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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이야기/텃밭 풍경

태풍 마이삭이 지나간 텃밭 풍경

by 실비단안개 2020.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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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일

2일 저녁에 마을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바닷가 주민은 모두 중소기업 연수원으로 대피하라고. 창원시에서 연수원에 방을 마련해 두었으니 우리 마을 이름을 이야기하면 방을 배정해 준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많은 태풍을 겪었지만 이런 일은 처음입니다.

얼라아부지가 퇴근하기에 얼른 친정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친정은 바닷가에 있습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엄마는 걱정이 많은지 저녁 식사도 하지 않았습니다. 두 분께 안방에서 주무시라고 하니 10시까지 티브이 시청을 해야 한다면서 거실에서 주무시겠답니다.

엄마는 소파에서 주무시고 아버지는 거실 바닥에서 주무셨습니다.

새벽 1시 20분, 바람소리에 깼습니다. 천하를 쓸어갈 것 같은 바람소리에 베란다로 나가 밖을 보니 나뭇가지가 많이 흔들렸습니다. 그래도 우째우째 다시 잠이 들었는데 텔레비전 소리에 깨니 아침 5시간 조금 지났습니다.

아버지께서 일어나셔서 티비를 켠 겁니다. 아버지는 청력이 좋지 않다 보니 티비 소리가 큽니다.

 

아침에 친정에 가니 바닷가가 조용했으며 마을에는 별 이상이 없는 듯했습니다. 다행이지요.

요양보호사 일을 마치고 텃밭으로 갔습니다. 홍고추를 따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텃밭이 초토화되었습니다.

태풍 마이삭의 위력은 바닷가 마을이 아닌 텃밭에서 나타났습니다.

 

9월 1일 꽃길을 정리할 때 찍어 둔 아치입니다. 아치에는 능소화 몇 송이와 붉은 인동이 피어 있었으며 아래로는 닥풀 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마이삭은 텃밭의 아치를 주저앉혔습니다. 그렇잖아도 얼라아부지에게 화초가 무거운듯하니 아무래도 철재 아치를 구입해야겠다고 했는데 마이삭이 우리 둘이 한 이야기를 들은 모양입니다.

 

9월 1일, 꽃길 반 정도 잡초를 매고 정리를 했습니다. 떨어진 포도 봉지를 다 주어냈는데 또 포도 봉지가 떨어졌으며 조명도 떨어져 깨어졌습니다.

 

공들여 만든 김장 무를 파종할 밭입니다. 떨어진 나뭇잎은 시간이 흐르면 거름이 될 것이지만 처음으로 심은 피마자가 잘 자라기에 기특했는데 뿌리 부분이 패였으며 쓰러질 듯 위태로웠습니다. 옆의 봉숭아도 마찬가지입니다.

 

토란밭이 이렇게까지 초토화가 될 줄 몰랐습니다. 모조리 쓰러졌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그대로 두었습니다.

 

이제 달리기 시작하는 여름 오이 덩굴과 검정 호박 덩굴도 엉망이며 케일도 엉망이 되었습니다. 땅에 뿌리가 박힌 채소나 화초는 시간이 흐르면 차츰 자리를 잡기는 합니다만 상한 덩굴 채소는 그대로 둘 수밖에 없습니다.

 

김장 배추 모종입니다. 태풍이 온다기에 한랭사위에 부직포를 씌워두었다 벗기니 자라기는 했는데 햇빛을 못 받아 웃자랐습니다. 김장이 되려는지 모르겠습니다.

배추 모종 두 판만 구입하면 될걸 해마다 사서 고생인데, 다른 사람이 한 건 믿음이 안 간답니다.

 

호박 한 덩이가 툭 떨어져 있었습니다 앞쪽으로 사과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꽃을 보기 위해 심었다지만 달린 사과는 너무 못 생겼는데, 태풍에 과실이라고 떨어지기까지 했습니다.

 

고추밭은 엉망이었습니다. 종일 고추밭에서 보냈습니다.

 

들개도 가지가 찢어져 엉망이었지만 그나마 고요한 곳은 웅덩이와 옆의 수련입니다. 웅덩이 물은 더 깨끗해진 듯했으며 잠자리까지 찾아왔습니다. 수련은 매일 이렇게 피어나고 있습니다. 처음 구입할 때는 너무 비싼 식물이 아닐까 했는데 그 값을 하고 남았습니다.

 

태풍 마이삭에 제대로 살아남은 생강밭입니다. 비록 손바닥만 하기는 하지만 생강 잎이 튼튼합니다.

종일 고추밭에서 씨름을 하느라 화초와 다른 작물은 손을 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해질녘 퇴근하여 고추를 가지러 왔기에 친정으로 가니 아이들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태풍 피해 없느냐고.

별 피해 없고 고추 땄다고 했습니다.

마이삭보다 더 강한 놈이 온다고 합니다. 아무리 강한 놈이 오더라도 텃밭을 집안으로 떠올 수 없으니 또 한 번 초토화되겠지만 사람 사는 게 다 이런 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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