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4일
밀양 아리랑시장에서 닭똥집구이를 샀습니다. 그전에 식혜 한 병을 사기도 했습니다. 점심은 이렇게 간식으로 해결했습니다.
3주일만에 다시 금시당을 찾았습니다. 그 사이 은행나무의 단풍이 들기는 했지만 지난해처럼 화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또 금시당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아 금시당 · 백곡재에 들렸습니다.
금시당 · 백곡재 아래로 밀양강이 흐르며 맞은편은 금시당 유원지입니다. 금시당 유원지둑에서 담은 금시당 · 백곡재와 은행나무 단풍입니다.
물 좋고 정자 좋은 곳 없다는 말은 빈말인듯 합니다. 물이 좋은 곳 마다 별서나 정자가 있으니 말입니다.
금시당 · 백곡재(今是堂 · 栢谷齋)는 도 문화재자료 제 228호로 실용성을 강조한 영남지방 별서 건물의 특징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 별서는 밀양의 여주이씨 가문의 대표적인 유적의 하나로 꼽히고 있답니다.
금시당은 조선 명종(明宗) 때 승지(承旨)로서 금시당 이광진(李光軫:1513~1566) 선생이 만년에 은퇴하여 학문을 닦고 수양하기 위해 1566년에 창건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임진란 때 불에 타 1744년 5대 손 백곡(栢谷) 이지운(李之運)이 복원하였다고 되어있습니다. 금시당 앞에는 보호수로 약450년 된 은행나무가 자리하여 밀양강과 어우러져 있는데, 올해는 단풍이 늦게 들었으며 지난해만큼 황홀한 색도 아니었지만 보호수 은행나무를 찾은 이들이 많았습니다.
금시당 · 백곡재의 은행나무 단풍입니다.
아래 풍경의 남자분은 마치 모델처럼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해 주었습니다. 고맙고 죄송하여 메일 주소를 받아 왔습니다.
보호수 은행나무쪽에서 보면 금시당 · 백곡재가 하나의 풍경이 됩니다.
한 공간에 금시당과 백곡재 두 건물이 있는데, 금시당 이광진이 창건한 건물이 임진왜란때 불타버렸으므로 임란후 영조 19년(1743)에 그의 5대손인 교남처사 백곡 이지운(嶠南處士 栢谷 李之運:1681~1763)이 이를 복원하였으며, 이 별업을 복원한 이지운을 추모하기 위해서 다시 이지운의 6대손인 만성 이용구(晩醒 李龍九)가 주관하여 철종 11년(1860)에 경내에 백곡재(栢谷齋)를 새로 지어 금시당 · 백곡재(今是堂 · 栢谷齋)라고 부릅니다. 백곡재의 현판은 '백곡서재(栢谷書齋)'입니다.
단풍 나들이객들은 마치 내집마냥 마루에서 휴식을 취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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