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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께 즐거우면 더 좋지 아니한가!
마음 나누기/맑은 사진 - 꽃과 …

접시꽃 당신

by 실비단안개 2008.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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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옥수수잎에 비가 내린다.

 

문득 '접시꽃 당신'은 지금도 유효한가 하는 물음표를 가진다.

접시꽃은 아욱과의 두해살이풀이며, 꽃말은 풍요, 야망, 평안, 열렬한 사랑 등인데, 그중 '열렬한 사랑'이 많이 검색된다. 이는 도종환 시인의 책임이 큰 듯 하다. 그의 사랑은 순도 100%의 명품 사랑이었으니까.

시집 100만부 판매를 기록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도종환 시인이다. 당시 '접시꽃 당신'시집 혹은 시 '접시꽃 당신'을 모르는 이가 있었을까. 20년이 넘은 지금까지 접시꽃이 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시가 '접시꽃 당신'이며 도종환 시인이다.

  

부인에게 암에 걸렸다는 얘기를 하지 못하고 밤새도록 울면서 고민하고 새벽에 빗소리 들으면서 썼다는 시, '접시꽃 당신'.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참으로 짧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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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 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 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악한 얼굴 한 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 들어야 할

  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 들어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 없는 눈 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 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 댐한 장판같이 바래어 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 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개인적인 일을 쓴 시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면서 “내가 울면서 쓰지 않은 시는 남도 울면서 읽어주지 않는다. 내 생을 다 던져서 뜨거운 정신으로 시를 써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는 도종환 시인.

 

명품 사랑으로 줏가를 올린 그가 아내와 사별(1987년) 후 6년만에 재혼(1991년)을 하였다. '접시꽃 당신'을 읽고 시인 도종환에게 ‘죽은 아내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평생 가슴 속에 품고 사는 모습’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아내가 죽은 지 6년 만에 재혼한 그를 고운 눈으로 보지않았다. 

“감옥에 들어갔을 때 두 아이를 변변히 돌봐줄 사람조차 없다는 게 가장 마음에 걸렸습니다. 아이들에게 엄마가 필요하기도 했고, 또 저 자신 전아내를 사랑한 것만큼 지금의 아내도 사랑했어요. 결혼하면 그만큼 독자들은 또 떨어져 나갈 것은 분명했지만 남의 눈만 의식하고 살 수는 없었습니다.”  - 도종환

시인은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되어 투옥되었으며, 10년 만에 복직하지만 병(자율신경실조증)에 걸려 다시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다.

 

☆.. 도종환 시인에게 더 다가가기 : http://poem.cbart.org/

 

 

 

 

 

 

 

 

 

 

 

흔드리며 피는 꽃 /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었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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