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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는 그곳의 문화가 있다

by 실비단안개 2009.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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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 저녁식사 후 부터 아침까지 오줌은 요강에 누면 되지만, 큰일은 변소에 가야 했는데, 비가 내리거나  겨울날에 저녁 식사 후 변소에 가는 일은 어린 나이에 가질 수 있는 몇 가지의 무서움증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어느날 낮 시간에 할아버지의 하얀고무신을 끌고 변소에 갔다가 일을 보고 발을 옮기는 순간 할아버지의 고무신이 변소에 빠졌습니다.

천만다행으로 변소가 찼기에 변소의 널판지 바닥에 엎드려 손을 넣어 건져올린 후 식구들 몰래 씻어 두었습니다.

 

변소는 널판지로 버팀목을 해 놓았으며, 재래식이었기에 당시 친구들중에 변소에 빠진 친구들도 있었는데, 다시는 변소에 빠지지 말라는 액땜을 한다고 떡을 하여 이웃에 돌리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변소의 추억으로는 부고장이 오면 할아버지께서는 변소 입구에 꽂아 두었는데, 부고를 집안에 갖고 들어오지 않고 변소나 밖에 두거나 태워버리는 이유는 부고장 상문살이 따라 올 수 있다는 무속적 사고때문입니다.

할아버지께서는 또 변소 앞에서 언제나 으흠하며 기침(인기척)을 세 번 했는데, 이는 칙신( 神), 즉 변소 귀신을 놀라게 하지않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요즘은 화장실이라고 하는데, 화장실이란 말은 서양에서 개발한 수세식 양변기가 들어오면서 사용했습니다. 볼일을 보는 공간과 씻는 공간이 합해지면서 붙인 말이며, 우리말에는 화장실에 해당하는 말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변소(便所) : 대소변을 보는 곳.
해우소(解憂所) : 절에 있는 화장실의 명칭으로 근심을 푸는 곳이라는 뜻.
측간(仄間) : 마당 한 귀퉁이에 놓인 건물이란 뜻.
잿간 혹은 회간(灰間) : 똥을 거름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재나 왕겨를 깔아 두는 곳.
뒷간 : 똥오줌을 눌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곳.
정낭(정랑) : ‘뒷간’의 강원, 경남 방언.
통시 :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 일부와 제주도에서 화장실을 이르는 말. 똥을 누면 '통' 떨어지고, 오줌을 누면 '시'하고 소리가 난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하는데 더 이상의 진실은 모르겠습니다.^^

        ▲ 청도역의 모형 통시로 2년전과는 달리 지금은 위치가 바뀌었는데,

예전의 위치가 좋아 07년 07월의 사진을 올립니다.

 

대소변을 보는 변소, 뒷간이 어쩌다가 '화장실(化粧室)'이 되었을까요?

18-19세기 경 영국에서는 가루를 가발에 뿌리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이 때 상류층 가정의 침실에는 대개 '파우더 클라짓(powder closet)'이 마련됐는데, 이곳은 가발에 가루를 뿌리기 위한 공간으로, '화장하는 방'인데 가루를 뿌린 뒤 손을 씻어야 하므로 물을 비치 하게 됐고 이후 '화장실'이 변소를 의미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새마을 운동으로 지붕 개량과 함께 시골의 변소는 널판지를 걷어내고 시멘트로  개량한후 구식양변기(당시로서는 대단한 신문물이었지만) 설치 후 변소문에 '변소' 대신 'W.C'라고 멋드러지게 쓰는게 유행이었던 때가 있었으며, 어느날부터 W.C는 화장실이 되었는데, 화장실보다 변소, 뒷간이나 정랑이 더 시원하고 정겹게 들리며, 북한에서는 위생실이라고 합니다.

 

아주 오랜 옛날에는 자연속에서 배설을 해결했겠지만, 요즘은 가정과 공중화장실 모두 개성이 독특한데, 지역과 특정건물의 문화적인 측면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 화장실 입구의 안내표지로 해군사관학교의 거북선에는 뒷간이라고 하며,

정랑은 영업용 밥집, 르노와르의 그림은 우리집 화장실 문입니다.

 

멀리서보면 전혀 화장실같지 않은 풍경의 화장실이 많습니다.  아래 등대화장실은  진해 STX조선소 윗쪽의 대발령 쉼터에 있는 화장실로 고정 창문에는 작은 화분도 있는데, 건물과 함께 작은 항구도시만이 가질 수 있는 소소한 정이 느껴지는 화장실입니다.

 

가을에는 국화가 배경이 되지만 봄에는 통나무 주위로 벚꽃이 만발한데, 진해 내수면연구소의 공중화장실입니다. 숲속의 작은 통나무집 같은데, 진해시에는 시민들이 쉴 수 있는 작은 쉼터에 통나무 화장실을 계속 설치중입니다.

 

항구 도시답게 선박모양의 화장실입니다.

왼편은 진해시 흰돌메 공원에 있는 화장실이며, 오른쪽은 거제시 고현에 있는 범선모양의 화장실입니다.

진해의 화장실은 여자용인데, 남자용 화장실은 옆에 다른 건물이 있긴하지만, 선박 모양이 아닌 둥근지붕의 평범한 화장실로 여자용만 선박모양으로 한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 서면 바다 매립현장과 신항 공사 현장이 보입니다.

 

가장 거제다운 화장실로 거제 농소에서 출발한 선상에서 담은 풍경입니다.

거제 농소몽돌해수욕장이 펼쳐져 있으며, 거가대교 부분이 보이는데, 붉은 동그라미 안이 화장실로 쌍동이 화장실입니다. 왼편은 풍양카페리호 선착장이 있는 간곡으로 간곡화장실이며, 오른편은 임호화장실로, 거제시 진목면 농소리 간곡마을과 임호마을로 농소몽돌해수욕장이 길게 펼쳐져 있습니다.

 

바다와 해수욕장에서 보면 2층이며 도로에서 보면 1층 건물로 등대모양은 전망대를 겸하며, 전망대를 중심으로 몇 개의스피커가 있는데, 재해발생시나 기타 위험시에 안내 방송을 하여 위험에 대처하도록 합니다. 

화장실 건물은 몽돌해수욕장답게 큰몽돌로 이루어졌는데,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으며, 아래에는 해수욕객을 위하여 여러개의 수도시설도 되어 있습니다. 

관리는 거제시에서 하며, 사진보다 실제 화장실 건물이 훨씬 아름답습니다.

 

 

▲ 밀양 꽃새미마을의 화장실

 

밀양 꽃새미마을의 화장실은 간이 화장실도 다른 지역과는 차별이 될 정도로 이쁘며, 허브나라의 화장실 또한 동화에나 나옴직한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화장실입니다. 볼일이 없더라도 억지로라도 일을 보고 싶은 화장실이 꽃새미마을의 화장실입니다.

 

▲ 안동 도산서원                 ▲ 순천 송광사                 ▲ 청도 운문사

      

서원과 사찰의 화장실은 대부분 지붕이 기와였으며, 송광사의 화장실은 '해우소'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데, 나무라기에는 약한 널판지 다리를 건너야 화장실이 있습니다.

송광사의 화장실은 널판지 다리 아래로 수생식물이 있으며, 화장실이 전체적으로 나무였기에 일을 느긋하게 보기에는 불안했습니다. 널판지가 삐걱하며 빠질것 같아서요.^^

 

▲ 탐라목석원(木石苑)의 화장실

         

제주도의 화장실은 역시 제주답습니다.

돌과 초가의 목석원의 화장실이 제주다워 아름다웠으며, 산굼부리의 이끼화장실은 마치 작품같았습니다.

 

'굼부리'의 '굼'이란 '산에 생긴 구멍'이란 뜻의 제주도 방언이며, '굼부리'란 화산체로 인해 생긴 구멍을 뜻하기에 산굼부리는 산에 생긴 화산체 분화구라는 뜻입니다.

10만 년 전 화산이 폭발할 때 그곳에 있던 암석이 빠져나가 커다란 구멍이 나면서 산굼부리가 태어났으니, 산굼부리의 화장실은 그 암석으로 지어졌을 테지요. 분화구와 억새도 좋지만, 깊은 감동은 소소한데서 더 크게 받는데, 이곳의 화장실이 그랬습니다.

 

제주도에는 유명한 돗통시가 있는데, 돗통시는 돼지가 있는 화장실이라는 제주사투리입니다.

돗통시는 돗통과 뒷간으로 구분되는데, 돗통에는 돼지가 누울 수 있을 만큼의 돼지막이 있으며, 원두막같은 뒷간은 사람이 앉으면 보이지않을 정도의 나무나 대나무 울이 있으며, 뒷간 아래의  돼지는 사람의 똥오줌을 처리해주었는데, 제주도 똥돼지에는 자원 재활용에 앞장 섰던 선조들의 지혜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화장실 밑이 바로 돼지우리여서 돼지가 사람의 인분을 먹고 컸다고 하여 똥돼지라고도 불렀지만, 요즘은 화장실도 수세식으로 바뀌고 돼지도 사료로 키워 똥돼지 화장실은 민가에는 없으며, 민속촌이나 자연사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습니다.

 

똥돼지 화장실은 제주도에만 있던 것이 아니라 강원도 양구, 경남 충무, 거창, 함양, 전남 광양 등지에도 있었다고 하는데, 경남 고성의 박진사 고가의 대문을 들어서면 이와 비슷한 2층 형태의 화장실이 있는데, 그 아래에서 돼지를 키우지는 않은 듯 했습니다.  고가 방문 당시에는 화장실에 큰관심을 가지지 못했기에 기념으로 사진으로 남기기만 했는데, 다시 방문 할 기회가 있으면 자세히 알아봐야 겠습니다.^^

 

▲ 산굼부리 화장실            ▲ 제주 자연사박물관             ▲ 고성 박진사 고가

 

유명인의 생가 복원이 마치 유행같은 시대입니다.

50년 후쯤 후나 그 이후에 우리 아버지 세대나 우리들 세대 중에도 후손이나 관계자들에 의해 생가가 복원 될 경우가 있을 텐데, 그때 생가가 복원이 된다면 어떤 형태가 될까에 대해 가끔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리들 세대까지는 나름대로 생가다운 형태로 복원이 될 수 있겠지만, 우리 세대 이후에는 대부분 아파트 세대이니 훗날에 복원되는 생가는 재개발로 없어진 아파트를 검색하여 재개발 구역 근처에 비슷하게 기념물로 남기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드는데, 이건 저만의 잡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달진 시인의 생가에 있는 변소는 사용이 불가능한 기념물 정도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꼭 필요한 우리 화장실 문화의 한부분이 됩니다.

우리 어릴때와 비슷한 변소의 풍경으로 헛간을 겸하며 농기구 등이 잡다하게 있는데, 부모 세대가 기억하는 결코 아름답지는 않지만, 친자연적인 향수의 대상이 되는 변소 풍경은 청소년 이하의 아이들이 본다면 비위생적인 화장실 문화겠지요.

 

▲ 노무현 대통령 생가의 변소                     ▲ 김달진 시인 생가의 변소

         

그동안 기차를 여러번 탔지만, 기차의 화장실 풍경은 담지 못했습니다. 기차 역시 예전과는 달리 아주 현대식 풍경인데, 작은 공간에서 갖추어야 할 건 다 갖추어진 화장실이 기차내의 화장실입니다.

 

아래는 특수 공간의 화장실로 거북선과 잠수함, 여객선의 화장실입니다.

거북선의 화장실은 윗부분은 트였으며, 변기가 두 개입니다. 많은 인원이 장시간 바다에서 생활을 하기에 화장실이 두개인 모양인데, 화장실의 이름은 '뒷간'으로 조선시대의 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잠수함은 마치 우주선 같은 느낌인데, 시설의 부분이기에 설명을 더 이상 드리지 못하며, 잠수함 화장실 옆은 진해 안골과 거제 농소를 왕래하는 풍양카페리호의 남자화장실입니다. 남자와 여자 칸이 따로 있는데, 남자 화장실에는 여자화장실의 문에 없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어린이를 위한 배려일까요?

 

▲ 거북선의 화장실              ▲ 잠수함의 화장실                ▲ 풍양카페리호의 화장실

      

현대 시설의 화장실 내부 풍경입니다.

부산 유엔공원묘지(큰아이 모습이 있기에 올리지 못함)의 화장실은 외국인에 맞도록 오래전부터 편리한 시설이었지만, 우리나라는 근래에 시설에 투자를 하는데, 시계방향으로, 진해 기적의 도서관 어린이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 고속도로 휴게소와 부산 지하철 역사의 화장실입니다.

 

며칠전에 잠시 이야기를 했는데, 기적의 도서관에는 장애우, 남자, 여자, 어린이용 화장실이 있으며, 어린이  전용 화장실에는 모든 시설이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도록 배치되어 있습니다. 또 여자 화장실은 엄마와 자녀가 함께 이용할 수 있기에 세면대와 거울이 어른용과 어린이용이 나란히 있습니다.

 

기적의 도서관외에 고속도로 휴게소와 지하철 역사의 화장실도 어린이용 변기와 세면대, 기저귀 가는 곳이 있으며, 지하철과 병원의 화장실에는 비상벨과 장애인(환자)용 화장실이 따로 있는데, 진해 연세병원의 경우 환자용인 경우에 휠체어 등의 이동시 불편을 예상하여 화장실문이 접이식이라 넓게 열리는데, 다른 병원은 이 부분이 약했습니다.

 

주차장과 마찬가지로 공간의 배려가 아쉬운 곳이 공중화장실이기도 합니다.

 

모든 공간이 특별하지만, 좀 더 특별한 공간은 화장실도 차별이 되었습니다.

 

이병주 문학관의 경우에 화장실 입구부터 이병주 소설 어록이 이쁘게 기록되어 있으며, 김해 클레이아크 미술관의 경우 화장실벽을 장식한 소품도 도자기였기에 여느 화장실보다 맑고 밝아 화장실이라는 생각이 들지않고 작품 감상실 같았습니다.

 

▲ 이병주 문학관 화장실과 김해 클레이아크 미술관의 화장실

       

고속도로 휴게소를 비롯 밥집 등 많은 영업장에서 비데시설을 갖추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비데시설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아래 사진의 왼편은 공중화장실의 비데시설이며, 오른편은 변기와 나란히 있는 비데로 대구의 한 호텔 화장실 풍경입니다.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기자의 블로그에서 가져왔는데, 김주완 기자의 호텔 화장실의 이것, 대체 뭘까요?에 보면 설명이 있지만, 살짝 귀뜸을 하면  보조변기같은 것은 유럽식 비데로, 유럽 사람들은 전기를 이용해 변기에서 바로 물이 나오는 '일체형 비데'에 대한 거부감이 아직 많아서 대부분 이런 비데를 쓴다고 하는데, 나라와 개인이 선호하는 문화가 다르기에 우리식과 유럽식 어느 것이 더 좋다라고는 말씀을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유럽식 변기임이 확인되는 순간 글쓴이 김주완 기자만큼 저도 허무했습니다.^^

 

▲ 일반 비데                          ▲ 유럽식 비데

                                                                                          (출처 : 김주완 김훤주의 지역에서 본 세상)

 

작은아이가 비데를 설치하자고 하지만, 큰아이는 배설 후에는 닦는 맛이 있어야 쾌감을 더 느낄 수 있다면서 비데 설치를 반대하는 실정인데, 화장지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두루마리 화장지는 1879년 미국 필라델피아의 스코트 형제가 우연히 발명했으며, 우리가 사용하는 두겹의 두루마리 화장지는 1960년대에 이종대 씨가 개발한 것으로 두겹은 한겹보다 부드러우며 쉬이 찢어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한겹의 두께는 0.1mm며 엠보싱은 0.26mm라고 합니다.

 

요즘은 화장지를 취향에 맞게 고르지만, 우리가 어릴 때는 조선일보를 적당한(어른 손바닥만큼) 크기로 잘라 철사에 끼워 사용했으며, 가끔은 철사에 끼워져 걸려있는 새농민책을 찢어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럼 오래전 옛날에는 무엇으로 뒷처리를 했을까요.

 

식물중에 '며느리밑씻개(사진)'라는 가시가 돋은 식물이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종이가 귀했던 옛날에는 종이 대신 지푸라기나 나뭇잎, 심지어 새끼줄을 걸어놓고 밑닦이로 사용했는데,  어느 시아버지가 (못된 시아버지였는지, 아니면 며느리를 벌주려고 그랬는지 몰라도) 며느리에게만 온통 가시 투성이인 이 풀의 줄기를 걸어놓고 닦도록 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궁중에서 사용해온 뒷간에 대한 문헌은 조선시대 외에는 아직 발견된 것이 없다고 합니다.

 

현존하는 고궁의 설계도를 보아도 칙간은 없고, 다만 창덕궁 대조전에서 회랑으로 연결된 경운각 뒷편에서 유일하게 칙간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뿐이라고 하며, 조선왕은 소변을 요강에 보았고, 대변은 매우틀(혹은 매화틀)이라는 휴대용 변기를 이용했다고 합니다.

 

매우틀은 임금의 편전과 왕대비의 침전에만 있던 이동식 화장실을 말하는데, 매우(梅雨)의 매는 '큰 것'을, 우는 '작은 것'을 이르는 향기로운 말이라고 합니다. 매우틀은 나무로 만들어졌고, 그 안에 사기나 놋그릇을 넣어 서랍처럼 넣고 뺄 수 있도록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화장지로는 왕의 경우는 비단으로 닦았다고 하는데, 혹시 뒷처리도 내시나 궁녀가 해 주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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