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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누기/가본 곳

해초 향기같은 연도(椽島) 사람들

by 실비단안개 2009.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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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정 선착장에서 오전 11시 50분에 출발하는 도선은 20 분후면 연도선착장에 닿습니다.

20 분, 가까운 듯 한 거리지만 먼 거리이기도 합니다.

연도행 사람들은 도선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배가 출발하기 훨씬 전부터 자리를 잡았고, 도선에는 버스처럼 손잡이가 있으며, 때로는 승객의 수 보다 물건의 종류와 숫자가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할머니 한 분이 미장원에서 파마를 했습니다.

미장원에 한 번 가려면 마을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우리와 비슷한데 연도 도선은 마을버스처럼 매 시간 있는 게 아니니 머리를 만 후 도선에 올랐습니다.(도선 하선 후 마을버스나 시내버스를 타야 미장원을 갈 수 있음.)

할머니 중화제는 어떻게 바르나요?

할머니 : 우째 바르긴, 할배가 발라주제.

 

머리를 파마하려면 짧아도 2시간 이상 걸리기에 도선 시간과 생활이 있다보니 머리를 만 후 중화제는 섬으로 가져가며, 파마기구는 다음 뭍 외출 때 미용실에 가져다 줍니다.

 

 

괴정을 떠난 도선은 등대와 수도를 지나고 음지교를 뒤로하여 솔섬을 지나면 그림같은 섬마을에 닿습니다.

 

         ▲ 연도선착장

 

연도분교 앞의 바닷가는 모래지만, 오른편으로 약간 비키면 해초가 널린 자갈밭이 있으며 약간의 들꽃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자갈밭에서 말려지는 해초의 향기는 흙에서 자란 풀과는 다른 풀향기인데, 어릴 때 많이 맡은 향기 중 하나입니다.

해가 쨍쨍했지만 바람이 많아 해초의 향기는 더 진했습니다.

 

 

연도분교를 나와 마을의 왼쪽(앞)에 있는 방파제쪽으로 걸었습니다. 예나 우뭇가사리가 말려지며 어구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요즘은 어구들이 시대에 맞게 대부분 화학제품인데, 우리가 어릴 때의 어구는 자연산이었습니다.

 

어부의 딸은 아니지만 부모님께서 오랫동안 어망일을 하셨기에 눈을 뜨면 보는게 그물과 그 재료들이었고, 우리 동네 아이들은 세 살이 되면 실을 친다(실을 감는 일) 할 정도로 어망일은 식구들이 손을 모아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당시엔 바늘대(실을 감는 도구)를 대나무를 다듬어 만들었는데 요즘은 화학제품이며, 그물의 추는 진흙을 비벼 불에 구워 사용했는데 요즘은 대부분 납입니다. 또 물에 뜨는 부기는 참나무껍질을 물에 불려 손으로 일일이 만들어 사용했는데 역시 화학제품인데, 사람이 편리하고자 만들어진 많은 도구들이 바다와 자연을 파괴시키는 일이 된 것입니다.

 

 

 

방파제에서 할아버지께서 그물을 손질하십니다. 손에 들려진 파란색이 바늘대인데 손가락쪽에 보면 뽀족한 대가 있으며, 대에 실을 감아 그물의 코를 줍거나 꿰맵니다.

 

이곳으로 온 후 몇 년간 부모님을 도와 어망일을 했는데 몸이 약해 쉬이 지쳤으며, 척추가 어긋나 신경외과에서 몇 달간 교정을 받기도 했는데 그래도 한 번 어긋난 척추는 원상태로 돌아오지 않기에 요즘은 어망일을 돕지 못합니다.

 

어망일을 할 때 그물코가 잘 보여야 하기에 팽팽하게 해 주어야 하는데 보통 엄지발가락 사이에 그물코를 걸어 팽팽하게 하는데 요즘은 쇳덩이에 기둥을 세워 그물코를 걸기도 하는데 할아버지께서 맨발로 일을 하시더군요.

그물과 실(줄)은 굵기에 따라 호수가 있는데 할아버지께서 손질하는 그물은 큰물고기를 잡는 듯 했습니다.(고랑치를 잡는 그물인가?)

제가 드릴 수 있는 인사는, '할아버지 양말 신고 하시고요, 건강하셔요!'뿐이었습니다.

 

 

방파제로 가는 길의 점방은 지난해 유치원에 다니던 꼬마의 집인데 살짝 엿보니 아무도 보이지가 않더군요. 효석이가 2학년이며 다시는 입학할 아이가 없다는 선생님의 말씀이었으니 점방집의 꼬마는 뭍으로 유학을 떠났나 봅니다. 지난해에 할머니께서 꼬마와 함께 도선을 타고 시내 이동의 유치원에 등원을 했었거든요.

 

또 3년전에 만난 나래아빠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래가 중학생이 되었을 텐데….

뭍으로 유학을 갔건 뭍에 터를 잡았건 모두 건강하면 좋겠습니다.

방파제를 지나 뭍의 사람들이 많이 찾는 갯바위쪽으로 갔습니다.

 

해안가에는 많은 쓰레기와 해초가 밀리거나 밀려 널어져 있으며 쓰레기를 태운 곳이 있는데 바위도 불에 그슬렸습니다.

초록색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해안가의 쓰레기 등을 수거중인데, 이들은 '해양환경관리공단'의 공공근로요원으로 월~금요일까지 해안가를 청소하거나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지만 밀려오는 쓰레기는 매일 청소를 해도 감당이 되지않고, 섬을 찾는 이들이 버린 음식물 쓰레기로 악취가 심하다고 하며 분리를 해 놓으면 치우기에 좀 낫지않을까 했습니다.

 

수거한 쓰레기는 분리되어 일정한 장소에 모아 선박으로 이동하여 폐기처분이 됩니다.

효정이 엄마는 해양환경관리공단의 공공근로요원입니다.

 

 

연도에 가장 많은 꽃은 갯매꽃이며 방파제를 지나니 갯찔레가 많았기에 반가웠습니다. 어릴 때 바닷가의 돌을 타고 놀 때 유난히 많던 갯찔레였는데 지금 우리 동네에는 겨우겨우 만날 수 있는 꽃입니다.

 

 

갯찔레를 따라 갯바위쪽으로 가면 산물을 가두어 주민과 섬을 찾는 이들이 흐르렛물로 이용을 하는데, 큰빨래를 하거나 들에 물을 줄 때 이 물을 사용합니다.

마침 뭍에 거주하는 분이 섬에 땅(밭)을 좀 사뒀는데 풀약(제초제)을 친다면서 물을 길어 가더군요.

 

다른 농어촌과 섬처럼 지역의 땅 소유자가 도시 사람으로 바뀌고 있는 곳이 연도인데, 도선에서 마을 주민의 이야기가 두세 가구를 제외하고는 밭의 소유자가 도시인이라고 했습니다. 또 한 번 씁쓸해졌습니다.

 

 

 

파도소리를 가슴에 담아 마을을 걸었습니다. '연도길'입니다.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면 여느 시골과 같은 풍경입니다.

 

 

 

담장이 조금 높음을 알 수 있으며, 대문이 열려있고, 물통이 몇 개 있는데, 연도는 담수화 된 물을 사용하지만, 물이 넉넉치 않기에 우물물을 헤프게 사용할 수 없는 마을입니다.

마을에는 두 개의 공동우물이 있으며 연도분교 뒷쪽의 우물가에는 경고문이 있는데, 세탁기 사용 등 식수 외는 금하며, 이를 어길 시에는 마을에서 추방을 한다는 경고문입니다. 그만큼 물을 아껴야 하는 연도입니다.

 

 

         ▲ 연도분교 뒤의 우물

 

텃밭에는 당귀와 도라지가 꽃을 피웠고 상추는 씨앗을 받아야 할 것 같았습니다. 콩과 배, 복숭아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갯바람과 신항공사의 소음에도 꿋꿋한 텃밭이 대견했습니다.

 

 

 

 우리집에 핀 백합이 섬에도 피었으며, 마루에 걸려진 거울에 포도가 송알송알 달렸기에 '민박'표지도 확인 못한 채 할머니를 먼저 불렀습니다.

'할머니 물 좀 마시고 싶은데요?'

끓인 물이 없다며 민박을 한 이들이 남기고 간 생수통을 주시기에 마시고 마당과 민박이 가능한 방을 구경했습니다.

할머니댁은 방이 3 개며, 하루 대여료는 3 만원으로 방과 물이 제공된답니다.

 

뭍과 가까운 연도지만 음식재료와 생필품 대부분은 뭍으로 나가야 구입이 가능하기에 할머니께서 민박을 하는 이들에게 식사를 제공한다는 건 무리입니다.(선착장이 있는 괴정과 조금 더 나가면 있는 웅천도 여러가지로 척박한 지역입니다.)

할머니의 집은 포도나무집인데, 섬에서 유일하게 포도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서넛의 작은 점방에는  낚시장비와 민박, 회를 비롯한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는데 폴래선생님과 해삼과 멍게 한 접시를 비웠습니다.

연도의 회와 해산물은 자연산이며 가격 또한 한없이 착한데, 아래 사진의 한 접시에 1 만원이며, 우리는 술을 즐기지 않기에 해삼과 멍게만 먹었습니다.

 

 

해삼과 멍게를 먹는데 물질을 마친 해녀가 채취한 해산물을 풀기도 전에 쓰러지다시피 했습니다.

물질이 그만큼 힘든 작업이며, 우리가 해산물을 먹는 집의 안주인입니다.

 

 

아래는 채취한 해산물로 군소, 멍게, 고동, 성게, 가리비 등인데, 식구들에게 먹이려고 멍게와 고동을 각 1 만원어치 사고 된장찌개용으로 바지락 1kg(3 천원)을 샀습니다.

(그날 저녁 밥상은 바다냄새가 가득했습니다.)

 

 

이제 오후 3시 30분 연도발 도선이 도착할 시간입니다.

연도의 마지막 풍경을 담았습니다.

 

        ▲ 멀리 '민박'이라고 씌여진 집이 멍게와 해삼을 먹은 집입니다.

 

연도분교 선생님들이 선착장으로 오시고 도선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초록색조끼를 입은 이가 효정이 엄마이며, 배에서 짐을 내리는 이가 효정이 아빠입니다.

30대 이들 부부에게는 부모님과 삼 남매가 있으며, 남편은 도선의 기관장이며 엄마는 공공근로요원입니다.

 

도선에는 승객보다 물건이 더 많을 때가 있다고 했는데, 뭍으로 나가는 이에게 이웃이 필요한 것들을 주문하면 물건(짐)을 올리고 푸는 이가 효정이 아빠인 기관장님이며, 효정이 엄마는 해안 청소 등을 잠시 미루고 마을 주민들의 짐을 받아 선착장에 올려 정리를 합니다.

이 배추는 누구네 것이며,

이 상자는 누구네 것이고….

 

효정이 할아버지는 치매로 요양원에 계시며 할머니는 시각장애인으로 효정이 어머니는 여느 주부들보다 손길이 더 바빠야 하지만, 그녀는 오늘도 부모님과 아이들, 마을에 소홀하지않는 해초처럼 향기로운 섬 주민입니다.

효정이 아빠가 도선의 기관장이며, 연도분교의 4명의 학생 중 3명이 효정이 남매이니 효정이네가 뭍으로 이사라도 간다면 연도는 그대로 멈출것 같습니다.

 

방파제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기에 효정이 어머니께서 인사를 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마을과 연도분교가 멀어집니다.

격랑풍파에 쓸리고 말려져도 바래지않는 해초의 향기같은 사람들도.

 

 

   

 

 

시각 예술(Visual arts)에 반영한 미적 취향 설문조사 : http://21cagg.org/h/21cagp4/research2.html

 조사기간 : 2009. 5. 20 ~ 2009.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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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제작자 모집(출처 : http://kisilee.tistory.com/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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