑銅의  눈들을 깨워
                   온 밤을 끓고 있고.

                       - 時調文學 1981년

 

경향 기사 바로가기 - 생성과 소멸을 화두로 담아낸 ‘시대정신’

 

생성과 소멸을 화두로 담아낸 ‘시대정신’
입력: 2008년 09월 03일 17:59:45
 
ㆍ이강주화백 정동 갤러리서 초대전… 유럽서 활동하다 17년만의 ‘귀향’

1991년 서울 예술의전당을 비롯한 전국 6개 도시에서 제1회 세계수채화대전이 열렸다. 전시에는 북한 및 조총련계 작가들의 복제품 50여점도 포함돼 있었다. 이것이 문제가 됐다. 노태우 정권 시절이었던 당시 이적성 시비가 생겼다. 전시를 주최한 국제수채화연맹의 대표를 맡았던 이강주 화백(59)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프랑스 파리로 떠났고 그곳에 정착했다.

프랑스·독일·스위스 등 유럽에서 주로 활동하는 그가 17년 만에 고국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서울 정동 경향갤러리에서 열리는 ‘이강주 초대전’이 지난달 28일 시작됐다. 70년대부터 최근까지의 작품 77점이 걸렸다. 오랜만의 한국 전시이지만 “유럽에서도 전시는 항상 했으니까요”라며 작가는 오히려 담담했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항상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어색할 것도 없다고 덧붙인다. “외국에 있지만 고국에 대한 관심은 놓지 않았습니다. 예술가는 시대의 감시자이면서 시대 정신을 표현해야 하는 사람이지요. 프랑스로 떠나기 전에도 통일운동에 관여했고요.”

인터넷 진보매체 ‘서프라이즈’의 논객으로 활동하며 국내 문제에 관심을 가져온 그는 이번 전시회의 수익을 서프라이즈의 주간지 ‘시사 아고라’ 제작 재원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고국에서의 통일운동, 의도하지 않은 출국, 프랑스에서도 이어간 인권·문화운동 등으로 순탄하지 않은 시간을 보냈지만 일관되게 이어진 한국 사회의 발전에 대한 관심은 그의 작품 속에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 ‘생성과 소멸’ 연작은 저의 인생, 정치의 화두이기도 합니다. 순환을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권력도, 인생도요.” 그는 작품은 수채물감을 중심 재료로 사용한다. 투명하고 맑은 수채물감, 투명하게 번지는 먹과 물의 맛, 때론 강하고 날카로운 펜과 잉크의 선이 함께 어울려 고요하면서도 요동치는 이미지를 절묘하게 만들어낸다. “동양적 기의 운행을 오방색으로 표현한 것이 최근 작품들입니다. 우주와 나의 기가 움직이는 모습입니다. 기는 서로 어울리기도 하고, 밀어내기도 하죠. 때론 부드럽고, 때론 날카롭습니다.”

수채와 먹이 어우러져 동양적 기의 움직임을 표현한 그의 작품은 세상 유행을 따라가지 않고 묵묵히 자기 내면을 바라보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길로 가는 작가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유화는 두꺼운 맛이 있는 반면 수채화는 담백하고 옅죠. 수묵화처럼요. 유화처럼 덧칠할 수 없기 때문에 일필휘지로 끝내야 합니다. 조금만 호흡이 다르면 멋대로 흘러가서 속도감이 있어야 하죠. 이런 점이 제 성격과 맞아 그 맛에 40년 가까이 하는 것 같아요.” 전시가 끝나면 다시 파리로 돌아가지만 이번 전시를 계기로 한국에서도 정기적으로 전시회를 열 계획이라고 작가는 말했다. 17일까지. (02)6731-6751

<글 임영주·사진 김창길기자>

 

서울 전시작품 일부 (생성과 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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