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출이 솟아올라 하늘까지 가닿을 듯한 까닭에 ‘능소(凌宵)’라고 했다는 고인들의 말을 실감하게 고샅길 바깥으로 흘러넘치듯 너울너울 능소화가 피어 오른다.
능소화는 금등화(金藤花)라고도 하며, 중국이 원산지이다.
능소화의 가장 큰 매력은 바람불고 비라도 내리면 시계추처럼 흔들릴 때이다. 가는 바람줄기에는 가늘게, 큰 줄기에는 웅성웅성 흔들리는데, 멀리서 보면 주홍빛 구름 무리가 몽실몽실하는 듯 하다.
능소화는 양반꽃이며, 옛날에는 이 능소화를 양반집 마당에서만 심을 수 있어 일반 백성집에서 이 나무가 발견되면 관가로 잡혀가 곤장을 맞았다는 애기도 있다.
능소화는 가지에 흡착근이 있어 벽에 붙어서 올라가고 길이가 10m에 달하며, 잎은 마주나고 홀수 1회 깃꼴겹잎이다. 끝이 점차 뾰족해지고 가장자리에는 톱니와 더불어 털이 있으며, 꽃은 6월 말∼8월 말경에 피는데, 꽃의 지름은 6∼8cm다.
능소화 이야기 / 장용철(시인, 윤이상평화재단 상임이사)
소나기와 햇살 사이로 능소화가 얼굴을 내민다. 장마철 비구름을 거름 삼아 한껏 암록색 잎새를 살찌운 뒤다. 능소화는 여름 꽃이다. 여름의 시작에서 여름의 끝까지, 만만치 않은 능소화 일가의 내력을 말해주는 듯 각질 이는 줄기를 비스듬히 세워 꽃심지에 환하게 불을 밝힌다. 다만 서 있기가 불편하면 줄기를 눕혀 넝쿨이 되기도 하며, 너무 서두르거나 느릿하지 않게 이 땅의 여름을 밝힌다.
꽃이 피는 것은 꽃의 일일 뿐이나 사람의 희노애락의 더듬이가 웃자라 충혈된 시력으로 능소화의 그늘로 다가선다. 능소화의 그늘은 너무 깊거나 낮지 않다. 직진뿐인 삶….
어디 돌뿌리라도 걷어차고 싶을 때, 쉼표라도 하나 잠시 부려 놓을 곳은 능소화의 그늘이 제격이다.
능소화는 기다림의 꽃이다. 능소화의 그늘에 들면 조선 선비의 기침소리가 들린다. 유배지로 떠나는 다산(茶山)의 말울음 소리가 들리고, 풀이슬에 장삼을 적신 초의선사(草衣禪師)의 향냄새가 느껴진다. 능소화를 곁에 두고 세월을 기다린 사람들. 빛바랜 목민심서의 행간에는 바랭이풀들이 자라고, 초의 선사의 금간 찻잔에는 풀벌레 울음소리가 잠긴다.
세상은 때로 능소화처럼 한걸음 물러서서 바라볼 일이다. 담장 너머로 숨 죽여 바라보거나, 애써 무심한 듯 밤 뜨락을 서성이며 귀동냥으로 지켜볼 일이다. 흰 고무신 한 켤레 지푸라기로 닦듯 흐릿한 눈그물 비바람으로 문지르고 단내 나는 여름의 등 뒤에서 세상을 바라볼 일이다. 대추리의 여름은 올해도 달맞이꽃 개망초꽃을 피울 것이나, 가르마 같은 논뚝 길을 오르려던 갯메꽃은 낯선 철조망에 뒷걸음을 칠 것이다. 동해의 하늘은 난데없는 사나운 짐승들의 눈빛으로 살기가 가득하고, 김제 뜰의 농투사니들은 빈 지게 작대기를 꼬나 쥔 채 죄 없는 달개비꽃들의 목을 후려칠 것이다. 세상은 항상 봉화를 기다리고 도깨비불 날아 다녔으나, 저녁 마을 토담집 지붕에서는 언제나 박꽃이 피고 잿빛 연기 올랐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싸움에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함께 이기기 위해서 싸울 것. 지더라도 끝까지 싸울 것. 진다고 생각하지 말고 싸울 것. 기세를 만들어 압도할 것. 이긴 뒤에라도 함께 세상을 부축할 것….
능소화의 꽃 등 속으로 대오도 없이 꿀벌들이 달려든다. 능소화의 향기는 너무 깊어 꿀벌들은 웬만한 쟁기질로 꿀단지를 채워가기 어려울 것이다. 벌은 꽃의 꿀을 따지만 꽃이 열매를 맺도록 도와준다. 세상의 모든 싸움은 ‘꽃과 벌’ 사이처럼 아름다운 관계여야 한다. 승리한 자는 있어도 패한 자가 없어야 한다. 능소화처럼 서로 다른 몸뚱이어도 더불어 비틀며 부둥켜 안아야 마침내 향기로 피어난다.
능소화는 운명을 뛰어넘어 스스로의 자리에 뿌리를 내린 꽃이다.
하늘의 뜻을 능가하여 자신의 운명을 하늘의 중심에 뿌리박은 꽃이다. 능소화는 꽃잎으로 낙화하지 않는다. 쓰러지는 그 순간까지 발끝에 힘을 주고, 놓아 버릴 때는 온 몸으로 지상에 뛰어 내려 장엄한 최후를 마친다. 능소화는 기다림에 지쳐 쓰러진 궁녀의 혼백이다. 찾아오지 않는 정인을 그리워 하지만 원망하지 않는다.
오직 기다릴 뿐, 기다림을 위하여 불 밝힐 뿐, 비 오고 바람 부는 세상을 원망하지 않는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 알고 떠나 갈 때는 기꺼이 미련을 털고 떠나는 것. 비장한 연모를 네모 난 씨앗으로 챙겨 업보로 감추고 주홍빛 생애를 회향한다. 능소화의 꽃말은 ‘명예’와 ‘기쁨’. ‘당신’은 산다는 것의 기쁨을 알고 있는 '사람'이기에 그 기쁨을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기 위해 먼 우뢰가 지축을 울려도 귀막고 서서 기다리는 것이다.
‘공(空)놀이’ 하나에 세상의 희망을 걸고 울고 웃는 이 땅의 여름은 너무나 가볍지 않은가. 공은 둥근 것이다. 방향 없이 굴러가는 것이고, 그 속이 텅 빈 것이다. 기다릴 줄 아는 능소화의 습성처럼 공이 아닌 대의를 굴리며 세월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오늘을 위한 오늘을 살지 말고, 내일을 위한 오늘을 살아’야만 하는 이 땅의 뜨거운 여름인 것이다.
우리는 ‘우리끼리’여야 한다.
잡초가 발등을 덮어도 물러서지 않는 능소화처럼, 두 줄의 몸줄기 서로 지탱하며 살 부벼야 이 땅의 여름을 우리들의 여름으로 할 수 있다.
솟아 오르라, 주홍빛 등불이여.
네 이름으로 능히 이 땅의 어둠을 밝혀 다오.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