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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께 즐거우면 더 좋지 아니한가!
마음 나누기/봉하마을 그곳은

봉화산 정토원에 다녀왔습니다

by 실비단안개 2009.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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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골이 안치된 김해 봉화산 정토원에 다녀왔습니다. 

* 봉화산 정토원 http://www.bonghwasan.org/ 

 

삼 재가 지났지만 봉하마을로 가는 길은 차량과 사람이 끝이 없었기에 봉화산의 정토원으로 먼저 갔습니다.

봉하마을 입구의 삼거리에서 왼편으로 가면 봉화산 정토원으로 가는 알림이 나오며, 대부분 차량을 이용하지만, 등산 겸 걷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정토원에 도착하니 정오가 넘었기에 점심공양 시간(12~오후 2시까지)이었지만, 우리는 추모 후 점심공양을 하기로 했는데, 많은 추모객들로 오후 2시가 되기전에 공양이 떨어졌으며, 잠시 후 '대구 시민광장'에서 백설기와 초코파이를 준비해 왔기에 공양을  떡과 초코파이로 했으며, 식수(생수)는 어떠한 단체나 개인의 도움없이 추모객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 준비를 했다고 하더군요.

 

추모객들이 참 많았습니다.

이제 얼굴과 옷차림이 많이 밝아졌더군요.

저도 노란셔츠와 노란모자 차림으로 갔습니다.

슬픔과 아픔을 나름 추스려 밝은 모습이라 좋았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봉하로 귀향했을 때 전국에서 봉하를 찾던 그런 풍경같았습니다.

그래도 얼핏얼핏 가슴이 막히며 목이 메였고 눈물이 찔끔 나오기도 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토원 수광전에 모셔져 있습니다.

 

* 정토원이 있는 산은 '봉화산'이며,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가가 있는 마을은 '봉하'입니다.

 

 

 

 

 

 수광전 입구에서 국화를 받아 십여명씩 재배를 하였습니다.()()

 

정토원 입구부터 올려볼게요.

 

 

정토원 입구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와 봉하마을에 만났던 '감히 따라가 헤아려본 노대통령의 심정'이 있으며, 옆에는 영상이 흐릅니다. 노란리본은 입구부터 봉화산을 두르고 봉하마을까지 이어집니다.

 

 

 

 

 

 

감히 따라가 헤아려본 노대통령님의 심정

 

돈 벌어 나 혼자 호의호식 하려고 했으면 변호사 계속했다.

힘없는 사람도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도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고 싶어 정치에 뛰어들었다.

 

남북으로 전라도, 경상도로 이념으로 빈부로 나눠 갈등하는 대한민국을 어떻게 한번 구해볼까 하는 마음에 정치에 입문했다.


감금원, 박연차 이기명 등 뜻있는 분들의 금전적 후원과 노사모와 많은 국민의 헌신적인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되어 참여정부라 불렀다.

 

50여 년간 이 나라는/친일세력/군부독재/정경유착으로 돈 번 부패재벌/보수신문/등 보수라는 가면을 쓴 부정한 세력이 지배하고 있었다.

 

이들과 결탁 않고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있는 길은 주인인 국민을 참여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참여정부라 했다. 국민만이 유일한 나의 백이라 믿었기에 검찰권마저 되돌려 주었다.

 

국민을 위한 정책이면 국민의 지지는 반드시 따라오리라 믿었다 성공하리라 확신했다 오판이었다....

 

보수라라는 세력의 저항은 강했고 꼬투리만 잡는 조중동 신문 TV편파방송에 믿었던 국민들마저 그들의 집요한 이간질에 하나둘씩 멀어져만 갔다.

 

아! 어쩌면 좋아? 국민만 믿었는데 ...그것만이 나의 힘이라 믿고 설쳐댔는데...

더 이상 정치를 할 이유가 대통령을 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회의가 들었다 그만두고 싶었다.

 

내키지 않았지만 국익을 위해 몇 가지 정책을 폈더니 진보 쪽에서도 공격 해 왔다.

나도 진보일 텐데 그들은 나를 얼치기 진보라 몰아부쳤다.

 

의외의 공격이 더 무서웠고 서러웠다.

5년 내내.....

 

드디어~임기 끝나고

와~아! ~~~~ 기분 좋다!!

5년간 쌓였던 피로가 한방에 날아 갔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반겨주는 그 눈빛이 너무 좋았다.

 

지지자들에게 “강물은 굽이치지만 바다를 포기 하지 않는다” 는 멋진 멘트도 날렸다.(사실 이 말은 명계남꺼 슬쩍했다)

 

이들을 위해 실천하기 위해 준비도 해야 했고, 동네사람들과 오리농법으로 농사도 지어야 하는 등 쉴 새 없이 분주했다

그리고 많은 방문객이 찾아주어 인사도 해야 했다.

 “그렇게 욕만 하더니만 왜왔어요?” 농담도 건넸다. 사실 .....반은 진담이었다.

 

그렇게 그렇게 세월이 흘러 조용히 살줄 알았는데 이게 웬일?

내가 뇌물 사건의 중심에 서있었다.

그들은 집권하자마자 집요하게 나를 조사 한 모양이다.

 난 돈보다 지지자들의 따뜻한 눈빛을 먹고 사는 사람이다.

평생 나만 보면 열광하는 따뜻한 그들의 가스에 먹고 살았다 돈이 탐날 이유가 없다.

 

돈 벌려고 했으면 변호사 계속했지 뭐 하러 정치판에 뛰어들었겠는가?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난!

 

전직대통령의 대부분이 로비에 곤욕을 치뤘기 때문에 이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자식 놈 미국으로 보냈다. 그 과정에 정상문 비서와 박연차가 자식 놈 위한답시고 돈을 보낸 모양이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것 자체가 문제가 될 줄은 몰랐던 것 같다.

 

이 사실을 재임 중 내가 알았냐 몰랐냐 하는 것이 검찰조사의 핵심인데 진실을 말해도 아무도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검찰은 흘리고 기자들은 설마 몰랐겠냐? 에서 틀림없이 알았을 거야 로 온 국민에게 중계방송 했다.

 

재판정에 서기전에 나의 재판은 이미 유죄로 결론 난 셈이다. 억울한 피해자를 막기 위해 만들어 놓은 피의자의 권리조차 나에게 주지 않으려는 듯 몰아 부쳤다.

 

진실을 말했다 집에서 한일이라 몰랐다 하니 구차한 변명이라 하였다.

정말 구차했다

지지자들마저 혼란에 빠졌고 전두환 노태우는 몇 천억씩 해먹었는데 그것 조금가지고 라며 나를 위안 하려 한다. 마음이 아프다.


나와 지지자들을 이간시키고 나아가 진보진영의 분열 몰락을 노리는 그들의 속셈은 보기 좋게 달성된 셈이다. 이 지경에 몰리게 되니 잠이 오질 않는다. 모두 내 죄다 내가 부족해서다.

 

재판정에 서면 난 무 죄 일수 밖에 없다 결백하다.

하지만 난 이미 국민으로부터 설마 몰랐을까의 중죄를 받았다.

무슨 능력으로 결백을 증명하여 그들의 멍든 가슴을 치유한단 말인가?

 

참 구차하다 집밖을 나갈 수 없다.

얼굴을 들 수 없다.

몸도 마음도 망가졌다.

 

집요한 조사로 오랜 후원자이자 영원한 동지인 감금원 오랜 친구 정상문 이광재 안희정.. 나를 치기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 같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나로 인해 이들이 고통 받으니 그 고통 또한 적지 않다.

이쯤에서 그들의 고통을 덜어줘야지 않겠는가?

 

그들에게 신세 진게 얼만데 무슨 염치로 지켜본단 말인가? 앞으로도 나를 아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진 빚을 갚는 일이 고작 이 방법밖에 없다 생각하니 서글프다.

이번일로 집에서 미안해한다.

 

미안해 하지마라 혼자 남겨두고 떠나는 내가 더 미안하다.

원망하지 마라.

 

부족한 내가 더 초라해 질뿐이다.

사랑한다.

여기까지가 우리의 운명이다

 

집사람 따돌리고, 저승으로 향하는 길에 부모님께 인사드렸다.

어릴 적 놀던 부엉이 바위

부엉이가 날아서 부엉이바위라 불렀겠지?

 

날자!

한번 날아보자 부엉이 되어 날아보자!

처음 하는 날개 짓 서툴겠지만 내가 누구냐 노무현 아니냐


한번 부딪쳐 보자.

되도록 세게, 아프게 부딪쳐 보자

 

세상의 잡다한 고통 다가져 갈수 있다면, 속세에 내 허물 고통으로 씻을 수 있다면

어디 한번 부딪쳐 보자!

좀 더 세게 부딪쳐 볼란다.


이승에서의 인연들을 위해 힘없는 노무현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사랑의 몸짓이라 생각하고 힘껏 날아야겠다......

사랑했습니다. 사랑합니다. 여러분!

 

(대통령님의 고통의 순간을 감히 헤아려본 한 국민의 생각입니다)

 2009년 5월 26일 백태백

 

 

 '감히 따라가 헤아려본 노대통령님의 심정'은 읽을 때 마다 죄스럽고 마디마디가 아픕니다.

 두 글귀 왼편으로 '봉화산 청소년수련원'이 있으며 돌계단을 오르기전에 이광재의원의 노대통령님께 보내는 옥중편지와 유시민

전 장관의 '서울역 분향소에서'가 추모객들을 또 잡습니다.

 

이광재 의원의 옥중편지

꽃이 져도 그를 잊은 적이 없다

 

좋은 나라 가세요. 뒤돌아 보지 말고 그냥 가세요. 못다한 뜻 가족 단심(丹心)으로 모시는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죄송합니다. 제대로 모시지 못해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행복했습니다.

 

21년전 오월 이맘때쯤 만났습니다. 42살과 23살 좋은 시절에 만났습니다. 부족한게 많지만 같이 살자고 하셨지요. ‘사람사는 세상’ 만들자는 꿈만 가지고 없는 살림은 몸으로 때우고 용기 있게 질풍노도처럼 달렸습니다.

 

불꽃처럼 살았습니다. 술 한잔 하시면 부르시던 노래를 불러봅니다. “오늘의 이 고통 이 괴로움 한숨섞인 미소로 지워버리고 가시밭길 험난해도 나는 갈테야 푸른 하늘 맑은 들을 찾아갈테야 오 자유여! 오 평화여! 뛰는 가슴도 뜨거운 피도 모두 터져 버릴 것 같아...“

터져 버릴 것 같습니다. 제대로 모시지 못한 죄 어찌할지 모르겠습니다. 천형처럼 달라 붙는 고난도 값진 영광도 있었습니다. 운명의 순간마다 곁에 있던 저는 압니다. 보았습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남자 일을 미치도록 좋아하는 사나이를 보았습니다.

 

또 하나의 모습 항상 경제적 어려움과 운명같은 외로움을 지고 있고 자존심은 한없이 강하지만 너무 솔직하고 여리고 눈물많은 고독한 남자도 보았습니다. 존경과 안쓰러움이 늘 함께 했었습니다.

 

“노 대통령이 불쌍하다”고 몇 번이나 운적이 있습니다. 최근 연일 벼랑끝으로 처참하게 내 몰리던 모습 원통합니다. 원망하지 말라는 말씀이 가슴을 칩니다. 잘 새기겠습니다. 힘드시거나 모진 일이 있으면 계시는 곳을 향해 절함으로써 맛있는 시골 음식을 만나면 보내 드리는 것으로 어쩌다 편지로 밖에 못했습니다.

(며칠 전에도 산나물을 보내 드릴려고 준비했었는데 애통합니다.)

 

지난 여름 휴가 때 모시고 다닐 때는 행복했습니다. 풀 썰매 타시는 모습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올 여름도 오신다고 했는데... 이 고비가 끝나면 제가 잘 모실 것이라고 마음속에 탑을 쌓고 또 쌓았습니다. 계획도 세웠습니다.

 

절통합니다. 애통합니다. 꼭 좋은 나라 가셔야 합니다. 바르게, 열심히 사셨습니다. 이젠 ‘따뜻한 나라’에 가세요 이젠 ‘경계인’을 감싸주는 나라에 가세요 이젠 ‘주변인’이 서럽지 않은 나라에 가세요.

‘남기신 씨앗’들은, ‘사람사는 세상 종자’들은 나무 열매처럼, 주신 것을 밑천으로 껍질을 뚫고 뿌리를 내려 ‘더불어 숲’을 이룰 것입니다.

 

다람쥐가 먹고 남을 만큼 열매도 낳고, 기름진 땅이 되도록 잎도 많이 생산할 것입니다. 좋은나라 가세요. 저는 이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닿는 곳마다 촛불 밝혀 기도하고, 맑은 기운이 있는 땅에 돌탑을 지을 것입니다. 좋은나라에서 행복하게 사시도록... 돌탑을 쌓고, 또 쌓을 것입니다. 부디, 뒤돌아 보지 마시고 좋은나라 가세요.

 

제 나이 44살 살아온 날의 절반의 시간 갈피갈피 쌓여진 사연 다 잊고 행복한 나라에 가시는 것만 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행복했습니다. 다포(茶布)에 새겨진 글 “꽃이 져도 너를 잊은 적이 없다”가 떠오릅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주체 할 수 없는 눈물 밖에없는 게 더 죄송합니다. 좋은 나라 가세요. 재산이 있든 없든 버림 받고 살지 않는 삶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유산은, 내 유산은 무엇인가 생각해 봅니다. 노대통령님으로부터 받은 유산,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저를 아시는 분들 봉하 마을에 힘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가족에게 따뜻한 마음 거듭 부탁드립니다.

 

제가 말하는 맑은 기운이 있는 땅, 탑을 쌓을 곳이 어디인지 아실 겁니다. 본격적으로 탑을 쌓고 지읍시다. 노대통령님 행복한 나라에 가시게 기도해 주세요. 가족분들 힘내시게 찻집에서 본 다포(茶布)에 씌여진 글귀가 생각납니다. “꽃이 져도 너를 잊은 적이 없다“

 

끝없이 눈물이 내립니다. 장맛비처럼

이광재 드림

 

 

서울역 분향소에서 / 유시민


연민의 실타래와 분노의 불덩어리를 품었던 사람
모두가 이로움을 좇을 때 홀로 의로움을 따랐던 사람
시대가 짐지운 운명을 거절하지 않고
자기 자신밖에는 가진 것 없이도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갔던 사람
그가 떠났다


스무 길 아래 바위덩이 온 몸으로 때려
뼈가 부서지고 살이 찢어지는 고통을 껴안고
한 아내의 남편
딸 아들의 아버지
아이들의 할아버지
나라의 대통령
그 모두의 존엄을 지켜낸 남자
그를 가슴에 묻는다


내게는 영원히 대통령일
세상에 단 하나였던 사람

그 사람

노 무 현

 

 

 

참배를 마친 추모객들이 내려오는 계단을 올라가겠습니다.

작은 뜰이 있으며 계단 위에 '수광전'이 있는데, 참배객은 계단으로 오르지않고 대나무울을 따라 줄을 서서 수광전 왼편으로 가며, 참배 후 반대편의 문으로 나와 수광전 앞을 걸어 국화를 받았던 곳으로 다시 나옵니다.

 

배롱나무에 연등이 걸렸습니다.

 

 

           ▲ 불교신문입니다.

 

           ▲ 참배객의 줄도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참배 후 공양을 하거나 사명대사 동상을 지나 사자바위를 오를 수 있는데, 현재 사자바위는 출입이 통제됩니다.

사명대사 동상을 기준으로 왼쪽을 오르면 사자바위고 오른쪽 아래로 봉하마을과 부엉이바위가 약간 보이며, 바람개비와 노란리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봉하마을입니다.(봉하에서 정토원까지 20분 정도 소요)

 

           ▲ 수광전과 선진규 원장님

 

지난해 3월 고갱선생님과 정토원으로 선진규 원장님을 뵈러 갔다가 출타중이셨기에 공양만 축내고 왔었는데, 마침 선진규 원장님께서 떡과 생수를 제공하는 쪽(공양간 앞)으로 오시더군요.

원장님께 인사를 드리고 원장님을 담고 싶다고 하니 포즈를 취해주셨습니다.

그리곤 정토원 여러곳을 돌아보시며 참배객들에게 인사와 안내를 하셨습니다.

 

          

정토원 뒷쪽으로 가겠습니다. 사명대사 동상 뒷쪽으로 오르면 사자바위가 있으며 오른쪽 아래로 내려가면 봉하마을입니다.

 

 

 

 

 

봉화산에는 많은 바람개비가 봉하마을을 향하여 돌고 있으며 참배객들도 봉하마을을 바라보거나 돌고 있는 바람개비를 봅니다. 그리곤 발길을 돌리거나 산길을 따라 봉하마을로 향합니다.

 

           ▲ 정토원에서 보는 봉하마을

 

           ▲ 사진은 많이 비탈지게 보이지만, 그리 위험한 길이 아니며, 봉하까지 300m 정도인데, 보통 걸음으로 20여분 걸립니다.

 

우리는 걸어가기를 포기하고 정토원 주차장으로 갔습니다.

정토원 입구에 못미쳐 봉화산으로 가는 샛길이 있는데 역시 노란리본이 안내를 합니다.

 

 

 

 

봉하마을 입구 삼거리에는 여전히 차량과 추모객의 줄이 끝이없습니다.

다음편에는 봉하마을과 모내기를 끝낸 들판을 올리겠습니다.

 

안내입니다.(출처 : 고재열 독설닷컴 http://poisontongue.sisain.co.kr/919)

 

주> 공연장소가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서
성공회대학교 대운동장으로 변경되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콘서트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글 -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콘서트, '다시, 바람이 분다' 공연기획단


시민, 학생, 대중음악인들이 부르는 그리운 그대, 뜨거운 노래

연세대학교 총학생회가 주최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비상대책위원회, 한양대 총학생회(안산) 등이 공동주최하는 추모공연 '다시, 바람이 분다’가 오는 6월21일 6시 30분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서 열린다. 이번 공연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추모의 마음을 담고 그의 죽음이 담은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마련되었다. 학생, 시민, 그리고 우리시대 대중음악인들이 뜻을 모아 기획된 이번 공연은 추모의 마음을 통해 각자의 정치적 입장을 뛰어넘고 정파의 차이를 초월해 뜨겁게 연대하는 자리다. 슬픔과 회한, 분노와 반성, 사소한 차이를 극복하는 것이 그가 남긴 마지막 유언을 실천하는 방법이라는데 공연의 목적을 두었다. 공연을 주관하는 연세대학교 총학생회 박준홍 총학생회장은 “이번 공연은 추모 공연이기는 하지만 헌정공연이라 말하고 싶다. 이번 공연을 통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슬픔에서 새로운 희망을 이끌어 내는 계기가 되도록 만들겠다”고 말했다.


신해철-N.E.X.T, YB(윤도현밴드), 안치환과 자유, 전인권, 강산에, 뜨거운감자(김C), 윈디시티, 피아, 우리나라, 노래를 찾는 사람들, DJ.DOC(이하늘, 정재용), 이상은 등 12개 팀과 신영복(성공회대 석좌교수) 특별출연


공연은 권해효(탤런트), 이지연(연세대)의 사회로 진행된다. 신영복(성공회대 석좌교수) 등 연설자들도 함께해 이야기가 있는 공연으로 진행된다. 이번 공연에 참여하는 대중음악인은 록밴드에서 노래패까지, 힙합에서 포크음악까지 다양하다. 공연 섭외 요청에 이들은 두 말 없이 응해주었다. 우리 대중음악계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들은 다양한 색깔만큼이나 다양한 참여이유를 가지고 이번 공연에 참여한다. 이들 중에는 현 정권에 대한 강한 분노로 참여를 결정한 출연진도 있고, 민주주의의 심각한 위기를 염려하는 마음으로 참여하는 출연진도 있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인간적 연민으로 출연을 결정한 경우도, 시민들의 순수한 행사이기 때문에 출연하겠다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출연의 이유와 음악적 색깔은 하나의 주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추모의 마음과 뜨거운 연대라는 대원칙에 동의함으로써 공연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동의는 입장의 차이를 뛰어넘는 힘이 될 것이며 이 공연이 궁극적으로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를 가능하게 해줄 것이다.


공연의 연출을 맡은 탁현민 한양대 겸임교수는 “음악적으로는 8-90년대의 민중가요와 2000년대의 대중음악이 나란히 한다는 점, 정서적으로는 추모, 분노, 절망, 희망 등 다양한 감정들이 뒤섞인다는 점, 사회적으로는 입장의 차이를 넘어 입장의 동일함을 추구하는 연대의 장을 만들겠다는 점이 특별함을 더할 것이다. 공연의 완성도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기획의 의도를 살리는 방향으로 연출 하겠다"라고 말했다.   


특별한 방법, 특별한 형태로 만들어 지는 추모공연 "다시, 바람이 분다"    


이번 공연은 입장료가 따로 없는 무료공연이다. 하지만 공연에 들어가는 최소한의 비용을 만들기 위해서  후원금 조로 ‘자발적 입장료’를 받을 계획이다(후원계좌 : 우리은행 1002-335-803501 박준홍). 무료공연이긴 하지만 좌석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관람을 원하는 사람들은 연세대학교 총학생회, 각 대학 총학생회, 공동주최, 후원하는 각 사이트, 커뮤니티, 블로그에서 공연을 알리는 이미지를 출력해서 입장할 수 있다. 당일 오후6:30부터 선착순 입장할 수 있다. 공연기획단은 입장하는 관객들이 노란색 옷이나, 손수건 같은 노란색깔의 '무엇'을 가지고 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2009년 6월21일,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의 1만 객석이 노랗게 물들여지는 관객 퍼포먼스를 기대해 본다. 또한 공연기획단은 공연을 함께 준비할 자원봉사 스태프, 보다 많은 관객들과 함께 하고 보다 많은 공유를 위한 공동주최 또한 후원이 가능한 시민사회단체, 노동조합을 찾고 있다. 공연의 취지와 의미에 동의하는 많은 단체들의 참여를 부탁드린다. 공연과 관련한 각종문의 안내 전화번호는 아래와 같다.


■ 공연 문의 : 연세대학교 총학생회 02-2123-3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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