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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이야기/진해 풍경

웅천 안골왜성과 안골포 굴강 3월 풍경

by 실비단안개 2016.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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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1일

2월에 다녀오고 다시 안골왜성에 갔습니다.

날씨가 포근하여 성터에는 쑥을 전문적으로 캐는 이들이 많았으며, 마침 점심대라 준비해온 도시락을 펼쳐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기도 하더군요.

두어시간 안골을 다녔더니 그들의 모습에 배가 고파왔지만 묵묵히 성을 다 둘러 봤습니다.

 

안골동의 웅천 안골왜성(熊川 安骨里城,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75호)은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축성한 왜성으로서 일본 수군의 본거지였으며, 그 앞바다는 이순신장군이 일본 수군을 크게 쳐부순 안골포해전의 전적지입니다.

진해는 임진왜란 당시 15차례 해전 중 3차례의 해전이 일어난 곳으로 합포, 안골포, 그리고 웅포해전지가 충무공 이순신의 호국 성지로서 역사적 의의를 간직하고 있는 지역입니다.

- 합포해전지를 정의해준 창원시 땡큐~/진해 3대 해전지 소개비 

 

안골왜성은 웅천 안골왜성(熊川 安骨倭城)으로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75호(1998년 11월 13일 지정)로,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안골동 산27외에 있는 일본식 성곽(왜성)입니다. 

제작시기는 1593년이라고 합니다.

안골왜성은 와키자카 야스하루[脇坂安治]․가토 요시아키[加藤嘉明]․구키 요시타카[九鬼嘉隆] 등이 구축했으며, 안골왜성의 둘레는 594m, 성벽의 높이는 4~7m 정도이며, 전체 면적은 약 5,000평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동망산(東望山, 해발 100m)을 3등분하여 부분적으로 정상부를 삭평한 뒤 본환(本丸)[本城], 이지환(二之丸)[第1外郭], 삼지환(三之丸)[第2外郭]을 나누어서 따로 석축하였다고 합니다.

외곽으로 각 부분을 연결하였는데, 외곽의 일부는 토축성입니다.

이 성곽의 축조에는 5만 명 가량이 동원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성의 남쪽과 서쪽은 만을 끼고 있는데, 이는 바닷길을 운용하기 쉽도록 해변까지 이용한 것으로 추정되며, 성의 출입은 육지 쪽을 막고 바닷길을 이용하기 위하여 바닷가에 이르도록 해자를 파서 교통로로 이용하였는데, 해안으로 드나들기 위한 통로가 만들어진 것도 왜성이 가지는 특징입니다.(참고 : 팬저의 국방여행과 위키백과)

알아두면 도움이 되는 왜성의 용어
천수 - 덴슈[天守] 일본의 성에서 상징적인 건물.

본환 - 혼마루[ほんまる(本丸)] 성의 중심이 되는 건물. 주성(主城).

이지환 - 니노마루[にのまる(二之丸)] 성(城)의 외곽(外廓). 본성(本城)의 바깥쪽을 둘러싸고 있는 성곽.

삼지환 - 산노마루[さんのまる(三の丸)] 2지환을 둘러싼 외성.

호구 - 고구치[虎口](こぐち)] 일본의 성에서의 출입구를 말함. 좁은 길, 좁은 입구라는 뜻도 있어 소구(小口)라고 쓰기도 하며 고구치의 종류 중 히라이리 고구치, 구이치가이 고구치, 마스가타 고구치가 있다.

성문-오테 문[おおてもん(大手門)]일본의 성에 있어서 니노마루 또는 산노마루 등의 구역과 구역이 연결되는 성의 입구에 설치한 문. 일반적으로 성의 정문.

성벽-이시가기 [いしがき(石垣)] 석벽(石壁).석축. 2. 돌담.

나성(羅城)-노보리이시가키[いしがき(登り石垣)]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쌓은 왜성에서 볼 수 있는 석벽의 형태이다. 중국대륙의 만리장성에서 볼 수 있는 성벽축조 방식으로 산허리를 따라 성벽을 쌓은 것이 특징.

외호(해자) - 소토보리[そとぼり(外壕)] 이중으로 두른 해자 중 바깥쪽의 해자.

내호(해자) - 우치보리(內堀) 이중으로 두른 해자 중 안쪽의 해자.

정문(대수구) - 오테구치[バスセンタ(大手口)] 후문(익수구)-(溺手口)

평지성-히라지로[ひらじろ (平城)] 산성-야마지로[やまじろ(山城)](제공 : 팬저의 국방여행http://panzercho.egloos.com)

그동안 안골마을로 안골왜성을 올랐지만 요즘은 용원쪽에서 안골왜성을 오르는데, 안내도가 잘 되어 있긴 하지만 역시 안골로 웅천 안골왜성에 갔습니다.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안골왜성으로 가는 길은 정비가 잘 되어 있었습니다.

 

 

안골왜성은 가운데 본성이 있고 양쪽으로 지성이 있는데, 안골쪽에서 가면 지성을 먼저 만나게 됩니다.

 

 

성벽은 더러 허물어졌지만 안골왜성 안내표지판은 잘 있었고, 성안엔 묘지가 몇 기 있는데, 그쪽 부분은 풀을 베지 않았는데 사유지라 그런 모양입니다.

 

 

 

본성 성벽아래쪽으로 먼저 갔습니다.

몇 해전 천부인권님과 동행했을 때도 의문을 가졌던 둥근 돌확입니다.

옛가옥  입구나 누마루앞에 돌확이 있으며 '확대'라는 이름의 세숫대야가 있습니다. 수도시설을 설치할 수가 없었던 시대에 곳곳에 무릎 높이 이상의 돌에다 둥근 모양과 복숭아 모양의 홈을 파서 물을 담을 수 있게 만든 것인데, 눈과 귀와 입, 손을 씻음으로 추함과 악함을 사하기 위한 상징성으로 둥근 모양은 남성전용, 복숭아 모양은 여성전용이었는데 복숭아는 또 다산을 뜻한다고 했습니다.

역시 몇 년전 창녕 성혜림 고가에서 만났던 그런 확대같은 게 여전히 있었는데 막대를 넣어보니 깊이가 20여 cm정도 되었는데 돌확의 용도는 무엇일까요.

왜성이니 왜인이 양심이 있어 추함과 악함을 사하기 위해 손을 씻지는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웅천 안골왜성 본성입니다. 안골 왜성은 전형적인 일본식 산성으로, 지금도 갈지 자[之] 형태의 성문과 성벽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지성에서 본성으로 가는 길에 산자고가 밟혔습니다.

 

 

본성도 성벽이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안골왜성 표지판 아래로 신항이 운영중입니다.

 

 

본성에서 웅천왜성이 보입니다.(동그라미)

남문동의 웅천왜성(熊川倭城, 경상남도 기념물 제79호)은 남산(해발 184m) 산봉우리에서 능선을 따라 산기슭까지 뻗친 석성(石城)으로 임진왜란 대인 1593년소서행장(小西行長)이 구축하여 수비하던 곳으로 정유재란에 재침하여 개축하였다고 합니다.

 

 

부산 신항 주간선도로(욕망산 구간) 노반 조성공사로 욕망산이 허물어지고 있는데, 안골왜성에 오기전에 노루귀를 만나러 갔던 산인데 안골왜성 본성에서 잘 보였으며, 발파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부산 신항은 이름도 부산이며, 도로만 진해에서 제공한 꼴인데 지금오 웅동 1동은 여러 도로 공사로 도로노면이 엉망이며 산이 계속 허물어지고 있으며, 각 마을은 도로(공사)로 섬이 되고 있습니다.

 

 

주차장에서 계단을 올라오면 이정표가 있는데, 지성과 본성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제 2외곽 지성입니다.

역시 성벽이 하물어지고 있으며 가장 안쪽에 위치하다보니 관리가 전혀 되고 있지 않는 듯 했습니다.

 

 

제 2지성 성벽위에 서면 역시 웅천왜성이 보이며, 조선 수군의 굴강이 보입니다.

안골포 굴강은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 함대의 거북선을 정박시킨 적이 있는 조선시대 군선의 정박처로서 선박의 수리 및 보수, 군수물자의 수송, 선박의 계류와 정박을 목적으로 축조한 방파제와 선착장의 역할을 함께 할 수 있도록 한 시설물로, 안골포진성의 북서편 지척의 거리에 축조되어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굴강유적이 5-6개소에 이르고 있으나 대부분 흔적만 남아있을 따름인데, 안골포굴강은 상부의 서축이 일부 허물어지기는 하였으나 하부는 매몰되어 온전히 남아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또한 드러나 있는 굴강의 유구가 협소하여 제기능을 다할수 없을 것으로 판단되므로 매립되어 육지로 변해버린 기존 도로에도 굴강이 연결되어 있거나 굴강과 관련된 유구(遺構 옛날 토목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자취)가 매몰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굴강의 목은 동편에 내만을 바라보고 위치하여 외만의 파도를 막을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목의 폭은 약 20M 정도이고 현재 드러나 있는 궁형 석축의 길이는 75M정도입니다. 굴강의 내부에는 갯벌이 퇴적되어 있으나 축조할 당시에도 굴강의 목이 입퇴수구가 되어 썰물 때는 물이 빠져나가 바닥까지 드러나고 밀물 때는 바다와 동일한 수면을 유지하였을 것으로 보며, 안골포는 남해연안의 해안방어처 역할을 담당하여 왔는데 임진왜란 때 왜군에게 일시적으로 함몰되기는 했으나, 신문진과 청청진을 지척에 두고 있었으며 안골포진성의 기초가 남아 있었지만 지금 신항공사로 굴강까지 위험한 처지입니다.

 

 

위 사진을 조금 더 당겼습니다.

웅천왜성과 굴강이 잘 드러납니다.

굴강 윗쪽의 검정색 천막은 굴을 까는 곳으로 3월말까지 작업을 했으며, 이제 굴 까는 작업은 늦가을이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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