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8일
다시 함안 단풍 나들이입니다.
함안 박물관과 이수정, 무진정은 가깝습니다. 함안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이 무진정과 고려동인데, 고려동은 고속도로로 왔기에 나중에 방문할 예정입니다.
무진정은 배롱나무 꽃이 예쁜 정자입니다. 배롱나무는 이수정에서 무진정으로 오르는 돌계단위에 있는데, 배롱나무 붉은 꽃이 떨어질 때가 가장 좋았던 것 같습니다.
한옥과 연못, 그 위에 소리없이 떨어지는 배롱나무 꽃은 한국의 정원의 멋을 다 부리는 듯한 풍경입니다.
무진정은 조삼(趙參)선생께서 후진양성과 남은 여생을 보내시기 위하여 함안면 괴산리 지금의 자리에 직접 지으신 정자로서 자신의 호를 따라 무진정(無盡亭)이라 명명하였다는 설과 조선 명종 22년(1567)에 무진(無盡) 조삼(趙參) 선생의 덕을 추모하기 위해 그의 후손들이 세우고, 선생의 호를 따서 무진정(無盡亭)이라고 하였다는 설이 있는데, 이수정을 무진 선생의 후손들이 함안천 물길을 돌려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보니 어느 게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단풍이 많이 졌습니다.
무진정이 저긴데 눈은 자꾸 떨어진 은행잎 단풍에게로 갔습니다.
이수정변에 감나무가 있었네요. 무진정 아래에는 무진정 조 선생 신도비(神道碑)와 孝子潭(효자담)이 있습니다. 이수정인 이 연못은 한때는 효자담이라 불리었던 것 같습니다.
효자담 옆의 암벽에 無盡亭 글씨가 있는데 출입이 금지였습니다. 지난해 무진정에 갔을 때 공사 중이었는데 지금은 이수정의 영송루(迎送樓)가 공사 중이었으며 주변도 어수선했습니다. 함안군이 코로나 19를 맞아 대대적으로 공사를 하는 모양입니다.
처음 무진정을 방문했을 때 이수정은 개구리밥으로 덮여 있었는데 그 풍경에 반하였습니다. 단풍이 끝물이라 반영도 제대로 담을 수 없어 입구의 부자 쌍절각으로 갔습니다.
정유재란 당시 적들이 조상의 묘를 파헤치자 無盡亭에서 북향 사배하고 스스로 자결한 어계 조려 선생의 6세손 조준남과 그의 아들 위 계선공이 1627년 정묘호란으로 전사하니 이 두 부자의 효와 충을 기리어 세운 전각입니다.
부자 쌍절각 옆에는 비바람을 맞고 있는 비석 하나가 또 있는데, 노비 대갑의 비입니다.
충노대갑지비(忠奴大甲之碑)라는 비는 정유재란 때 전사한 주인 조계선을 따라 죽은 노비 대갑을 기려 세웠습니다. 주인을 따라 죽어도 비바람을 맞고 있으니 노비의 신세는 면하지 못했나 봅니다.
노비 대갑의 비 옆에 비스듬한 안내판은 1889년-1893년 함안군수를 지낸 오형목 군수가 낙화놀이를 보고 지은 시가 있습니다. 함안군에서 방치한 걸로 보면 함안군수의 신분이 노비보다 못하다는 이야기가 되는 건가요?
부자 쌍절각과 노비 대갑의 비와 함안군수의 시비입니다.
이수정과 영송루입니다.
함안천을 안고 있는 3개의 수정이 있었으나 신작로를 만들면서 일수정과 삼수정은 지금 없어지고 이수정만 남게 되었다는 설과 무진 선생의 후손들이 함안천 물길을 돌려 만들었다는 설이 있는데, 함안의 이수정은 사월 초파일 낙화놀이로도 유명합니다.
불꽃낙화놀이는 조선 선조 때 이 지역 군수였던 정구 선생이 최초로 창시했다는 기록이 있고, 조선시대부터 쭉 이어져 오다가 일제 강점기 때 중단됐으나 1985년부터 재현돼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진동 태봉천의 불꽃낙화놀이와 같은 행사입니다. 태봉천 불꽃놀이 때 한 번 다녀왔는데 장관이었습니다.
- 진동 불꽃낙화 축제 다녀왔습니다2012.05.28
이수정에 반영된 무진정의 곡선이 보이는지요? 요즘의 칼라강판 지붕과 비교가 됩니다.
그 아래(위) 바위에 無盡亭이 쓰여 있으며, 옆의 비는 조삼 선생 신도비입니다. 배롱나무 꽃이 지고 단풍도 저물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무진정과 연못입니다. 無盡亭으로 가는 길도 길이 막혔습니다.
이수정입니다.
이수정 연못 가운데 작은 섬을 만들어 세운 정자를 '영송루'라 하며, 다시 교각을 세워 무진정으로 오를 수 있도록 조성하였습니다.
영송루(迎送樓)는 이곳에서 사람을 맞이하고 보냈다는 뜻이니, 영송루에서 맞아 무진정에서 즐긴 후 영송루에서 작별했겠지요.
이수정 위에 앉은 무진으로 갑니다. 영송루를 지나갔으면 더 좋았을 테지만 담장을 따라가는 길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無盡亭으로 가는 문은 動靜門입니다.
無盡亭은 조선 명종 22년(1567)에 무진(無盡) 조삼(趙參) 선생을 기리기 위해 후손이 만든 소박한 한국식 조경을 통해 전통적인 팔작지붕의 건물을 언덕 위에 사뿐히 올려 두었습니다.
無盡亭입니다.
얼라아부지가 그럽니다. 무진정 참 좋아하더라.
무진은 조삼 선생의 호며, 무진정은 경남 유형문화재 제158호로 지정이 되어 있습니다.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무진정은 팔작지붕으로 정자 가운데에 마루방이 있으며 주변에는 모두 누마루를 깔았습니다.
정면을 뺀 삼면과 마루방에 창호를 달았는데, 창호는 모두 열어 위로 올려 달아 놓게 되어 있기에 한여름에는 바람을 맞이할 수 있으며, 비바람이 부리는 날에는 창호를 내려 앞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바람이 많은 날이었는데 창호가 열려있었습니다.
지난해에 공사를 하더니 주련 해설 안내표지판이 있었으며, 조삼 선생에 대한 기록과 무진정 편액은 주세붕이 쓴 글씨로 추정하고 있는데, 주세붕 선생이 지은 무진정 기문도 있는데, 무진정 마루에 오르면 주세붕 선생의 무진정 기문 한글본과 원본 현판이 있습니다. 함안군에서 '여행 함안'으로 만들기로 작정을 한 모양입니다. 좋은 현상이지요.
창호를 열어 위로 들어 올린 무진정의 측면입니다.
이런 문을 '들어 열개'라고 하는데, 평상시 여닫이문으로 사용하다 필요시 창호 윗부분의 삼배목을 회전축으로 들어 올려 걸쇠에 거는 문으로 들문이라고도 합니다. 이 들문은 절간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눈에 거슬린 건 창호 위에 빗자루가 숨어 있었다는 겁니다.
무진정으로 오르는 계단 한 켠에 해태를 닮은 돌이 있습니다. 해태는 사자와 비슷하나 머리에 뿔이 있고 몸 전체는 비늘로 덮여 있는 해치(獬豸)를 이르며 상상속의 동물로, 시비(是非)나 선악(善惡)을 판단하여 안다는 상상의 동물 해태상은
고대 사회 때부터 봉건 군주의 기강과 위엄을 나타내는 상징물로 자리를 잡았는데, 낙향한 선비도 체면을 버리지는 못한 모양인 듯합니다.
들문 아래로 가을 나무가 보입니다. 여름날 누마루에 오르면 배롱나무 꽃이 뜰에 앉은 듯하기도 하며 내가 배롱나무 사이에 앉은 듯 하기도 합니다.
아쉬움에 담장 밖의 이수정을 다시 한번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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