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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이야기/흑백다방 그리고…

10월, 흑백의 수요일 밤

by 실비단안개 2006.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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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개인의 감정은 철저히 무시한다.

 

내가 가는 다방은 '흑백' 하나이다.
시월 - 수요일 - 올케는 나를 위하여 긴스커트를 입고, 어두운 국도를 힘껏 밟았다.
정일근, 김승강님의 시를 만나고 피아노 연주를 듣고, 장구 북소리가 둥둥거리고 -- 시인의 목소리로 시가 낭송되었다.

아름다운 계절, 좋은 사람들, 그리고 흑백 --

 

흑백 - 10월 18일

와 함께하는 김성관의 노래판이 벌어졌다.

 

 

 

 

섬. 그리움을 위하여 - 정일근

 

참담한 파도소리로 둘러앉은 이 그리움

물이랑 헤친 손톱마저 다 닮아 빛이되고

잡힐듯 아득한 연가여 육지는 너무멀다

물결휩쓴 해벽마다 쓸쓸히 이는 노래

노래는 맨발이 되어 뭍으로 흘러가다

눈물도 바닥난 동해섬이 되어 떠돌고

비늘떼로 부서지는 바람살 꺽어안고

빛나는 아침향해 홀로 누운 유배의 잠

천형에 아린 그리움 물소리로 풀어지다.

 

 

 

 

인동초 - 림길도 시, 박지현 노래

 

어릴 적 그때는

치맛자락 붙잡고

산길 가다가

인동초 꽃을 첨 보았습니다

이제는 산기슭

인동초 넝쿨

그 속에 피어나는 꽃같은 환상

당신은 인동초꽃 닮은 여인입니다

인동초 넝쿨처럼

휘감기던

아름다운 사랑의 기억은

당신의 끝없는 사랑입니다

실바람에 실려오는

인동초 꽃향기는

내 평생토록 코끝에 묻어버린

은은한 당신의 향기입니다

하이얀 인동초꽃

하나 따다

입에다 물고 보니

어머니 당신의 달콤한 젖 맛입니다

하얗게 떨어져 버린 꽃송이는

恨으로 가슴 찢기우는

내 그리움의 조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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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롱의 말 - 이달균

 

안방에 놓인 장롱은 고집으로 가득 차 있다.
비녀를 빼지 않은 어머니의 팔십 평생
오늘도 오동나무는 안으로 결을 세운다.
손이 귀한 집 손자는 언제 보냐고
벽오동 한 그루를 담장 아래 심었을
외갓댁 어른들 한숨이 손끝을 저며온다.
대동아 전쟁이란 흉흉한 소문 속에
감춰둔 놋그릇마저 기차에 실려가고
처녀는 장롱 속에서 며칠을 보냈다.
일곱의 탯줄을 끊은 가위며 실꼬리며
눈치보며 세들어 산 좀들의 흠집들과
닦아도 추억이 되지 않는 삭아가는 소리들
딸들은 내다버리자고 무심코 말하지만
피란 간 식구들을, 아버지의 임종을
묵묵히 지키고 기다리며 예까지 왔노라고
솜씨 있는 장인이 만든 오래된 악기의 만가지 소리와 만가지 사연들을
너희가 어찌 알겠느냐고 안방에 앉아 일러준다.

 

 

 

 

 

 

꽃 필까 두려운 목련 - 김승강

 

제 몸에서 꽃 필까 두려운 목련

지난밤 바람이 핥고 간 자리

행여 열꽃으로 필까 두려운 목련

나는 사랑하지 않았다네

사랑한 적이 없다네

스치는 바람에

코끝밖에 내준 것이 없다네

제 몸에서 꽃 필까 두려운 목련

누구나 처음에는

제 몸에서 나온 똥이 낯설듯

저만치 발 아래로

제 하얀 꽃잎으로 얼른

뒤 닦고 선 목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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