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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고려동 유적지의 눈에 띄는 새단장과 그윽한 가을향기

by 실비단안개 2020.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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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8일

장춘사의 가을 풍경이 궁금했습니다. 장춘사로 가는 길에 고려동 옆을 스치기에 먼저 경남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장내마을, 고려동 유적지로 갑니다.

문암 초등학교를 지나는데 은행나무 단풍이 고왔습니다. 세워줄까요?

수목이 아름다워도 주변 풍경과 조화를 이루지 못 한다면 담지 않는 편이라 그냥 가자고 했습니다.

상의문 옆의 단풍 든 은행나무를 올려보니 은행이 아주 많이 달려 있었으며, 아래에는 누군가 은행 열매를 모아 두기도 했습니다. 텃밭의 작은 은행나무는 이 은행나무의 아기 묘입니다.

 

고려동 유적지 종택으로 가는 길입니다. 고려교를 건너면 자미고원의 600년 자화나무가 있는데, 이 계절이면 배롱나무의 매끈한 수피를 더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자미고원 맞은편이 고려동 종택이며, 솟을대문 앞쪽의 勿替門(물체문)을 들어서면 자미정(紫薇亭)입니다.

 

무진정과 마찬가지로 고려동도 달라졌습니다. 풍경이 변한 건 아니며 안내 표지판이 알기 쉽도록 되어 있었는데, 자미정 주련의 해설도 세워져 있었습니다.

 

종택은 여러 채의 기와집으로 되어 있으며 출입구가 따로 있는데, 안채로 들기 전에 있는 자미정(紫薇亭)입니다.

지난해 방문 때 꽃대궐로 변해있어서 기뻤는데 이제 가을 향기가 그윽했습니다.

 

안채입니다.

안채는 편액이 없습니다. 오래전 고려동을 처음 방문했을 때 재령 李 씨 종부를 만났던 곳입니다.
이 집은 한국전쟁 때 모두 불탔는데 주춧돌은 600년 전 그대로며, 담장은 안담과 바깥 담 이중 담(장)으로 탱자나무였지만, 새마을 운동으로 탱자를 뽑고 지금의 담장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580번지 내 위치한 고려동 유적지(지정 번호 : 기념물 제56호)는 고려 후기 성균관 진사 이오(李午) 선생이 고려가 망하고 조선왕조가 들어서자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이곳에 거처를 정한 이후 대대로 그 후손들이 살아온 곳으로 현재는 매일 새단장 중인듯합니다.

이오는 이곳에 담장을 쌓고 고려 유민의 거주지임을 뜻하는 '고려 동학'이라는 비석을 세워 논과 밭을 일구어 자급자족을 하였으며, 아들에게도 조선왕조에 벼슬하지 말 것과 자기는 죽은 뒤라도 자신의 신주(神主)를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기지 말도록 유언하였습니다. 그의 유언을 받든 후손들은 19대 600여 년에 이르는 동안 이곳을 떠나지 않았고, 이에 고려동(高麗洞)이라는 이름으로 오늘까지 이어 오고 있습니다.

고려동을 처음 방문했을 때 종부를 만나 여러 말씀을 들었으며, 후에 문은 닫혀있다가 어느 해부터 해설사가 있었으며 고택은 새단장을 했는데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현재 마을 안에는 고려동학비, 고려동 담장, 고려 종택, 자미단(紫薇壇), 고려 전답 99,000㎡, 자미정(紫薇亭), 율간정(栗澗亭), 복정(鰒亭)등이 있습니다. 후손들이 선조의 유산을 소중히 가꾸면서 벼슬길에 나아가기보다는 자녀의 교육에 전념함으로써 학덕과 절의로 이름 있는 인물들을 많이 배출한 이곳을 1983년 8월 2일 기념물 제56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습니다.

안채의 정지문이 열려 있으며 안방 문도 열려 있고, 곶감을 만드는 중입니다. 마루마다 반질반질했기에 사람의 향기가 나는듯했습니다.

 

안채의 정지입니다. 우리 어렸을 때의 정지와 비슷했습니다.

 

열린 문 안을 보니 오래된 장롱이 보였으며 마루에는 정지와 통하는 찬장이 있는데 이 또한 어릴 때 친정집 구조와 비슷했기에 낯설지 않았습니다.

 

시렁에는 큰 대바구니가 올려져 있으며 대봉감이 곶감이 되어 가는 중입니다. 가을 시골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긴 하지만 고려동에서 보니 색달랐습니다.

 

안채를 돌아가면 복정(鰒井)이 있고 뒤로 텃밭이 있습니다.

해가 잘 드는 곳이다 보니 갖가지 채소가 소담했으며, 단풍이 든 나무는 블루베리 나무입니다.

 

텃밭을 기웃거리니 해설사가 다가왔습니다. 그리곤 일행이 많으냐고 묻기에 남편과 둘이라고 하니 상추를 좀 솎아 주겠다고 했습니다. 텃밭에 상추가 있지만 호의를 거절할 수 없어 그러마라고 했습니다.

율간정(栗澗亭)에서 대봉감을 담고 있는데 해설사가 검정 봉지에 상추를 담아 들고 왔습니다. 감사히 잘 먹겠다고 하며 봉지를 들고 다녔습니다. 마침 경화 장날이었기에 집으로 오는 길에 편육을 사서 집에 와서 상추와 편육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

 

텃밭 옆에는 사당이 있으며 앞으로 석가산이 있습니다. 연못을 파서 가운데에 돌단을 쌓아 인물상을 세워두었는데 겨울을 앞둬서 그런지 연못에 물이 없었으며 주변에는 역시 국화가 피어 있었습니다.  보이는 건물은 곳간채이며, 굴뚝은 자미정의 굴뚝입니다.

 

고택에 흙이 있는 곳에는 채소나 화초가 있었습니다. 아래채의 모퉁인데 종택은 온통 국화 향기입니다.

 

계모당(跬模堂)입니다. 자미당 약간 위에 있으며 고택의 대문이 있어 마당을 걸어 안채로 갈 수 있습니다.

 

율간정 툇마루에는 깎다만 대봉감이 있었으며 옆의 감나무에는 사다리가 걸쳐져 있었는데, 안채에서 만들고 있는 곶감이 이 대봉감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신발을 벗고 올라야겠지만 이 사진은 오래된 돌쩌귀와 어울리지 않는 장석을 찍은 것입니다. 돌쩌귀는 오래되어 녹이 슬었는데 장석은 옛 문양 이기는 하지만 마치 새로 단듯했으며, 네 개가 아닌 세 개로 문양이 다 달랐습니다.

자미정의 문은 장석이 없었으며, 계모당보다 약간 아래에 위치하는데, 서열과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율간정과 모계정사 사이에는 출입문이 있으며, 모계정사(茅溪精舍)는 새단장 중이었습니다. 밭을 일구어 나오는 돌로 담장을 쌓고 있었는데, 해설사의 이야기가 후손이 발 벗고 나서서 새단장 중이랍니다.

 

햇살이 퍼지자 관람객들이 늘었습니다. 계모당과 자미정입니다.

 

자미정과 계모당입니다. 계모당이 자미정보다 약간 높습니다.

 

담장을 따라 걸었습니다.

 

안채의 뒤쪽, 텃밭이 있는 곳의 뒤로 마을 우물이 있으며, 산국이 만발했었습니다. 우물 뒤에 있는 집은 10년 전에 야생화와 약초를 심어 고려동을 찾는 이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싶다면서 집 앞의 밭을 가꾸고 있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은 그야말로 꽃대궐이 되어 있었습니다. 10년 전의 인연을 기억하지 못할 것 같아 넌즈시 보기만 했습니다. 흐뭇했습니다.

 

담장 안이 종택입니다. 율간정 뒤의 감나무가 보입니다.

제실 앞의 단풍이 고운 은행나무를 올려다본 후 다시 걸었습니다.

 

단장중인 모계정사가 보이며 대문인 청간문입니다. 대문 안의 빗장이 거북이입니다.

 

고려 종택 등 고려동의 대부분은 한국전쟁시 소실되었는데, 호상공의 생가로 알려진 이 주택만이 제 모습을 지키고 있으나 이마저 200여 년 전의 주택이라고 하는데, 10년 전 할아버지 한 분이 8대째 살고 있는 집이라고 했습니다. 당시보다는 손을 본듯했습니다.

 

고려동 앞에는 체험 농장이 있기에 목화가 궁금하여 잠시 들렸습니다. 목화가 하얗게 터지고 있었습니다. 기사에 보니 인력부족으로 목화를 따지 못 한다고 했었는데 이 농장도 코로나 19로 체험객이 많이 찾지 않는 모양입니다.

 

주차한 곳으로 가니 관람객들이 발길을 잇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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