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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꽃의 말 - 박옥위
나는 늘 신선한 아침을 열고 싶어요
트럼펫 소리로 유월아침햇살을 불어내어
싱그러운
싱싱
싱그러운 아침을 열고 싶어요
사람마다 다 할 일이 있듯이 싱싱 싱그러운 아침을 여는 것이 내 사는 방식이지요
그리움을 감아둔 꽃 채를 풀 때 들리는 금속성의 말을 아세요?
한번도 듣지 못했다고요
거짓말은 아니지요
나는 첫 잠 깰 때 나팔을 불지만
몸도 맘도 너무나도 여려서 당신의 눈 흘김에도 쉬이 진답니다
그러나 내 눈은 총명해서 나를 바라보기만하면 누구나 거짓을 못하지요
보랏빛이거나 하늘빛이거나 분홍빛이거나 진홍이거나
가느다란 전선을 타고도 나는 발발 기어 올라가 나팔을 불며
새벽을 열거든요
녹슨 철조망을 붙들고 빙빙 돌며 기어 올라가
한꺼번에 마흔 개의 나팔을 불려고
부푼 꽃 채를 펴려할 그 때
빠암 빰빰빰 빠빠빠람 빠 빠 빰빠람---
새벽을 깨는 유창한 트럼펫 소리를 들었지요
철조망 안에서 느닷없이 들려오는 소리, 그것은 내가 지금껏 불던
소리의 큰 울림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은
낮 열두시의 그림자처럼 절망의 발바닥에도 빛 한 조각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까닭이지요
썩은 풀에서 싹이 무성히 자라듯 고통의 뒤편에는 생명의 싹이 꿈틀대고 있지요
그때 신병들의 힘찬 발걸음들이 착착착 지나갔지요.
행복했지요. 그러나 나는 우렁찬 소리로 울고 싶진 않아요.
나는 여리고 가엾은 나팔꽃이니까요
가장 여린 목소리가 먼저 하늘에 닿는다는 것을 아세요?
가장 여리고 작은 것들의 소리가 하늘에 닿아 풀잎의 이슬로 내려온다는 것을?
나는 아침마다 나팔을 불어요
신선한 아침을 그대가슴에 놓아 드리고 싶어요
새 아침입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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