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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이야기/진해 풍경

진해 둘레길 소사 생태길, 10월을 걷다

by 실비단안개 2016.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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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5일

한 번 마음을 먹었더니 통제가 되지 않았기에 아침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배낭에는 뜨신커피와 카메라만 들어 있습니다. 최대한 가볍게 그러나 아쉽지 않도록요.

오전 8시 버스를 타러 나가는데 마침 이웃이 출근길이라 마천까지 태워주었습니다. 소사 생태길을 봄엔 화등산으로 올랐는데 이번엔 정상적으로 오르기로 하고 진해 3.1 독립기념비쪽으로 갔습니다. 두동에서 남양동으로 옮긴지 꽤 되었지만 근처에 가기는 처음입니다.

3.1 독립기념비옆엔 한국전쟁참전기념비가 있었습니다. 한국전쟁때 우리 지역에는 북괴군이 들어오지 않았으나 진동쪽에서 포 소리가 났었다고 할머니께서 몇 번 말씀하셨는데 웬 전쟁기념비하며 읽어보니, 전쟁전후 세대에게 나라사랑의 마음과 안보정신을 심어주기 위해 건립했다고 하는 안내가 있었습니다.



한국전쟁 참전 기념비를 보는 순간 다리가 불편한 상이용사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3.1독립기념비 뒷에는 기미독립 선언서가 적혀 있었고, 건립기에는 "기미년 4월 3일 마천동 냇가에서 주기용선생을 비롯한 이 고장 3,000여 애국지사가 독립만세를 일으킨 숭고한 정신을 이어 받고자 1986년 이 고장 출신들의 인사들의 성금으로 두동 산 263-3번지에 세웠으나 그로부터 23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 주변 여건의 변화와 노후로 이곳 남양동에 사업비 5억을 들여 2008년 9월 30일 착공하여 2009년 1월 27일 착공하였습니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작품명은 '영원한 비상'으로 김성민 조각가의 작품입니다.

근처 중학교 학생들에 의해 해마다 4월초면 재현하고 있습니다.

주기용 선생은 웅천의 주기철 목사와 사촌으로 웅천에는 주기철 기념관이 있으며, 주기용 선생은 교육자며 독립운동가로 1916년 평안북도 정주 오산 중학교(五山中學校)를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웅동면에 있던 계광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는데, 이 학교에 재직 중 3·1 운동이 일어나자 여러 사람과 뜻을 모아 웅천, 웅동의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 옥살이를 하였다고 하는데 그 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기념밭인 듯 하며, 계광학교는 현재 근처의 중학교로 선생의 제자들이 4월초면 독립운동을 재현하고 있는데, 우리 고장이지만 이런 역사적인 일을 그동안 모른척 하고 있은 듯 합니다. 소사 김시 아저씨가 가끔 주기철 목사와 주기용 선생 이야기를 했지만 귓등으로 들었는데 이제 김씨 아저씨를 만나면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겠습니다.

- 주기용 : http://changwon.grandculture.net/Contents?local=changwon&dataType=01&contents_id=GC02207072



서론이 너무 길었습니다. 이제 소사생태길로 갑니다. 독립기념비 맞은편 산길로 들어가야 소사 생태길인데 여긴 종점이며 시작점은 웅천 백일마을입니다.

진해의 둘레길인 드림로드중 종점인 소사생태길 입구에는 드림도르 안내표지판이 있습니다.

드림로드는 진해 둘레길 이름으로 그 길에 맞는 4개의 이름이 있습니다.

장복산을 출발하여 안민고개까지의 길이 장복 하늘마루 산길(3.8㎞)이며, 안민고개에서 부터 천자봉 해오름길(9.9㎞), 백일 아침고요 산길(3.1㎞), 소사 생태길(7.6㎞) 등 네 구간으로 이뤄져 있다. 몇 년전 장복 하늘마루 산길은 혼자 걸었는데 당시는 요즘처럼 세상이 험하지 않았기에 혼자 다녀도 두려울 게 없었습니다. 천자봉 해오름길은 블로거 이웃 산사랑님과 걸었고, 소사 생태길은 드림로드 이전인 행군로 이름표를 가졌을 때 백일마을까지 아주 오랜 시간을 친구와 걸은 적이 있으며 소사생태길 아주 작은 부분은 혼자 몇 번 찾았는데 걷기보다는 들꽃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위의 지도에서 소사생태길 부분만 잘랐는데 연두색의 길이 소사생태길로 7.6㎞입니다. 집을 나설때는 완주를 계획했는데 아래 표지판에서 출발하여 붉은색 화살표 방향에서 돌아 왔는데 가을같지 않은 10월이지만 소사생태길 10월로 들어 갑니다.



기념비에서 도로를 건너면 오른편으로 조팝나무가 있으며 오르막 길입니다. 길은 시멘트길이며 60도쯤 되는 경사길인데 얼마 걷지 않았는데 다리가 후둘거렸습니다. 매일 텃밭에 다니며 체력을 길렀다고 생각했는데 오르막길은 역시 힘이 들었습니다. 그때 뒤에서 오던 남남 한 팀이 저를 제치고 나가더군요.



봄날에 그랬던 것 처럼 산길로 가고 싶은 욕구를 누르며 생태길을 걸었습니다. 봄날 숲으로 갔던 그 길 입구에는 꽃댕강나무 꽃이 피어 있었지만 그 향기를 맡으면 바로 산길로 들어갈 것 같아 스치고 도로를 걸으니 남녀 한 팀이 종점으로 오고 있었습니다. 아~ 주말이라 사람들이 심심찮게 다니는구나.



임도 양쪽은 푸르렀지만 가을 들꽃이 피었습니다. 처음 만나는 나도송이풀입니다, 앙증맞은 모습에 몸을 낮추었습니다.



소사생태길이 처음엔 임도로 명명했는데 그때부터 피라칸사스를 심었지 싶습니다. 아주 오래전 친구와 걸었을 때고 이 나무가 있었는데 이제 제법 수령이 나타는 듯 합니다. 추우면 더 붉어지는 피라칸사스인데 많이 열리지는 않았더군요.




도로는 시멘트길, 자갈길, 흙길로 되어 있으며, 숲냄새가 났습니다.



숲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일었지만 그때마다 도로 가장자리에 피어 있는 가을꽃을 만났습니다. 등골나물입니다. 태풍 차바가 소사생태길도 건더렸는데 배수로쪽의 식물이 대부분 누워 있었습니다. 인정사정없이 지독했던 차바였습니다.



이 산에 이정도로 들꽃이 많았었나 싶을 정도로 도로 양쪽에는 가을 들꽃인 미역취와 구절초, 쑥부쟁이가 피어 있었습니다. 그것도 많이.



여름 폭염과 가뭄은 나뭇잎이 단풍이 들기도 전에 이렇게 많이 떨어뜨렸습니다. 숲은 여름인데 도로는 겨울같았습니다.



0.5km, 그렇게 많이 걸었는데 이제 겨우 500m 걸은 듯 합니다.



할아버지 한 분이 임도를 걷고 하산중입니다. 할아버지께서 먼저 인사를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산인이 아니다보니 산에서 인사를 받는 게 익숙치 않아 저는 언제나 고개만 살짝 숙이는 편인데 산인들은 만나면 꼭 인사를 건네더군요.



봄날 들꽃을 만나고 숲에서 나와 이 자리에서 커피를 식도록 두고 주변을 기웃거렸는데 이날도 역시 배낭을 내리고 커피를 식히며 근처 숲을 기웃거렸습니다.



숲을 보고 들꽃을 만나는 사이 1km를 걸었나 봅니다. 길은 떨어진 새끼줄마냥 구불구불 했지만 넓기에 차도 다니는데, 이때 승용차 한 대가 드드드득 하며 지나갔습니다. 어떻게 들어 왔지?



봄날 임도에서 수원지쪽으로 내려갔던 길이 나왔습니다. 가운데 사진의 윗쪽 화살표가 있는 부분이 수원지가 있는 소사마을로 가는 길인데 눈을 질끈감고 통과를 했습니다. 그런데 '산불진화용 저수조'가 있는 부분에서 두 갈래길이 되었습니다. 임도를 버리고 저수조가 있는 산길을 택하여 걷는데 밤송이가 많이 떨어져 있었으며 길은 대체로 넓었기에 걸을만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쯤 걸으니 숲에서 무슨 소리가 여러 번 났기에 가슴이 콩닥거려 뒤돌아 다시 임도로 걸었습니다.



숲가꾸기를 하고 있군. 동식물의 행동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기도 하며 우리들이 편하게 임도를 걸을 수 있도록 숲에선 숲가꾸기를 하는 듯 했습니다.



임도 오른쪽을 보니 멀리 경남아너스빌이 보였습니다. 멀어졌습니다. 이제 끝까지 걷는 수 밖에 없습니다. 종주하지 뭐.



차량 두 대가 주차되어 있었으며, 임도 안내표지석이 있었습니다. 2001년도에 임도공사를 했으니 오래전 친구와 걸었을 때도 이 길을 걸었지 싶습니다.



시멘트 배수로를 지나니 흙길이 나왔으며 배수로쪽에 들꽃이 피었나 싶어 살피니 고라니배설물이 있었습니다. 윤기가 흐르는 게 따끈한 듯 했습니다. 임도엔 마른 배설물도 있었습니다. 고라니는 사람을 보면 도망을 가니 만나더라도 괜찮습니다. 우리 텃밭에도 들어 왔으며 울밖에도 여러 번 왔다가 갔거든요. 올해 마을 도랑가에서 두 번이나 고라니 사체를 봤는데 이 지역이 고라니가 많으며, 가끔 멧돼지도 나타나고 합니다. 멧돼지는 물불을 가리지 않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위의 안내지도에 나와 있는 2쉼터인 모양입니다. 정자와 운동기구가 있었는데 사실 임도에 운동기구는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는데 진해가 넉넉한 모양입니다. 옆엔 숲가꾸기 안내 현수막이 있었습니다. 역시 그렇군.



약간 내리막 길이며 아래에는 역시 숲가꾸기로 쏘문 나무를 베어 냈습니다. 도로변의 나무에 붉은 띠를 그려두었는데 베어내는 대상인 모양입니다. 나무가 너무 빽빽하면 일조량이 적기도 하며 다른 나무의 자람을 방해하기에 벌목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사이 2.5km나 걸은 듯 합니다. 많이 걸었습니다.



숲쪽으로 보니 길손들이 산인들의 안녕을 기원하며 돌을 하나씩 쌓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돌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피톤치드향이 아주 강하여 상쾌했습니다. 계속 더 걸을 수 있을 듯 했는데, 초입에 만난 남남 두 분이 돌아 오는 길이었습니다. 소사생태길 끝까지 걷고 싶은데 아직 많이 멀었나요 하니, 두어시간은 더 걸어야 하며, 여자 혼자 위험하니 자기네들과 함께 하산을 하자고 하더군요. 아쉽지만 뒤돌아 섰습니다. 한 분이 만보계를 꺼내더니 만보에서 조금 덜 걸었다면서 보여주더군요.



혼자 어떻게 왔느냐, 집이 어디냐, 우리는 칸 아파트에 산다, 조선업에 근무하는데 요즘 일이 없어서 일주일 근무하고 일주일은 휴무다 등을 이야기 했습니다. 다른 알바라도 알아봐야 겠다, 급료는 70%나온다를 덧붙이면서요.

저는 공단마을에 있는데 들꽃 사진을 찍으러 왔다, 들꽃이 없지요 하기에 생각외로 여러 종류의 들꽃이 있다고 이야기 하니 한 분이 숲쪽을 바라봤습니다.

물이 있느냐고 묻기에 커피가 있다고 하니, 자기네 차가 도로변에 있으니 내려 가서 함께 차를 한 잔하자고 했으며 앞으로 절대 혼자 다니지 말고 친구 서너명씩 조를 이루어 다녀라고 당부를 하더군요. 그렇죠, 요즘은 들짐승보다 사람이 더 무서우니까요.



왼쪽의 사진은 불모산 기지국이 보였기에 고개를 돌리니 시루봉도 보였습니다.

산을 빙둘러 걸어 그렇지 먼 거리는 아닌 듯 했습니다.



하산을 할 때 더 걸음이 가볍우며 가깝게 느껴지는데 두 분은 하산이 내리막길이라 더 힘들다고 하데요. 이상하네.




종점에서 시작한 들꽃기행은 좀점에서 끝났습니다. 화등산이 옆이지만 그대로 지나쳤으며, 두 분이 차 문을 열어 집까지 태워 준다고 했지만 사양하고 혼자 집으로 왔습니다. 이렇게 걸으면서 들꽃만나면 개운할 걸. 그래도 산길이라 무서운 마음은 숨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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