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함께 즐거우면 더 좋지 아니한가!
고향 이야기/텃밭 풍경

염천(炎天)에 불을 때어 백숙을 하란다

by 실비단안개 2009. 7. 5.
728x90

 

"2시쯤 닭 서너 마리 사 가낀께 백숙 좀 해 주소? 해 주끼요?"

우리의 통화는 언제나 일방적인 주문이 많습니다.

(마음으로)이 영감탱이가 지금 내 사정을 아는 기가 모르는 기가 -

 

그저께, 깻잎과 양배추쌈이 먹고 싶어 렌지에 양배추를 찌다가 뜨거운 김에 오른팔목 안쪽에 화상을 입었거든요.

(알로에 치료를 하다가 지금은 바세린 거즈를 붙인 상태.)

 

서운한 마음은 잠시, 마늘을 까고 찹쌀과 텃밭으로 가져갈 것들을 준비 했습니다.

(지난 일요일에 친정식구들과 텃밭에서 백숙과 닭갈비를 먹었기에 그 맛이 좋아 아기아빠가 동료들을 초대 함.)

 

팔목의 화상으로 설거지와 청소를 아기들이 하는 상태지만, 백숙과 닭죽을 끓이는 일은 아기들에게 무리이기에 주섬주섬 챙겨 밭으로 갔습니다.

 

나뭇가지에 불을 붙여두고 콩을 따고 고사리도 뜯고, 시간이 남으면 아궁이(화덕)앞에서 책을 읽어야지 - 하는 야무진 생각으로 밭으로 갔는데,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우선 3~6년생 도라지를 세발쇠스랑으로 땀을 말로 흘리며 캤습니다.(엄마와 동생이 캐 줄 때는 이렇게 힘든다는 걸 몰랐는데)

물을 받아 도라지를 씻은 후 손으로 껍질을 벗기니 생생하였기에 어려움없이 벗겨지더군요.(흡족, 대견)

 

백솥에 닭 4마리와 도라지, 대추, 마늘, 헛개나무와 그외 여러 나무와 열매, 뿌리 등을 넣고, (지난주에 닭을 세 마리 했기에) 닭죽 양에 맞추어 물을 부어 안쳐, 잡지책을 북 찢어 불쏘시개로 하여 잔가지를 위에 올렸지만, 불이 붙는가 싶더니 꺼지고, 또 잡지를 찢어 붙이니 약간 타더니 또 꺼집니다.

도라지를 캘때 땀을 뒤집어 썼는데, 이제 매콤한 연기와 땀이 범벅이 되었고, 잡지 한 권이 바닥이 날 판인데, 이늠의 불은 붙질 않습니다. 휴~

 

지난주에는 동생이 무슨 기름을 잔가지 위에 약간 부어 불을 붙였는데, 그 기름이 무엇인지, 또 안다고 하더라도 내 간으로는 어림 없는 일입니다.

눈 매워 - 찔끔, 켁켁 -

 

시간은 어느듯 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럴리는 없었겠지만)봉순이 언니(공지영 소설)가 불쏘시개가 되기 직전에 아버지께서 오셨습니다.

"나무가 젖은 거 아이가, 이걸로 해라"

아버지께서 종이 푸대와 마른나무를 한 둥치 주었습니다.

후~ ^^

불이 붙었습니다.

 

 

어릴때 들일을 나갈것도 아니면서 참 일찍 일어났습니다. 그리곤 감꽃을 줍거나 엄마가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곁에서 불을 때기도 했는데, 부지깽이를 태워 끝에 붙은 불을 바닥에 문질러 끈 후 정지 바닥과 벽에 마냥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한 번도 나무라지 않으셨는데, 이유가 무엇인지 아직 여쭙지를 못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욕실의 커다란 거울에 치약으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더군요.

정지에 시커먼 그림을 그리는 나를 버려 둔 엄마처럼 나 또한 아이들에게 치약으로 뭐 하는 짓이고 - 이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 지금도 아이들은 가끔 치약으로 거울에 그림을 그립니다.

 

아궁이에 불을 때며 아침상을 차리는 엄마는 언제나 바빴습니다.

불을 지펴둔 후 텃밭에서 푸새를 장만하고, 뜸을 들이는 시간에는 자잘한 서답을 빨았고, 우리 삼남매의 등교 뒷바라지도 하셨습니다. 

 

엄마가 혼자 얼마나 바쁘셨을까, 아침상을 보아 방에 넣어주고 엄마는 할아버지와 우리를 위하여 받아 둔 쌀뜨물에 좁쌀을 넣어 또 불을 때 뜨겁고 뿌연 뜨물을 만들고, 엄마의 하루는 누구보다 일찍 시작되었지만, 식사는 언제나 맨 나중이었습니다.

정지의 서까래와 벽, 시렁 모두가 까맸던 시절이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읽거나 듣는다면 전설같은 이 이야기는 불과 3~40년전 우리의 일상이었으며, 아궁이에서 방출되는 원적외선이 쭈그려 앉은 여인의 자궁을 튼튼히 만들었기에 옛날 여인들은 생리통을 심하게 겪지않았으며, 아기 생산도 지금처럼 힘들지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의 온돌문화와 황토벽, 또 여자의 넓은 통이 아래로 갈수록 좁아지며 트인 고쟁이와 남자들의 대님은 열을 모으거나 나가는 기를 막는 역할을 했다니, 우리 선조들의 의 ·식· 주 자체가 건강한 참살이였습니다.

  

 

불이 언제 죽을지 몰라 자리를 뜰 수 없었습니다.

백솥에 김이 오를즘 올케와 동생이 왔습니다.

 

"불을 아무나 때나, 진작 연락을 했으면 퇴근하고 바로 왔지. 누나는 다른 일 해라."

올케가 뭘 도와줄까 - 합니다. 

집에서 나올 때 올케의 차가 없었기에 아무에게도 말을 않고 왔으며, 혼자 훌륭하게 해 내리라 다짐을 했는데, 결국은 식구들의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불을 때는 일을 동생에게 맡겼으니 깻잎, 풋고추, 상추 등 푸새를 장만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고추밭에 비리약을 쳤지만, 땡초와 두어 두둑은 치지않았거든요.

5시 40분 - 네 사람이 도착했습니다.

텃밭이 가득합니다.

들고 온 수박을 물에 채워두더니 도시사람에게는 신기하기만한 텃밭 구경을 하고, 아버지께서는 막걸리 두 잔을 드시고 가셨습니다. 동생이 방울토마토 서너 알을 따서 안주로 내밀었습니다.

 

 

 약재를 일부 건져내고 불린 찹쌀을 부어 눌지않도록 저었습니다. 이제 장작에 불을 지폈기에 화력이 세어 계속 저어 주었는데, 지난주에 국자가 작아 애를 먹었기에 곰국용(국밥집) 큰국자를 가져갔는데, 계속 저어도 뜨겁지않아 좋더군요.(텃밭의 살림이 자꾸 늘어 납니다.)

 

겁나게 맛있다네요. 오이와 고추를 특히 좋아하며(도시사람 표가 남), 민들레잎과 더덕잎은 약간 꺼렸지만, 4마리의 닭은 순식간에 없어졌습니다.

그리곤 닭죽을 또 게 눈 감추듯이 했습니다.

역시 겁나게 맛이 좋다네요.

 

닭갈비가 있으면 좋을텐데, 마트에 갈닭비가 없더라면서 닭만 사왔기에 지난주처럼 감자를 호일에 싸서 구웠습니다.

작은늠들은 그냥 굽고요.

아이들에게도 먹이려고 넉넉하게 구웠습니다.

 

 

올케가 텃밭을 찾은 이들에게 봉지봉지 들려줍니다.

"내일 아침엔 필히 민들레잎으로 즙을 내어 드셔요."하면서, 쌈채소와 함께요. 

 

어느 새 박꽃이 뽀얀 꽃잎을 열었습니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