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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이야기/벚꽃 · 웅천요(熊川窯)

웅천요(熊川窯)의 봄

by 실비단안개 2006.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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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낮게 드리웠고 웅천窯 뜰의 목련나무에는 풍경이 봄을 소리한다.

차사발은 가마에 하나씩 자리하고 웅천 차사발 사기장 최웅택 씨는 흙과 물과 마음을 주물러 가마를 매꾼다.

 

 

밤새 먹갈아 흰종이에 빼곡이 쓰인 반야심경이 세상 잡귀 모두 담아 장작과 함께 1200도가 넘는 온도로 하루밤낮을 태우며 가마안에서는 천변만화의 조화가 일어나는 고비를 맞는다고 한다.

 

불 냄새가 이웃동 2층까지 진동을 한다.

멀리 경주까지 나들이 다녀 온 막사발이 행인의 기척에 휴식에서 놀랄까 조심스레 다가갔다.

그저 막생겨서 막사발이라는 막사발,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막사발 예찬가이다.

 

평평범범(平平凡凡)한 모습이다.
무엇 하나 장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어디 한 군데 꾸민 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보다 더 심상(尋常)한 것이 없다.
전혀 하(下)치의 물건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좋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
범범(凡凡)하고 파란(波瀾) 없는 것, 꾸밈 없는 것, 사심(邪心) 없는 것, 솔직한 것, 자연스러운 것, 뽐내지 않는 것, 그것이 어여쁘지 않고 무엇이 어여쁠까.”

세계적인 동양미술학자 야나기 무네요시는 우리의 막사발을 두고 이같이 극찬했다.


‘막’ 생겨 먹은 듯, 평범하고 소박한 그릇 막사발.
수려한 형태도, 화려한 빛깔도 아니지만 그 속엔 자연의 기운이, 인간 삶의 이치가 은은하게 투영되어 있다.
한 점 욕심 없이, 자연을 범하지 않는 마음가짐으로만 진정한 완성을 이룰 수 있다는 막사발.
날렵한 맵시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잿물(유약)이 매끄럽게 발린 것도 아니지만, 은은하고 소박한 그 기운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평화롭게 만든다.
부드러운 곡선, 붉은 듯 신비로운 비파색, 생동감 넘치는 손자국, 단숨에 거침없이 처리된 굽의 당당함, 이슬 방울이 맺힌 듯한 매화피(梅花皮:그릇 굽 부분에 생기는 작은 물방울 모양의 결정)의 선명한 그 자태, 볼수록 오묘하다.

‘막’이라는 이름이 붙은 데서 느낄 수 있듯이 사실 막사발은 지금까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막사발의 ‘막’은 ‘마구’의 준말이다.
그 말은 ‘앞뒤 헤아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거칠거나 품질이 낮은’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막가다, 막걸리, 막깎기, 막일, 막말, 막되다, 막벌이꾼, 막살이, 막잡이 등에 붙은 ‘막’과 같은 뜻이다.
‘막사발’이라는 말은 도자기를 종류별로 분류하여 붙인 고유한 명칭이 아니라 그릇을 쓰는 과정에서 생겨난 명칭으로 보인다.
청자, 백자, 분청사기처럼 고유한 명칭과 용도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 필요에 따라 용도를 달리하며 다양하게 사용된 데서 붙은 이름이라는 것이 막사발 연구자들의 견해이다.
새것일 때에는 밥이나 국을 담는 그릇이었다가  오래 되어 때가 묻고 금이 가면 막걸릿잔으로 쓰였다가, 더 험해지면 개밥그릇도 되었다가, 완전히 깨지고 조각이 나면 결국 흙에 묻히고 마는, 서민들의 생활잡기를 통칭하는 것이다.
청자, 백자, 분청사기가 그 시대 지배계층의 상류문화를 대표하는 그릇이었다면, 막사발은 하층민의 문화를 상징하는 그릇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렇게 우리가 무시하고 냉대했던 막사발이 일본에서는 최고의 아름다운 자기로 인정받고 있으니, 놀랍고도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막사발은 고려시대와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다른 여러 종류의 사발들과 함께 ‘고려차완(高麗茶碗)’으로 통칭되면서, 16세기 무렵부터 이미 일본 무사들의 지대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조선의 막사발은 일본으로 건너가 ‘찻잔’으로 사용되며 ‘이도차완’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되었다.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일본에서 다도(茶道)가 정립되면서 막사발은 명예나 부의 상징이 되었으며, 훌륭한 막사발은 성(城)과도 바꾸지 않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가마에 불을 지피는 과정 역시 하늘의 뜻을 따르는 일이다.
밑불이 세면 굽이 갈라져 터지고, 중불이 세면 중간이 터지고, 상불이 강하면 그릇의 위쪽이 갈라진다. 시종일관 적당한 세기의 불을 땔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곧 중용의 도를 실천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막사발 굽 주변 밑부분에 물방울 무늬처럼 맺히는 매화피 부분은 물이 불의 온도에 따라 불규칙하게 녹아 응결되어 나타난 것으로 그 독특한 형태가 예술이다.
사람의 손길로 인위적으로 만든다고 절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인간의 준비를 끝마치고 조용히 자연의 결정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
바로 막사발을 빚는 일이다.
막사발을 완성시키는 과정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진리를 깨치게 하는 일이다.
오늘날 많은 도공들이 그 평범한 그릇, 막사발을 재현하기 위해 온 힘을 쏟고 있지만,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생긴, 평범하게 생긴 막사발을 재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마음을 비워야 하기 때문이다.
옛날 조상들이 막사발을 구울 때는 그야말로 욕심이 없는 상태에서 구웠을 것이다.
그저 서민들이 밥을 먹기 위해 그것을 빚었을 것이다.
때문에 그들이 굽는 사발은 무아무심(無我無心)의 상태에서 빚어지는 것이라 하겠다.
그것에는 기교도 없고 터득도 없다. 감히 ‘노리고 만든’것일 수 없다.


“인위로 만들려 하지 마라. 그것은 추하다. 자연을 범하려고 하는 짓은 바보짓이다.
지(知)는 개인에 속하지만 본능은 자연에 속한다.
본능은 불식(不識)이면서 다식(多識)이다. 본능이야말로 지혜보다 더 나은 지혜가 아닌가.
막사발은 숨어 있는 경탄할 자연의 지혜로 생겨난 것이다. 자연의 예지가 거기에 가담하고 있다.”


* 본문은 <조선 막사발 천년의 비밀>, <막사발에 목숨을 쏟아놓고> 등의
막사발 관련 서적과 각종 인터넷 사이트, 빗재가마 김용문 선생님의 도움 말씀을 김주윤님이 정리한 것이다.

 

가마에 불을 지폈으니 며칠을 기다려야 막사발이 빛을 본다.

방문한 '웅천요'의 웅천차사발 이야기는 다음편에 하고 오늘은 차사발窯에 앉은 봄과 막걸리 대신 내리는 봄비를 차사발에 받아 마시자.

 

 

 

 

 

 

 

 

 

 

 

 

 

 

 

 

 

 

 

 

 

가마옆 앵두나무에도 봄비는 내리고 오갈데 없어진 막사발은 깨어지고  으깨어져 계단을 만든다.

여인네 가슴에도 엎어진 시루에도 봄비는 내리고 내리는 빗방울은 낮은 웅덩이에 막사발만 한 동그라미를 그린다.

 

 

막사발 - 김종제

 

그래, 너희들 몇몇 가진 자들의
안방에 고이 모셔둔
백자도 청자도 아닌 것이
어디서 어떻게 태어났는지
개똥인지 언년인지 이름도 모르고
낯도 설다
아무짝에도 쓸 데가 없는 무기라던가
원하지도 않던 불구덩이에서
잔뜩 달구어져
잘못 태어난 자식과도 같이
버리기도 뭐 해서 그냥 내버려 두다가
제대로 병구완 받지도 못해
황달기 오른 얼굴에
얼룩지고 껄그럽고 잘 부서지는
우리네 민초(民草)와 왜 이리 닮았을까
그저 막 쓰다가
밥도 못 받아 먹고 굴러 다니는 그릇
일찍이 조실부모하고
먹고 살기 위해 사기막에 들어가는 것이
어찌 우리 민족이 아니겠느냐
할 줄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으니
물이나 져 나르다가 진흙이나 개다가
발물레로 꼬박을 올려놓고
손가락을 집어넣어 종지 한 개를 만든다
숫돌에 간 낫을 여러 번 물그릇에 담갔다가
물그릇에 쇳가루가 잔뜩 들어가
검으스름한 빛깔이 되면
붓에 찍어 환을 치고
그늘에 잘 말렸다가 약을 입혀 놓아
장작불로 때다가 불을 낮춰 구우니
슬적 빗겨간 자리에
매화나무 버짐무늬 같은 반점
투박하면서도 은은하고 그윽한
서민의 숨쉬며 살아가는
저 밥그릇이었다가 막걸리잔이었다가
체념과 달관을 익힌 후에
햇볕 잘 들고 바람 시원한 어느 집 마당에
깨어져 흙으로 돌아가는 막사발
어찌 우리네 백성(百姓)이 아니고
그 무엇이겠느냐.

 

 

 

 

 

 

봄비 내리는 밤, 그대 마음 몇백년 한 간직한 가마만큼 뜨거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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