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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주택조사원, 통계청의 총알받이다?

by 실비단안개 2010.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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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다리미역국을 끓여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인간의 밥상이 그리웠던 인구주택 조사기간이었습니다.

숨을 쉬고 살았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보낸 인구주택 조사기간이었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인구주택 조사가 끝났습니다.

인구주택조사 그 파란만장했던 날을 기록합니다.

 

인구주택 조사는 의무입니다만…

 

아파트가 이사가 잦으며 맞벌이 가정이 많다보니 어려움이 많았는데, 어떤 가구는 하루에 3번, 총 10여회 이상 방문 하기도 했습니다.

조사를 마쳤으니 빈집이 모두 드러났지만, 조사기간에는 아파트 관리사무실에서 빈집이라고 한 호수에 이사를 오면 그 호수의 인구주택조사 참여여부를 알아야 했으며, 참여를 했다면 그곳의 주소도 기록했습니다.

 

아파트를 두어번 방문하여 주인가구를 만나지 못하면 가스검침  날짜와 전기계량기를 확인했습니다.

가정에서 냉장고를 기본으로 가동한다고 할 때 계량기는 아주 천천히 도는데, 이런 집은 아주 가끔 집에 들린다고 생각하면 되지만 그 가끔인 날이 오늘일 수 있고 내일일 수도 있으니 빼놓지 못하고 계속 방문했습니다.

 

각 가구를 방문하여 조사를 하지 못하면 현관에 방문안내장을 붙였습니다.

방문 안내장에 연락처를 남겼지만 대부분의 가구는 연락을 해 오지 않았고, 연락을 받고 급하게 방문을 하여 조사를 하던 중 "이건 인구조사가 아니라 신상조사다"라며 조사한 기록을 모두 지우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그 가구를 5번 정도 더 방문을 했지만 현관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ㅠㅠ

 

조사기간 5일 정도를 남겨두고 방문안내장이 떨어졌기에 방문과 재방문 날을 한 장의 안내장에 계속 기록해야 했으며, 이도저도 아닐 때는 포스트잇에 적어 현관에 붙여두었습니다.

 

인구주택조사가 의무이긴 하지만 처벌 규정은 없습니다.

그동안 인구주택 조사시 우리집은 모두 응해 주었으며, 다른 조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국민이 의무를 다하면 나라가 국민을 보호해 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저처럼 엉뚱한 생각은 마시고 앞으로 있을 여러 조사에 잘 응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가구가 있었습니다.

첫 방문때 우편으로 참여를 하겠다기에 조사서와 비밀봉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제가 실수로 그 가구를 재방문하게 되었으며, 우편으로 한다는데 왜 귀찮게 하느냐는 말을 들었습니다.

조사기간 마감이 임박한데 그 가구에서 소식이 없었기에 몇 차례 재방문을 했으며, 역시 현관에 두어장의 방문안내장을 붙였습니다.

그래도 소식이 없기에 동사무소 담당직원과 방문을 했지만 역시 소식이 없었기에 전화를 드리니, "나는 나라에 불만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조사에 응할 수 없으며, 우리 식구가 4사람이니 알아서 하세요, 그리고 다시는 우리집에 오지 마세요."라고 했습니다.

 

또 어떤 가구는, 그동안 그렇게 조사해서 나라가 나아졌느냐, 어차피 꼭 같을 거 뭐 하러 조사를 하느냐.

 

이해합니다.

조사중 모든 기록을 지우라고 하신 분도 이해합니다.

제가 조사원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상태로 봐 나도 충분히 그랬을 겁니다.

 

내 이웃 그들은 지금

 

가구를 방문하여 가구주나 가구원을 만나면, "인구조사원입니다, 조금만 도와주세요"하며 접근했습니다.

현관문을 닫고 복도에서 조사를 하기도 했으며, 밤 시간에는 복도의 조명이 센스라 소형손전등을 켜고 조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다문화가정이 많으며 조사가구 중 몇 가구가 있었습니다.

한 가구는 몇 번을 방문했지만 만날 수 없었습니다.

중국인 부인이 어린 자녀를 두고 떠났으며 가구주는 출근길에 어린자녀를 어린이집에 맡겼다가 퇴근 때 어린이집에 들려 아이와 함께 퇴근하는 가구였습니다.

조사기간 3일을 앞두고 조사서를 봉투에 넣어 조사에 참여해 달라는 글을 남겨두었습니다.

다음날 방문하니 조사통투는 이슬에 젖어 축축한 상태로 우편함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일몰 후 방문했지만 역시 만나지 못했기에 다음날 출근 시간에 맞추어 방문했지만 역시 만날 수 없었습니다.

일요일 오전에 방문하니 우편함이 비어 있기에 철문을 두드리며 가구주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댓번 불렀나, 가구주가 나오며 작성하여 우편함에 넣어 두려고 했다며 빈조사서를 내밀더군요. 조사서 봉투는 이틀밤 이슬에 젖어 축축했지만 미안해하며 조사에 응해준 그 가구주가 아프게 남아 있습니다.

 

인구와 가구만 조사하지 말고 다문화가정의 현실도 조사하여 다른 문화에서 자란 사람들이지만 함께 어울려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그 집은 조사기간에 붙여둔 거처번호를 떼고 없었습니다.

몇 번 방문하여 붙여 둔 방문안내도 동네를 한 바퀴 돌고오면 없어졌습니다.

그러다가 초인종을 누르니 "우리는 그런 거 안 합니다"하더니 음악을 크게 들려주었습니다.

결국 마을 통장에게 연락하여 도움을 구했는데, 통장도 과감히 무시했으며, 빈집 조사를 나간 관리자도 무시했습니다.

그저께 밤, 굳게 닫힌 그 집의 주방쪽에 불빛이 있기에 다시 초인종을 누르니 가구주의 부인이 대문을 열어주었지만 현관문은 한참 후에 열렸습니다.

인구와 주택 부분 모두 어렵게 조사한 가구로 기억에 남습니다. 그러나 이해합니다.

우리집 평 수를 나라에서 늘려줄 건 아니니까요.^^

 

이웃의 생활은 여러 색깔이었습니다.

하나의 색이 무지개가 될 수 없듯이 다양한 색의 가정이 모여 이웃과 사회를 만드는데, 기왕이면 밝은 색이면 좋겠습니다.

연세드신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는 달란한 가정이 있는 반면 많은 가정이 맞벌이로 일몰 후 어린 자녀가 누구에게도 문을 열어주지 말라고 했다는 가구가 있었으며, 어르신께서도 자녀가 누구에게도 문을 열어 주지 말라고 한 가구도 있었습니다.

 

조사서를 맡겨 다음 날 찾은 가구도 있으며, 우편으로 조사에 응했지만 우편물이 어제까지 상황실에 도착하지 않아 재조사를 한 가구도 있었습니다.

모두 감사드립니다.

 

어린 새댁이 두 아이를 키우며 어렵게 생활하는 가구도 있었고, 늦은 밤에 귀가한 노부부가 찌개와 김치, 계란 후라이로 저녁 식사를 하는 가정도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식사 후 조사할까요?"

"그냥 해요!" 하시며 응해 주셨습니다. 부디 건강하십시오!

 

잊을 수 없는 한 가구가 또 있습니다.

인근에 공단이 있다보니 외국인 근로자가 많으며, 아파트를 회사 기숙사로 이용하는데, 그 가구에는 외국인 노동자 4명이 있었으며, 인터넷 조사를 안내해 드리려니 인터넷이 영어판이었기 한 분이 영어로 직접 조사서를 작성해 주었습니다.

그 외국인 노동자들은 아주 긍정적이었으며, 밝게 웃어주었습니다. 고마웠습니다.^^

 

또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을 찾아 공단을 방문하여 조사서를 전하고 다음날 회수했지만 부족한 부분이 있어 재방문을 하였는데, 어제 바람이 많이 불었기에 얼굴이 철가루를 뒤집어 썼습니다. 그렇지만, 재방문에도 친절하게 도움을 주신 회사 관계자분께 (이 글을 읽을리 없지만)감사함을 전합니다.

두 회사의 수위실에도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인구주택 조사기간이 끝나면 외국인 노동자가 더러 거처를 옮긴다고 했습니다.

불법체류이기 때문입니다.

나라에서는 인구조사로 그들에게 피해가 가지않는다고 했지만, 늦은 시간 아파트를 두 바퀴 도는 날 외국인 몇 명이 이삿짐을 차에 싣고 있었습니다.

조사원인 제가 죄인같았습니다.

우려대로 그들은 불법체류자라 거처를 옮기는 중이었을 수 있으니까요.

이 부분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불법체류라면 그들이 바른 절차를 거쳐 당당한 노동자로 대접받기를 바람합니다.

우리나라 가구와 외국인 가구, 노동자 모두 정말 잘 먹고 잘 살면 좋겠습니다.

 

그 가구는 전화를 하면 조사를 하러 오라고 했지만, 그 마을에 간김에 방문 했습니다.

해가 지자 비바람이 몰아쳤는데, 그 (여자)분은 이 비바람에 뭐 하러 왔냐며, 집에 있다가 전화하면 오지하며 저를 무지 안스러워했습니다.

조사를 마친 후 우산을 들려주며 되돌려주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다음에 꼭 돌려드리겠습니다 했는데, 다음 방문지인 아파트에서 어느 동 엘리베이트에 두고 내렸는지 몰라 돌려드리지 못했는데, 새우산을 장만하여 한 번 방문 해야 겠습니다.

 

그날 마지막 방문집이었습니다.

밤 11시가 가까웠던 시간이었는데 가구주인 할아버지께서 잠자리에서 일어나 참여해 주었습니다.

조사를 마치고 건강하시라는 인사를 드리는데 할아버지께서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할아버지 조사 다 마쳤습니다."

"알아요, 잠시만요."

할아버지께서 콩우유를 주시며, "시장하지요, 드시고 하세요"했습니다.

여러 가구에서 음료 대접을 받았지만 팔순을 바라보는 할아버지께서 건네준 그 음료는 코끝을 찡하게 했습니다.

 

많은 가구에 이 글로 감사함을 전합니다.

그 중에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와 경비실이 있습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빈집 확인을 여러 차례 했으며, 경비실도 자주 찾았는데, 한 단지 경비실 할아버지는 나를 처녀라고 했습니다.

"할아버지 저 아줌마에요~"하면, "내 나이로 보면 처녀야~"하였습니다.

경비 할아버지는 영어를 잘 하여 외국인이 보일러 고장 신고를 하면 직접 봐 주기도 했는데, 준비조사기간에 무거운 가방을 경비실에 두고 가볍게 다니라고 했으며, 본조사때도 여러번 도움을 받았습니다.

"처녀~ 커피 한 잔 마시고 해요."

"제가 좀 바빠서요, 3동 돌고 올게요"

"커피 마셔요, 내가 인터폰으로 주인이 있나 확인해 줄게"

요즘 귤이 좋으니 귤봉지라도 들고 경비할아버지께 가야 겠지요?

 

따뜻한 가슴을 가진 이웃으로 조사원 가방이 여러번 가벼워졌기에 지금도 그 분들을 떠올리면 가슴이 훈훈해집니다.

 

인구주택조사원은 통계청의 총알받이다

 

조사기간에 조사원의 신변안전, 조사내용 등 어려움이 나타났으며 더러는 조사원이 통계청의 총알받이라고 했습니다.

인구주택조사는 두 종류였습니다.

표본조사와 전수조사였는데, 여러분이 응한 19항목의 간단한 조사는 전수조사였습니다.

 

전수조사에서 마음이 상할 정도인데 표본조사는 심한 질문이 많았습니다.

심지어 낙태를 몇 번 했느냐, 할머니께 아기를 가질 생각이 있느냐 등도 있었습니다.

표본조사에 임한 가구도 힘들었겠지만 조사원도 많이 힘들어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조사에 응하므로 나라가 조금 더 나아진다고 생각하며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표본조사에 응한 가구와 조사원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전수조사 항목에 학력과 이혼여부가 있었는데 이 부분에서 많은 응답자들이 불만을 나타냈습니다.

저 또한 이 부분 질문에서 많이 얼굴을 붉혀야 했는데, 응답중 모두 지우라고 한 분도 이 부분에서 마음을 상해했습니다.

이 글을 적고 있는 시간 그 분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와서 다시 조사해 가라고, 그때는 이혼을 답하려니 마음이 너무 상해서 그랬다면서요.

조사는 이미 끝났지만 그 아파트 경비실과 주민들에게 감사드리며 건강하시라고 했습니다.

 

 

조사원 안내서에 보면 되도록이면 낮시간에 조사를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통계청은 몇 년도를 살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댁의 부인과 자녀는 낮에 집에 있나요?

댁이 하루만 조사원으로 활동해 보세요하고 말하고 싶습니다.

 

며칠간은 낮시간에 각 가구를 방문했습니다.

아파트 두 곳과 자연부락 한 곳을 다녔지만 어떤 날은 10부, 어떤 날은 20가구를 만나 조사표를 작성했습니다.

이렇게 저조하다보니 관리자가 닥달을 했기에 낮 시간에 한 바퀴 돈 후 일몰 후 다시 방문 했습니다.

일몰 후 한 아파트를 두 번 방문하니 땅을 밟고 있지만 엘리베이터안 같아 빙그르 도는 느낌이었습니다.

 

통계청은 이런 부분을 감안하여 조사원의 안전을 위해 더 고민해 주기를 바랍니다.

 

인구주택조사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이제 조사원들의 불만이 가득한데, 그 중 임금에 대한 의견이 많습니다.

계약서라고 해야 하나요, 저는 늦게 합류를 했기에 상해보험도 돈만 5천원 드렸지 어느 보험회사인지 확인을 못했는데, 조사원 중 다친 분이 있는데 약값과 치료비가 일정 금액이 넘어야 보험이 지급된다는 글이 있었습니다. 어느 보험회사인지 완전 봉 잡은 일입니다.

 

저는 인터넷으로 신청했으며, 다른 조사원보다 늦게 합류를 했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담당자에게 계약서를 건네받아 읽긴 했지만, 임금에 대해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이 나이에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구나 하는 생각으로 조사원에 응했거든요.

그런데 조사원으로 활동하다보니 이런 노동은 다시 없을 노동이었습니다. 그것도 밤시간대에 활동을 해야 가구주나 가구원을 만날 수 있기에 더 어려웠는데, 통계청에 시간외 수당 내지 야간근무 수당을 청구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활동한 날은 교육을 제외하고 총 18일이며, 관리자와는 달리 조사원은 도급계약으로 조사를 빨리 마치면 남은 일수는 개인의 시간입니다만, 저는 비록 마지막날까지 했지만, 다른 조사원이 일찍 조사를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내검이 쉬이 이뤄지지 않았고, 아파트인 경우 이사 등으로 변동이 있다보니 그 부분도 계속 추적해야 하는 꼴이 되었습니다.

 

각 읍면동에는 여러명의 조사원이 있으며 조사원을 관리하는 관리자가 또 있습니다.

관리자는 조사원 경험이 있었던 분으로 처음 조사원을 하는 분들보다 여러가지를 더 잘 압니다.

인구조사 홈페이지(www.census.go.kr/)의 게시판에서 확인할 수 있겠지만 관리자에게 불만들이 많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로 조사 첫 날 관리자와 전화로 다투었습니다.

 

조사기간에 그 가구를 방문하여 거처번호를 대문에 붙였는데, 그 세든가구가 아주 가끔 거주지에 가는 가구주의 말을 듣고 그 가구를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듯이 말을 했습니다.

제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저는 가지않은 집을 방문했다고 하지 못하며 그 증거로 거처번호가 붙여져 있는데, 앉아 마치 천리를 봤다는 듯이 쏘아 붙이는 태도가 못마땅했습니다.

 

어느 자리나 관리자는 관리자로서의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앉아 지시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며, 관리자가 두 분이었는데 두 분의 지시가 다른 경우도 있었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릅니다.

관리자가 조사원 시절을 떠올리며 자세를 낮추었더라면 조사기간동안 마음이라도 편안했을 텐데 전혀 그러하지 않았습니다.

관리자는 경험으로 뻔한 일이지만 대부분의 조사원은 처음이라 까칠한 관리자보다 조사원끼리 묻고 답하며 서로 대조하기도 했습니다.

관리자의 자질이란 업무추진도 중요하지만 아래사람에 대한 배려와 포용도 포함됩니다.

 

아직 내검이 통과되지 않아 언제 호출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참 힘든 날들이었습니다.

힘들었지만 얻은 것도 있습니다.

내 이웃이 사는 모습을 보며 내 자리의 소중함과 우리 가족은 정말 행복하구나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번쯤은 해볼만 한 일입니다만 절친이 조사원을 하겠다고 하면 말리겠습니다.

 

조사원 기간 우리집은

 

오프라인 교육 1회, 사이버 교육 2회, 준비조사(인터넷 조사 안내배부)기간 3일, 본조사 15일.

배정 372가구, 빈집 제외 336가구, 인터넷 조사 46.7%인 157가구, 방문조사 179가구, 진척율 100%가 제가 한 인구주택조사 결과입니다.

 

전날 조사서 확인과 조사지 주소 등 기록(2~3시간 소요)으로 늦게 잠자리에 들었기에 아침이면 겨우 일어나 식구들 밥 먹여 출근과 학원 보내고, 잠시 인터넷에 접속하여 뉴스 읽고, 세탁물은 세탁기에 넣어두면 큰아이가 시간이 있을 때 했습니다.

동생이 밭에서 캐 온 채소들을 다듬을 시간이 없어 상하여 버리기도 했습니다.

낮 시간이나 저녁에 잠시 집에 들려 집 청소 좀 하고 식구들의 식사 준비를 대충 해 두고 나가면 아이들은 때로는 라면을 먹었으며, 중국집에서 배달해 먹기도 했는데 먹는 것에 대해 불만을 나타내지는 않았지만, 엄마로서 이 부분이 참 미안했습니다.

 

얼라아부지 출근길에 따라 나선 날도 있었으며, 퇴근 후 조사구로 데리러 오기도 했고, 늦은 시간에 콜을 하여 오기도 했습니다.

제가 맡은 조사구가 7개 조사구로 드문드문이긴 하지만 3개 마을이었는데, 모두 마을버스가 다니지 않는 곳이었기에 택시 콜을 하거나 어떤 날은 보행 이동 시간만 2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했습니다. 콜을 3번(1회 3200원) 하면 약 1만원이기에 교통비가 많이 나갔습니다.

점심은 가끔 집에 들려 먹기도 했지만(집에 오려면 버스 내지 택시를 탔음) 아파트 단지에서 국밥으로 몇 번 먹었습니다. 돼지국밥을 좋아하지 않는데 그 아파트 단지의 밥집은 국밥집 뿐이었습니다.ㅠㅠ

 

토요일에 동창회가 있었는데 못갔습니다.

제가 참석하지 못한다고 하니 수도권 친구 4명이 다음 동창회때 만나자며 불참했습니다. 친구들에게 미안하기도 합니다.

 

위의 사진은 지난 일요일에 찍은 겁니다.

카메라를 들고 다닐 겨를이 없었지만 한 장 정도는 기념으로 남겨두어야 할 것 같아 조사기간 하루를 남겨두고 들고 갔습니다.

그리고 글이 읽고 싶었고 블로그에 너무 접속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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