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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이야기/흑백다방 그리고…

흑백에서 보내 온 편지

by 실비단안개 2006.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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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에서 편지가 왔습니다.

제목은 '[since1955 흑백] 2006.봄 경남신문 기사 옮김'이며, 유경아님이 보내 주었습니다.

 

 

  아직도 그곳엔 낭만이 흐른다(위사진 밖에서 바라본 '흑백커피숍(왼쪽)'과 내부)


  군항도시 진해.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아니 훨씬 전부터 그랬다.

  경찰서 건물이 허물어진 것 외에는 중원로터리를 둘러싼 우체국이나 도서관 등 거의 변함이 없다. 최근 도립미술관에서 열린 `유택렬­ 샤머니즘적 조형언어' 전을 다녀온 후 문득 진해를 들러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지 근 한달만이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고개를 내미는 수십년 된 벚꽃처럼 역시나 `그곳'도 여전했다. 도내 대표적인 서양화가로 지난 99년 76세의 나이로 타계한 유택렬 화백이 평생 살아 숨쉬던 곳.  바로 `흑백' 이다. 다소 낡은듯한 하얀색 벽면의 2층 건물. 창문 한편을 초록색으로 덮은 담쟁이순과 `Since 1955 흑백` 이란 글귀가 세월을 느끼게 할 뿐이다.


 

  # 시공초월한 문화사랑방 `흑백'

  공간 안에 들어서자 순간 시계바늘이 거꾸고 돌아가는 듯하다. 마치 흑백영화의 한 장면이 연상된다.(유택열 화백의 작품이 걸려있는 흑백커피숍 내부) 오래된 피아노, 구식 소파, 다탁으로 사용하고 있는 옛날 할머니들이 쓰던 서랍장, 아직도 클래식이 흘러나오는 듯한 뮤직박스. 현대적인 냄새가 나는 거라곤 에어컨과 뮤직박스에 진열된 CD들 뿐이다.  감상에 젖기도 잠시, 일련의 손님들과 주인으로 보이는 두여인이 반긴다. 흑백을 운영하고 있는 유화백의 딸 경아(40)씨와 그의 사촌언니 배애련(46)씨다. 1층은 주로 애련씨가 관리를 하고 2층은 경아씨가 피아노 아카데미로 운영하고 있다. `흑백' 을 제대로 아는 사람들은 `흑백다방' 이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한다. 그냥 `흑백' 이라고 부른다. 단지 차 마시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화백은 칼멘다방을 인수해 지금의 흑백으로 개명하면서 1층에선 매주 SP레코드 판으로 콘서트를 진행하고 2층에서 작품활동에 몰입했다. “흑백은 반가운 손님을 의미하는 까치의 색깔에서 따왔대요.”  경아씨의 설명이다.....당연히 예술과 문화, 낭만과 추억이 오갔음은 짐작하지 않고도 알 수 있는 사실. 게다가 고미술품 수집가였던 부인 이경승(93년 타계·특히 목공예품에 있어서 서울의 전문가들이 감정을 의뢰해 올 정도로 안목이 탁월했다)씨와 미술전시와 공연, 시낭송회 등 문화 사랑방으로 역할을 톡톡히 한 곳이었다.

  최근엔 사촌언니 애련씨가 소속된 극단 고도의 단원들이 정기 공연을 올렸고, 지금도 피아니스트인 경아씨가 매월 첫째·셋째주 금요일 8시 음악감상회인 `음악이야기'와 `작은 피아노연주회' 를 열고 있다.

 

흑백은 오프라인 뿐만 아니라 온라인(http://eroom.korea.com/black­white)에서도 존재한다. 흑백과 관련된 소식, 따뜻한 이야기들과 공연, 전시, 연주안내 등이 꾸며져 있다. 이처럼 흑백은 과거나 현재나 시공을 초월한 하나의 문화공간으로 존재하는 셈이다.
 
  # 숯 같은 사랑, 불꽃 같은 예술가

사실 오늘날 유화백이 미술가로서 명성을 갖게된 건 그의 부인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흑백도 사실 어머니가 운영을 맡고 아버지는 화실에서 그림작업만 하셨죠. 본지가 93년 유 화백과의 인터뷰를 통해 보도한 `예술인 예술혼 ­유택렬' 편에서도 “유택렬은 1961년 이경승씨와 결혼함으로써 생활의 안정을 되찾게 되며 부인의 내조에 힘입어 창작에 심혈을 쏟아 다수의 작품을 제작한다” 고 당시 부인의 공을 높이 사고 있다.  이 때부터 그의 작품경향도 달라진다. 황원철 도립미술관 관장은 “진해에 정착한 이래 최초에는 북에 두고 온 홀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괴로움, 고향을 그리워하는 나머지 그의 작품 속에 가족 고향산 등의 소재가 등장했지만 이후에는 생명과 기쁨을 다룬 작품들이 많다”고 했다. 꺼지지 않고 불씨를 늘 남기는 `숯같은 사랑' 이 이룬 위대한 예술의 힘이 아닐까. 유 화백은 사실 미술에만 소질이 있었던 게 아니다. 그는 다재다능했다. 흑백의 인테리어만 봐도 안다. 정사각형 흑백 바둑판 모양의 천장과 뮤직박스의 덧문, 주름진 나무벽면으로 음향반사판을 만든 건 탁월한 안목이다.  어디 그뿐이랴. 그는 지독한 클래식광이었고, 20대 시절 독학으로 익힌 바이올린 연주 실력은 수준급이었다.  유화백은 그 외에도 승마, 축구, 단거리 달리기 등 운동에도 아주 능했다고 한다. 아마 북방 출신의 호방한 남자다움과 한번 몰입하면 끝까지 매달리는 그의 성격이 불꽃 같은 삶의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지레 짐작해 본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던가.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이름 `유택렬', 그의 이름보다 더 유명한 `흑백'. 그가 남긴 커다란 흔적이다. 글=최승균기자 july9th@knnews.co.kr

 

  ★ 유택렬 화백은?= 1924년생. 함경남도 북청에서 출생으로 진해와는 해방 때 군생활을 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월남 이전에는 이중섭, 유강렬, 한묵 등과 금강산 스케치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6·25전쟁 때 월남해 진해에 정착해 진해중·고, 진해여중·고 등 교직에 있으면서 박석원, 김미윤 등 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흑백에서 57년 진해에서 첫 전시회를 가진 이후 50여년간 경남의 추상미술을 선도해 온 작가다. 그는 평소 익힌 추사체와 전통적인 토속신앙 세계를 특유의 미의식으로 재구성해 독자적인 양식을 구축했다는 평가다.  현재 그의 작품 600여점이 도립미술관으로 옮겨져 있으며 이중섭으로부터 물려받은 `화구통'과 생전에 애지중지하던 `독일제 카메라', 손수 그림을 그리고 빚은 도자기 작품, 손수 조각한 벼루, 바이올린, 드로잉 소품 등이 유품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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