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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누기/맑은 사진 - 꽃과 …

꽃밭에 앉아서

by 실비단안개 2008.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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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에 앉아서…

 

 

   다시 오는 봄 / 도종환
 

   햇빛이 너무 맑아 눈물납니다

   살아 있구나 느끼니 눈물납니다

 

   기러기떼 열지어 북으로 가고

   길섶에 풀들도 돌아오는데

 

   당신은 가고 그리움만 남아서가 아닙니다

   이렇게 살아 있구나 생각하니 눈물납니다.

 

 

   봄 / 오세영

 

   봄은

   성숙해 가는 소녀의 눈빛

   속으로 온다

 

   흩날리는 목련꽃 그늘 아래서

   봄은

   피곤에 지친 청춘이

   낮잠을 든 사이에 온다

 

   눈 뜬 저 우수의 이마와

   그 아래 부서지는 푸른 해안선

 

   봄은

   봄이라고 발음하는 사람의

   가장 낮은 목소리로 온다

 

   그 황홀한 붕괴, 설레는 침몰

   황혼의 깊은 뜨락에 지는 낙화.

 

 

   꽃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봄 일기 / 이해인

 

   봄에도 바람의 맛은 매일 다르듯이

   매일을 사는 내 마음빛도

   조금씩 다르지만

   쉬임없이 노래했었지

   쑥처럼 흔하게 돋아나는

   일상의 근심 중에도

   희망의 향기로운 들꽃이

   마음속에 숨어 피는 기쁨을

 

   언제나 신선한 설레임으로

   사랑하는 이를 맞듯이

   매일의 문을 열면

   안으로 조용히 비치 터지는 소리

   봄을 살기 위하여

   내가 열리는 소리

 

 

   봄은 전보도 안 치고 / 김기림
 
   아득한 황혼의 찬 안개를 마시며
   긴―말 없는 산허리를 기어오는
   차소리
   우루루루
   오늘도 철교는 운다. 무엇을 우누.

   글쎄 봄은 언제 온다는 전보도 없이 저 차를 타고 도적과 같이 왔구려
   어머니와 같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골짝에서 코고는 시냇물들을 불러 일으키면서…….
   해는 지금 붉은 얼굴을 벙글거리며
   사라지는 엷은 눈 위에 이별의 키쓰를 뿌리노라고
   바쁘게 돌아다니오.

   포풀라들은 파―란 연기를 뿜으면서
   빨래와 같은 하―얀 오후의 방천에 늘어서서
   실업쟁이처럼 담배를 피우오.

   봄아
   너는 언제 강가에서라도 만나서
   나에게 이렇다는 약속을 한 일도 없건만
   어쩐지 무엇을―굉장히 훌륭한 무엇을 가져다 줄 것만 같애서

   나는 오늘도 괭이를 멘 채 돌아서서
   아득한 황혼의 찬 안개를 마시며
   긴―말이 없는 산기슭을 기어오는 기차를 바라본다.

 

 

   당신 웃음은 봄꽃 같았지요 / 박해옥

 

   미안합니다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이
   얼마나 당신가슴 저미는 일인지 알지만

   달려갈 수 없기에
   그 품에 안길 수 없어
   봄이면 그리움도
   꽃으로 벙글어 버립니다

   개나리처럼 노랗게 그리움 그리다가
   자목련처럼 볼그레 눈시울 적시다가
   다시 또 당신을 사랑하고 맙니다

   세월이 검다고
   사랑이 어찌 지워지리오
   영원한 눈물의 산실
   가슴에 화두로 남은 사연

   당신 웃음은 봄꽃 같았지요
   울다 피다 또 울어버리던

 

 

 

   봄 꽃 편지 / 고두현   


   날마다 네 안에서
   해가 뜨고 달이 지듯
   그렇게 봄 산이
   부풀었다 가라앉듯
 

   오늘도 네 속에서
   먼저 피고 먼저 지는
   꽃 소식 듣는다.

 

 

   속삭임 - 김달진

   내 영혼을 빨아들일 듯 
   응시하는 고운 눈길이여 

   꽃잎에 스미는 봄바람 
   애끈한 분홍빛 그 미소여 

   새하얀 부드러운 살갗의 
   뜨겁고 향기로운 닿음이여 

   어둠 속에 혼자 타는 촛불 앞에 
   애끊게 달아오르는 속삭임이여.

 

 

   그리운 꽃편지 / 김용택

 

   봄이어요.

   바라보는 곳마다 꽃은 피어나며 갈 데 없이 나를 가둡니다.

   숨막혀요.

   내 몸 깊은 데까지 꽃빛이 파고들어 내 몸은 지금 떨려요.

   나 혼자 견디기 힘들어요.

   이러다가는 나도 몰래 나 혼자 쓸쓸히 꽃 피겠어요.

   싫어요. 이런 날 나 혼자 꽃 피긴 죽어도 싫어요.

   꽃 지기 전에 올 수 없다면 고개 들어 잠시 먼 산 보셔요.

   꽃 피어나지요.

   꽃 보며 스치는 그 많은 생각 중에서 제 생각에 머무셔요.

   머무는 그 곳, 그 순간에 내가 꽃 피겠어요.

   꽃들이 나를 가둬, 갈 수 없어 꽃그늘 아래 앉아 그리운 편지 씁니다.

   소식 주셔요.

 

 

   봄꽃을 보니 / 김시천

 

   봄꽃을 보니

   그리운 사람 더욱 그립습니다

 

   이 봄엔 나도

   내 마음 무거운 빗장을 풀고

   봄꽃처럼 그리운 가슴 맑게 씻어서

   사랑하는 사람 앞에 서고 싶습니다

   조금은 수줍은 듯 어색한 미소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렇게 평생을 피었다 지고 싶습니다

 

 

   봄날은 간다 / 안도현

 

   늙은 도둑놈처럼 시커멓게 생긴
   보리밭가에서 떠나지 않고 서 있는 살구나무에
   꽃잎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자고 나면 살구나무 가지마다 다닥다닥
   누가 꽃잎을 갖다 붙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쓸데없는 일을 하는 그가 누구인지
   꽃잎을 자꾸자꾸 이어 붙여 어쩌겠다는 것인지
   나는 매일 살구나무 가까이 다가갔으나
   꽃잎과 꽃잎 사이 아무도 모르게
   봄날이 가고 있었다
   나는 호드득 지는 살구꽃을 손으로 받아들다가
   또 입으로 받아먹다가 집으로 돌아가곤 하였는데

   어느날 들판 한가운데
   살구나무에다 돛을 만들어 달고 떠나려는
   한 척의 커다란 帆船을 보았다
   살구꽃을 피우던 그가 거기 타고 있을 것 같았다
   멀리까지 보리밭이 파도로 넘실거리고 있었다

   어서 가서 저 배를 밀어 주어야 하나
   저 배 위에 나도 훌쩍 몸을 실어야 하나
   살구꽃이 땅에 흰 보자기를 다 펼쳐놓을 때까지
   나는 떠나가는 배를 바라보고 있었다  

 

 

2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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