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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께 즐거우면 더 좋지 아니한가!
마음 나누기/봉하마을 그곳은

[봉하마을]명품대통령 노무현 안녕!

by 실비단안개 2009.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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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노빠인가?

5월 23일 오전 9시 50분,

노무현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읽었기에 '사람사는 세상'에 접속하려니, 블로그 이웃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안개님 봉하마을에 가지마세요…."

"저 안가니 걱정마세요. 하하"

여유롭게 웃었습니다.

미친 Daum, 지랄같은 뉴스를 메인에 올리다니 -

그러나 서거 소식 이전에 병원 입원 소식을 읽었기에 '사람사는 세상'에 접속을 했습니다.

자유게시판 - 제대로 열리지 않았지만, 제목만으로 무너지더군요.

 

다음 메인에서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개 보다 못한 놈, 오늘은 나도 한마디 한다 -

4월, 얼마나 운영을 했는지 기억에 없지만 미디어몹 블로그를 폐쇄했습니다.

'노무현을 감옥으로'으로를 블로그 이름으로 하여 1년 넘도록 개지랄을 하던 새미기픈물(맑음, 에덴마크, 절세미남)의 미몹 블로그에 접속하여, 감옥보다 더한곳으로 갔으니 행복하냐고 물어 주었습니다.

새미기픈물은 티스토리에서는 맑음, 네이버에서는 에덴마크, 미디어몹에서는 절세미남 닉을 사용하며, 실비단안개 닉만 보이면 환장을 하여 노무현대통령을 공격하기에 더는 꼴 같지도 않은 놈에게 욕을 듣게 할 수 없어서 미디어몹블로그를 폐쇄했었습니다.

* 새미기픈물의 흔적(댓글) : 봉하마을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다!

 

23일, 아기아빠가 퇴근을 하더니, "종일 울었제?"하더군요.

사실 종일 운건 아니거든요. - ㅠ -

아닌데 하니까, 뭘 아니야 종일 울었지….

 

"우리 내일 봉하에 가자?"

일이 바빠 일을 간다고 했습니다.

 

지난해 촛불집회때에 참여연대의 촛불손수건을 몇 장 구입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남자, "완전 노무현 팬이네 - " 이러더라고요.

촛불손수건인데 왜 노무현이야?

참여연대잖아 -

그런가 - @@(아직 미확인)

 

노무현을 찍어주지도 않았으며, 그가 탄핵된다고 했을 때 촛불을 들기는 커녕 전혀 관심을 두지않았었는데, 이래도 노빠인가요?

노빠, 노간지, 놈현스럽다, 바보 노무현- 이런 말 무지 싫어하며 하지않는데….

 

 

저, 봉하에 갑니다.

그저께부터 봉하가는 길을 아이를 동원하여 검색하여, 가장 쉽게(?) 가는 길이 부산 사상으로 가는 길이란 걸 알았기에 식구들의 동의(일방적인 통보)하에 9시 마을버스를 탔습니다.

사상터미널은 익은 곳이기에 특별히 두리번 거리지않고 진영행 표를 끊어 승차를 했습니다.

사상에서 진영까지 30분 간격 배차며 1시간 소요, 그후는 진영에 도착하여 결정한다 -

 

진영행 버스는 만원이었으며, 입석도 많았습니다. 어디에 가는지 차림으로 벌써 표시가 나더군요.

낯선 사람들은 서로서로 인터넷에서~ 하며, 봉하에 함께 가자고 했고, 옆에 앉은 분들이 음료 등 간식을 드시기에 그때서야, 나도 어제부터 제대로 먹지 못했다는 걸 알았기에 잠시 차에서 내려 제과점이 아닌 식품회사의 빵과 쌀음료, 보리차를 사 버스에 오르니 군인이 옆자리에 앉아 있었기에, "에휴, 저만 생각했네요, 보리차라도 드실래요?"하며 드리니 사양을 하더군요. 하여 혼자 아주 멋적게 빵을 조금 먹고 쌀음료를 마셨습니다.

 

오전 10시 30분 사상 출발 진영행은 10시 27분에 출발을 했습니다.

아, 이래아저씨 -

봉하포스트를 보시면 놀라실거야 -

'아저씨 부산 사상에서 봉하로 가는 중입니다 - 잘 다녀올게요~^^'

풉 - 바로 전화가 왔습니다.(문자앞에 나이는 절대 속일 수 없습니다.)

아저씨는 그곳에서 이틀 자봉을 하셨는데, 경찰이 난리라며 잘 다녀오라고 했습니다.(제가 누군데요 - )

 

진영까지 정말 1시간이 걸리더군요. 장유와 진례를 지나고 - 가는 길에, 아~ 나 저기 아는데 - 그런 곳을 몇 번 스쳤습니다.

진영에 도착하니, 진영공설운동장에서 출발한다는 셔틀버스가 진영터미널에도 있었습니다.

국민장으로 결정 된 후 김해시에서 봉사를 하는 모양인데, 관광버스와 시내버스가 진영터미널에서 봉하입구 삼거리까지 무료 운행을 하더군요.

 

여기 봉하에요

봉하로 가는 길은 봉하 입구 삼거리부터 만장과 함께 사람이 길게 늘어져 있었습니다.

친구의 단축번호를 눌렀습니다.

잠시 통화를 하며 걷는데, 그동안 봉하마을에서 만난 글들은 대부분 응원 글들이었는데, 이제 사정이 달라지다보니 만장에 쓰여진 글을 모두 읽으며 걷기엔 자신이 없었습니다.

"나, 논두렁으로 가야겠네 - "

 

             ▲ 누가 당신을 벼랑끝으로 몰았나요 

 

24일이 봉하마을 공동모내기 날이었다고 했는데, 노무현대통령의 서거로 주민들은 개인사나 마을일 모두를 대통령을 보내드린 후로 미루고 있습니다.

 

 

 

마을이 가까워 오기에 다시 도로로 올라왔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정부를 탓해도 괜찮았었다는 글이 이어 있었으며, 건너편으로 촛불을 밝힌 흔적이 있었는데, 많은 생각들이 겹치는 걸음이었습니다.

 

 

삼거리부터 마을주민을 비롯하여 자원봉사자들이 식수 등을 공급해 주었으며, 빈소가 가까워오니 조문객은 2인에서 조금 나아가면 3인, 5인으로 한 조가 되다가 빈소 앞에서 10인이 되며, 조문시에는 10인 3줄 - 30여명이 조문을 했습니다.

유모차에 태워진 아기, 지팡이를 짚은 어르신, 학생, 외국인 등등 - 모두 스스로 빈소를 찾았습니다.

여러분 중에 부고장을 받은 분이 계신가요?

누군가에게 국화꽃값을 받은 분이 계신가요?

조의금을 낸 분이 계신가요?

침착해야지 했지만 잠시 MB에게 분노를 느꼈습니다.

 

이렇게 줄을 서서 조문을 기다리니 배우 명계남 씨께서 조문객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더군요.

고마운 건 저희 조문객인데요.

 

 

많이 더운 하루였습니다.

조문객들은 양산, 모자를 쓰고 나누어 주는 신문으로 햇빛을 가리기도 했지만, 누구도 불만 불평을 가지지않았습니다. 모두 스스로 택한 걸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봉하 소식 기사

고 노 전 대통령 서거 5일째인 27일, 장례 기간중 가장 무더운 날씨임에도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찾는 조문 행렬은 계속됐다.

이날 새벽시간을 지나며 다소 한산해졌던 빈소 주변은 아침부터 다시 조문객이 몰리며 크게 붐볐다. 밀려드는 인파 탓에 차량도 통제됐다.

조문객들은 자원봉사자들의 안내에 따라 마을 입구부터 길게 줄을 섰다. 정오가 되자 햇빛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기상청은 김해시 기온이 섭씨 26.3도라고 밝혔지만 봉하마을 인근은 바람이 거의 불지 않고 아스팔트 위가 뜨거운 탓에 조문객의 체감기온은 30도가 넘어 보였다.

조문객들은 저마다 양산과 모자, 신문 등으로 햇빛을 가리며 긴 대기시간을 견뎠다.

 

* 계속 읽기 :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09052712545928226&outlink=1 

 

 조문록 서명 후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하는 말을 글로 남겼습니다.

'오래오래 기억하겠습니다.'

그리고 국화를 받아 30여명이 함께 묵념을 한 후 상주에게 목례를 했으며, 개인에 따라 식사를 했습니다.

 

 

             ▲ (너 빼고)우리 대통령

* 너 빼고 : 난(나에게는)아닌데 하는(할) 사람.

 

             ▲ 낮 1시 36분

 

국밥과 김치, 수박이었지만, 땀과 눈물로 국밥을 제대로 먹지를 못했습니다.

봉사자들이 많았지만, 비운 그릇 정도는 분리를 해 주어야하며, 현장에서 봉사자 신청 접수를 받습니다.

많은 조문객들이 봉사자에게 고마움을 전했는데, 다시 한 번 님들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회관(식사를 할 수 있는 자리의 옆) 앞으로 지난해 12월 하순에 부산역에서 만난 '하루하루 판넬전'이 있었습니다.

(통하기만 : 부산역 광장 하루종일 판넬전 -부경아고라, 대구촛불시즌... )

 

하루하루 판넬전은 전국에서 하니, 각 지역에서 판넬전을 할 때 관심을 가져주면 고맙겠습니다.

우리 서민들이 모르(를 수 있)는 우리의 역사와 현재가 있는 사진과 자료전입니다.

 

 

노사모 사무실

판넬전을 둘러 본 후 노사모사무실로 갔습니다.

지난해였지요.

봉하마을에서 많은 이들이 노란풍선을 가졌기에 나도 노사모회원이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었다고요.

그 노사모 사무실에 처음으로 가서, 혹 커서(거다란)님이 계실까하며 연락을 하니, 계속 봉하에서 취재를 했기에 오늘은 댁에서 쉰다고 하더군요.(아쉬움)

 

노사모 사무실은 처음 갔을 때 관계자만 출입이 가능했지만, 커서님을 찾는다는 핑계를 대며 사무실로 들어 가, (몇 분이 계셨지만) 여유롭게 여러가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국민을 대통령이라고 한 대통령 노무현, 노무현이 있는 자리에는 언제나 소통이 있(었)습니다.

그는 우리의 가슴을 항상 열게했는데, 봉하마을에 가면 그분이 운명을 달리하시기 전부터 여러곳에 남기고 싶은 말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짝퉁이 아닌 진정 국민의 대통령, 명품대통령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이 비참하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니 더 이야기하지 않아도 아실겁니다.

 

 

             ▲ 김달진문학관 동네의 분이 다녀가셨기에 반가웠으며 저도 짧은 글을 남겼습니다.

 

             ▲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문제의 돼지저금통입니다.

 

             ▲ 노사모 사무실의 분향소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사진을 쓸어보고 싶었지만 … - ㅠ -

 

아마 한 시간이 훨씬 넘었을 겁니다. 문이 열린 노사모사무실을 다시 찾았을 때는 많은 이들이 노무현 대통령의 영상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발견한 건, 천장에 대통령 내외분이 계셨습니다.

뭐에요, 천장에서 몰래 훔쳐보시고 - ㅡ.ㅡ;;

 

 

             ▲ 노사모 사무실 입구에는 죽은 민주주의 아래 '바보 노무현 당신의 뜻을 잊지 않겠습니다'가 씌여 있는데, 지금 봉하마을에서 가장 많이 만나는 글이 '바보 노무현 당신의 뜻을 잊지 않겠습니다'입니다.

저도 이제 바보 노무현이라고 하겠습니다. 바보라고 해도 선하게 웃기만 하셨으며, 국민이 대통령이라면서 국민을 버리고 갔으니 바보거든요. 바보 노무현!!!

 

봉하는 지금

마을 전체에 조문객으로 넘쳐나지만, 밀물처름 왔다가 썰물처럼 조문객들이 떠난다면 마을을 닫아야 하지않을까 할 정도로 봉하마을은 마을 전체가 잠을 자고 있는 듯 합니다.

몇 가정에서 조기를 게양했으며, 발길 닿는 곳이라면 국화 혹은 시든 꽃다발이 있고, 4월 방문때 희망빵이었던 '봉하빵'가게는 주인이 있었지만 문을 닫았으며, 최고 노간지 사진이 찍혔던 봉하쉼터도 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할매 술빵과 약사암으로 가는 쪽의 가게들 역시 모두 깊은 잠에 빠져있었습니다.

 

조문객 중에는 봉하를 처음 방문하는 분들이 많은 듯 했으며, 봉하 가는 길부터 산 중턱까지 삼삼오오 봉하와 노무현 대통령 이야기를 합니다.

조문객은 생각외로 어른신들이 많은데, 60대쯤의 친구분인 듯한 분들이 사저를 가르키며, "저게 대통령 집이야? 저 작은 집이?" 했습니다.

사저로 가는 길의 텃밭둑에 국화다발이 시들고 있었으며, 이제는 관람객이 아닌 조문객이 사저를 배경으로 함께 풍경이 됩니다.

 

 

             ▲ 공사중인 생가(짚용머리를 한 담장)가 형태를 차츰 드러내고 있으며, 뒤의 건물이 사저이고 사저 뒤의 바위가 부엉이바위

 

부엉이바위와 사자바위가 더 잘 보이는 곳으로 걸어보겠습니다.

노란리본 사이에 국화가 꽂혀있으며, 리본마다 사연이 있습니다. 봉하마을의 풍경은 모두가 주연이 되는 극본없는 드라마같은 마을입니다.

 

 

 

 걷다보면 몇 개의 '고 노무현 대통령의 유서 추모글 모음'을 만나는데, 잠시 잊었던, 달리한 운명에 또 먹먹해지는 순간입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유서 추모글 모음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 신세를 지다니요.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올바름을 따른 거지요.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 당신의 올바름을 따르고 받는 고통이라면 지옥유황불에

들어가더라도 그것은 기쁨이지 고통이 아니랍니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 앞으로 올 고통을 뭐하려고 그리 헤아리셨습니까?

 

더보기 : 아래 사진 클릭(확대 됨) 

 

 

 

 

노란리본을 따라 걷습니다.

지난해 꽃 피운 연밥이 채 썩지 못한  가운데 수련과 왜개연, 여러색의 꽃창포가 피었습니다. 먼 그 나라에도 이런 꽃이 필까요? 꽃 구경도 못하고 떠난 바보 노무현.

 

 

아래의 풍경을 만나기전에 KBS기술부 직원을 만났습니다. 다른 날과는 달이 오늘은 모든 방송사와 신문사의 취재가 자유로운 날이었기에 방송국과 언론(신문)사의 차량이 많았었는데, KBS직원에게, "오늘은 무사하시네요?"하니,

"덕분에 무사합니다, 좀 잘 봐 주세요."하더군요.

하여, KBS가… 하며, 저와 이웃의 불편 내지 불평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니, "기술직들은 현장에서 너무 힘듭니다…."

나름 고충을 말씀하셨는데, 물론 아는 사실이지만, 국민의 방송은 국민을 위하는 방송이 되어야 하기에 조금 이야기를 더 했습니다. 그리곤 한 시간이 더 지난 시간에 창원 KBS에서 부엉이바위를 뒤로하여 촬영(뉴스 같았음)하는 풍경을 만났습니다.

 

명품대통령이 괜히 명품이겠습니까, 그 사이 봉하마을을 평정하여 모든 언론인들의 출입과 취재를 자유롭도록 했더군요.

 

        ▲ (아나운서인가)뒤의 바위가 '부엉이바위'입니다.

* 수련과 노란리본, 부엉이바위는 따로 포스팅 예정이며, 정토원은 부엉이 바위와 사자바위 뒷쪽에 있습니다.(지난해 3월에 정토원과 사자바위를 다녀왔습니다.)

 

약사암 위를 걸어 봉화산 중턱까지 갔습니다.

봉하마을이 훤히 보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태어나 자라고 대통령직 완수 후 다시 찾은 고향이며, 영원히 쉴 고향입니다.

 

 

이제 안녕이라고 해야 하는데…

오후 3시를 훌쩍 넘겼습니다.

더 머물 꺼리를 찾았습니다.

언제 대통령의 밥을 얻어 먹겠습니까.

다시 국밥을 받아 그릇을 비우고 점심시간과는 달리 노란고물 시루떡이 있기에 뜯어먹으며, 노래삼춘께 연락을 했습니다.

 

진영행 버스에서 노래(이노래 님)삼춘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노래 삼춘 어디에요, 나 봉하에 가는 길입니다."

그렇잖아도 연락을 하려고 했다면서 (노사모 회원으로 계속 자봉)매일 왔나 - 찾아도 보이지 않더라면서, 대통령 서거 후 첫방문이라니 믿기지가 않는다고 하더군요.(내가 정말 노빠인가?)

 

노사모 사무실에서 노래삼춘의 연락을 받았으며, 잠시 후 만나 사무실 앞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지난 가을, 통영의 시락국집에서 깜짝 놀랄 정도로 우연히 만나고 처음이었습니다.(노래 삼춘 좀 늙으셔요.)

좋은 사람은 언제 어디서 만나도 좋더군요.(노래 삼춘, 블로깅 좀 열심히 하셔요.)

 

오후 5시가 넘었습니다.

내가 봉하를 떠나오는 게 아니라 노무현대통령을 보내야 하는 시간입니다.

명품대통령에 걸맞는 명품국민이 되어주지 못한 미안함을 내내 가슴에 안고.

 

 

 

한겨레21(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특별판)에서

 

아주 떠나버리지는 말아요

 

너무 슬퍼하지 말아요,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조각이니.

그가 우리 곁을 아주 떠난 것은 아니지요.

너무 미안해하지 말아요.

험한 세상 각자의 몫을 사느라 힘들었으니,

외로운 그의 곁을 지켜주지 못했다 자책하지 말아요.

대신 비석 하나 세워요.

소박하고 정직한 것을 좋아했던 그를 떠올리며

작고 담담한 비석을 만들어요.

도덕을 일으키려 세상에 도전하다 저들의 증오에 떠밀렸지만

끝내 우리 가슴에 촛불이 되었다고,

깨끗한 글 한 자락, 피로 새겨 넣어보아요.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는 고통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아도,

그가 품었던 오래된 생각을 잊지는 말아요, 떠나보내지는 말아요.

당신, 아주 떠나버리지는 말아요. 

 

 

 

 봉하 입구 삼거리에는 운동장, 터미널, 진영역, 마산 등으로 가는 셔틀버스가 있는데, 한겨레21에서 특별판 책자를 나누어 주기에 받아 터미널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터미널에서 초콜렛을 샀습니다.

"봉하에 다녀오세요?"

"네."

"수고하셨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부산행 버스 마지막 승객이 되었는데, 혼자 입석이었습니다.

기사님께서 자리가 없냐고 묻더군요.

잠시 기사석에 앉았다 차가 출발할 때 기사님에게 출입문 계단에 앉고 싶다고 했습니다.

혼쾌히 승락해 주셨으며, 한겨레21이 두 권이었지만, 노무현대통령 사진과 글이 있기에 촛불손수건을 깔고 앉았습니다. 혼자 작업을 다니다 쉴 때는 맨 땅에 앉지만, 여러 승객이 있으니 바닥에 그냥 앉는다는 건 예의가 아니겠더라고요. 그래야 기사님도 불편해하시지 않으실테고.

 

가방은 기사님 옆에 두고 한겨레21 책자를 읽으며 사상에 도착했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10분전 9시더군요.

(보충 수정 : 28일 오전 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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