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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께 즐거우면 더 좋지 아니한가!
고향 이야기/진해 식물원

나무의 혼이 깃든 이를 만나는 즐거움

by 실비단안개 2008.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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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품성을 닮은 이를 만난다는 건 정말 즐거운 일입니다. 더구나 그에게서 풀의 냄새나 나무의 향이 난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 이는 경험으로 미루어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아주 특별한 재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렇게 봄빛으로 변하여 가는 세상을 보노라면 문득 그런 이를 만나고 싶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풋풋한 땅의 향기를 풍기며 봄비가 오기 시작하고 그 빗속을 불현 듯 누군가 달려 와 줄 듯 한 마음이 생기면 우리는 이미 마음으로 봄을 앓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낙동강의 물줄기가 남녘으로 달려온 이를 맞이 해서도 여전히 잔잔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불빛들이 침잠한 수면은 고요하지만 김해공항이 지척인 이곳은 오래전 가야의 12왕국이 번영을 누리던 역사의 공간임을 조용히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나중에 이곳에서 촬영한 ‘가야’를 따로 포스팅을 하기로 하고 가락국의 땅 김해를 거쳐 진해로 넘어갔습니다. 사실 가야의 역사 속에서 보면 진해도 일정 부분은 가락국에도 속한 지역입니다.

 

 

이미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지만 전화로 길안내를 받아 간 진해식물원의 배일규 원장님 댁은 따스한 정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나무의 향기와 풀내음이 온화하게 지친 방문자를 맞아 주었습니다. 골목길을 걸어 나오셔서 한참 어린 초행자를 반갑게 맞이해 주시는 모습만으로도 배일규 원장님의 자연을 닮은 품성을 느낄 수 있었는데, 오전부터 출발을 했느냐 하시며 도착하면 파전에 동동주로 한 잔 나누자 하시기에 가까운 곳에 민속주점이 있는 줄 알았더랬습니다.

그런데 댁에서 미리부터 준비를 하고 기다리신 겁니다. 벚꽃주와 군항주를 냉장고에 채워 놓으시고 문어를 데쳐 준비를 해 놓으신 것만으로도 부족하셔서, 사모님께 파전을 또 손수 부치시게 하셨습니다.

주전자를 내 오셔서 벚꽃주를 따르시더니 잠시 안주를 가져 올 테니 기다리시라며 밖으로 나가시기에 처음에는 마중을 나오셨던 슈퍼로 가신 줄 알았습니다.

 

 

밖으로 나가셨던 원장님께서 멋진 분재를 안고 들어오셨습니다.

 

“여기 안주입니다.”

 

절로 탄성이 나왔습니다. 남녘이라 분재를 방안에 들이지 않으시고 마당에서 가꾸시는데 찾아 온 객과 나누는 술상 앞에 분재를 내 놓으시는 모습이라니

 

그런데 이걸로 끝이 아닙니다.

원장님께서 안고 오신 분재를 내리시기도 전에 사모님께서 작은 원형의 찻상을 주방에서 들고 나오셔서 술상 옆에 내려놓으셨습니다. 그제야 분재는 따뜻한 방바닥이 아닌 열기가 차단 된 소반 위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부창부수(夫唱婦隨)’ 란 이 말이 두 분에게 딱 들어맞는 말입니다.

그러고서야 문어를 내 오시고, 김치와 백김치, 파전이 나오는데 어느 것 하나 간과 맛이 덜하고 넘치는 거 없이 딱 알맞다는 말로 밖에는 표현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시원해야 할 것과 칼칼하며 깊은 맛의 어우러짐, 그리고 방금 데친 문어의 흐물거림이나 질기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얼린 것도 아닌 상태로 최상의 정성과 연륜이 느껴지는 맛 앞에서는 ‘맛있다’는 말이나 ‘맛이 근사하다’는 말은 그저 평범한 수식어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인자하시고 자상하신 성품은 이미 나무와 풀의 성품을 닮았다는 이야기로 여러분에게 소개를 해 드렸는데, 그런 분과 나누는 술잔은 이미 3일째 마시는 술입니다만 왜 그리 달던지 금방 몇 통의 벚꽃주와 군항주가 비워졌습니다. 사모님께서는 염려스러우신지 식사를 내 와야 하지 않겠냐 하시나 전 이미 식사를 할 염치가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더 염치가 없어 질 일이 생겼습니다.

한 순배의 술자리가 돌아가는 중에 얼마나 많은 나무와 풀의 이야기들을 나누었을까요. 원장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 우리 정 선생 이왕 이리 만났으나 도원결의를 맺세.”

 

군항주와 벚꽃주로 백두옹이 된 풍난과 청솔 분재 앞에서 형과 아우로써의 결의를 맺게 된 것입니다.

 

 

형제의 결의를 맺었다고는 하지만 어찌 제가 형님 앞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겠습니까? 밖으로 나가 보니 넓은 마당엔 온통 소사나무와 소나무 등의 분재가 가득히 자리를 잡고 있더군요. 그 중에 현애로 가꾼 소나무를 안고 들어오니 형님께서 “우리 아우가 현애를 아는 걸 보니 정말 분재를 아시네.”하십니다.

부끄러운 노릇입니다만 형님께서 다시 자상하게 그 분재에 얽힌 사연을 말씀 해 주시더군요. 낚시를 가신 중에 태풍에 상한 연필만 한 소나무가 죽지는 않았지만 위태로워 주머니에 넣어 오셨는데 30년이 넘어서다 보니 이제 이렇게 함께 세월을 지워 간다 하십니다. 간혹 분재를 전시하는 곳에 가 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분재의 묘미인 고태(古態:故態)를 내기 위해 억지를 부린다는 걸 말입니다. 하지만 사진에 보이 듯 형님께서 소장하신 분재는 자연 속에서 상하여 생긴 상처가 세월의 흔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어쩌면 이미 형님께서 안스러움을 느끼시고 가져오시게 한 동기부여의 상징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사는 모습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하지만 군자의 모습으로 사는 일만큼 고되고 어려운 일이 없습니다. 만도 안 찼는데 억지를 부리는 이들을 만나면 사람은 질립니다. 하지만 무량한 품격을 지니신 분께서 청빈함을 보이면 절로 끌리게 마련인 것이지요. 무량이 무엇입니까? 바로 무량수입니다. 청빈은 반대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수인 청정에서 나온 말입니다.

가득 찬 덕(德)과 품격(品格)을 지니고 있으면서 한없이 스스로를 낮추는 모습!

그 모습이 참 어른의 모습이요. 참 군자의 모습이 아니겠는지요.

 

 

아침이 되었습니다.

낯 선 곳에서 정말 불편함을 모르고 몸을 편히 쉬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하게 말씀을 드리면 전, 전 어지간한 식당의 음식을 잘 못 먹습니다. 입이 까다로워 그런 건 아닙니다. 대부분의 식당들이 자신들은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하면서도 실제로는 많은 조미료를 사용하는데 형수님께서는 정말이지 제대로 맛을 내시는 분이셨습니다.

해장을 하라시며 차려 내신 떡국은 까끌한 입안에 떠 넣는 순간 처음엔 인사로 한 수저 떴었는데 금방 한 대접을 다 비웠습니다.

거기다 국물 시원한 백김치!

 

식사를 마치고 진해식물원으로 출발하기 전 마당으로 나오니 어제 술안주 되어 주었던 분재들이 어느 틈엔가 모두 제자리에 앉아 있더군요. 여쭈어 보니 어젯밤에 아드님이 그리 했답니다.

 

 

뉴스로는 미리 들었지만 3월 3일 아침 8시 14분의 남녘 하늘은 해가 황사로 가려져 있습니다. 만약 형님이나 형수님께서 베푸신 정성과 후의가 아니었다면 역시 인연 탓으로 하늘을 원망하였겠지요.

그런 원망스러운 하늘을 그나마 전혀 개의치 않고 기분 좋은 아침으로 만들어 주신 형님과 형수님께 진심으로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런 듯싶습니다. 해도 그 뜨거운 열기를 감춘 까닭이, 남녘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추운 곳에서 찾아간 객에 대한 배려로 황사 속에서 제 스스로를 낮추었나 봅니다.

 

 

지난밤 저리 넘어지지 말라고 결속시켜 놓은 분(盆)을 끌러 들고 방으로 들어갔음에도 분이 깨질까 염려도 하지 않으시고, 무례도 탓하지 않으시며 외려 정성을 다 하신 분재를 알아 준 마음을 고마워하시며 형제의 인연을 맺자 하시던 인품을 닮은, 정말 그대로 쏙 빼 닮은 분재입니다.

봄빛이 서서히 들어가는 모습을 아침에 대하니 아직은 앞으로도 좋은 형님을 모실 수 있는 복을 받았구나 싶습니다.

 

 

형님 댁 앞의 청보리 밭입니다. 남으로 바다를 향하여 낮은 산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 끝없이 펼쳐진 풍경은 예사롭지 않습니다.

 

 

사진 오른쪽 「초아당(草芽堂)」

 

형님 댁의 집안 꾸밈이 인조목이라 많이 속 상해, 우리의 한옥 느낌을 접목시켰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지난밤 나왔습니다. 댁의 현관에는 이렇게 풀의 싹이 있는 집이라는 옥호를 세겨드리고 말입니다.

우선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일이 이런 현판을 세길 수 있는 일과 이름 짓는 일이겠기에 형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또한 전화로 형님께서 하시는 일과 잘 맞을 듯 싶어 지은 당호라며 연락을 드렸습니다.

여기 우선 그림으로 보여드리니 다시 연락을 주시면 각(刻)을 좋은 나무 구하여 해 가지고 찾아 뵙겠습니다.

 

 

잠시 생각하여 봅니다.

진해시에서 과연 자신들의 고장에 이토록 어지신 분이 계심을 알고나 있을까요? 이 분들이 계심으로 하여 진해의 정신이 지켜지고, 진해를 더 많이 아끼는 이들이 찾게 할 수 있으며 번영을 추구할 수 있는 일인데 과연 얼마만큼이나 이런 분들께 생전에 영광을 돌려 드릴까 싶습니다.

형님께서 날씨만 따뜻하다면 마당에서 한 잔 하면 좋은데 하신 말씀이 떠올라 다시 생각 되어진 건, 형님 댁의 대문 밖 한 귀퉁이에 진해의 자랑 벚나무 한그루 멋진 걸로 심어 가지가 낭창거리며 담장 넘어 마당을 들여다보게 하고, 대문 앞 바로 이 보리밭이 시작하는 자리에 몇 그루 그리 크지 않은 소나무를 심어 사계절 푸르름을 지킨다면 더 오래도록 이 고장의 문화인으로, 어지신 어른으로 고장을 알리시고 문화도시 진해로 만들어 주실 터인데 싶었습니다.

물론 차량을 운영하실 여비와 객들이 머무를 객사도 함께 마련하여 준다면 얼마나 근사한 일일까 싶군요.

 

자료를 정리하여 더 많은 진해의 문화와 진해의 문화인들에 대하여 소개를 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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