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이 넘었습니다. 어제를 기준으로 작성하겠습니다.)
오후 7시는 너무 멉니다. 자꾸 시계를 봅니다.
오후 3시, 드디어 마을버스를 타고, 부산행 직행버스를 탔습니다.
하단에 내려야 하나 사상에 내려야 하나.
조급한 마음에 하단에 내려 '아이들의 숲(http://cafe.daum.net/pusanecochild)'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하단이니 50분이나 55분 후면 지하철 장전동에 내릴거라고요.
* 방과 후 학교 '아이들의 숲' 친구들과 김달진 문학관 ...
부산의 전동차에는 서울과는 달리 읽을꺼리가 없었습니다. 커피 한 잔을 뽑았기에 후후 불며 마셨습니다.
역 하나를 지날 때마다 사람들이 태워지고, 자갈치쯤에선 제법 많은 사람들이 탔습니다.
부산 지하철 1호선 35개의 역 중에 27번의 역을 달려 장전동역에 내려 다시 '아이들의 숲'선생님과 통화 후 2번 출구에서 만나 '아이들의 숲'으로 갔지만, 아이들은 산책을 가고 없었기에 얼음커피 한 잔을 마시고 이른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시래기국이나 국수 종류면 되는데, 더우니 돈까스를 먹자고 하여, 돈까스 대신 생선까스를 먹고, 아숲 선생님은 나머지 수업을 위해 나를 부산대학교 넉넉한 터에 내려주었습니다.
객석이 텅 비었습니다. 우짜나, 이 많은 좌석을 채울 수 있을까….
무대쪽의 계단으로 내려가서 후원함이 있기에 약간을 넣고, 부채와 스카프 등을 받았습니다.
그를 만나러 온 이들은 선 밖에서 줄을 서 기다렸는데, 나는 그걸 몰랐기에 뻘쭘해하며 선 밖으로 갔습니다.
편지를 씁니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봉하 마을에, 유족에게….
세상에서 하나 뿐인 노란우체통에 흔들린 엽서를 두 손으로 넣었습니다.
손등에 노무현 대통령을 새겼습니다. 'I ♥ 노짱'도 새겨줄까 했지만, 그냥 웃어주었습니다.
한겨레, 경향, 시사인 등이 쌓여있습니다.
나는 진알시에 30부를 신청해 두었기에 다른 읽을 꺼리를 잡았습니다.
"진알시(http://www.jinalsi.net/)"에서 나왔나요?"
"아니요, 부경 아고라입니다."
"네…."
지난해였지요, 부산역에서의 판넬전, 그때 만난 부경아고라 회원을 만났습니다.
블로거 커서님과 통화를 했습니다. 피시방이니, 부대(부산대학)에서 기다려 달라고 하더군요.
사람들은 노란 스카프를 하고 노란 부채를 들고, 아이들은 노란 풍선에 바람을 잔뜩 넣습니다. 그리움 만큼요.
이제 줄이 걷어지고 입장을 합니다. 노란 스카프로 머리를 묶고, 혹 모를 통화를 위해 이어폰을 귀에 꽂았습니다.
그 사이 49재가 되었습니다.
그의 국민들은 이제 많이 밝아졌으며, 바람이 되어 올 그를 웃음으로 맞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문득문득 가슴이 막힙니다. 그러나, 그래도, 이제 우리는 밝게 일어나야 합니다.
시계가 늦은 7시를 지나는데, 그를 만나겠다는 줄은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회자가 조금 더 기다리자고 합니다.
대학생들의 공연을 시작으로, '부산찬가'보다 더 부산찬가인 '부산갈매기'가 띄워지며 무대와 객석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부산 시민은 부산갈매기만 흐르면 모두 하나가 되니까요. 부산갈매기는 마술갈매긴가 봅니다.
사진이 많습니다.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할까, '포토스케이프'는 확대가 되지않는 것 같아, '파이'로 올리겠습니다.
(슬라이드쇼로 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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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와 스탠드가 꽉 차고, 관객은 넉넉한 터를 넘었습니다. 그래도 만족합니다. 한마음으로 한 자리니까요.
노래에 맞추어 부채를 흔듭니다. 따라 부릅니다.
대통령의 의자에 밀짚모자가 있고, 부대 학생회장이 노무현 대통령이 되어 밀짚모자를 들고 브이자를 그립니다.
난리가 났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흐르고, 웃고, 얼라들과 과자로 장난을 치고, 손녀와 자전거로 농로를 달리고….
'광야에서'를 동영상으로 담고나니, 블로거 '커서'님이 찾아왔습니다. 서울 블로거 '몽구'님과 봉하에서 함께 부산으로 왔다고 하여 무대쪽으로 이동을 했습니다.
한명숙 전총리도 봉하에서 부산으로 왔으며, 2부 사회자 여성학자 오한숙희 씨는 서울에 이어 부산에서도 바람이 부니 맞바람이며, 맞바람은 전국을 뻥 뚫는 소통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너무 야윈 몽구님입니다. 이른 시간에 봉하에서 소식을 올려 울리더니 지친 몸을 끌고 부산으로 온 겁니다.
셋이서 이렇게 만나기는 처음이라, 잠시 우리들만의 시간이 필요했기에 부대 앞의 던킨도너츠에 가서 시원한 커피를 마셨습니다.
▲ 몽구님
▲ 커서님과 몽구님 - 던킨도너츠에서 부대를 향해 촬영 중
마음은 넉터(넉넉한 터)에 있습니다. 포스팅을 위해 프로그램을 촬영 한 후 넉터의 익은 분위기가 보였기에 셋은 다시 넉터로 갔습니다.
'사노라면'을 무대와 객석에서 열창을 합니다. 모두 일어서서 부채를 흔듭니다.
사진이 허접해서 죄송합니다.
그 자리에 여러분들이 함께였다면 분명 목이 메였을 겁니다.
9시가 지나고 있습니다. 하단에서 진해행 막차가 몇 시인지 모르기에 헤어진 커서님에게 연락을 하니, 공연장의 분위기로 감지가 되지않는지 받질 않았습니다.
'아이들의 숲' 선생님께 연락을 하니, 진해까지 태워줄테니 공연에 끝까지 함께 하자고 했지만, 아숲 선생님이 부산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있기에 혼자 가마 - 하며 추모 공연장을 빠져나왔습니다.
부대 정문앞에서 오마이뉴스의 오연호 대표의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에 배우 문성근 님의 사인을 받았습니다.
어느 지하철역으로 가야할지 몰라 무작정 걷다가, 멈춘 (고장난)버스 기사에게 지하철 역을 물으니 손가락으로 가르킵니다.
앞에 장전동 지하철역이 있었습니다. 50분 후면 하단지하철역에 닿습니다.
이미지를 정리하고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를 펼쳤습니다.
벌써 하단역이라니.
아' 커서님이나 동료가 붙인 모양입니다. 전동차 문이 열리니 벽보판에 추모 공연 포스트가 청색테프로 붙여져 있었습니다.
조심조심 뗐습니다.
공연이 끝나가니, 이 시간 이후 누군가가 뗀다면 쓰레기통에 버릴 것 같아 두고 올 수가 없어 공연장에서 받은 포스트 위에 동그랗게 말았습니다. 모두 빠져나간 지하인데 인기척이 납니다.
건너편에서 전동차를 기다리던 많은 이들이 보고 있습니다. 그래도 안고 왔습니다.
부산대학교측의 공연 불허로 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수고를 하여 승리한 오늘의 추모공연입니다.
부산대 학생과 부산 시민, 자원봉사자, 언소주, 진알시, 부산광장, 부경아고라, 대구촛불시즌 등 관계자 여러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시대의 숙명으로, 그는 바람이었고 우리는 그의 국민이었습니다. 행복했습니다.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에서 -
하지 못한 추도사를 대신하며
우리가 깨어 있으면
노무현은 죽어서도 죽지 않습니다. - 대한민국 15대 대통령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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