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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누기/낙동江과 팸투어·답사

개비리길은 너와 내가 우리가 되는 길

by 실비단안개 2010.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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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설 때 맑던 하늘이 집합장소인 마산에 도착하니 바람이 일며 흐립니다.

행여 짐이 될까 가벼운 비닐비옷도 두고 왔기에 조금은 염려가 되었지만, 햇빛이 쨍쨍한 것 보다 비가 내리는 편이 걷기에 차라리 낫기에 일행은 누구도 비옷을 준비하지 않은 채 낙동강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우리를 안내한 이는 마창진 환경운동연합 감병만 국장님입니다.

 

우리가 처음 발을 디딘곳은 창녕 남지 영아지 개비리길 입구였습니다. 남지는 마산과는 달리 더웠기에 일행들은 모자를 고쳐쓰고 토시를 끼고 양산을 챙기기도 했습니다. 나도 운동화끈을 다시 묶었습니다.

 

덤프트럭과 포크레인이 작업을 하며, 인부들 몇이 있기에 낙동강 사업 연장이냐고 하니 그렇다는 답이었는데, 그들과 우리 일행 누구도 다음 질문을 잇지는 않았습니다. 잠시 수문에서 개비리길쪽에서 흐르는 낙동강과 건너편의 공사현장을 봤습니다.

기계음이 무척 요란했습니다.

 

개비리길은 낙동강변을 끼고 남지읍 영아지에서 용산리에 이르는  낭뜨러지의 절벽길입니다.

영아지 마을 서편 강가에 있는 길로 벼랑을 따라 있으므로 개비리라 불렀습니다. 개나 다니는 정도의 길이라 하여 개비리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사실은 [개]는 곧 [浦]로 물가, 강가를 말하며 [비리]는 벼랑의 이곳 지방 말입니다. 정확하게 개비리는 강가에 있는 벼랑이라는 뜻입니다.

통영의 동피랑을 들어 봤겠지요.

피랑도 낭뜨러지를 가르키는 통영의 말이었는데, 창녕의 낭뜨러지는 비리라고 합니다.

피랑이나 비리는 지방의 말이지만 투박하거나 사납지않고 안개속에 아련한 무엇이 있을 것 같은 부드러운 말입니다. 

 

영아지에서 용산까지는 3km정도이고 쉬엄쉬엄 걸으면 40여분 걸립니다. 개비리길에서 창녕 길곡면 함안보까지는 약 10km, 도보로 3시간 남짓한 거리입니다. 영아지(靈阿支里)는 신전리의 서부지역으로 낙동강 동안(東岸) 골짜기에 있는 마을의 행정리 명칭입니다.
이 마을은 바로 북쪽에 있는 창아지와 구분하여 영산 아까리(燈り 새벽 빛, 여명)라 불렀는데 영산현의 [영(靈)]을 붙여 영아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영아지 마을의 동남쪽에 위치한 앞산(해발 165m)과 낙동강이 어우러져 기암절벽을 이루고 있습니다.

영아지에서 동쪽 신전 마을로 가자면 산을 넘어가야 하는데 왕래하기가 힘들어 남지장을 다녀오려면 개비리를 거쳐 용산으로 가든지 아니면 배를 이용해야 했다고 합니다.

물론 그때 이용하던 배는 아니겠지만 개비리길로 접어드는 곳의 큰나무 아래에 거룻배 한 척이 언저리에 몸을 맡기고 있었습니다.

나는 사진을 많이 찍기에 어느 길에서나 골찌로 다니는데 개비리길 들머리에서 벌써 일행과 거리가 벌어졌습니다.

 

  

개비리길은 굽이치는 낙동강과 어우러져 자연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전국에서 많은 탐방객들이 찾고 있습니다. 아찔할 정도로 높은 기암절벽 숲속 길을 따라 가면 바위에 붙어사는 부처손이 손을 내밉니다.

부처님 듣고 계시나요?

그 손으로 인간이 되기를 포기한 이는 어루만지지 마소서.

저는 지율 스님이 아닙니다. 

 

개비리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 마삭줄입니다.

마삭줄은 절벽을 오르며 저 보다 몇 갑절 오래 산 나무를 휘감거나 그러다 지쳐 휘늘어졌으며, 어른 두뼘 정도 폭의 길을 두고 양쪽으로 하양 나아갑니다.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가 생각납니다.

 

저것은 벽 / 어쩔수 없는 벽이라고 / 우리가 느낄 그 때 /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

물 한 방울 없고 / 씨앗 한 톨 살아있을 수도 없는 / 저것은 벽이라고 말할 때 /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 담쟁이 잎 하나는 / 담쟁이 수천 개를 끌고 /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우리는 그 길에서 패랭이꽃과 달개비를 만났고 낙동강물 위 벼랑에는 홑왕원추리가 아스라이 피어 있습니다.

홑왕원추리는 민가나 들, 산 어디에서나 뿌리내려 꽃을 피우지만, 벼랑의 원추리는 개비리길에서만 만날 수 있는 풍경을 만들어 냅니다.

  

                          ▲ 부처손, 애기똥풀, 홑왕원추리

 

강물위 너른 바위에서 잠시 땀을 식힙니다.

감병만 국장님은 걸을 때나 쉴 때를 가리지않고 연신 낙동강과 강에 관련 된, 혹은 주변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러나 나는 늘 그랬듯이 또 불량학생이 되어 자꾸 눈을 딴데로 돌렸습니다.

사진의 풍경은 고요하지만, 맞은편에서 쉬지않고 소리가 났는데 그것은 낙동강이 앓는 소리였습니다. 

 

 

우리가 걸어왔던 개비리길 아래를 돌아봤습니다.

강물이 맑지않지만 절벽의 풍경은 옛풍경 그대로입니다.

 

 

개비리길을 걷는 우리는 강물을 만져보지 못했습니다.

강가의 모래도 밟지못했습니다. 개비리길은 허리띠마냥 절벽의 허리에 걸쳐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잠시 쉰 너른바위 안쪽을 봤습니다. 잘 하면 바위를 타고 너머의 시루떡같은 모래톱을 밟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경남낙사모 김훤주 대표가 가늠을 해 보더니 바위를 타고 갈 수 있다고 합니다.

대원들을 불러 고이 건너게 하고 대표는 마지막 주자가 됩니다.

 

 

무사히 바위를 건넜지만 모래톱을 어루만지는 강물 한번 만져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고라니발자국을 만났기에 아주 큰 일을 해낸듯이 좋아했습니다. 사실 그렇게 좋아할 일이 아닌, 아주 당연한 자연의 부분이건만 세상은 내 주변의 것이 아닌 것을 만나거나 봤을 때 잠자던 감성과 지식을 꺼내게 합니다. 고라니는 초식동물이기에 토끼마냥 똥이 동글동글 합니다.

고라니 발자국 옆에 우리들 발자국을 남겼습니다. 넌 혼자가 아니야!

 

 

지난해 누군가 다녀가며 흘린 내지 뿌려둔 노랑코스모스와 기생초인지 모릅니다.

아니면 세상일이 눈꼴시려 강바람 타고 날아 조용한 강가에 자리를 잡았을 수도 있습니다.

숲에서 강가에서 개비리길에서 어느 것 하나 반갑지않은 것이 없습니다.

 

우리들의 차림이 좀 부실했습니다.

나는 나름대로 이유를 댔는데, 도시탐방 안골왜성에서 아래위 긴차림으로 고생을 했기에 몸을 보호하며 시원함도 함께하기 위해 아래위 모두 7부로 했는데, 여자대원들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대부분 비슷한 차림으로 했기에 마삭줄과 풀섶 사이의 가시나무(찔레, 산딸기 등)에 종아리와 발목이 긁히기도 했습니다. 개비리길을 한번 걸어봤다면 차림이 달랐을 텐데 역시 무지는 고생을 하게 합니다.

혹, 개비리길로 소풍이나 탐방을 떠난다면 긴옷으로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모기 역시 많았으니 벌레물렸을 때 바르는 약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풀언덕을 올라 다시 걸어 대나무 숲을 만났습니다. 대나무 숲속에는 폐가가 하나 있는데 회락정이라고 합니다. 울창한 대나무에 둘러 쌓여 있어 한낮인데도 음산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그렇지만 대나무숲을 누군가와 함께 걷는 일은 새로운 일이기에 가슴이 쭉 펴지는 듯 했습니다. 이곳은 개비리길의 부분이지만 내가 무서워하는 우리동네 대밭집처럼 개(犬)가 짖지 않는다는 겁니다. 얉은 여름옷 주머니에에 돌맹이를 넣고 다가가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대나무 사이의 길을 따라 회락정으로 가니 텅 빈집에 세월을 가늠할 수 없는 댓잎만 쌓여 있었습니다. 

 

회락정의 주인이 이곳을 떠나갈 때는 폐가가 아니었으며, 지금은 대나무가 자라 울창하지만, 집앞으로 밭이었다고 합니다.

강가에 집 한 채 달랑있고 강과 집 사이에 밭이 있었던 거지요.

그런 사진이 없어도 풍경이 빙그레 그려지며 소월의 시가 맑은 노래로 들려오는 듯 합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빗
뒷문박게는 갈닙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감병만 국장님은 댓잎을 땁니다.

뚝딱뚝딱 소리도 없이 배 한 척을 만들었습니다. 댓잎배입니다.

어릴때 불렀던 동요 '나뭇잎배'가 흥얼거려집니다. 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배는 엄마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요.

나뭇잎 하나는 고향이며 엄마이며 꿈이 되기도 했습니다.

숲은 엄마의 방처럼 아늑해졌습니다. 

 

 

사분사분 접어진 댓잎배가 신기하여 대원들도 배를 만듭니다.

언젠가 동백나무 님이 숲에서 나뭇잎으로 아드님을 추장으로 만들었던 사진이 떠올랐습니다.

평범한 나뭇잎의 변신은 변신로봇보다 더 위대합니다.

 

댓잎배 만들기입니다.

1. 양쪽을 접는다

2. 접어진 부분을 가운데 심을 중심 양쪽으로 댓잎의 반지름 많큼 가른다

3. 한쪽을 벌려서 끼워 넣기 한다

4. 다른 쪽도 같은 방법으로 완성하기

 

 

감병만 국장님은 대나무에 대해 한가지 사실을 더 알려주었습니다.

대나무에는 골이 하나 있는데, 골이 두개인 나무는 피리를 만들기에 값이 상당하며, 오죽일 때는 그 값이 더 한다고 했습니다.

혹 대나무를 만나면 골을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회락정에서 돌아섰습니다.

들꽃을 만나러 가면 절로 푹 안기는 시입니다.

 

그 꽃 /고은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개비리길만 그러한 게 물론 아니지만, 개비리길을 들때의 조심스런 설레임 대신 나올 때의 길은 조금 용감한 걸음이 되지만 그 길은 이 길이 아닙니다.

우리는 걸음이 조금 용감해졌을 뿐 들때의 마음으로 날때도 길섶을 조심스레 살폈습니다.

숲은 기온이 낮습니다만 지역적으로 기온이 높아 이곳과는 식물의 상태가 나아가 있었습니다.

애기똥풀이 빛이 부족하여 미나리아재비 크기의 꽃을 피웠으며, 습지에서 만날 수 있는 나비같은 물잠자리와 다른 작은 곤충도 만났습니다.

 

산복숭아를 만나고 걷다 산앵두를 만났습니다. 우리 만난 기쁨에 이제 붉어지는데 낙사모 대표와 한 알씩 따 먹고 말았습니다. 비밀에 부친다면 내내 마음이 편치않을 것 같아 고백합니다.

 

 

개비리길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놀이를 주었습니다.

달그리메 님과 친구분이 앞서 걷다 멈춰 길에 걸쳐진 나무에 열정을 쏟습니다.

걸쳐진 나무에는 개비리길 전체에 뻗어있는 마삭이 길게 생명을 잇고 있었는데, 우리는 대표에게 허리를 구부리지말고 그 아래를 지나오라고 했습니다. 낙사모 대표는 바보스러울 정도로 맑은 이 입니다.

앞서간 이 누구도 걸쳐진 나무를 치우지 않았기에 우리는 함빡 웃을 수 있었습니다. 숲이 주는 또 하나의 선물입니다.

훗날 어쩌면 이 나무는 토막토막 잘려 걷는 이들을 쉬게 하는 의자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수년전 주민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지방도 1022호 칠현-옥산간 도로개설을 시작하였으나 창아지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도로만 확장한 상태입니다. 예산이 없어 중지된 상태라고 하나 앞으로 이 도로가 개설되면 남지로 가는 시간이 훨씬 단축되어 살기 좋은 마을이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어 이 길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이곳은 임진란 곽재우 장군과 의병들이 육지에서 첫 승리를 거둔 기음강전투의 역사적 현장이며, 6.25 한국전쟁의 낙동강 최후 방어선으로 남지철교와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 유채꽃 핀 봄날에 담은 남지철교

 

우리가 개비리길에서 보낸 시간은 겨우 몇 시간에 불과합니다만, 어제 개비리길을 걸었던 이가 있을 것이며, 오늘과 내일도 누군가는 개비리길을 걸을 것입니다. 개비길은 내가 될 수 없는 길입니다.

어느 소롯길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개비리길에서 내가 먼저 나가고자 한다면 주변의 사람들이 넘어지거나 작은 풀꽃이 다칠 수 있습니다.

개비리길은 서로가 하나되어 조곤조곤 걸어야 하는 길입니다. 그리고 그 길과 숲에서 자연의 소중함을 배우며 나의 존재를 느끼는 길입니다.
 

우리는 수문옆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큰덤프트럭을 만났습니다.

그 트럭에서 쏟아지는 모래를 보았습니다.

그 모래를 옮겨 논밭을 메우는 포크레인도 보았습니다.

하천 너머 평화롭게 펼쳐져 있는 영아지마을도 보았습니다.

그 위로 평화로이 노니는 잠자리와 기계소리에 묻힐것 같은 딱따구리와 매미의 큰 합창도 들었습니다.

강물은 거부할 줄 모르고 눈물처럼 말없이 흘렀습니다.

우리가 본 낙동강은 낙동강 이야기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낙동강 사진 전시도 중요하지만, 낙동강을 직접 만나고 싶은 마음에 마련한 시간이었는데, 낙사모 회원과 함께 한 이들이 더위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고마웠습니다.

 

또 감사드려야 하는 분이 계십니다.

블로그 이웃 내사노 님입니다.

남지에 계시기에 혹여 나중에 포스트를 보고 서운해 하실까 영아지에 도착하여 우리를 알렸습니다.

내사노 님의 직업은 혹 누가 될까 이야기를 할 수 없는데, 점심시간에 남지읍내에서 시원한 점심을 대접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개비리길을 나니 정오가 막 넘었기에 남지읍내로 이동하니 내사노 님께서 근처의 '평창 메밀국수'집으로 안내를 하더군요.

우리 전대원과 내사노 님이 함께 냉면같은 메밀국수를 먹었습니다. 푸짐한 주인장이 면을 덤으로 주기도 한 시원한 자리였습니다.

내사노 님에게 다시 한번 감사함을 전합니다.

국수그릇을 비우고 더 먹기는 나고 처음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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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길곡 함안보로 갑니다. 2010년 7월 9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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