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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신지(民信之)는 과연 누구일까요?

by 실비단안개 2007.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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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blog.daum.net/mangch-com/3256896

 

 물고기의 맘 속에 들어가는 것도 사람이다.

 

세상 참 많이 변했지요?  표면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이미 생산수단을 놓고 자본과 노동을 구분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따지고 보면, 상징자본이 지천으로 널려 있습니다. 특허, 면허, 국가자격증.. 흔히 지식노동자라는 용어를 쓰지만  무형의 생산수단을 지녔다는 점에서 지식자본가라는 표현이 오히려 더 정확할지도 모릅니다. 내가 가진 지식기반을 어떻게 보느냐, 이건 순전히 교육과 의식화의 문제지요. 그런데 요즘 세상에 이런 계급적 자각이 먹혀듭니까?

 

영세자영업자만 해도 그렇습니다. 생계형인데도, 노동자라는 자각보다는 사장물이 들어 있기가 태반입니다. 그러다보니 기현상이 벌어집니다. 현 정권의 헛발질에 대한 반발 심리가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당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후보와 당의 지지로 나타납니다. 참고로, 우리나라 영세자영업자 분포는 경제활동인구의 30%를 넘습니다. 기가 막히지만, 이런 현상은 노무현이 진보적이라는 착각이 만들어낸 허상이요 허위의식입입니다.

 

따라서 참여정부의 공과 여부를 떠나, 그 또한 신자유주의의 맹신자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부터 밝혀야, 앞으로 길이 보입니다. 무엇이 대안인가 찾을 수가 있습니다. 더 이상 헛다리짚지 않습니다. 신자유, 이게 사실 있는 사람에겐 계속 신천지를 여는 것이지만  없는 사람에겐 신기루나 마찬가지입니다.

 

대기업이나 재벌은 그렇습니다. 경쟁력이라는 미명 아래 작은 정부를 외치며 제발 간섭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경영권 방어라든지 자신에게 불리하면 정부가 적극 나서서 보호해 달라 합니다. 비정규직 법안처럼 타인의 자유와 권리는 제한하는 반면, 자신은 입맛대로 자유를 선별합니다. 신자유주의는 이렇게 강자의 논리를 이율배반적으로 관철하는 도구로 작동합니다.

 

무능한 정부는 한 술 더 뜹니다. 한미FTA처럼 농업의 희생 위에 장밋빛청사진을 펼치지 않습니까?  제대로 개혁하지 못한 내부 모순을 외부충격으로 치환하는 것이지요. 대연정의 제2버전입니다.

 

그런데 그 유혹의 미끼라는 것이 가관입니다. 싼 값입니다. 싼 값에 쌀 사먹고 쇠고기 포식하고 뭐 이런 구상유취의 것들입니다. 당장은 싸지만 언제 부르는 것이 값이 될지도 모르는데, 마치 없는 사람을 위한 천국이라도 도래하는 냥, 개방과 세계화만이 살 길이라고 떠듭니다. 그러나 어떤 개방인지 실체를 알면 숨이 턱 막힙니다. 말이 세계화지 국가주권을 포기하고 미합중국과 경제합방하는 것입니다. 가진 자의 투전판에 공공성과 공화의 가치를, 국민주권을, 한 방에 내던지는 꼴입니다. 이대로는 안 됩니다.

 

얼마 전,  미국의 의료보험제도 때문에 죽은 아이에 대한 기사를 보셨겠지요? 자영업자들은 치과보험료까지 포함해서 월 105만원을 납입해야 의료보험혜택을 받을 수 있더군요. 그러다 보니 충치를 제때 치료하지 못해 사망하는 어린이까지 생겨나는 것입니다. 얼마나 더 비싼 값을 치러야 앞으로 도래할 FTA 천국의 실상을 제대로 보겠는지요.     

 

건강한 글로벌 기준은 이런 것입니다. 혹시 쿠바의 '맨발의 의사들' 보셨는지요?  이들이 진정 세계를 누비는 것입니다.  이들은 어떤 곳이라도 갑니다. 돈이 되는 곳을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갑니다. 투자의 기준이 다르고 삶을 보는 눈이 다릅니다. 대안의 싹은 이런 역발상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전기 수도 교육 보건 의료 따위 공공서비스 영역은 상품으로 보면 안 됩니다. 공공 인프라는 국민주권의 영역입니다. 어릴 때부터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는 공공교육의 장이 절실한 까닭입니다. 

 

그런데 가짜가 판을 칩니다. 제 자식을 명문사립초등학교로 보내기 위해 위장전입까지 한 후보가 버젓이  '자율형 사립학교'를 내세웁니다. 이는 귀족학교에 다름 아닙니다. 부의 세습화를 다지는 초석에 지나지 않지요. 그런데도 오히려 없는 사람, 서민들이 그런 가짜 미끼를 덥석 뭅니다. 무조건 지지합니다. 그동안 별 뾰족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냥 막연한 믿음에 사로잡혀 무슨 부흥회처럼 삽만 들면 개발신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믿습니다. 첨단 정보산업화 시대에 말입니다. 

 

정말 안타깝고 웃기지 않습니까?  하필이면 이런 양극화 현상을 만든 개발독재의 주범이자 수혜자에게 미래를 맡길 지경에 이르다니. 그러나 또 다른 편에선 후안무치, 어느 누가 되도 신자유주의를 금과옥조로 떠받드는 한, 고용 없는 성장과 양극화는 피할 수가 없는데도, 이렇게 만든 주역들이 다시 모여 말의 성찬을 벌립니다. 자신만은 다르다고 우깁니다. 가짜 뒤에서 부끄럽지도 않나 봅니다. 무늬만 통합신당으로, 더군다나 쪽 팔리는 대리경선으로 말입니다.  

 

뭐가 달라지겠는지요? 대체 무엇을 바꾼다는 것입니까? 당신들의 반한전선은 근거박약입니다. 한 마디로 가짜 반한전선입니다. 진짜 반한전선을 원한다면, 한나라당과는 분명히 다른 정체성을 보여줘야 합니다. 자본중심이 아니라, 민노당과 연대 지점을 찾을 수 있는 '사람중심'과 같은 키워드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중심은 노동중심을 뜻합니다. 그러면서도 기업과 반하지 않습니다. 투자중심과 통합니다. 그래서 진짜경제가 말이 됩니다. 자본주의에서 구할 수 있는 상책입니다. 이런 식으로 진짜경제가 말이 되니까, 투기나 일삼으며 경제를 팔아먹는 후보와 진짜 반한나라당 전선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더 이상 기대할 것 없는 정치판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희망을 보는 것입니다. 남은 것은, 이를 알리는 것입니다. 사람중심을 이번 대선의 중심에 뿐만 아니라 지속가능한 운동으로, 삶의 중심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중심을 만드는 것이 무엇입니까? 입에 발린 소리야 누구나 다 하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국가경영을 담보하는 그릇입니다. 어떻게 사람중심을 만들지요? 과연, 무엇이 사람중심을 만듭니까? 

 

답을 위해 논어를 잠시 빌리겠습니다. 자공이 공자더러 묻습니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 세 가지가 무엇이냐고, 아무래도 자공이 좀 짓궂었나 봅니다. 세 가지 가운데 하나를 버리라 해서 가장 먼저 군사(兵)를 버리고 나니, 둘 중 하나를 또 버리라고 조릅니다. 경제(食)와 백성의 신뢰(民信之) 가운데 말이지요.

 

짐작하셨겠지만,  백성의 신뢰(民信之)가 최종후보로 남습니다. 정치는 곧 신뢰라는 것이지요.

 

신뢰를 잃으면 아무 것도 못합니다. 그래서 이목지신(移木之信)이라는 고사까지 나오지 않았습니까? 가짜 희망은 이제 길을 비켜주시기 바랍니다. 참여정부 5년으로 족합니다. 커튼콜 없습니다. 지금도 신뢰가 추풍낙엽처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우토로 지원에 대한 번복, 소말리아 납치선원 방치, 어떤 명분으로도 이미 떠난 민심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정파로 물고 뜯고 갈라 선 지지자끼리 따로 놉니다. 한나라당에 맞설 통합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거 못 읽거나 안 읽으면 대국민사기극 2막 되겠습니다. 

 

진짜 희망은 민신지가 만드는 것입니다. 본선에선, 민신지가 최종후보입니다. 그 민신지를 누가 가지고 있습니까? 더 늦기 전에 민신지를 전면에 내세우십시오. 그러면 희망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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