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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이야기/진해 풍경

박배덕 갤러리 마당 첫 방문 / 벚꽃 필 날을 기다리며

by 실비단안개 2019.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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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7일

미루었던 김달진 문학관 방문입니다. 많이 무심했습니다.

마을입구의 주말농장에는 벌써 거름을 내는 주말농장주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대답후 수고하시라고 인사를 한 후 문학관으로 갔습니다. 학예사님은 점심식사를 하러 가셨다면서 여사님의 안내로 여사님이 머무는 방으로 들어 갔습니다. 커피를 얻어 마신 후 이전한 박배덕 화백님 마당에 다녀와야 겠다고 하니 문학관밖으로 나와 바닥이나 길모퉁이에 안내 표시가 되어 있다고 일러 주었습니다.

 

 

갤러리 마당은 약 8년간 작업실이기도 했으며 여행객들에게는 좋은 놀이터였었는데 대문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담벼락 등에 변화는 없었습니다. 수원지밑으로 이전을 했다는 간단한 안내입니다.

 

 

문학관 여사님께 들은대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이전 소식은 오래전에 들었지만 마당 방문은 처음입니다. 벽화 골목을 걸으면서 생각을 했습니다. 수원지 밑에는 밭이라 갤러리를 만들 공간이 없을텐데 하면서요. 구천교옆에는 볏짚정자 한 동과 운동기구가 있었습니다. 주변에는 배롱나무가 있었고요. 위로 신항 배후도로가 생겼다보니 마을과 웅동벚꽃장을 나누었다보니 소사마을도 섬이 되었습니다.

초등학교때 봄마다 소풍을 갔던 벚꽃장의 앙상한 나무가 둘러져 있으며 옆에는 폭포가 있습니다. 많이 익은 풍경이지만 지금은 출입금지구역입니다.

 

 

박배덕 갤러리 마당이 나왔습니다. 오래전 근처에 양봉을 하기도 했는데 지금도 양봉을 하는지 표지판이 있었으며, 갤러리 마당은 벚꽃장과 거리가 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진해의 시인 이월춘 시인의 대죽도가 있었습니다.

오늘 처럼

달 좋은 밤이면

장복산 산신령이

참방참방

물소리 내며 건너 가

권커니 잣커니

한잔 나누는 섬

대죽도는 진해루와 소죽도에서 보이는 섬으로 이월춘 시인은 진해의 군데군데 풍경을 시로 옮겨 두었습니다.

 

 

마당의 전시실이 보였습니다. 갤러리라고 하면 도시의 세련된 풍경을 연상하는데, 박배덕 화백의 갤러리 마당은 언제나 열려 있으며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우리네 마당처럼 열린 공간입니다. 전시실 주변에 화백님의 다재다능한 손길이 있었습니다.

 

 

비바람 막아주는 정도의 전시실입니다. 전시실은 마당 한 켠에 있으며 누구나 출입이 가능하기에 작품 감상도 가능합니다.

 

 

 

박배덕 화백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한 작품입니다. 처음 반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맑은 물은 마치 대장동 계곡같았으며 입체적인 바위 또한 그러했습니다. 지금은 대장동 계곡이 사방공사로 인해 계단식으로 바뀌었습니다. 맑은 물에 사과가 동동 뜬 걸 보고는 진짜 사과가 물에 뜬 듯 했습니다.

화백님의 작품은 점의 연결이며 대부분 고향 풍경입니다. 고향에 살아도 고향이 그립고 타지에 살아도 고향이 그리운 게 우리네 정서다보니 대부분의 관람객이 공감하는 소재입니다.

 

 

작품은 두 개를 이은 대형작품도 있지만 소품도 있는데 작품명과 금액은 옆에 있었습니다. 언젠가 서비스차원으로 저렴하게 판매를 하기에 소품 한 점을 구입하여 현관에 두었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대형일 경우 금액이 엄청나기에 저 같은 소시민은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다시 마당입니다. 마당은 예전의 마당보다 넓고 시원했습니다.

서양화가지만 손재주가 다재다능한 화백님의 작품들입니다. 그러다보니 화백님의 손은 거칠며 옷에는 물감이 마를 날이 없을 정도입니다.

 

 

신항 배후도로가 지나가긴 하지만 마당이 넓었기에 화백님의 작품활동이 다양하리라 생각합니다. 나무에 달린 열매는 작은 공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작품은 버려지거나 우리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것들로 재활용했습니다. 중간중간 여행객을 위한 포토존이 있었습니다. 아쉬운 게 있다면 제가 겨울에 방문하여 갖가지 화초구경을 할 수 없었다는 건데요, 화백님 부부는 화초를 많이 애정하는 분들이기에 봄에서 여름으로 갈때즘이면 마당은 형형색색의 화초로 굉장하리라 생각합니다.

 

 

 

전시실 안쪽에 작은 공간이 있었으며 마당 한 켠에는 누군가가 작품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인사를 건네고 작은 공간으로 가니 사모님께서 커피를 주었습니다.

요즘 뭐 하는기요? 어떻게 살고 있는기요?

지난해 4월에 이전을 했답니다.

마당뒤로 벚꽃장이 병풍이 되어 있기에 벚꽃이 피면 마당도 더 필 것 같아 연락처를 드렸습니다. 그동안 실비단안개만 알았지 연락처를 몰랐다고 했습니다. 벚꽃필 때 꼭 연락주세요.

 

 

마당 둘레에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원두막이 있었으며 안쪽으로 사랑과 희망의 돔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다녀간 이들의 흔적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습니다.

 

 

안쪽의 좋은 말 탑입니다. 역시 탑 내부에는 좋은 말들이 남겨져 있었습니다. 관람객을 위한 배려였습니다.

 

 

시눗대숲에서는 연신 새가 지저귀고 있었으며 앞쪽에는 원시시대처럼 꾸며 놓았습니다. 마당의 작품은 모두 화백님 혼자의 작품들입니다.

 

 

겨울 해바라기입니다. 포토존이지요. 그때 화백님께서 오셨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다, 궁금했다, 보고 싶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벚꽃 필 때 올게요하며 마당을 나왔습니다. 벚꽃필 때 꼭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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