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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누기/가본 곳

반영이 아름다운 밀양 위양지와 완재정의 가을 풍경

by 실비단안개 2019.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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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일

삼랑진 만어사를 나온 우리는 만어산을 탔습니다. 만어산에는 크고 작은 돌이 쏟아져내린 듯 또는 쏟아부은 듯 널브러져 있었는데 아무래도 물고기 떼 전설과 상관없는 돌산같았습니다. 이렇게 달려 찌아찌아 하우스를 지나 감물리를 거쳐 밀양 금시당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금시당 은행나무는 초록이 더 많았기에 월연정쪽으로 갔더니 역시 노란 은행나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잠시 실망하긴 했지만 다 때가 있으니 보름후면 노란물이 들겠지하며 위양지로 갔습니다.

위양지는 사철 저수지 반영이 아름답기에 언제 가도 좋습니다.

우리는 완재정 왼편으로 위양지를 거닐었습니다. 구절초가 흐드러졌습니다.

 

 

 

위양지는 신라와 고려 시대 이래 농사를 위해 만들어졌던 둑과 저수지입니다. 위양(位良)이란 양민(良民)을 위한다는 뜻으로 현재의 못은 임진왜란 이후 1634년에 밀주 부사 이유달이 다시 쌓은 것이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안동 권씨가 세운 완재정이 있고, 둑에는 아름다운 꽃과 희귀한 나무들이 심어져 뛰어난 풍광을 즐길 수도 있었던 곳이라 하는데 현재까지도 안동 권씨 집안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조선 후기와 근대의 기록을 보면 못의 규모는 점차로 축소되어 왔으나, 저수지라는 경제성과 연못이라는 경승지의 성격을 아울러 가지고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연못의 주변에는 화악산, 운주암, 퇴로못 등이 있습니다.

 

녹음이 짙은 여름과 이팝꽃이 흐드러진 봄날의 위양지입니다.

 

 

올 가을입니다.

 

 

위양지와 이팝꽃을 돋보이게 하는 완재정(宛在亭)입니다. 쪽문을 밀면 위양못입니다.

섬에는 조선조 권삼변(權三變 1577~1645)의 후손들이 지은 정자가 완재정(宛在亭)입니다. 권삼변의 자는 요경(了經), 호는 학산(鶴山), 본관은 안동인데, 선조조(宣祖朝)에 경상도 산청 단성(丹城)으로 부터 이곳으로 옮겨와 살았다고 합니다.

못 안에 있어서 물을 가까이 하고 있는 완재정(宛在亭) 이름은 《시경》<겸가(蒹葭)>의 "갈대가 창창하니, 흰 이슬이 서리가 되었네. 이른바 저 사람이 저 물가 한쪽에 있네.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 따르려 하나, 길이 막히고 또 길며, 물결을 따라 내려가 따르려 하나, 완연히 물 가운데 있네(蒹葭蒼蒼, 白露爲霜. 所謂伊人, 在水一方. 遡洄從之, 道阻且長. 遡游從之, 宛在水中央)" 라고 한 마지막 구절의 '완재(宛在)'를 취하였고 합니다.

 

위양못변의 오래된 나무는 저수지에 그대로 반사되는데, 하늘이 맑은 날은 더 아름답습니다. 눈에 거슬리는 게 있다면 산의 철탑입니다.

 

 

 

칠암교를 건너면 있는 관리동같은 건물이 있는데 여기는 문이 잠겨 있는데 줌으로 담은 반영이지만 역시 아름답습니다. 위양지의 반영입니다.

단풍이 들기 시작합니다.

 

 

봄날 하얀 이팝꽃을 피웠던 나무는 노랗게 물이 들고 있었습니다. 단풍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일렀습니다.

 

 

 

 

완재정과 칠암교, 관리동(?)을 한장에 담았습니다. 완재정만 있는 그림도 아름답지만 어우러진 풍경도 아름답습니다.

 

 

 

 

 

다리를 건너 완재정으로 갑니다. 완재정은 섬에 있습니다.

 

 

이팝나무 열매와 단풍입니다.

 

 

쪽문 밖의 위양지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고마운 저수지입니다.

 

 

완재정입니다. 봄날만큼은 아니지만 여행객들이 찾았습니다. 약 2주일전에 다녀 왔으니 지금쯤은 단풍이 완연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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